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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봉준호 등 영화감독 100인 "웬 시대역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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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봉준호 등 영화감독 100인 "웬 시대역행인가"

'한예종 사태' 성명 발표 "'완장과 명찰'이 '예술과 학문' 망친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임순례 등 영화감독 100인이 19일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사를 두고 "시대착오적 감사"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이날 '한예종 사태를 염려하는 영화감독 100인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내고 "최근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며 "거기에 더하여 이런 일련의 퇴행이 문화예술 관련 행정에서 가장 조급하고 졸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지적했다.

영화감독조합은 "작은 정부를 꿈꾼다던 이 정권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이해할 수 없는 관치를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며 "과도하고 그릇된 권력행사의 정점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세금이 투입된 학교에 감사가 있을 수 있고 변화를 도모할 수도 있지만 그 동기와 과정이 수상하다"며 "상당 부분 뉴라이트 인사들의 의제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 논리가 자못 부실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론학과 축소, 통섭 교육 중단 등 감사 결과를 두고 "상을 주고 장려하여 다른 학교에게도 권하지는 못할망정 이게 웬 시대역행인가? 정녕 문화부는, 우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 광속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미학을 찾지 못한 채 구닥다리 작가로 전락하기를 바라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들은 "한예종은 시장만능과 실용주의를 부르짖는 지금 정부의 기준에 비춰보아도 괄목할 만한 성취들을 이뤄왔다"며 "저희 영화감독들은 영상원을 필두로 한예종의 각 원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한국영화를 얼마나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김정헌과 김윤수, 이제 황지우까지, 한 시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급의 화가, 미술사학자, 시인을 검열하고, 뒷조사하고, 마타도어하고, 모욕을 주어 기어이 임기 전에 쫓아내고야 마는 이 행태는 어느 파의 습관입니까"라고 물은 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식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떠밀린 것 아닌가?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임기를 못 마친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근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낡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어 단죄하고 처형하는 작태는, 마치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독재의 기반을 다지던 과거 독일의 나치를 떠올리게 한다"며 "다윗의 별을 옷에 붙여 유대인들을 분리하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밝혔다.

이들은 "완장과 명찰의 정치를 예술과 학문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이지 말라"며 "한국영화에, 균형 잡힌 교육을 받은 인재를 공급해 달라. 左(좌)파도 右(우)파도 필요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後(후)파도 말고, 그저 앞서 가는 前(전)파면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한국영화감독조합 100인이 낸 성명서 전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는 경색되고, 생태를 파괴하는 개발이 예고되고 있으며, 경제적 약자를 더한 경쟁으로 내모는 정책들이 실행중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시국을 맞아 시민이 발언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마저 위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저희는 이런 일련의 퇴행이 문화예술 관련 행정에서 가장 조급하고 졸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물러나게 한 사건은 그저 신호탄이었을 뿐입니다. 정권교체 직후의 의례적인 수순이려니 하며 잠시 방심한 사이, 작은 정부를 꿈꾼다던 이 정권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이해할 수 없는 관치를 오히려 확대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공공의 영역을 지켜온 시민단체와 시네마테크와 독립영화와 대안적인 미디어들의 숨통을 자신들의 정치적인 셈으로 판단하고 옥죄고 있는 지금, 그 과도하고 그릇된 권력행사의 정점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사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9년 5월, 문화부는 한예종에 대한 대대적 표적 감사를 통해 예술과 과학기술을 융합하는 통섭 교육 중지, 이론과의 축소 및 폐지, 서사창작과 폐지, 황지우 총장과 일부 교수들에 대한 중징계 등 12건의 주의, 개선, 징계 처분을 통보했습니다. 한예종을, 실기 위주의 영재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이에 반발해 황지우 총장이 사퇴했고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세금이 투입된 학교에 감사가 있을 수 있고 변화를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기와 과정이 수상합니다. 상당 부분 뉴라이트 인사들의 의제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 논리가 자못 부실하고 시대착오적입니다.

모름지기 예술에서 이론과 실기는 별개가 아닙니다. 실천에서 이론이 파생되고 그 이론들의 왕래가 실제의 작업을 북돋우는 법입니다. 더욱이 각 매체의 포맷과 유통이 자유자재로 월경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학제간, 매체간, 장르간의 대화와 융복합, 즉 통섭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데 이에 대한 교육의 필요를 선뜻 부정하는 근거가 궁금합니다. 상을 주고 장려하여 다른 학교에게도 권하지는 못할망정 이게 웬 시대역행입니까? 정녕 문화부는, 우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 광속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미학을 찾지 못한 채 구닥다리 작가로 전락하기를 바랍니까? 實技(실기)만 부르짖다가 失期(실기)하는 꼴을 꼭 보고 싶다는 말입니까?

한예종이 배출한 작품과 인력의 성과 또한 무슨 근거로 부정하는지 의아합니다. 인문 예술의 가치는 어떤 수치의 잣대로 판단할 덕목들이 아닐진대, 과거의 개발 논리마냥 성과 부족을 운운하는 모습들이 낯 뜨겁습니다. 하물며 한예종은 시장만능과 실용주의를 부르짖는 지금 정부의 기준에 비춰보아도 괄목할 만한 성취들을 이뤄왔습니다. 세계적인 콩쿨들과 한국 영화산업, 그리고 그 밖의 연희 예술 및 문학과 비평의 영역에서 한예종 출신의 인재들이 줄기차게 일궈내고 있는 객관적인 성과들을 굳이 모른 척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희 영화감독들은, 영상원을 필두로 한예종의 각 원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한국영화를 얼마나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가만 놓아두어도 잘만 하고 있는, 아니 가만 놓아두었기 때문에 잘 하고 있는 기관에 갑자기 개입해 유린하려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효율을 말하며 효율을 무시하는 쪽이야말로 오히려 한예종을 흔드는 세력입니다.

문화부 차관은 말합니다. 우파 정권이 들어섰으니 우파 총장이 나와야 한다고. 그래서 황지우 총장을 내몰고 심지어는 평교수직마저 빼앗아간 것입니까? 그렇다면 답하십시오, 황지우가 총장으로 부임한 이래 한예종에 도입한 좌파 정책은 무엇입니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는 한 문화부는, 한 학자의 머릿속을 검열해 숙청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좌파라고요? 그럼 김정헌과 김윤수, 이제 황지우까지, 한 시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급의 화가, 미술사학자, 시인을 검열하고, 뒷조사하고, 마타도어하고, 모욕을 주어 기어이 임기 전에 쫓아내고야 마는 이 행태는 어느 파의 습관입니까? 답하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식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떠밀린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임기를 못 마친 것 아닙니까?

예술은 기본적으로 특정 시대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여 그 감각을 흔들며 희노애락을 재분배하는 것이 존재의 의무이며 이유입니다. 그런 사회적인 상상력과 자율적 감각은 좌나 우 한쪽의 덕목이 아닌 예술과 창작 본연의 가치입니다. 그 근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낡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어 단죄하고 처형하는 작태는, 마치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독재의 기반을 다지던 과거 독일의 나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의 별을 옷에 붙여 유대인들을 분리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완장 찬 사람들이, 미운 놈이면 아무한테나 명찰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완장과 명찰의 정치를 예술과 학문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예술과 학문은 정권의 전리품이 아닙니다. 한국영화에, 균형 잡힌 교육을 받은 인재를 공급해 주십시오. 새 시대의 미학으로 무장한 젊은 예술가를 보내 주십시오. 左(좌)파도 右(우)파도 필요 없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後(후)파도 말고, 그저 앞서 가는 前(전)파면 됩니다.

강이관, 강철우, 강형철, 공수창, 구자홍, 김경형, 김대승, 김성수(야수), 김용화, 김은숙, 김영남, 김정권, 김종관, 김종현, 김지운, 김진아, 김태식, 김태용, 김태윤, 김태희, 김한민, 김현석, 나홍진, 류승완, 류장하, 모지은, 문승욱, 민규동, 민병훈, 박광현, 박규태, 박은형, 박진표, 박찬욱, 박흥식(인어공주), 방은진, 백승빈, 변영주, 봉만대, 봉준호, 부지영, 손재권, 손현희, 송일곤, 송해성, 신동일, 안상훈, 양익준, 양해훈, 오기현, 오승욱, 용이, 윤성호, 윤재연, 윤종빈, 윤종석, 윤태용, 윤인호, 이경미, 이계벽, 이무영, 이미연, 이송희일, 이수연, 이언희, 이우철, 이윤기, 이정범, 이정욱, 이종용, 이철하, 이해영, 이해준, 이형곤, 임순례, 임찬상, 임창재, 임필성, 장문일, 장준환, 장항준, 장훈, 전계수, 정길영, 정범식, 정식, 정연원, 정윤철, 정재은, 조근식, 조민호, 조의석, 조진규, 조창호, 최동훈, 추창민, 하기호, 허진호, 한지승, 허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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