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들 그룹의 기업문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기업문화 변화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은 신상원 씨(36)는 저서 <기업문화 오디세이 1>에서 "우리나라 대부분 대기업의 기업문화가 비슷한 유형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업문화에 대한 기존 틀에 박힌 해석을 거부하고 새롭게 기업문화 유형 여덟 가지를 제시한다. 신 씨에 따르면 삼성과 LG의 기업문화는 똑같은 '제국주의 시스템' 유형이다. 반면 같은 글로벌 기업이지만 맥도날드와 GE의 문화는 다르다.
여기서 잠깐, 신 씨는 기업을 이루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봐야만 알맞은 전략과 나아갈 방향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적 시각으로 비즈니스의 세계를 파헤친 신 씨를 만나 기업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오후 6시30분경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인근 커피숍에서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삼성과 LG 문화가 달라 보이죠? 두 회사는 같은 '유형'입니다." ⓒ프레시안 |
기업문화는 '기업인들의 무의식'
프레시안 : 일단 이것부터 물어보죠. 도대체 기업문화란 뭔가요?
신상원 : '기업문화는 무엇이다'라고 정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영이 잘 되도록, 그리고 회사 전략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올라가기 위해 치워야 할 사다리'이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올라가는 것(효율적 경영)이지 사다리(기업문화의 정의)가 아니거든요. 굳이 기업문화에 대해 말하자면 '기업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을 미치는 힘을 찾는 과정'이랄까요.
프레시안 : 뭔지 정의내리기도 쉽지 않은데 왜 중요한가요?
신상원 : 사람이 모이면 문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구성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죠. 프로이트의 빙산의 비유에서 거대한 무의식이 의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듯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목표를 가진 이 집단에는 당연히 고유의 문화가 생기죠. 그리고 이 문화가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문서를 작성하는 방식, 옷을 입는 방식,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방식까지도요. 기업문화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죠.
프레시안 : 모든 기업이 다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책에서는 삼성과 LG가 같은 기업문화를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신상원 :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이 얘기는 다음 책에 다룰 예정인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국내 재벌그룹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스템'이라는 같은 기업문화를 갖고 있지만 각각의 '코드'는 다르죠. '관리의 삼성, 인화의 LG'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국내 재벌그룹은 각자의 코드에 맞게 제국주의 시스템의 장점을 선택적으로 잘 흡수했습니다.
프레시안 : 기업문화 유형 분류 기준이 궁금해지네요.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하셨죠?
신상원 : 크게 △응집력 △교류 정도 △체계성 등 세 가지 기준에 따라 문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잘 응집하느냐 여부는 문화 생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입니다. 교류의 정도 역시 마찬가지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교환이 이뤄질 수밖에 없거든요. 기업도 똑같아요. 돈을 교환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사람도 교환하죠. 체계성도 중요하죠. 초기 기독교, 로마 기독교, 중세 기독교의 차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체계성이잖아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은 교류와 체계성의 강약 여부에 따라 △자급자족형 공동체 △정복자형 공동체 △기업가형 회사 △학자형 회사 등 네 가지 문화를 가집니다. 그리고 응집력이 약한 집단은 역시 나머지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제국주의 갱 △제국주의 시스템 △전체주의 회사 △사회적 분열 등 네 가지 문화를 가지죠.
맥도날드는 갱, 삼성은 제국주의, 애플은 정복자
▲<기업문화 오디세이 1> (신상원 지음. 눌와) ⓒ프레시안 |
신상원 : 먼저 응집력이 강한 기업들을 말씀드릴게요. 자급자족형 공동체는 응집력은 강한데 체계성도 없고 바깥과의 교류도 약한 기업입니다. 대부분 기업이 여기서 시작하죠. 스타벅스 1호점이 그랬고, 애플, 소리바다, 안철수연구소 등도 초창기에는 다 그랬죠.
자급자족형 공동체가 점차 외부와 교류 강도를 키워가면서 정복자형 공동체로 성장합니다. 자신들이 가진 뚜렷한 신념을 대외에 퍼뜨리기 시작하는 거죠.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대표적입니다. 애플 제품은 하나같이 폐쇄적인 특성을 갖고 있죠. 하지만 애플 마니아들은 줄을 서서 애플의 신념이 담긴 제품을 구매합니다. 일종의 신도들이라고 볼 수 있죠.
정복자형 공동체가 커가는 동안 내부적으로 서서히 체계를 갖춰 가면서 기업가형 회사로 변신합니다. 자신들의 신념을 잃지 않는 선에서는 외부와의 교류도 더욱 강화하죠. 고객의 욕구가 회사의 신념과 맞다면 새 시장으로도 진출하죠.
제가 몸담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을 꼽고 싶네요. 고객과 소통하지만 회사가 가진 철학(아시안 뷰티)을 버리지는 않았죠. 스타벅스는 지금 정복자형 공동체에서 기업가형 회사로 가느냐 갱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고요.
학자형 회사는 쉽게 말해 공무원 집단입니다. 유교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인데요, 일견 세련돼 보이지만 개방성이 의외로 떨어지죠.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도 이런 특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응집력이 약한 곳들은요?
신상원 : 먼저 제국주의 갱부터 말씀드리죠. 갱은 갱입니다. 돈 버는 것 외에는 목적이 없어요. 대체로 프랜차이즈 기업이 이런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맥도날드 매장 운영자들은 장사가 안 되면 언제든 롯데리아로 갈아탈 수 있죠. 외부와 교류는 매우 활발히 하는데, 구성원의 응집력이 약하고 체계성도 떨어집니다.
제국주의 갱이 체계성을 갖추면 제국주의 시스템 문화로 이동합니다. 세계적 기업인 GE가 대표적입니다. 삼성 LG 범현대그룹 등 국내 재벌그룹들도 그렇고요. 돈 되는 사업이라면 어디든 진출한다는 점은 갱과 같죠.
아, '어떤 문화에도 선악은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모든 문화는 장단점을 가집니다. '갱', '제국주의'로 표현했다고 해서 이들 기업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국주의 시스템에 적합한 사람은 같은 문화의 기업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겠죠.
제국주의 시스템이 더 이상 새 시장을 만들지 못하면 전체주의 회사로 가게 됩니다. 필연적으로 시장을 계속 넓혀나가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조직원들은 쉽게 이탈하니까요. 한국에서의 까르푸를 들 수 있을 것 같고요, 최근 쌍용차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듯합니다.
아예 체계도 무너진 회사가 사회적 분열 형태죠. 해체과정을 밟게 됩니다. 프랑스의 컨설팅그룹 ACG는 사회적 분열이 필요할 경우 이를 어떻게 조직에 적용시킬지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최근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업문화도 변한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기업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과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궁금해졌다. 신 씨가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아모레퍼시픽을 예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레시안 : 기업문화는 변화하기 마련일 텐데요, 실제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문화 변화는 어땠나요?
신상원 : 아모레퍼시픽(태평양)은 80년대 들면서 증권, 생명, 패션, 야구단 등으로 빠르게 다각화를 시도했죠. 전형적인 제국주의 시스템 문화를 추구한 거죠.
그런데 기존 태평양 사람들은 굉장히 강한 응집력을 가졌어요. 하지만 시장개척에는 큰 흥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에서 학자형 회사로 넘어온 상태였죠. 반면 새로 그룹에 편입된 계열사들은 회사별로 시스템, 갱 등 문화유형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응집력이 강한 조직이 문화가 각기 다른 하부조직을 거느리고 제국주의 시스템을 도입했으니 당연히 전체주의 체제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사회적 분열로 나아갔습니다. 90년대 초에는 결국 총파업이 발생했고 그룹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죠.
문화를 정립해야 위기를 넘어설 수 있겠죠.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서경배 사장님(아모레퍼시픽 창업가 2세)은 이를 알았습니다. 따라서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문제해결 방식으로 떠올랐죠.
먼저 '우리가 다시 태어나도 해야 할,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게 바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사업은 할 필요가 없죠. 화장품 사업 등을 제외하고 모두 구조조정 했습니다. 기업문화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기업문화와 경영전략이 들어맞아 굉장한 응집력이 집단에 생겼고, 이는 오히려 외환위기가 그룹 부활의 계기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됐죠.
프레시안 : 최근 '아리따움'이라는 전문매장을 냈죠.
▲"인문학을 재발견해야 할 때 입니다." ⓒ프레시안 |
이전에 아모레퍼시픽은 휴 플레이스라는 화장품 전문 소매점에 제품을 공급했습니다. 이곳은 아모레퍼시픽의 가치를 전혀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경영전략을 바꾸면서 이 점포를 하나하나 아모레퍼시픽 전문 매장으로 전환시켰죠. 일종의 프랜차이즈화 한 건데요, 당연히 문화도 바꿔야 했죠.
제 목표는 판매조직에 정복자형 공동체 문화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그룹의 소명(아름다움)에 공감하고, 이를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정복자형 공동체 문화가 전략과 가장 잘 부합하니까요.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우스워보일지 모르겠지만 공동의 의례를 만들고, 신화도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없던 판매원들에게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죠. 토테미즘적 장치입니다. 경영진은 스스로가 아리엘들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됐습니다.
문화 변화작업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리따움 매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1000점을 넘어섰습니다. 최근 불황 속에서도 회사는 두자릿수 이익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죠.
인문학 위기 시대에 의미 되고 싶어
종교학을 전공한 신 씨는 인터뷰 내내 '인문학적 가치'와 '사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얼핏 보기에 정신없이 빠르게 변하는 경영환경과 맞지 않아 보인다. 인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프레시안 : 책의 부제가 '기업의 인류학에 관한 친절한 강의'입니다. 매우 인문학적 설명인데요,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과연 잘 먹혀들어갈지 의문입니다.
신상원 : 이 이름은 제가 붙인 게 아니고 ACG에서 쓴 거예요. 제가 인류학을 굳이 강조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또 흔히들 사용하는 '인적자원'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 즉 인간은 도구가 아니라는 인본주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프레시안 : 요즘 대세인 노동의 유연화 논리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요?
신상원 : 효율성 추구도 당연히 필요하죠. 그런데 그런 측면만으로 인간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거든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경영이 오히려 훨씬 효율적입니다. 전략적 판단에도 당연히 중요하고요.
프레시안 :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하는데요.
신상원 : 제가 책에 '소명을 가졌다'라고 쓴 이유입니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요. 과학으로서 인문학이 경영에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인문학을 재발견해야 할 때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프레시안 : 책의 전제는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문화가 생긴다'는 거죠? 혹시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책의 문화 분류기준으로 설명 가능하신가요? 말씀하시는 김에 한국의 '경영전략'이 문화와 잘 일치한다고 보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신상원 :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먼저 말씀드릴께요. 적합하냐 아니냐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한국사회 문화는 기업가형 회사로 바뀌었다고 보고요, 따라서 제국주의 시스템과 잘 맞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우리 문화와 맞지 않다고 봅니다.
먼저 응집력 측면을 보죠.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의 기원이 불명확합니다.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3가지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갖고 탄생했죠. 반면 한국은 어떤 특별한 가치나 소명을 지향해서 탄생한 나라가 아니에요. 해방 후 분열과 전쟁 등을 거치면서 자라온 나라죠. 응집력이 없는 사회였는데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유교문화에 반공이데올로기가 섞이면서 자급자족 공동체의 모습을 오랜 기간 가져왔어요.
이후 개발독재를 겪으면서 유형에 변화가 생겼죠. 제국주의 갱으로 문화가 바뀌었어요. '우리가 남이가'하면서도 사실 우리 다 자기 이익만이 최고인 시대를 살았잖아요? 이 체제에 다시 변화가 온 게 민주화 시대 정도가 되겠죠.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을 많이 하면서 응집력을 서서히 찾으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과거 '안티'로만 존재하던 신화를 복원하고, 역사의 정당성을 찾는 작업을 하면서 기업가형 회사로 이동하고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표방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시스템으로 가려고 했죠. 우리 사회가 추구하던 문화는 기업가형 회사였는데요. 그러니 사회적으로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프레시안 : 책을 어떤 회사,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신상원 : 일단 당연히 모든 경영자들이 보셨으면 좋겠고요, 기본적으로 조직이 이뤄지는 어떤 곳에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지자체,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요. 특히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인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지만 '돈이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어요. 제 책이 학문적으로 깊이는 얕지만 사람들이 '인문학이 좋은 학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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