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업은 연구원이 설립된 지 20년 만의 첫 파업이다. 또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노사 관계 선진화에 맞선 첫 파업이다. 정부의 노사 관계 싱크탱크가 이명박 정부의 파탄난 노사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
파업 찬반 투표도 20년만에 처음…"박기성 원장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노동연구원지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5시간 경고 파업에 들어갔다. 지부는 14~15일에도 오전 9시부터 5시간 동안 파업을 하고 사측과의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다시 21~23일 부분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8일 지부의 찬반 투표 결과, 전체 조합원 63명 가운데 56명이 참가해 94.6%의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된 바 있다. 실제 파업 뿐 아니라 찬반 투표 자체도 지난 1991년 노조 설립 이후 처음이다.
▲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노동연구원지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5시간 경고 파업에 들어갔다. ⓒ프레시안 |
표면적인 쟁점은 단체협약이다. 지난해 2월 연구원 측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 후 최근까지 열 차례 이뤄진 단체교섭은 최종 결렬됐다. 노동위원회도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박기성 원장의 일방적인 연구원 운영과 '노조 죽이기'가 원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상호 노동연구원 지부장은 "연구원 노사 관계는 늘 자율적으로 대화 속에 풀어왔는데 지난해 8월 박기성 원장이 온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박 원장은 전 직원에게 고용 계약서를 요구해 모두 계약직으로 만들려고 했고, 임금 체계도 일방적으로 개편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사측이 제시한 안을 보면, 조합원이 될 수 없는 범위를 11개 항목에 걸쳐 기술하고, 징계 사유도 무려 24개 항목이나 되는 등 상식을 벗어난 것 투성이다. 더구나 지난 4월 8일 이후 3개월 동안 열 차례에 걸쳐 진행된 단체 교섭에 박 원장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지부는 이를 놓고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원장이 모든 권한을 노무법인에 위임한 것은 노동연구원 수장으로서의 능력 부재를 공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호 지부장은 "원장이 연구원 간판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단협 공격하는 최종 목표는 노조 그 자체"…박기성 원장 뒤에는 MB가 있다
노사 관계에 대한 박 원장의 이런 행동은 현 정부의 정책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이른바 '노사 관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공공기관의 개별 노사 관계에 개입할 뜻을 피력해 왔다. 직접 개입은 아니지만, 자체 기준에 따라 단협을 평가하고 이를 기관장 평가에 반영시켜 사실상 공기업 노사 관계를 뜻대로 주무르려는 의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경우 지난 4월 노동부의 '산하(유관) 공공기관 단체협약 분석 및 개선 방안'에서 100점 만점에 54점으로 최하점을 받았다. (☞관련 기사 : 노동부 무차별 '노사 평화 깨기' 대작전)
단체협약을 무기로 한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도 당연히 노동연구원만의 일은 아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지난 6월 현재 전국 16개 지부 가운데 12개 지부가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단협 해지 통보를 받았다. (☞관련 기사 : MB정부의 또다른 노조 죽이기 "단체협약이 사라진다")
연구원지부의 파업은 이런 일련의 흐름에 대한 첫 행동이다. 노동계는 그동안 "단협에 대한 공격의 최종 목표는 노조 그 자체"라며 "이 정부가 노조를 모두 죽이려 한다"고 비난해 왔지만 파업 수위의 행동을 벌이지는 못했다.
"연구 자율성·독립성도 침해"…박사급 27명, 별도노조 설립
▲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은 그간 각종 노동 이슈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 기간 제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노조의 동의 없이도 임금 삭감이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 "퇴직금을 없애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 왔다. ⓒ프레시안 |
이운복 공공연구원노조 위원장도 "박 원장은 연구원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고 지식을 시녀화하려 하고 있다"며 "이번 파업은 단순히 단협 때문이 아니라 연구 자율성 및 공공연구기관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각종 노동 이슈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 기간 제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노조의 동의 없이도 임금 삭감이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 "퇴직금을 없애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온 박 원장이 연구자에게도 같은 '소신'을 사실상 강요했다는 것이다.
연구원지부와 별도로 박사급 연구위원 27명이 모여 이날 저녁 창립총회를 열고 노조를 결성하려는 것도 이런 '살벌한' 분위기 때문이다. 박사급 연구위원들은 별도 노조 결성 후 연구원에 단체교섭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대표적인 노사 관계 싱크탱크"에서 '노사 갈등의 시험장'이 된 한국노동연구원 사태의 추이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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