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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주의의 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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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주의의 과잉

[박동천의 집중탐구]<54>획일성과 전횡

제5부 민족주의: 집단생존 프레임
제6장 한국 민족주의의 과잉
제1절 획일성과 전횡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민족주의 정치인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백범 김구를 뺄 수 없다. 그는 국운이 날로 기울던 청년기에 조선인 행세를 하는 한 일본인을 일본군 중위가 위장한 것으로 믿고 때려죽였고, 국권상실 후 중국으로 가서는 고질적인 분열 때문에 형해밖에 남지 않은 임시정부를 부둥켜안고 지켰으며, 한인애국단을 조직해서 이봉창과 윤봉길의 거사를 지휘했고, 광복군을 통해서 해방 후 한민족의 국제적 발언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했고, 해방 후에는 조국분단을 몸으로 막으려다 안두희의 흉탄에 희생되었다. 가히 일제와의 전쟁 및 조국재건 과정에서 민족적 의기와 헌신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상징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현실정치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정권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완강하게 고수한 결과 남북한에 각자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경로에 부지불식간에 협조하고 만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미 여운형이나 김규식 같은 중간파들은 유엔이 한국을 즉각 독립시키지 않으리라는 예상 아래 신탁통치 자체는 받아들이되 기간을 짧게 하도록 노력하고, 나아가 신탁통치 기간 중에 통일정부의 기반을 조성하는 방향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후지명(hindsight)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해방정국에서 분단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실낱같은 가능성이었다. 여운형이나 김규식이 상황을 주도했더라면 분단이 없었으리라는 말이 아니다. 현실정치에서 그런 보장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중간파의 노선을 따랐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얘기일 뿐이다.

▲ 백범 김구
하지만 실제 역사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오천년 문화민족이 뭐가 모자라서 남에게 신탁통치를 받아야 하느냐는 원색적인 감정에 휩싸여 김구의 임정세력은 반탁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그리고 이는 "소련이 주장하고 미국이 반대하는 신탁통치안", "박헌영이 소련의 지령으로 신탁통치에 찬성한다"는 식으로 상황을 조작한 『동아일보』의 도발적인 보도에 말려서 우익의 반탁과 좌익의 찬탁이라는 단순유치한 이분법으로 연결되었다 (박태균, 「반탁은 있었지만 찬탁은 없었다」, 『역사비평』 73호, 2005. 11). 이런 대립구조는 단독정부를 원했던 남쪽의 이승만과 북쪽의 김일성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용했고, 따라서 남북 분단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6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내서, "그때 김구가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따위로 감상에 젖어 탄식을 늘어놓자는 얘기가 아니다. "민족적 위신"이라는 얼핏 보면 장엄해 보이는 명분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표피적이고 미숙한 감정에 치우쳐서 사태를 악화시키는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좌익은 찬탁"이라는 바람몰이가 횡행하는 순간 적어도 "민족"을 중시하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신탁통치에 반대하지 않기가 어려워졌다. 그뿐이 아니고, "찬탁 세력은 소련의 지령을 받았다"든지, "미국은 신탁통치에 반대했다"는 따위 얼토당토않은 조작에 대해서조차 캐묻거나 따질 수가 없을 정도로 획일화된 집단무의식이 세상을 주도하고 만다.

앞에서 여러 번 비판했듯이 한미 FTA 반대나 이라크 파병 반대 역시 기본적으로 반탁운동에서 나타난 획일적 집단무의식의 흔적을 강하게 드러낸다. 고 노무현의 대통령 재직 때에도 그랬고 퇴임 후에도 그랬듯이, 만만한 사람 하나 잡아서 누가 더 저질로 씹어대는지를 시합하는 언론사들의 집단 따돌림과 선동에 맞장구치며 우르르 몰려다닌 여론의 행태는 결코 저런 획일성과 무관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일찍이 그레고리 헨더슨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고 불렀었고, 나중에는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이 "들쥐떼 같다"고 일컬은 것이 바로 내가 지금 문제 삼고 있는 획일적인 집단무의식인 것이다.

헨더슨과 위컴이 지적한 내용은 내가 보기에 똑 같다. 다만 비유한 표현이 달랐을 뿐인데, 헨더슨의 말에 대해 속상해서 덤벼드는 사람은 별로 없는 반면에 위컴의 발언에 대해서는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기분 나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일차적으로는, 위컴이 입에 올린 레밍(leming)을 한국어 "들쥐"로 번역한 탓이다. 위컴의 비유는 결코 경의나 칭찬이 아니라 비판과 불평을 담은 것이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풍조를 꼬집고 그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가당치 않다는 분명한 견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이지 한국인을 "들쥐떼"로 모욕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들쥐떼"라는 번역어에만 표피적으로 반응한 것이야말로 위컴의 지적이 적확하다는 증거가 되고 만다.

집단무의식적 획일성이 전적으로 민족주의의 과잉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2부 제4장과 제5장에서 논의했던 무별주의와 마녀사냥도 이런 집단무의식과 획일성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 맞다. 이 밖에도, 한국사회에서 획일주의란 문화적 역사적 원인들과 연관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무수한 갈래의 설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민족주의가 유일한 원인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커다란 원인 중 하나라고는 단언해도 괜찮다고 나는 생각한다.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라고 비난을 받는 와중에서도, 박정희가 "민족적 민주주의"라든지 "민족중흥" 등과 같은 구호를 활용해서 통할 수 있었던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박정희가 입신의 기회를 쫓아다닌 행적을 보면 그를 친일파라고 비난할 근거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얘기가 그 수준에만 머무른다면, 그의 시대에 "민족중흥"이라는 표어가 먹혔고, 그 후로도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여론조사에서 그가 부동의 1위를 지킨다는 사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난감하기 짝이 없게 된다. 친일파 박정희가 민족을 중흥시켰다고 다수의 국민, 즉 한민족 가운데 다수가 믿고 있다면, "민족"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가 굉장히 의아해지는 것이다. 민족 다수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에 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든지, 박정희가 말한 민족중흥은 "진정한" 민족주의가 아니라는 식으로 대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처럼 언표적 수준의 말대꾸만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개인적 아집의 좁은 땅굴에 들어가서 현실을 부인하겠다는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도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무분별한 "소용돌이" 또는 "들쥐떼" 현상의 원인에는 말초적 감정표현에 불과한 언어적 낙인찍기가 있다.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곤경에 빠졌던 국회의원(한나라당, 동해·삼척) 최연희가 "3·1절에 골프 친 국무총리" 덕택으로 여론의 예봉을 피한 2006년의 사건이 우리 공론의 말초적인 수준을 잘 보여준다. 최연희는 1심에서 성추행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벌금 5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하는 선처를 받았다. 그리고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4선의원이 되었다. 우익 신문들이 "민족의 성스러운 기념일에 골프라니" 따위의 싸구려 이미지를 동원해서 의제변환을 시도할 때,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 대부분은 묵시적으로 동조하면서 부화뇌동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해찬이 최연희보다 뭘 잘못 했는지만이 아니라, 애당초 이해찬의 행동이 왜 잘못이라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골프가 원래 반민족적인 부도덕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3·1절 날은 숨도 크게 쉬지 말고 근신을 해야 마땅하다는 것인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성추행당"으로 몰리던 한나라당을 구원하기 위해 이해찬을 표적 삼아 공격한 우익의 배짱은 이해가 되는데, 진보를 자처하면서 거기 덩달아 거들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이는 앞에서 논의했던 무별주의, 마녀사냥, 교조주의, 도덕주의, 선험주의 등의 폐해가 종합적으로 나타난 사례이다. 이런 일이 저토록 쉽게 벌어지고, 그러면서도 획일적인 집단무의식에 대한 반성의 불길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사회의 공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분석적이지 못한 정서적 어휘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탓이 크다. 그리고 나는 민족주의와 관련된 "친일파", "사대주의", "매판자본", "대미종속", "식민세력", "제국주의", 등등의 단어들이 정치담론에서 분석을 배척하고 감정을 앞세우는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신탁통치와 관련된 논쟁에서 "민족적 위신"이라는 가짜 명분 아래 당시 유일하게 생산적인 출구를 모색했던 중간파의 모든 노력이 묻혀버렸듯이, "식민주의"나 "사대주의"에 저항한다는 정서적인 분풀이를 지향하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세부적인 차이들은 다 떠내려 가버리는 것이다.

대를 위해서 소의 희생이 정당화된다고 본 박정희의 전횡은 그러므로 결코 그 사람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대세의 흐름이 일단 시작되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얼마나 경박하고 어리석은 짓이든, 추세에 대해 까탈을 부리며 버티는 것은 한국에서 썩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다. 이와 같은 획일성은 다수를 항상 무지한 상태로 방치하고, 진실은 오직 극소수 용기 있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무거운 부담으로만 남겨두며,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조차 대개는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본다"는 보신의 처세술을 자주 발휘하도록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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