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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는 제조업 구조조정의 마루타였다"

[쌍용차 사태, 파장은④] 쌍용차 다음은 GM대우?

지난 6일 마무리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의 파업은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를 많은 이들의 가슴에 심어 넣었다. 그리고 수많은 쟁점과 교훈을 우리 사회에 남겼다. 비록 쌍용차 노동자의 파업은 끝났지만, 자동차산업 노동자 앞에 놓인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은 이제 시작이다. 쌍용차 사태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을 꼼꼼히 점검해봐야 하는 이유다.

제조업 조직노동자 구조조정의 '마루타'로 선택된 쌍용자동차

사실 쌍용차 노동자는 제조업 조직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앞둔 거대한 세력에게 일종의 '마루타'였다. 단순한 부실기업 구조조정 차원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의 신호탄 성격이었다. 이는 자동차 산업 전문가가 아니어도 알 수 있다.

"구조조정은 노사 문제라고 해서 정부가 아예 빠져버리면 앞으로 한국에서 구조조정 못한다. 다른 완성차의 구조조정에도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이다." (현대차 해외부문 사장 출신인 이유일 쌍용차 법정관리인, <조선일보> 6월 15일자)

"이명박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구조조정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노동정책 차원에서 정리해고의 선례를 남기는 게 쌍용차 사태에 있어 정부의 최우선 목표인 것 같다"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 "MB정부 목표, 쌍용차로 현대차 잡기", <프레시안>)

"쌍용차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경우, 한국 자동차업계에 이어질 다른 구조조정에도 매우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상무, <조선일보> 6월 29일자)

"정부 그러니까 산업은행이 정해준 법원한테는 가이드라인이 있지 않습니까? 정리해고를 안 하면 돈을 지원하지 않겠다, 이런 가이드라인을 딱 정해줬으니까 사측도 굉장히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 사측은 권한이 거의 없고요." (정장선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7월 27일 CBS 인터뷰)

지난해 말에 시작된 세계대공황 국면에서 정권과 자본은 그 대가와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시작했다.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들로부터 잘려 나갔다. 노동조합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시작된 공격은 올해 초부터는 점차 대기업 사내하청 등 조직된 비정규직에게 옮겨갔다. 이미 현대자동차, GM대우자동차 등에서 수 천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낮은 곳의 노동자부터 자르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저항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조직 노동자에게 작은 양보까지 하면서 조직 노동자를 관리해 왔다. 물론 그 노림수는 "미조직·비정규직·하청·부품사 노동자들 먼저 자를테니 눈을 감아라. 그러면 너희들의 고용은 보장하겠다"는 속삭임이었다. 안타깝게도 다수의 완성차 사업장에서 이런 속삭임은 통했다. 그와 동시에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의식'은 점차 깨졌다.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계급 안에서도 고립된 것이다.

그러나 조직 노동자도 끝까지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 출발점이 쌍용차였다. 법정관리라는 상황도 있었지만 쌍용차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마루타로 적합했다. 완성차 사업장 중 규모가 작은 편이어서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노동자 투쟁의 경험과 전통이 가장 취약했다.

▲그 출발점이 쌍용차였다. 법정관리라는 상황도 있었지만 쌍용차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마루타로 적합했다. ⓒ프레시안

알고도 대응 못한 민주노조운동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시나리오는 매우 뜻밖의 변수에 부딪히게 되는데, 예상외로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완강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쌍용차지부 집행부를 포함해 매우 낙관적인 활동가들조차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보지 않았다.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강성집행부' 운운하지만, 쌍용차 파업을 한번이라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파업을 실제로 끌고 갔던 주인공은 집행부도 외부세력도 아닌, 이름 없는 수많은 '평범한 조합원들'이었다. 강성집행부 운운하는 이들은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반노조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기 위해 쓰는 것일 뿐이다.

결국 공권력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파업이 한 달을 훌쩍 넘겨 사측이 용역 경비와 불참조합원들을 동원해 공장에 진입하던 6월 26~27일이었고, 전면적인 개입은 공장 출입을 봉쇄한 7월 1일부터였다. 공권력 투입 협박과 함께 청산(파산) 얘기가 나왔다. 여기에는 법정관리인들 뿐만아니라 회계법인, 법원, 지식경제부도 동원되었다. 희망퇴직 위로금조차 주지 못하는 사측은 파업노동자 고립과 포위를 위해서는 공권력 투입 촉구대회를 여는 등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노동계는 잠잠했다. 쌍용차가 자동차산업 조직노동자 공격의 '마루타'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정리해고 문제를 넘어 '파산' 협박까지 진행되는 국면에서 쌍용차 문제는 단위사업장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성격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대'란 없었다. 경찰 병력의 완전 봉쇄가 시작된 지 2주일 만에야 소집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는 "현실적으로 파업이 쉽지 않다"는 주장의 경연대회였다. "공권력 침탈 시 전면총파업 결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확인도 되지 않았다. '평범한 조합원들'은 그 엄청난 포위와 고립에도 불구하고 한 달 이상을 더 버텼으니 연대를 조직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따라서 쌍용차 파업은 강성 노동운동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무능력을 보여준 사례였다. 더욱 뼈아픈 사실은,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쌍용차 정리해고가 제조업 조직노동자 공격의 신호탄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눈만 뜨면 '자동차 산업정책'을 운운하던 금속노조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도 없고, '자동차산업 범대위'를 주도적으로 구성했던 민주노총이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

▲ 더욱 뼈아픈 사실은,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쌍용차 정리해고가 제조업 조직노동자 공격의 신호탄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프레시안

쌍용차 다음이 될 완성차 사업장들은 지금?

특히 완성차 사업장들의 상태가 가장 안 좋았다. 쌍용차 파업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던 6월 중순경에 현대차지부 윤해모 집행부가 돌연 사퇴해 버렸고, GM대우차는 말 많은 교섭 끝에 7월 중순 무쟁의로 올해 임단협 교섭을 타결지어버렸다. 그나마 기아차지부가 파업을 했지만, 그것도 연대파업의 성격이 아니라 임단협 파업에 연대의 의미를 가미한 것이었다. 6월 26일 열린 현대차지부 대의원대회에서 현장 대의원의 발의로 "쌍용차 공권력 침탈시 연대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안건이 올라갔지만, 대의원 총원 288명 중 찬성 116명, 찬성률 40.3%로 부결되는 일도 벌어졌다.

사실 다른 완성차 사업장들 역시 엄청난 내부 쟁점들을 안고 있었다. 현대차 울산과 아산에서는 비정규직 해고 문제와 물량나누기, 전환배치, 혼류생산 및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문제가 걸려있었고, 여름휴가 직전 전주공장에서는 버스부 전환배치냐 비정규직 집단해고냐를 던지는 사측의 공세가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 GM대우는 쌍용차와 동일한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장이다. GM 본사는 GM대우에 돈을 투입할 의사가 전혀 없다. 산업은행이 지원하지 않는 한 조만간 유동성 위기에 처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뉴 GM'에 편입되었다는 얘기는 사탕발림일 뿐, 최근 GM의 유럽 법인 오펠의 사실상 파산에 따른 매각 사례에서 보듯, 한국 정부가 자금 투입을 해주지 않으면 GM본사는 GM대우의 파산에 대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GM은 전미자동차노조(UAW)와 올해 맺은 단체협약에서, 미국에 소형차 및 경차 전용 생산공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특히 이 협약에는 "현 시점에서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차종을 생산한다"고 했는데, 사실상 GM대우에서 생산될 소형차 일부가 미국 본토공장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GM의 해외공장 중 소형차와 경차를 생산하는 곳은 중국과 한국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해당 차종이 군산공장에서 생산되는 라세티 프리미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뿐이 아니다. 6월까지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으로 유지해온 국내 완성차 내수가 7월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차의 주력 모델인 쏘나타와 그랜저, 제네시스 등의 판매는 7월 20일 기준으로 전월 대비 40% 가까이 하락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친환경 자동차인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와 '포르테 하이브리드 LPi' 등을 선보였지만 신차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로 인해 현대차는 8월부터 미국에서 써먹었던 "차량 구매 후 1년 이내 실직 시 되사준다"는 판매정책을 국내에 적용해 '한국형 어슈어런스(Assurance)' 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했다. 신차 구매 후 1년 동안 차량 사고와 비자발적 실업에 대한 손실을 일정금액 보상해준다는 것이다.

가장 잘 나간다는 현대기아차의 내수 판매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것은, 이제 쌍용차의 다음 차례로 GM대우만이 아니라 현대기아차도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써부터 울산 5공장에서는 투싼 후속 신차생산에 노동강도를 높이고 비정규직을 집단적으로 해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측이 얘기하는 인원축소 숫자는 이미 비정규직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정규직 인원 감축도 불가피하다.

게다가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과 함께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살아난 이명박 정부의 중고차 교체시 세금감면 정책에는 '파업 감소 등 노사관계 안정'이라는 옵션이 붙어있기도 하다. 말이 좋아 노사관계 안정이지 사실상 강력한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주문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평범한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희망을 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딘가에는 희망의 단초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 단초를 평범한 노동자들에게서 찾아보고자 한다. 쌍용차 정리해고 분쇄투쟁에서 평조합원들이 처음부터 주인공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자본의 착취와 통제 아래서 신음해오던 평조합원들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 서게 된 것은, 전면파업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그 전까지는 집행부의 지침이 결정되고 하달되더라도 간부들의 통솔이 없이는 잘 모여지지 않는, 매우 수동성이 강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전면파업이 시작되고 회사는 나를 위해서 더 이상 식사를 제공하지도 않고 출퇴근 버스도 운행하지 않는다. 그러자 취사병 출신의 노동자들이 밥을 짓기 시작했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설거지를 맡는다. 불침번을 서고 농성장 주변을 청소·정리하는 것도 자발적으로 나선다. 전기 배선을 새롭게 하기 위해 전기공들이, 농성장 보수작업에 보전과 정비노동자들이 나선다. 나이든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전면파업이 시작되고 회사는 나를 위해서 더 이상 식사를 제공하지도 않고 출퇴근 버스도 운행하지 않는다. 그러자 취사병 출신의 노동자들이 밥을 짓기 시작했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설거지를 맡는다. ⓒ프레시안

그동안 관리자들과 회사 임원들의 명령과 지휘·통제에만 따르기만 하면 임금을 받을 수 있던 노동자들이, 돈 한 푼 주어지지 않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강성노조 때문에 전환배치 등 노동유연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말과 정반대로, 파업 기간 동안 평범한 노동자들은 집단적인 토론 속에서 자발적인 분업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 다쳐서 그 일을 하기 어려우면 토론을 통해 다른 노동자가 '전환배치' 되었다. "함께 살자"는 구호는 파업 속에서 새롭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자동차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노사가 합동으로 고용안정기금을 조성하여 실직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자, 정부 주도로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무수한 대안들이 논의되긴 하지만, 노동자가 가만히 있는데 정권과 자본이 이런 것들을 제공할 이유가 없다. 고양이에게 쥐 사냥을 그만 두라고 점잖게 타이르는 꼴이나 다름없다. 쥐들이 집단적으로 뭉쳐서 고양이를 물어뜯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없는 한, 당분간 고양이는 맥 풀린 쥐 사냥에 열을 올릴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는 맥 풀린 쥐들 사이의 용감한 쥐들이었다.

현대차지부가 처음으로 '동조 파업'을 부결시킨 대의원대회로부터 한달 여가 지난 7월 29일 다시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쌍용차 파업 연대를 위해 7월 30일, 31일 잔업거부투쟁을 전개한다"는 현장 발의 안건에 대해 대의원 총원 337명 중 찬성 167명, 과반에 2표 모자란 찬성률 49.6%로 다시 부결되었다. 비록 '부결'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달 여의 시간 동안 일부의 활동가들이 출퇴근 시간과 중식 시간에 끝없이 '연대'를 호소한 결과로 40.3%에서 10%가까이 찬성율이 높아졌다.

비록 쌍용차 투쟁은 파업에 참여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상처 속에 마무리되었지만, 상처만 남은 것이 아니다.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심한 무기력증을 앓던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희망도 남겼다. 그리고 그 희망의 크기를 더욱 크게 만들어내는데 역할하지 못한 한계에 대한 자기반성도 함께.

이 글은 그런 희망과 반성의 기록이다. 특히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찌는 무더위 속에 물과 전기, 가스공급이 차단되고 음식물과 의약품 반입조차 중단된 상태에서, 경찰특공대와 헬기 최루액 난사 등 가공할 국가권력의 폭력에 수십 일간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쌍용차 파업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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