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재보궐선거, 같은해 7월 서울교육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거나 가까스로 당선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아울러 2009년 경기도 교육감선거, 4월 재보궐선거에서는 서울지역 민심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경기도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고 야당 진영이 선전했다. 또한 MB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핵심정책들이나 이슈들에서 서울지역이 현 정부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지역에서 '개혁블록'이 활성화되는 조짐 나타나
MB정부 출범 이후 서울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같은 정치적 변화들은 '개혁블록의 활성화'로 요약될 수 있다. 그동안은 보수진영의 공세 속 진보개혁세력의 무기력이 반복되면서 서울지역의 개혁적 유권자들도 선택지를 찾지 못해 정치적 의사표현과 행동을 유보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명확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의미있는 정치적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면 보수적 유권자들이 MB정부를 지지, 후원하는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는 듯하다. 정치적, 정책적 선호에 있어서는 MB정부와 이해를 공유한다 할지라도 MB정부를 지키기 위해 투표장으로 가고, 여러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등의 적극적 정치행위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을 요약하면 MB정부 출범 이후 보수블럭은 정치적으로 동원되지 못하면서 정치적으로 비활성화 단계에 머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반면 개혁블록은 활성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지역 개혁블록을 어느 정치세력이 장악하느냐가 중요
서울의 보수화, 지역이기주의화 흐름이 뚜렷하던 지난 대선, 총선 전까지 서울은 각 지역 민심의 총화로서 여론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서울의 교육받은 중산층, 화이트칼라층이 지난 시기 권위주의체제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 있어 핵심 역할을 해왔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슈에 민감하고 비판의식이 높은 층으로서 여론을 이끄는 '여론선도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왔다. 수도권 여론은 물론 전국 단위의 여론을 이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대선 등 중요한 정치적 순간에는 전체 흐름을 좌우하는 결정적 역할도 수행했다. 따라서 이 층을 어느 정치세력이 장악하느냐가 매우 중요했으며 이 층과 교감한 정치세력이 정치세력 간 경쟁에서 승리해왔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당과정에서 당시 17석에 불과했던 열린우리당이 단시일 내에 지지도 급상승을 이뤄내면서 2004년 총선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정치적 명분하에 서울지역 민심을 잡았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민심을 확보하고 나니 호남지역 민심도 아울러 따라오는 결과가 나타났다. 서울지역 민심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을 보여주는 선례다.
한 때 보수화 흐름이 뚜렷했던 서울지역이 MB정부 하에서 다시 개혁의 포스트로 부상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수진영의 일방적 우위흐름을 견제하기 위한 일시적 경향에 불과한 것인가? 만일 개혁의 포스트로 재부상하고 있다면 어떠한 정치환경들이 이같은 변화를 이끌어낸 것인가?
서울지역에서 MB지지도, 보수진영의 절대적 우위 흔들리는 조짐 나타나
먼저 MB정부 출범 이후 국정운영지지도를 살펴보면 보수진영의 절대적 우위 구도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MB에 대한 국정운영평가를 전국단위와 서울지역으로 구분해 비교하면 대체로 전국단위에 비해 서울지역에서 MB지지도가 높게 형성되고 있다. 서울지역의 MB지지도는 영남지역 다음으로 높게 나타나는 등 보수화 흐름이 뚜렷하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에 몇 번의 균열이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2008년 3월로서, 서울지역의 MB지지도는 35.0%로서 전국 평균 48.1%에 크게 밑돌았다. 당시는 강부자, 고소영으로 상징되는 내각인선 파동의 여파가 상당했던 시기로서 특히 서울지역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균열은 2008년 6월 촛불정국 시기로서, 당시 MB지지도는 15.2%까지 수직 하락했는데, 서울지역에서는 12.6%로 전국 단위보다 더 낮게 나타난 바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단절은 2009년 1월 미디어법 등을 둘러싼 여야간 입법전쟁 시기로 전국단위와 서울지역 MB지지도가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 수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지막 단절은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로서 서울지역의 MB지지도가 크게 하락한 이후 별다른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요약하면 서울지역에서 MB지지도가 전국평균 보다 높게 나타나는 등 보수화 경향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촛불정국,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같이 중대이슈가 발생했을 때는 다른 지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MB에 대한 지지를 빠르게 철회했다. 이슈에 대한 높은 반응성이 MB에 대한 비판을 강화시켜왔으며 향후에도 이같은 경향이 재연될 가능성이 적잖음을 알 수 있다.
▲ MB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지지도 : 전국단위와 서울지역 비교 ⓒ한귀영 |
서울 지역 보수화 기류를 관통하는 세가지 키워드 : 효율, 성장, 이익
노무현 정부 이후 서울지역 보수화 기류를 관통하는 세가지 키워드는 효율중시, 성장중시, 이익중시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효율중시 경향은 효율과 경쟁력을 명분으로 내세운 공기업민영화 문제에 대해 서울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높은 지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2008년 9월 조사에서 당시 논란이 되었던 공기업민영화 문제에 대한 여론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등 공기업선진화 정책에 대해 반대가 59.5%, 찬성이 36.8%였다. 그러나 서울지역만 놓고 보면 반대 56.2%, 찬성 38.4%로 전국 단위와 비교해 찬성이 근소하게나마 높게 나타났다. 상수도, 전기 및 가스, 철도, 공항 등 구체적 분야로 들어가면 전국단위와 서울지역의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동조사에서 향후 우리사회의 경제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던져보았다. 그 결과 전국 여론은 성장중심 41.9%, 양극화 해소중심 54.1%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울지역만 놓고 보면 성장중심 48.7%, 양극화 해소 중심 49.6%로 전국단위의 여론과 달리 성장중심 의견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서울지역 유권자들이 타 지역 대비 성장중시 경향이 강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지역 유권자들이 이익 및 이해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 대목에서 나타난 바 있다. 수도권규제완화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를 보여왔으며, 세금인상 등 부동산 규제문제에 대해서도 타 지역보다 부정적 여론이 높게 형성된 바 있다.
민주주의적 가치 부상 속 효율, 성장, 이익 중시 기류 흔들리고 있어
문제는 서울지역 민심을 떠받쳐왔던 세 가지 키워드, 즉 효율, 성장, 이익 중시 경향이 최근 들어와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세가지 키워드는 MB정부가 내세웠던 가치와 거의 일치한다. 서울지역이 2007년 대선에서 MB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도, MB정부 출범 이후에도 타 지역 대비 높은 지지를 보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MB에 대한 평가 및 기대, 그리고 미디어법 등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핵심 이슈로 들어가면 서울 지역 민심이 이전의 흐름과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9년 6월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에 대해 '과거에도 기대안했고 지금도 기대하지 않는다' 27.6%, '과거에는 기대했으나 지금은 기대하지 않는다' 37.3%로 부정적 의견이 64.9%에 이르렀다. 이는 전국단위(59.3%)와 비교해 더 높은 것이다.
현정부 들어 최대 정책이슈가 되고 있는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서울지역의 경우 찬성 30.2%, 반대 64.5%로 전국 단위(찬성 33.2%, 반대 60.8%)와 비교해 반대가 더 완강하다(2009년 7월 조사). 그 외 집회 등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매우 완강하다 2009년 5월 조사에서 서울지역의 반대 의견이 63.6%로 전국단위(58.8%)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최근 서울지역 민심 기류의 변화는 미디어법, 집회 등과 같은 표현의 자유, 인권 문제 등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가치가 핵심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효율, 성장, 이익 중시 등 기존의 가치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보수적 가치로 회귀하느냐, 새로운 가치가 형성되느냐
서울지역 민심을 떠받쳐왔던 효율, 성장, 이익 중시라는 가치는 어찌 보면 민주화 세력 집권 10년과 97년 IMF 이후 우리사회에 만연되어온 신자유주의적 기류가 결합하여 나타난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면서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여기에 경쟁과 효율을 핵심 가치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성장, 경쟁, 효율이라는 가치가 똬리를 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고하다고 믿었던 기본적 민주주의 가치들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가세하면서 사회적 기본권, 생존권 문제가 중요하게 부상했다. 이같은 환경속에서 기존의 가치들이 다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시기는 외적인 경제환경, 정치환경의 급격한 변화들로 인해 기존의 가치들이 새롭게 주형되는 중대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 특히 서울지역의 유권자들이 기존의 효율, 성장, 이익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로 회귀하게 될지, 아니면 민주주의적 가치와 사회적 생존권이라는 문제의식이 결합하면서 공공의 가치 중시라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지 주목되는 시기다.
결국 정치세력이 관건이다!
결국 정치세력이 관건이 될 것이다. 서울 지역 민심의 이같은 변화를 포착하여 새로운 가치의 틀로 담아낼 수 있는 참신한 정치세력이 등장하느냐가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과 효율, 성장, 이해라는 보수적 가치가 모순적으로 교차하는 현 시점에서 이것을 공공의 가치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만들어내고, 그 흐름위에서 모처럼 활성화된 개혁블록 유권자들에게 목표와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 이같은 시대적 임무를 누가 수행하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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