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8개월 만삭의 몸이 된 이정아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난 7월 20일에 식수 반입 금지 및 가스공급을 중단한 것에 이어 사측은 지난 2일에는 전기를 끊었다. 화재를 대비해 마련된 소화전도 이미 끊긴지 오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30일 경기경찰청장에게 평택공장 노동자에게 물과 음식을 공급하라고 긴급구제 조치를 권고했지만 소용 없었다. 경기도 소방본부는 3일 소화전을 차단한 사측의 행위가 '소방법'에 위촉된다며 급수 재개를 요청했지만 요지부동이다.
▲ 3일 쌍용차 노조 가족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차 사태의 해결을 또다시 촉구했다. ⓒ프레시안 |
각종 인화물질로 가득한 도장공장 "불나면 폭발할 것"
사측과 경찰의 이런 '모르쇠'는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노조원의 대거 이탈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지만, 문제는 도가 지나치다는데 있다. 화재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해 본 노동자는 그 위험이라는 것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지난 8년 동안 도장 제2공장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 유미숙(가명, 54) 씨는 "경찰이 무리하게 도장공장을 진입하다 불이 나면 공장 전체가 폭발해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씨는 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다가 지난 6월 26일 도장공장에서 스스로 나왔다.
유 씨에 따르면 총 4층으로 되어 있는 도장공장은 지하에는 변전실 및 비상 발전시설이 설치돼 있고 3층과 4층에는 노조사무실 및 복지관 등이 배치돼 있다. 문제는 1층과 2층에 다수의 발화 물질이 쌓여 있다는 것. 1층에는 시너 탱크와 페인트 탱크 등이 설치돼 있고 2층에는 차량을 도장할 때 쓰이는 도장부스가 마련돼 있다.
유 씨는 "도장공장 내 모든 부서가 시너를 사용한다"며 "도장 공정 과정에서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 한 사람당 시너 통을 하나씩 도장 공장에 갔다 놓고 쓰기 때문에 그 양은 상당하다"며 "만약 여기에 불이 붙으면 공장은 단순한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장 안에는 20여 만 리터의 시너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측의 '단전 조치'가 초래할 불상사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었다. 유 씨는 "공장 자체가 워낙 미로처럼 꼬불꼬불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해 온 노동자도 길을 헤매는 경우가 있다"며 "불까지 꺼진 상태에서 경찰이 진압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노조는 핸드폰을 통한 비상연락망을 준비했으나 단전으로 이마저 소용없어졌을 것"이라며 "결국 화재가 발생하면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없이 자력으로 공장을 나와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 경찰은 교섭 이후 중단했던 최루액 살포를 이날 다시 시작했다. ⓒ연합뉴스 |
상황이 이렇지만 경찰과 사측은 강경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속적으로 도장 공장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다시 헬기로 최루액을 투하하는 등 도장공장의 조합원을 압박했다. 노조도 화염병과 새총을 이용해 맞서 평택공장은 또다시 전쟁터가 됐다. 이에 앞서 직원 및 용역 경비원도 도장공장으로의 진입을 시도해 노조와 마찰을 빚었다.
이와 동시에 사측은 정당인 및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는 식수 반입 및 단전 해제 등의 요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도, 지난달 30일 나온 국제사면위원회의 성명도 사측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소방재청의 시정명령도 마찬가지다. 송탄소방서장이 지난달 17일과 29일, 그리고 3일 세 차례에 걸쳐 소화전 등 단수 및 가스 공급 중단에 대해 시정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측은 "법적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사측이 위반하고 있는 소방기본법 제28조를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 사측을 고소했다. 이정아 대표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가족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쌍용자동차 공장 안으로 식수를 전달하려 했으나 사측 경비 용역에 의해 가로막혔다. 이 과정에서 사측 직원들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30여 분 동안 서로 돌을 던지고 폭행을 가하는 등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양 측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금속노조 관계자의 이마가 찢어지는 등 4~5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 가족대책위는 이날 물 반입을 시도했으나 사측 경호 용역에 의해 저지당했다. ⓒ연합뉴스 |
▲ 이날 사측과 민주노총 노조원과의 충돌 중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의 보좌관이 경찰에 연행됐다. 곽 의원은 경찰에게 보좌관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저지당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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