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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타워 무너진 '관리의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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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컨트롤타워 무너진 '관리의 삼성'

[김상조 칼럼] "Too Big To Manage"

지난 7월 6일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잠정 영업실적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연결기준으로 2분기 매출총액이 31~33조원 수준, 영업이익이 2.2~2.6조원 수준에 이를 것이라 한다. 이러한 수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작년 2분기 실적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영업이익이 작년 4분기 0.74조원 적자, 올 1분기 0.47조원의 미미한 흑자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한마디로 '어닝 서프라이즈'다. 시장에서는 '과연 삼성'이라는 찬사가 가득하다.

逆샌드위치 현상, 우리의 과제는?

경제위기 시에는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선명하게 엇갈리고, 결국 살아남은 자본으로의 집적과 집중이 더욱 심화된다고 한다. 최근 삼성전자만이 아니라,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경우 국내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일대 약진하면서 여타 선진기업들을 제치고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역(逆)샌드위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환율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이 이제는 기술개발 및 제품생산 능력, 브랜드 가치 등의 측면에서 명실 공히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는, 이들 대표기업들이 거둔 놀라운 성공의 과실이 중견·중소기업으로까지 확산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 대다수에게 양질의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창출하는 국민경제적 차원의 과제이다. 둘째는, 이들 대표기업들의 핵심역량이 장기간 유지·발전할 수 있도록 기업조직 내부의 합리성을 제고하는 미시적 차원의 과제이다.

물론 둘 다 간단치 않은 과제이다. 아니, 요즘 진행되는 양상으로 봐서는, 둘 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첫 번째 과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테니 생략하겠고, 오늘은 두 번째 과제와 관련하여 또다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된 위험요소라기보다는 총수일가의 문제로부터 유래하는 지배구조 위험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뜻밖의 제보, 이건희 회장의 양형참고자료

삼성에 대해 칭찬은 인색하고 비판만 늘어놓는 '필자의 삐뚤어진 사랑'이 재차 발동한 것은 최근 뜻밖의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7일 경제개혁연대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이건희 전 회장의 변호인단이 삼성특검 1심 재판부에 제출한 양형참고자료와 변론요지서가 들어 있었다. 작년 7월 11일자 서울지방법원의 접수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그러니까 1심 선고가 내려지기 5일 전에 법원에 제출된 자료였다.

자료의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이건희 전 회장이 특검의 공소장에 기재되어 있는 금액에서 한 푼의 에누리도 없이 에버랜드에 970억원, SDS에 1540억원을 지급했고, 양도세 포탈세액 1830억원을 이미 납부했으며, 심지어 특검이 기소도 하지 않은 증여세 미납분 4800억원을 자진해서 납부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 경제개혁연대가 제보를 통해 입수한 이건희 전 회장의 양형참고자료 중 일부. ⓒ프레시안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우선, 누가 무슨 의도로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는) 이 자료를 보냈을까? 정말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은 전혀 없다.

한편, 모두 다 합치면 914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액수의 이 돈을 이건희 회장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삼성특검이 찾아낸 차명재산 중에서 지금까지 실명전환이 확인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의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차명재산이 9450억원 정도로 평가되니, 아마도 이것이 자금의 출처가 아닌가 짐작된다. 그나저나 상기 3개 회사 외에 나머지 계열사의 차명주식은 실명전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이렇게 처분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증권거래법(지금은 자본시장법) 상의 대주주 지분변동 신고 의무는 건너뛰어도 되는 건가?

마지막으로, 에버랜드에 970억원, SDS에 1540억원을 실제 지급했다면, 응당 이들 회사의 재무제표에 기재되어야 할 텐데, 회계사들이 아무리 감사보고서를 뒤져보아도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회계학적 용어로 표현해서, 이들 회사의 2008년도 당기순이익의 약 60%에 이르는 '중요 금액'이 어디로 증발한 것인가?

삼성, 법원을 우롱하는 건가?

마지막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경제개혁연대가 공개질의서를 보내자마자 삼성 측의 해명이 나왔다. 즉, 이건희 전 회장이 에버랜드와 SDS에 이 돈을 지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받을 근거가 불분명한데다,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회사 손실액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회계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어이상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삼성특검 재판의 최대 쟁점은 주식의 헐값발행이 회사의 손해로서 형사상 배임죄 처벌대상이 되느냐, 아니면 단지 주식가치의 희석에 따른 舊주주-新주주 간의 민사적 분쟁사안일 뿐이냐는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상기 양형참고자료에서 주식의 헐값발행은 회사의 손해가 아니므로 무죄임을 주장하면서도, "기존주주들에게 그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희석되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전제 하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더 이상의 논란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주식의 적정가치를 따지지 않고 공소장에 손해액으로 기재되어 있는 전액을 위 각 회사에 지급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앙형참고자료의 논리구조를 다시 정리하면, '헐값발행은 인정한다. → 그러나 헐값발행은 회사의 손해가 아니므로, 형사적으로는 무죄다. → 다만, 헐값발행에 따른 기존주주의 민사적 손해는 도의적 책임상 변제한다. → 그러니, 선처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희 전 회장과 두 회사 대표이사의 도장이 '빡' 찍혀 있다.

그러면 이 논리구조와 상기 해명이 양립가능한가? 형사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즉 '회사의 손해발생 여부를 떠나', 기존주주의 민사적 손해를 변제한다고 양형참고자료에 쓰지 않았는가? 그런데 형사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어서 '회사 손실액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251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회계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해명이랍시고 내놓는가? 심지어,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한 삼성의 한 고위임원은 "무죄가 확정되면, 이건희 전 회장에게 다시 돌려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했단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양형참고자료는 말 그대로 피고인이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 및 처벌수위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법원에 제출한 공식 자료이다. 그런데 판결 전후로 이렇게 말을 바꾸는 삼성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필자로서는 삼성이 법원을 기망 내지 우롱했다는 표현 이외의 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을 능력이 없다.

Too Big To Manage

이건희 전 회장이 에버랜드와 SDS에 지급했다는 2510억원은 서민들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할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러나 아니 할 말로, 이건희 전 회장에게는 없어도 그만인 돈일 수 있다. 즉, 이건희 전 회장 본인이 1심 판결 직전 다급한 마음에 돈을 내겠다고 했다가 무죄확정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하는 식의 법원기망 행위를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런 사소한 일(?)은 구체적인 보고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측근들의 과잉충성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건희 회장에게 책임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룹 전체의 평판에 심대한 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을 마치 사소한 일처럼 처리하는 삼성의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법원기망 및 분식회계 등의 불법행위로 인한 그룹의 평판 추락보다는 총수 개인의 재산과 위신이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핵심 참모조직의 인센티브 구조를 방치한 것은 결국 이건희 회장의 책임이다.

재차 강조하건대, 삼성그룹은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이건희 전 회장과 참모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는 글로벌 기업 삼성에게는 걸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 삼성그룹은 과거 방식으로 관리하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Too Big To Manage).

작년 4월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는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권한과 책임의 괴리라는 전략기획실 체제의 근본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실질적 의사결정 조직이 더욱더 음성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장단협의회 및 그 산하 3개의 위원회가 실질적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삼성그룹 외부는 물론 내부에도 없을 것이다. 이번 이건희 전 회장의 양형참고자료를 둘러싼 삼성그룹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례일 뿐이다.

공룡의 비극

▲ ⓒ뉴시스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지배구조의 구축, 그 유일한 해답은 지주회사체제 전환이라는 데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여전히 삼성그룹은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통해 현재의 조직체계를 거의 그대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금융규제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삼성그룹의 희망은 이미 부질없는 것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이 국내외 환경의 변화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스스로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삼성그룹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결국 적정한 외부 자극이 주어져야 한다. 경제개혁연대가 금감원에 에버랜드와 SDS에 대한 분식회계 조사요청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금감원이 신속하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2005년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 평가방법을 원가법으로 바꿔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상태를 벗어나려 한 것에 대한 조사요청 역시 최종결정이 내려지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으로…. 이번 조사요청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짐작한다.

내부의 개선 의지도, 외부의 개혁 압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삼성그룹.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도태되었던 공룡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그룹과 국민경제 모두의 불행이 될 것이다. 오는 8월 14일 SDS 파기환송심 판결이 오늘 필자의 우울한 전망을 확인하는 것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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