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문화부의 감사로 촉발된 이른바 '한예종 사태'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5월 황지우 전 총장의 사퇴 계기가 된 감사 결과에 한예종은 이의 신청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지난 16일 문화부는 최종 결과를 통보했다.
여기에는 '이론학과 축소', '서사창작과 폐지' 등 애초 감사 결과에서 논란을 불렀던 문구가 삭제돼 있었다. 그러나 최종 결론은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었다. 통섭 교육 사업 중단 및 관련 교수 중징계 등 학교 측에서 강하게 반발했던 결과도 그대로 남았다.
또 문화부는 회신과 함께 한예종과 함께 향후 학교 발전 계획을 논의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새로 선출되는 총장이 감사 결과 실행을 맡아 나갈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함께 해석할 때, 이제 공은 외연상 차기 총장에게 넘어간 셈이다. 한예종의 학생과 교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태가 장기화될 것 같다"
지난 18일 저녁,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는 학생총회를 열었다. 감사 이후 꾸려진 활동 경과 보고 및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는 이 자리에는 100여 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이곳에서 오간 대화는 앞으로의 향방을 두고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긴장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제껏 문화부의 태도를 볼 때, '말만 바꾼' 감사 결과가 사실상 그대로 집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가장 컸다.
학교 졸업생이라고 밝힌 김민지(가명) 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 감사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의 신청을 한번 더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최병진(가명) 학생 역시 "앞으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 사이에서 한 번의 동력이 아닌, 지속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차기 총장 선거에 대한 불안도 나타났다. 이상민(가명) 학생은 "총장이 행사하게 될 권력이 크고, 학칙을 개정할 수 있는 권한도 있기 때문에 선거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학생도 "선거 과정에서 학생들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이라며 "선거 이후에도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적인 틀을 확실하게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역시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학생총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지금 멀쩡한 한예종을 두고 손가락 하나가 썩었다며 잘라내려 하는 꼴"이라며 "이것에 그치지 않고 팔과 다리까지 잘라내려 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학부모는 "학부모들도 모여서 한예종을 지켜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박정희 정권처럼 사회가 독재로 돌아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학부모들은 학생비상대책위와 별개로 자발적인 대응 모임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지난 12일 첫 모임 이후 "정부는 학부모 가슴을 멍들이지 말라"는 제목으로 호소문을 발표했던 한예종 학부모들은 앞으로도 정기 모임을 통해 사태 해결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 지난 5월 문화부 감사 결과가 공개된 뒤 시작했던 한예종 학생과 학부모들의 1인 시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앞을 비롯해 대학로, 인사동 등지에서 계속됐다.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 |
▲ 한예종 학생들은 학내외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한예종 사태를 알려왔다. 이들은 1인 시위와 퍼포먼스를 당분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 |
'자유예술대학' 운영…"한예종 교육 보여주겠다"
한편, 한예종 교수와 학생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여름방학 중 학내에서 타 대학 학생과 일반시민까지 전액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강의와 워크숍, 그리고 공연을 열겠다는 것이다. '2009 자유예술대학'이 그것이다.
한예종 교수협의회와 학생비상대책위원회, 동문회와 학부모모임 등이 구성한 한예종사태대응연석회의는 "한예종 사태로 인해 국내의 대학급 예술 교육에 관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며 "고립되고 폐쇄된 예술 교육을 탈피하고 이론-실기, 장르-장르, 예술과 인문학, 예술과 과학기술, 예술과 사회가 상호 소통하는 예술과 학술의 축제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한예종 학생과 교수들은 "자유예술대학은 문화부 감사 결과에 우리 방식으로 반박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한예종을 두고 "지난 정부의 실패작"이라고 몰아가는 문화미래포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등 문화예술계 보수 인사와,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문화부 감사 결과를 두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의를 통해 증명하겠다는 것.
'연석회의'가 "예술-교육-국가-사회 간의 관계에 대해 미래지향적이며 생산적인 담론 환경을 창출하기 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문화예술인들의 교육 및 연구 성과를 전국의 예술학도 및 예술인과 공유하는 장을 개방적인 틀의 대학을 기획·운영하고자 한다"고 설명하는 것도 이런 의도 때문이다.
오는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에서 열리는 자유예술대학은 현재까지 20개 가량의 강좌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황지우 전 총장의 <명작 읽기>를 비롯해 심광현 교수의 <예술과 사회> 강연 및 좌담, 통섭교육 세미나 및 워크숍 등 문화부 감사에서 중징계 또는 사업 중단 등이 거론된 학자들의 강좌도 이번 기회에 접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자유예술대학 커뮤니티를 통해 알 수 있다.
'연석회의' 는 오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 최종 결과와 차기 총장 선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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