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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자유 사이에서…절대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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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자유 사이에서…절대 속지 말자"

[왜 나는 자율형 사립고를 반대하는가 ④]

학벌없는사회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학벌 철폐를 위해 활동해 왔다. 물론 이 학벌은 대학의 서열화에 따라 나타난 학벌을 의미하며 따라서 우리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 방안으로 대학평준화를 줄곧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서열화만 아니라 고교서열화와 고교 학벌의 부활까지 맞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으니, 거꾸로 가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오늘과 같이 절감할 때가 없다. 그 이유는 정부가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를 통해 실질적인 고교서열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교 다양화', '학교 자율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보장'을 통해 마치 국민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줄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사학에는 값비싼 등록금을 통해 수익성 있는 학교를 만들 '자유'를 주고,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그런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 '자유'를 위해서는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이다. 그러나 연간 1000만 원 이상의 등록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의 자유와 그런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과연 어떤 종류의 자유를 뜻하는가?

그와 같은 자유는 오직 '시장의 자유'일 뿐이다. 그런데 마치 이들은 '시장의 자유'가 국민을 위한 자유의 전부인 냥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자유'가 전부인 것은 아니다. 반대편에는 '시민의 자유' 즉, 정치공동체의 '자유'가 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자유'가 사회공동체에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만약 이윤추구의 권리와 소비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장의 자유'와, 보다 나은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시민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 국가는 어떤 자유를 위해 어떤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

▲ 이 나라에서는 공화국의 교육 관료가 오히려 앞장서서 등록금 1000만 원 짜리 학교 상품을 기획하고 있으니, 과연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누구의 자유이며 어떤 자유란 말인가? ⓒ학벌없는사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화 될 수 있고 상품으로서 교환 가능하지만, 아무리 자본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모든 것의 상품화와 교환을 정당화 하지는 않는다. 시장도 기본적으로 공동체 위에 존립하는 것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컨대 어떤 국가도 돈을 벌기 위해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팔 권리, 그리고 그것을 살 자유와 같은 것은 허용하지 않으며, 마찬가지의 이유로 단순 소비재가 될 수 없는 물, 공기, 의료, 교육과 같은 공공의 자산에 대해서는 무제한적으로 상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과 정책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는 공화국의 교육 관료가 오히려 앞장서서 등록금 1000만 원 짜리 학교 상품을 기획하고 있으니, 과연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누구의 자유이며 어떤 자유란 말인가?

'자율형 사립고'의 문제는 정확히 이 지점에 걸리는 것이라고 본다. 학교 설립의 자유와 학교 선택의 자유는 생산과 소비의 자유라는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비싼 상품을 소비할 수 있고, 대신 가난한 사람은 다른 대체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경제 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러나 과연 교육에 대해 그와 같은 상품 논리가 적용되어도 되는가? 그것이 과연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할 때 바람직한 일일 것인가?

속지 말자. 시장의 다양성이 교육의 다양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고교다양화는 다양한 학교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 맞는 학교 상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교 다양화', 즉 학교를 '다양하게 상품화' 하겠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제공해야할 교육 내용과 교육 기회의 다양화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가 다양한 상품으로 시장에 나올 때, 그리하여 경제 논리에 종속될 때, 이는 필연적으로 서열화와 차별화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육 내용과 교육 기회의 다양화는 오직 평준화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 과정이 계층 간 이동과 혼합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과 계급을 고착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연대와 협력을 가르치는 대신 무한 경쟁을 조장하여 공동체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공화국이 지켜야할 '시민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그래서 나는 '자율형 사립고'에 반대하는 피켓을 든다. 두 개의 자유 사이에서 내가 맞서야할 자유와 내가 지켜야할 자유를 명확히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존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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