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약 60%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응답하였다. 이 시기부터 1997년 외환위기 때까지의 10년 동안은 "꿈의 시기"라고 불릴 정도였다. 수출이 늘어나면 내수도 늘어나고, 성장이 고용의 창출과 사내 복지의 확충으로 연결되던 선순환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외환 위기로 인해,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는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시장 개방으로 외국인의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지분이 늘어나서 성장의 과실이 국외로 유출되기 시작했고, 대기업들도 산업 생산으로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자본 투자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데 주력하게 되었다.
전반적인 산업 생산 체계와 고용 구조가 바뀌게 되었으므로, 이때부터는 수출이 늘고 경제가 성장해도 개인의 소득 증대나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 않게 되었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 양극화가 본격화되는 "우울한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시장의 구조도 변화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2%인 840만 명(정부 통계로는 545만 명)으로 늘어났다.
1997년의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경제 사회가 이렇게 현저하게 달라지다보니, 1987년 6월 항쟁 시기의 역동성이 넘쳐나던 대학생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 학생들은 더 이상 집회를 할 의지도, 능력도, 시간적 여유도 없게 되었다.
전체 고등학교 졸업자의 83.9%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이중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에 취업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통해 1등부터 60만 등까지 서열을 매기고, 그 서열에 따라 그들의 나머지 인생이 결정되는 구조 속에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대학에 가서도 취직을 위한 스펙 갖추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고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근 정부의 '청년 인턴' 제도 시행 등으로 20대의 일자리 감소가 아직은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27만 명에 달하는 20대의 신규 취업자 중 청년 인턴이 8만 명이나 되고, 희망조차 없는 희망 근로가 15만 명이나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심지어는 환율 등으로 건국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대기업들조차 정부의 인턴 정책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그동안 정규직으로 뽑던 대졸 공채 자리를 인턴이라는 한시적 비정규직으로 뽑고 있다. 정부의 청년 실업 정책이 오히려 청년들의 좋은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글 자본주의'의 경쟁적 노동시장 상황에서 오늘날의 20대가 촛불 집회에 나오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집회에 나오는 대신 오늘과 내일의 생존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매일매일 싸우며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노동시장으로의 첫 진입이 비정규직이나 기간제가 되면, 평생을 하급의 기간제 근로자로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해지기 때문에 3년이 걸리더라도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취직 시험에 합격하고자 노량진의 학원가를 전전하거나, 고시에 합격하거나, 전문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신림동의 고시원에서 5년 동안 칼잠을 자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국가와 공동체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보다는, 전문 자격을 가지거나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가장 경쟁적인 시장 지향형 인간이 되도록 내몰아온 기성세대의 잘못이고, 심지어는 우리 '386 세대'도 크게 반성해야할 과오다. 우리의 자녀들 중 확률적으로 90% 이상이 비정규직이 되어야만 하는 엄혹한 현실은 기성세대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페인 다음으로 높아 2위다. ⓒ프레시안 |
실제로 통계청의 <월별 고용 동향> 자료를 보면, 정규직은 별로 변화가 없는 반면, 일용직과 자영업의 취업자들은 급격히 줄어들고, 정규직과 자영업이 감소한 만큼 이들이 퇴적된 임시직은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즉, 경제가 어려워지면 나쁜 일자리의 노동자가 먼저 해고되고, 경제가 회복되어도 나쁜 일자리부터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특히, 2009년 4월 현재 여성의 일자리 감소는 남성의 12배나 되어, 30~39세 사이의 비정규직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정부 통계'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스페인 다음으로 높아 2위에 올라있다. 고급 일자리와 하급 일자리 간의 임금 격차는 유럽 국가들이 대체로 2~3배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그 격차가 5~10배에 달하고 있다. 대기업은 상시적인 구조 조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서도 정규직을 해고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노동 경쟁력을 이미 갖추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의 87%는 100인 미만의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기업에 비정규직이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사내 하청이나 외주 등이 정착되어 있는 구조 속에서 연관 기업과 협력 기업들은 심각한 단가 인하 압력을 받게 되고, 그것이 하청 기업 근로자들의 비정규직화를 촉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조선, 통신 및 반도체 등에서 이러한 현상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대기업이나 일반 회사들조차도 청소, 경비, 시설 관리 등은 당연히 외주로 용역 업체를 활용하는 것이 기본으로 되었고, 각종 파견과 도급의 활성화로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은 다양한 비정규직의 종합 전시장이 되어버렸다.
정부는 1000만 명의 해외 관광객 시대를 연다며 관광입국을 선전하지만, 고급 호텔의 서비스 질을 결정하는 룸 메이드 등 객실 관리 업무와 각종 시설 관리 등은 대부분 파견이나 외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하청, 외주 구조는 관광 부문에서 서비스의 근본적인 개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정규직 전환의 모범 사례로 칭송되는 은행 등 금융 업계도 사실은 2003년 이후 대부분 '업무의 외주화'를 이미 완성한 상태에서 여전히 남아 있던 직접 고용 부분에 한정해서 정규직화를 진행시킨 것이다. 건설 일용직, 이주 노동자, 가사 도우미, 간병 서비스 심지어는 노래방 등 유흥업 도우미조차도 직업 소개소나 '보도방'을 통해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인식에 동의한다면 해결 방안은 명백해진다.
첫째, 사회 안정망의 확충을 위해 고용보험 및 실업급여의 수혜율을 확대하고, 한시적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고용보험 및 실업급여 수혜율 확대를 위해 고용보험법 제13조에 따라 모든 국민이 전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용보험 미가입자의 고용보험 가입 촉진을 위해 한시적 사회보험료 면제(임금의 약 17% 수준)를 추진하고, 실업급여 기간을 현행 3~8개월에서 6~12개월로 연장하며, 실업급여 자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실업급여 적용 제외 대상인 15시간 미만 근로자 100만, 특수 형태 근로자 60만, 가사 근로자 5만, 비임금 근로자 중 고용인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 400만, 취업 경험이 없는 신규 실업자 4만, 취업 경험은 있으나 구직 급여를 받지 못하는 46만 등 약 600만 명에게 구직 활동 의무나 직업 훈련 의무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한시적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둘째, 4대강 개발과 같은 일시적이며, 경제적 효용성도 떨어지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모성 보호, 산전 산후 육아 휴직, 돌봄 및 간병 서비스 등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 취업률 진작, 내수 진작 효과를 동시에 노려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괜찮은 일자리'라는 것은 꼭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일자리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시간제라 해도 최소한 상용직 일자리로서 기본적인 사회보장이 제공되고, 최소한 중위 임금의 3분의 2 이상을 지급받으며, 적절한 근로 시간이 준수되고,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
셋째,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비정규직 관련 고용3법의 개정 수준이 아니라, 고용차별의 원천적 금지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사정위원회 산하에 직무분석위원회를 구성하여 임금 및 근로 조건 비교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공 부문 중심의 직무 분석 사례 개발 및 확대를 통해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신 현재의 기간제 및 파견에 한정된 차별 금지 제도를 고용 차별 금지 제도로 전환하고, '동일 가치 노동에 동일 임금의 원칙'을 명문화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실질적인 비정규직 대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선진 고용 정책이 채택되고, 좋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들이 많이 만들어 질 때 비로소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도 보장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더 많이 공부시켜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좀 더 갖추게 하더라도 실제로는 장차 정규직이 될 확률은 높지 않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야할 세상은 너무나도 각박하다. 국가의 거시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교육과 스펙 갖추기에 비용을 지출하는 것보다는 공교육의 강화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돈과 시간을 절약하고, 경제 성장도 촉진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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