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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진정 대분열의 시대를 원하는가?

[의제27 '시선'] 미디어법은 보수의 무덤이 될 것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요즘 의료개혁을 추진하느라고 바쁘다. 의회에는 시한을 정해 놓고 법안을 만들어 내라고 재촉하는 한편,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난 목요일에는 오하이오에서 주민들과 함께 타운홀 미팅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난데없는 일로 발목이 잡혔다. 사정은 이렇다.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흑인문제 연구가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교수가 중국 출장 뒤 돌아와 집에 들어가다 집 열쇠가 없어 문을 따려고 했다. 친절한 이웃 주민 중 하나가 경찰에 신고를 했고, 확인차 출동한 경찰이 게이츠 교수와 실랑이를 벌이다 게이츠 교수의 신원을 확인하고서도 체포해서 경찰서로 연행했다. 4시간 만에 경찰은 그를 풀어주었으나, 하버드대의 유명 교수가 경찰과 시비 끝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전국적 뉴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게이츠 교수는 인종차별이라고 격노했고, 경찰은 정당한 공무집행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누가 보더라도 미국 내 뿌리 깊은 인종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경찰인 크롤리 경사를 찾아간 미국의 편파적인 보수 방송인 Fox 뉴스의 기자는 집요했다. 크롤리 경사는 기자들이 자기 직무에 충실한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정중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편안한 대화를 이어가는 체 하며 계속 자극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 순간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 분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싸움 붙이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던지기 힘든 질문이었다. 크롤리 경사는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다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가 갑자기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질문을 던졌다. 크롤리는 단호하게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시 상부에서 지시하더라도 사과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크롤리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고, 결국 이 크롤리 경사의 발언이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다. 흑인 지도자들과 경찰 협회 관계자들의 성명이 잇따르며 갈등은 심화되었다.

그 결과 의료개혁 설명하기 바쁜 오바마의 기자회견장에서 이 사건이 거론되었다. 오바마는 의외로 솔직하게 자기 집에서 체포한 것에 대해서 경찰이 '어리석게'(stupidly) 행동했다고 답했다. 그의 이 발언은 곧 적대적 비판자들에 의해 경찰 전체를 모욕했다고 침소봉대되고,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자 오바마는 긴급 진화에 나서야 했다. 두 당사자를 불러 백악관에서 맥주 파티를 벌이겠다는 희안한 해결책을 제시한 후에야 다소 진정되었다. 반대 논객들은 실제 맥주파티가 이루어지고 나면 다시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Fox 뉴스가 바꾼 미국

미국의 보수적인 방송인 Fox 뉴스가 출범한 것은 1996년이다. 그 이후 줄곧 보수적인 논지와 일방적인 공화당 지지 방송으로 비판받으며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은 식자들의 현학적인 해설과 애매모호함으로 점철된 공중파 방송의 뉴스 해설에 비해 자극적인 Fox 뉴스의 해설가들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 로버트 그린왈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티폭스>(원제 OutFoxed) 포스터. <안티폭스>는 거대 미디어 그룹에 지배된 미국 방송뉴스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을 받는다.
필자와 같은 비전문가의 눈에도 Fox가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쉽게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Fox에 대항하는 진보적인 방송들의 언어가 매우 거칠어졌음을 느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진보의 입장에서 거친 보수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상대의 의견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일방주의적 부시 시대를 거치며 거의 천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방송이 난무했다. 이렇듯 미국의 보수와 진보 방송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직설적으로 상대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 대분열 시대의 중요한 원인이 방송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대분열의 사회적 비용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필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누군가가 이런 미국의 양상을 부러워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방송법의 직권상정은 더욱 충격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방송법의 시행으로 새로운 방송사의 진입에 따른 문제를 걱정하지만, 필자는 기존 방송의 변화도 심각하리라고 우려한다. 지금까지 그래도 합리적인 언론의 위치를 지키려 했던 기존 방송사 내의 불안정한 균형추가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각기 보수와 진보로 갈려 갈등을 조장하는 자극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방송계로 바뀔 가능성을 염려한다.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는 점차 사라지고 그야말로 쓰레기 논객들만이 넘쳐나는 방송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염려한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계는 더 큰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재벌과 보수언론을 위한 선물치고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댓가가 너무 크다. 한국의 보수는 진정 대분열의 시대를 원하는가?

진보와 보수의 간극

최근 한겨레 21은 미디어다음에서 <프레시안>과 <뷰스앤뉴스>가 빠진 것은 정치적 균형을 맞춰달라는 정부의 요구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미디어다음에 현재 인터넷 언론은 노컷뉴스, 데일리안, 오마이뉴스만이 남아있다. 일단 다음 쪽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청와대 관계자와 미디어다음의 중요 인사가 자주 연락을 한 것은 확인되고 있다. 이것이 정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 하에 분석해 보자.

만약 이런 식의 균형에 입각해 미디어다음의 다른 언론 분야를 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경제신문 분야에는 매일경제, 서울경제, 이데일리, 헤럴드경제, 머니투데이, 아시아경제, 파이낸셜 뉴스가 있다. 여기에서 정치적 균형을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보수진영에서는 경제신문은 정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제신문은 매우 보수적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 진영간 간극의 차이는 매우 크다.

따라서 자신의 기준에 맞춰 정치적 균형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만약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서 다음 측에 모든 경제신문을 빼라고 요구한다면 타당한 일인가?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면 미디어다음은 다시 프레시안과 뷰스앤뉴스를 넣을 것인가? 남들 보기에 창피한 일은 삼가는 것이 낫다.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직시하라

사회현상을 논할 때 한 사회의 세력균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커다란 실책을 범하기 쉽다. 미국에는 진보적 부자들이 많다. 미국의 공영방송에는 많은 기업들이 기부한다. 부자들이 설립한 재단에서 수없이 많은 진보적 연구소와 시민단체를 지원한다. 그런 사회에서도 천박한 방송 하나가 대분열의 시대를 가져왔다.

반면 한국의 재계는 일방적이다. 중립적이거나 진보적 시민단체를 쥐꼬리만큼 지원하던 대기업들도 이 정부 들어 아예 지원을 중단했다. 그 결과 시민단체들은 모두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급격히 기구 축소를 하고 있다. 진보적 신문에는 광고도 하지 않아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빠져 있다. 소비자 단체도 무력하고 노동조합의 힘도 약한 사회에서 사회의 균형추는 이미 무너져 있다. 이런 사회에서 후진적 재벌과 보수 언론이 방송까지 장악한다면 미국보다 후유증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우리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만약 적군이라면 기회가 왔을 때 철저히 박멸하는 것이 후환을 없애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나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의견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독점하려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공동체의 해체만을 초래할 뿐이다. 한국의 일반 시민들이 누가 그런 상황을 초래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 이전에 미디어법은 보수의 무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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