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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거대한 공동묘지가 되길 원하나요?"

[쌍용자동차 굴뚝에서 날아 온 편지] 이명박 대통령에게

월요일이었던 20일 아침, 경찰 헬기가 투명한 비닐봉투를 도장 공장 옥상에 떨어트렸습니다. 비닐봉투가 터지자 액체가 흘러내렸습니다. 최루액이었습니다. 도장 공장 옥상에 있던 동지들은 연신 재채기를 해댔습니다. 돌아온 경찰 헬기는 '최루액 봉투탄'을 무더기로 살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최루액 봉투탄'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경찰 헬기는 최루가스를 무차별로 살포했습니다. 공설운동장에서 날아온 3대의 헬기가 번갈아가며 도장 옥상을 저공 비행하며 최루가스를 난사했습니다. 도장 공장 위를 모두 덮어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습니다.

▲ 무차별 최루탄을 난사한 경찰은 도장공장 가까이에서 물대포를 난사했습니다.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바람을 타고 날아온 최루가스는 굴뚝도 하얗게 뒤덮어 버렸습니다. 무차별 최루탄을 난사한 경찰은 도장 공장 가까이에서 물대포를 난사했습니다. 도장을 에워싼 경찰 병력은 프레스 공장과 조립 공장을 차례차례 진입해 도장 공장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70미터 굴뚝 위에서, 차마 이 참혹한 광경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마음과 동료를 배신할 수 없다는 각오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슬러 싸우고 있는 도장 공장의 동료들이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최루액 폭탄, 최루가스, 테이저건눈을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광경

지금은 22일, 밤 12시가 다 되어갑니다. 20일부터 시작된 '살인 진압'은 공장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저녁 식사로 주먹밥이 올라왔지만 계속되는 가슴 통증으로 먹지 못했습니다. 낮에 남겨놓은 죽으로 간신히 허기만 때운 후 약을 먹었습니다.

굴뚝에 올라온 지 71일째입니다. 처음 올라왔을 때는 한밤의 추위가 가장 고통스러웠는데, 최근에는 폭풍을 동반한 천둥번개와 한낮의 더위가 가장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공장 밖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아빠들을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의 고통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헬기 3~4대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을 울리며 굴뚝과 도장 공장 주위로 낮게 날아 최루액을 대량으로 살포합니다. 헬기가 사라지면 회사에서 24시간 동안 틀어놓은 방송 소리가 귀속을 뒤흔듭니다. 남녀가 번갈아가면서 노조를 비난하고 조합원을 회유하고, 늘어지는 미국 흑인 가수 헤이즈의 음악을 틀어댑니다.

방송으로 "KT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으니,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하더니 또 지금은 "쌍용차지부장이 민주노총에 한 자리 하는데 이용당하지 말고 나오라"고 떠듭니다. 초등학생만도 못한 저질 방송을 뻔뻔히 틀어댑니다. 낮에는 헬기의 굉음 때문에, 밤에는 선무 방송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염없이 방송을 듣다 보니 문득 '휴전선에서 북쪽에 있는 인민군에게 이런 방송을 틀어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쌍용차의 노동자들이 적군입니까? 밤낮으로 자동차를 만들며 100~200만 원 월급을 받으며 10~20년을 살아왔던 노동자들, 이제 제발 같이 살자고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테러범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어 정신적으로 미치게 해 이 위험천만한 곳에서 불상사가 일어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밤새 계속되는 선무방송으로 주변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시민들까지도 "잠을 잘 수가 없다"며 항의를 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끔찍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누구를 위해 이런 끔찍한 전쟁을 하는 것입니까?

오늘 노조 간부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안성의 한 묘지에 묻혔습니다. 회유와 협박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을 견디지 스스로 목을 매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치가 떨렸습니다. 당장 굴뚝에서 내려가 그분에게 고통을 준 회사 관리자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습니다.

'우울증'이라구요? 쌍용차 조합원들과 가족 중에 우울증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단연코 회사가 죽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없는 아이들의 엄마, 노인들까지 협박하고, 지금 나오지 않으면 감옥에 간다고 협박하고 회유하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회사가 싫어지고 이제는 인간이 싫어지고 내가 만들던 쌍용자동차까지 싫어지려고 합니다.

평택 공장이 노동자의 무덤이 되길 원하십니까?

▲ 음식물 반입을 중단하고 물과 가스까지 끊고, 경찰특공대 100여 명과 용산참사 때 쓰던 컨테이너를 가져와 기어이 도장 공장 살인진압을 강행하시겠다는 겁니까?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경찰과 용역경비원들이 공설운동장에서 함께 최루가스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루가스에 어떤 화학 약품을 넣는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수면가스를 넣고 있는지, 아니면 식욕이 없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을 타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이것을 확인하겠다고 갔던 금속노조 조합원 30여 명을 연행했다고 하니 더더욱 두렵습니다.

오늘 경찰특공대가 우리 조합원들에게 '테이저건'이라고 불리는 전기 총을 쏴 다섯 명이 쓰러졌습니다. 5만 볼트의 전류를 발생해 근육을 마비시켜 큰 부상을 입히는 대테러 무기를 왜 아무 잘못이 없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발사한다는 말입니까?

경찰이 쏜 총탄이 우리 조합원의 볼을 관통해 생명이 위급한 상황인데도 의사를 들여보내지 않는 자들이 정말 같은 나라 국민입니까? 2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20여 명이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노동자들이 다 죽어서 이 공장을 나가길 원하십니까?

음식물 반입을 중단하고 물과 가스까지 끊고, 경찰특공대 100여 명과 용산 참사 때 쓰던 컨테이너를 가져와 기어이 도장 공장 살인 진압을 강행하시겠다는 겁니까? 정말 평택 공장이 노동자의 무덤이 되길 원하십니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동차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학교를 다니면서 자동차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엔지니어는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동차를 고치고,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2003년 쌍용자동차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100만 원밖에 안 되는 적은 월급이었지만 정규직 꿈을 꾸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우리 네 식구의 조그마한 꿈은 정규직이 되어 안정된 직장에서 조금씩 돈 저축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님, 가족과 생계를 꾸려가겠다는 우리 꿈이 욕심인가요?

어릴 적 가난하게 살아왔다며, 서민을 위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시는 이명박 대통령께 묻고 싶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과 생계를 꾸려가고 싶은 우리들의 꿈이 욕심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저를 포함해 여기에 있는 노동자들은 평생 경찰서 한 번 가보지 않은 착한 노동자들입니다. 남의 돈 빼앗아본 적 없고, 남의 물건 훔쳐본 적 없습니다. 버는 돈 그대로 정부가 달라는 대로 세금 내고 은행에 한 푼 두 푼 모아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사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녕 이 착한 사람들을 적군으로, 테러범으로 몰아 평택 공장을 거대한 무덤으로 만드시려는 겁니까? 제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멈추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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