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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개에도 이야기가 있다…기록하고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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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개에도 이야기가 있다…기록하고 소통하라"

[키워드 가이드를 만나다] '농촌 쇼핑몰 전도사' 안병권 씨

SSM(슈퍼슈퍼마켓) 규모의 대기업 소형 마트가 우후죽순 나타나며 골목길을 파고들고 있다. 대형마트에 이어 또 한번 중소 상인을 위협하는 상가다.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은 물론 접근성까지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파는 먹을거리의 품질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싸다는 이유로 들여놓은 수입 농산물, 그리고 대량 유통 속에서 관리가 소홀한 먹을거리 제품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식품 사고의 주범이다. 최근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유통되는 달걀의 품질이 낮다는 실험 결과가 알려지면서 시끌벅적했다.

편하다는 이유로, 대기업 브랜드가 친숙하다는 이유로 SSM과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들. 그러나 안전하고, 믿을만한 먹을거리, 게다가 저렴한 먹을거리를 원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터다. 농산물 개방 정책과 다국적농기업의 공세에 발을 구르는 이 땅의 농민 역시 같은 마음이다. 방법이 없을까.

'키워드가이드' 안병권 씨가 '농촌 쇼핑몰'을 키워드로 삼고 농민을 상대로 컨설팅에 나선 이유다.

안병권 씨는 일찍이 인터넷의 활용성에 눈을 떴다. 오랜 기간 유기농산물 영업직에 종사한 그는 특히 농업 분야에서 인터넷이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그는 생각을 곧 행동으로 옮겼다. 1999년도 그는 유기농 인터넷 쇼핑몰 '이팜'을 창립했고, 2003년에는 농업IT업체 '이지팜'의 이사를 맡아경기사이버장터를 위탁 운영하고, 농림부의 신지식농업인 포털 사이트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국립한국농업대학 공동판매법인 농온 사장으로 공채돼 사업은 물론 학생들과 인터넷쇼핑몰 구축을 논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전국 수많은 농업인과 만난 것은 물론이다. 농업대학을 그만 둔 지금도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농촌 쇼핑몰 등에 관한 이야기를 농민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10년 넘게 농촌 쇼핑몰을 기획하고, 구축하고, 또 운영한 그의 발자취와 노하우는 2007년 펴낸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e비즈북스 펴냄)에 담겨 있다. 그는 농촌 쇼핑몰에 우리나라 농업의 비전이 있다고 말했다.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할 때도 변하지 않을 듯한 활기찬 목소리는 그의 말에 믿음을 실어 주었다.

다음은 안병권 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블로그, 게시판 글 한 개도 쇼핑몰이 된다"

▲ 키워드가이드 안병권 씨. ⓒ프레시안
프레시안 :
농촌 쇼핑몰이라는 키워드가 구체적이면서도 흥미롭다.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안병권 :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했고, 1989년부터 풀무원식품 직원으로 유기 농산물 관련 일을 했다.

유기 농산물은 참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농약도 안 쳐야 하고 환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런데 유기 농산물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려주지 않으면 소비자 설득이 힘들더라.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유기 농산물을 알리는데 이만한 툴이 없겠다 싶었다. 쇼핑몰은 단순히 상품과 가격만 있는 게 아닌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어서 단순한 거래보다 재미있었다.

프레시안 : 농촌 쇼핑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안병권 : 꼭 장바구니가 있고, 물건을 진열하는 사이트만 쇼핑몰이라고 보지 않는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블로그를 활용해도 쇼핑몰이다. 게시물의 댓글로 계좌번호를 주고 받고, 물건을 소개하는 것도 쇼핑몰 활동의 일종이다. 또 개인홈페이지 자체도 쇼핑몰이 될 수 있다.

"판매 불확실성, 웹을 통한 소통으로 극복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농민들이 얼마나 많이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는 추세인가.

안병권 : 1999년도 이팜을 출범할 때만 해도 많지 않았는데 10년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인구 중 7%가 농업 인구인데, 그 중 10%는 제법 웹과 관계 맺고 지낸다.

농업은 더 이상 칼로리 공작소가 아니다. 단순히 탄수화물을 많이 생산해 배부르게 먹자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문화다양성, 먹을거리 공급처, 자연환경 보존 등 농업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그걸 알리고자 하는 내부의 에너지가 있다.

또 10년 전에는 40대 초반 정도까지만 인터넷에 능했지만, 이제 세대폭이 넓어져 거의 전 세대가 웹에 노출된다. 그런 조건적 영향도 크지 않나 싶다. 지난 4월 한 마을에서 강의를 했는데, 30대 중반~50대 후반까지 다양한 분들이 왔다.

프레시안 : 쇼핑몰을 많이 활용하는 농민의 특징이 따로 있나?

안병권 : 도시민들과 풍부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의 매출이 높다. 한국 농업 문제점 중 하나가 판매 불확실성이다. 크건 작건 도시민들과 소통을 하며 거래를 하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 생계성 귀농이 많아졌다. 50대 중후반에 은퇴하면 농사를 짓자는 생각으로 귀농하는 분들도 있지만 요즘에는 30~40대가 많다. 그렇게 정착한 분들 중에는 웹을 활용하거나 농사법도 활발하게 연구하는 이가 많다. 또 커뮤니티를 잘 이뤄서 꽤 활력이 된다.

▲ "도시민들과 풍부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의 매출이 높다. 한국 농업 문제점 중 하나가 판매 불확실성이다. 크건 작건 도시민들과 소통을 하며 거래를 하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프레시안

"이야기가 있는 농산품을 만들어라"

프레시안 : 쇼핑몰에 관심을 갖는 농민들과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안병권 : 홍보가 가장 고민이라는 질문이 많다. '당신들은 독수리인데 나는 이제 시작했다, 어떡해야 하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저는 늘 '콘텐츠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당신 주변에서 찾아라'라고 충고한다. '당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콘텐츠다'라고도 말한다.

농업의 문화적 다양성, 생태적 다양성을 좀 재미있게, 도시민들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농촌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상품하고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핵심적 사안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이야기와 결합된 상품?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안병권 : 그렇다. 농업인들 만나서 얘기 들으면 굉장히 설득력있고 구구절절한 얘기가 많은데 시장에 나가서는 다 묻어놓고 '사과 10㎏'에 얼마라고만 하지 않나.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그러나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일기도 쓰고 사진도 찍고 열심히 하시라고 권한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 정부는 농업의 명품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농산품'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안병권 : 그건 쉽게 얘기하면 '삽질 마케팅'이다. 이명박 정부는 농업의 대형화를 주장하지만 우리나라 농업 조건과도 맞지 않고, 실제로 이미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소량의 다품종 재배가 우리 농업의 살 길이라고 본다. 또 이야기와 같은 유무형의 자산이 농업농촌 상품에 포함되고, 그런 농민이 많아지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프레시안 : 명품이라는 말 속에는 결국 우수한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해외 시장을 개척하자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농업의 대형화 역시 수출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런 농업을 꿈꾸는 농민에게 이야기가 있는 농산품은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안병권 : '소량 다품종'으로 가자고 해서 수출을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 시장에서 설득력을 가지려 해도 어느날 갑자기 명품이 나올 수는 없다. 상품에 녹아 있는 콘텐츠는 일상적 활동에서 축적되어야 한다. 개인의 역량도 있겠지만 국가 정책적 시스템에서 보완할 부분이 있다.

▲ "농업인들 만나서 얘기 들으면 굉장히 설득력있고 구구절절한 얘기가 많은데 다 묻어놓고 '사과 10㎏'에 얼마라고만 하지 않나.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프레시안

"농업은 기록…소통하면 성공한다"

프레시안 : 쇼핑몰에 관심있는 분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를 소개해달라.

안병권 : 강원 횡성 에덴양농원의 윤상복 사장 이야기를 하고 싶다. 꿀은 가짜가 많기로 유명한데, 그 내외는 홈페이지에 일기를 쓴다.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일기는 곧 히트를 쳤다.

이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들른 시민들 모두와 성실하게 소통을 해나갔다. 소통을 하면서 친해진 고객들은 그 지역에서 난 다른 농산물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윤 사장네가 추천하면 믿을 수 있다는 거였다. 일기에 적었던 처갓집에서 농사 짓는 대추까지 'OO아빠, 처갓집 대추 한말 보내줘'라고 하며, 상품으로 추가됐다.

농촌 쇼핑몰의 고민 중 하나가 계절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1년 내내 고객과 소통할 거리가 마땅치 않다는 점인데, 윤 사장네는 지금 매출 30% 이상이 외부 상품이다. 고객들과 언제나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이 양봉원은 1억8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

프레시안 : 결국 소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같다.

안병권 : 그렇다. 말이 필요없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 다 그렇다. 웹의 특성인 쌍방향 소통을 잘 활용하면, 100% 성공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병권 : 언제나 '농업은 기록'이라고 얘기한다. 이게 핵심이다. 농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거래 뿐만 아니라 모든 걸 기록화 시킬 수 있다. 농촌은 24시간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기록이 모아지면 자연스럽게 상품의 콘텐츠가 형성된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는 이걸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소비자 역시 가급적이면 이야기가 있는 농산물을 선택해달라. 또 농업인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한 마디의 격려 또는 불만 등 작은 것 하나하나가 농업의 판을 바꿔줄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농업인들은 한 마디에도 굉장히 감동을 받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또 인터넷 시대인 요즘엔 20초만 있어도 그런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 않나. 만약 어떤 농민이 보내준 사과로 사과 요리를 했다면 그 사진을 찍어서 농가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농민에게 보내주는 것도 얼마나 힘이 되겠나.

그렇게 적극적으로 액션 취하는 것이 우리 농업을 살리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키워드 가이드'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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