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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길 유일한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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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길 유일한 방법은?

[복지국가SOCIETY] 노무현 이후, '초록-복지 동맹'이 필요하다

서거 이전과 서거 이후의 차이

불과 얼마 전까지 '친 노무현' 정치 세력은 '죽은 권력'으로 표현되었으며, 실제로 스스로를 폐족(廢族)으로 진단할 정도였다. 그런데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실제로 자신의 몸을 부엉이 바위 아래로 던지자 국면은 '확' 바뀌게 되었다. 500만 명의 조문 행렬,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의 기록을 갱신하는 영결식 인파, 민주당 지지율은 1위를 탈환했고, 친노 정치 세력의 간판 주자들이 정치적으로 다시 크게 주목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모든 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이제 그런 말은 쏙 들어갔다. 노무현 前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진보진영의 인사들도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구분하며 추모의 열기에 가담했다.

그렇다. 서거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개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의 분리 정립이 정착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들은 좋았던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노무현, 가슴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을 상기하며, 그가 살았던 80년대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회상하고 눈물 흘리고 미안해하곤 했다.

'개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그러나 우리는 다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개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은 성공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노무현도 성공한 것인가?

만일 대통령 노무현이 '성공한' 대통령이었다면, 그래서 서민 대중들의 '정치적 엄호'를 받을 수만 있었다면, 노무현 대통령 당신께서 그처럼 애착을 가졌던 것처럼, 그들의 '가치'가 대중적으로 엄호를 받을 수만 있었다면,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아침의 '비극'은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개인'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경건한 마음으로, 존경의 마음으로 숙연해질 필요가 있지만, 노무현 前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한국 정치사의 비극을 제대로 규명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지를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참된 추모란, 그의 진정성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되, 그의 성공과 그의 좌절을 일관된 흐름으로 이해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과 마주할 때, 그리하여 이러한 진보적 대안이 서민 대중의 정치적 엄호를 받을 때, 참된 추모는 진정으로 성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0년대의, 80년대에 의한, 80년대를 위한 대통령

최장집 교수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큰 특징을 '운동에 의한 민주화'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정치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주로 시작된 80년대, 그 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두가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를 타는 목마름으로 외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개인 노무현도 그런 사람이었다.

빈농의 아들에서 부림 사건 이후 운동권 변호사가 된 것은 '80년대 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산 지역의 민주화 세력을 대표해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학살자 전두환에 대한 분노를 담아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80년대적 지조'를 지키기 위해 3당 합당을 거부했고, '80년대적 가치'를 위해 3김시대와 지역주의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2002년 바로 그 힘으로, 80년대적 열정의 힘으로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그해 겨울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04년 탄핵 파동과 거리로 나온 촛불의 행렬들을 거쳐 2004년 4·15 총선에서 민주화 정치 세력의 최초 원내 과반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일궈내었다.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운동에 의한 대통령'

최장집 교수가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운동에 의한 민주화'였던 것처럼, 그는 '운동에 의한 대통령'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개인적 통치 스타일에서 대통령 노무현의 한계와 실패를 찾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80년대 운동의 한계 또는 실패였으며, 80년대 민주화 세력의 한계 또는 실패라는 차원에서 보다 거시적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80년대 운동'의 최정점에 있었던 대통령 노무현은 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일까? 80년대적인 것의 그 무엇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더군다나 2004년 총선 결과인 민주노동당 10석과 민주당 9석을 합치면 180석에 육박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노무현은 성공하지 못한 것일까?

이에 대한 보다 보편적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잠시 정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정치사에 대해 환기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현대 정치사를 복기해보면, 민주주의가 크게 3가지 경향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 경향 : 자유권 중심 민주주의⇒복지 민주주의⇒초록 민주주의

첫째, 자유권 중심의 민주주의 단계이다.

'전(前) 근대'와 치열하게 싸우며 보통선거권을 비롯한 정치적 시민권의 정착 시대였다. 자유권 중심의 민주주의는 서민들의 '정치적 결정권'이 확대된다는 긍정적 의미가 있지만, 보다 주요하게는 부르주아지(BG)들과 중산층을 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유권에 기반해서 경제적 기반이 튼튼한 이들 부르주아지들과 중산층은 정치적 자유권만 보장된다면, 크게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당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정치적 자유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복지 민주주의 단계이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던지며 민주주의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절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바람직한 정치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민주주의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서민대중의 삶을 개선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는데, 실제 유럽의 역사에서 이는 복지정치, 복지국가의 형태로 실현된다. 우리는 이를 복지 민주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크게 보아 사민당의 시대이며, 이념적으로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초록 민주주의 단계이다.

절대 빈곤을 극복하고 후기 산업사회가 조성되면서 고학력 화이트칼라층을 중심으로 양(良)이 아닌 질(質)에 대한 욕구,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욕구가 증대한다. 이들은 자연과의 조화, 작은 공동체(커뮤니티), 내면의 성찰, 몸의 재발견,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 등에 대해 주목한다. 이들 욕구의 본질은 한마디로 '의식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차원 높은 인간다움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보아 녹색당의 시대이며, 이념적으로는 생태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와 열린우리당 실패의 본질

다시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80년대 학생운동의 실패이며, 학생운동이 주도했던 민주화운동의 실패였다. 2004년 열린우리당의 과반 직후, 열린우리당의 정당지지율이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을 10% 이상 앞서고 있을 때, 그들이 했던 '최초의' 정치적 진검승부는 소위 4대 개혁입법이었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언론법, 과거사법이 그것이었는데, 필자는 지금도 당시 여론조사 결과가 생생하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개정 및 폐지가 3분의 1이었고, 현행 유지가 3분의 1이었고, '관심없다'가 3분의 1이었다.

국민들은 2004년 총선을 통해 80년 광주항쟁 이후 민주화를 이끌었던 양대 세력에 대해 최대한의 정치적 기회를 주었다. 80년대 정치적 민주화를 선도했던 자유주의적 개혁 세력에게 '원내 과반'이라는 선물을 주었고, 민주화의 또 다른 한축이었던 친(親)사회주의 경향의 민중운동세력인 민주노동당에게 '제3당'이라는 최고의 정치적 찬사를 보냈다.

이를 통한 서민대중의 요구는 간결했다. "과거에 니네들 민주화 하느라 고생 많았으니까, 이제 서민들 먹고사는 문제 좀 잘 해결해보라는 것. 그리고 이제 과거 지나간 이야기 좀 그만하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요컨대, '대통령'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게 서민 대중들이 바랬던 것은 간결하다. '밥이 되는 민주주의', 즉 '복지 민주주의'를 이제는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래서 서민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것들, 주거 문제, 교육 문제, 노후 문제, 의료 문제, 일자리 문제를 민주화운동을 했던 당신네들이 제대로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 재인식-'복지 없는 민주주의'와 '복지 있는 민주주의'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운동권' 정치인들과 민주노동당의 '운동권' 정치인들은 서민대중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상징이 바로 4대개혁입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正義)라고 서민대중을 향해 '윽박지르기' 시작했고, 서민대중을 향해 '논쟁'을 걸기 시작했고, 80년대 운동권 시절 후배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민대중을 '가르치려' 들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환상 및 신화와 과감하게 결별해야 한다. 민주주의 그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타는 목마름'의 그것이 될 수 없으며, '남몰래 쓸' 그 무엇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본질적으로 "'복지 없는' 민주주의"와 "'복지 있는' 민주주의"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 전자의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와는 명백하게 단절했지만, 자유권 중심의 민주주의이며, 서민대중의 삶과 무관한 민주주의이다. 후자의 민주주의는 '밥이 되는 민주주의'이며, 서민대중의 삶과 직결되는 민주주의이다.

전자의 민주주의는 '전(前)근대'와 싸웠기에 더욱 치열한 과정이었고 바로 그렇기에 고색창연한 이념적 언사들이 난무한다. 자유, 평등, 민주, 탈권위, 탈냉전, 역사 청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후자의 복지 있는 민주주의는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대중의 생활적 투박함이 지배적 관심사이다. 집 걱정, 교육비걱정, 어머님과 아버님의 노후 걱정, 병원갈 때 부담, 일자리 불안감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볼 때, 현대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복지 있는' 민주주의"이며 자신의 정치 세력이 어떤 이념적 기반을 가지건과 무관하게 현대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사민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서민대중으로부터 '정치적 고립'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무능한' 민주당의 생존법-복고주의와 향수의 자극

불과 며칠 전 'New 민주당 플랜'을 이야기하며 중도의 강화를 외치던 민주당은 이제 와서 선명 야당과 장외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민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만을 학수고대하던 민주당은 이제 '상주(喪主)'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어제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오늘의 새로운 기회주의로 덮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화 시대, 민주화라는 임무를 너무도 훌륭히 마쳤기 때문에 시대적 임무라고는 전혀 없는 민주당이, 그리하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던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정당지지율로 제치고 1위를 하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2004년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하던 바로 그 순간, 대한민국에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완전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소멸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심지어 지금 현재도 변함이 없다.

이명박이 아무리 권위주의적 행태를 해도,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고, 유모차에 대한 조사를 하고, 신영철을 통해 재판개입을 하고, 방송장악 의도를 드러내고, 서울광장을 불허해도, 선거에서 500만 표 차로 당선된 이명박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국 선언 교수들이 정당하게 우려하듯 이명박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적 요소가 후퇴하고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지만, 4·29 재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이 작동하여 6:0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아직은 멀쩡하게 살아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 대 反민주'라는 과거 구도를 재현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민주당의 행태는 이명박만큼이나 복고주의적이며, 반동적이다. 더욱 심각하게는 대통령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서민대중의 정치적 엄호를 받지 못하게 만들었던,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와 비극을 반복하려는 민주당의 비극에 불과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자 광장에 모인 시민의 열망은 현실 정치 속에서 '초록+복지 동맹'의 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나라당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프레시안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 '초록+복지 동맹'으로 정치를 재편해야

62% : 28% (38%)
64% (49%) : 35% (26%)

앞의 숫자 62% : 28%는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얻은 득표율과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가 얻은 득표율이다. 괄호는 당시 열린우리당+민주당+민주노동당 후보의 표를 합산한 것이다.

뒤의 숫자 64%는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얻은 표의 합계이다. 괄호 49%는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이다. 그리고 35%는 정동영+문국현+권영길+이인제 후보의 표를 합산한 표이다. 역시 괄호 26%는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이다.

우리가 단지 2010년 지방선거만 보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2012년 총선과 2012년 대선에서 진정으로 승리하고자 한다면, 62:38이라는 숫자에서 시작해야 한다. 또는 64:35라는 숫자에서 시작해야 한다.

2004년 차떼기와 탄핵으로 위기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단지 노무현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전 국민의 3분의 2에 달하는 65%의 지지율을 받았던 것이 결코 아니다. 청계천과 시내버스 개편을 통해 서민들에게는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었으며, 뉴타운과 자립형 사립고 등을 통해서 주거 및 교육 분야에서 '보수 버전의' 정책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가지고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욕구에 화답하였던 것이다.

비록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약 4년간의 정치적 성과물들을 1년 만에 다 까먹고 있지만, 우리는 거꾸로 2007년 대선 이전, 한나라당은 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했었는지 '적(?)으로부터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초록+복지 정치동맹'에 근거한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서민대중의 지지는 요원하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압축 사회'라는 점이다. 유럽 정치사의 발전 단계를 압축근대화를 이룬 한국적 현실에 맞게 잘 적용하여, '초록+복지 동맹'을 중심으로 정치를 재편해야 한다. 그리하여, '개발+시장 동맹'을 한편으로 하고, '초록+복지동맹'을 한편으로 하여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제대로 된 정치적 진검승부로 그들을 제압해야 한다.

가장 크게는 이명박 대통령이 조장한 것이지만, 우리는 노무현 前 대통령을 '비극적 죽음'으로 몰고 갔던 민주대 반(反)민주 구도라는 반동적 복고주의에 대한 미련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그리하여 '과거 구도의 부활'에 기반한 착시효과를 통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이길 생각일랑 하지 말고, '미래구도'의 선도적 창출을 통해 우리가 먼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반감(反感)의 결집이 아닌, 호감(好感)의 결집으로 승리할 생각을 해야 한다.

아직,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이 남아있어, 80년대 타오르기 시작한 그 뜨거운 불덩이에 우리 자신이 데어죽어선 안된다. 식혀도 식혀도 우리 가슴에 좀처럼 식지 않는 그 뜨거운 불덩이가 있거들랑, 그 불덩이를 화롯가에 담아, 서민대중들을 우리들의 안방으로 초대해야 한다. 넓게 둘러앉아, 그들에게 열정으로, 진정성으로, 가슴으로, 겸손하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부드럽게, 소통하며 호소해야 한다.

초록+복지 정치동맹이 없다면, 더 이상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 너무도 명백한 진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 알려야 한다. 지식인들에게도 알리고, 80년대를 외롭게 지켰던 광주시민들에게도 알리고, 서민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만이 '대통령' 노무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서민대중의 정치적 엄호를 받으며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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