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2일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으나 '개인 비리'에 그쳤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 "640만 달러 포괄적 뇌물은 인정된다"고 주장해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대검 중수부(검사장 이인규)는 12일 오후 "2008년 12월 중순부터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과 관련된 정·관계 로비의혹,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혹,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의혹을 수사해왔다"며 박 회장을 비롯해 21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일단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알려진 대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박연차 회장의 노 전 대통령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해서도 '입건유예' 결정을 내려 추가 기소 혐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혹과 관련해서는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을 2억 원 수수 혐의(알선수재)로 이미 구속기소한데 이어 '핵심 인물'이라는 의혹을 받았던 천신일 회장을 중국 돈 15만 위안 수수 및 6억2000여만 원 채무면제 요구, 증여세·양도소득세 102억 포탈 등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야당에서 주장하던 대선자금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고발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 배당돼 있다.
현역의원…이광재, 서갑원, 박진, 김정권 기소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정치인들이 무더기 기소됐다. 현역 의원으로는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이날 발표를 통해 한나라당 박진, 김정권, 민주당 서갑원, 최철국 의원을 각각 수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다만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은 무혐의 처리됐다. 안 최고위원은 박 회장으로부터 상품권을 수수한 사실을 인정했으나 당시 정치자금법 위반 판결로 피선거권이 제한돼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정치자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밖에 박관용,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억대가 넘는 금품 수수혐의로 불구속기소됐고, 장인태 전 행자부 차관, 김태웅, 송은복 전 김해시장, 이정욱 전 해양수산개발원장 등도 기소돼 이미 재판을 받고 있거나 이날 추가로 기소됐다.
뇌물 수수 혐의로는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이 구속기소됐고, 정대근 전 농협회장,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은 2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김종로 검사가 1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역시 불구속 기소됐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문제 없음'
다만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박모 부산고법 부장판사,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무혐의 처리됐으며, 검찰은 민유태 지검장에 대해서는 법무부에 징계청구를, 박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대법원에 비위사실 통보를 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검찰은 민 검사장, 박 부장판사에 대해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관심을 모았던 라응찬 회장에 대해서는 "라 회장이 박 회장에게 50억 원을 교부한 사실이 확인됐으나, 50억 원은 라 회장의 개인자금으로서 라 회장과 박 회장은 가야CC에 대한 투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달리 불법 거래임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내사종결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세무조사 대책회의' 의혹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박연차를 검찰에 고발했다"는 이유로 "실패한 로비"로 결론을 내렸고, 국세청 세무조사에 대한 외압 의혹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자료를 누락한 사실은 없으며, 세무조사 과정에서 외부로부터의 청탁을 받아 세무조사 진행이 왜곡되거나 축소된 사실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만 설명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한 수사…전직 대통령 예우 최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의 '무리한 수사', '피의사실공표' 비판에 대해서도 검찰은 적극 해명했다. 한 마디로 '문제 될 것은 없었다'는 반응이다.
검찰은 '저인망 수사' 주장에 대해 "증거가 드러나 수수 및 사용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소환조사했다"며 "혐의 유무 확인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조사했다"고 항변했다.
'신병 결정을 지연시켜 압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소환 조사 후 박연차 회장이 주택구입자금으로 4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 추가 수사가 필요했다"며 "기존 혐의에 대한 보완수사와 새로운 혐의에 대한 추가수사가 종료된 후 결정하는 것이 수사원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보복·표적 수사' 주장에 대해서는 "국세청의 고발에 따라 수사했고, 불법자금 수수 단서가 발견돼 소속 정당,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헬기 이동도 권유한 바 있고, 검찰 조사시에도 시종 변호인 입회, 충분한 휴식 조치 등 전직 국가원수로서의 예우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면서 "박연차 회장과의 대질조사도 노 전 대통령 측의 의사를 존중해 대질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명예훼손 보도, 검찰이 브리핑한 것 아님"
'피의사실공표' 지적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언론의 경제 기능 충족, 오보 및 추측성 보도의 확산으로 인한 혼란 예방 및 관련자들의 사생활과 명예 보호를 위해 관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 범위 내에서 수사브리핑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수사 대상이 방대함에 따라 수사팀 이외에도 다수의 사건관계인들을 통해 수사 정보 입수가 가능했고, 언론에서 먼저 정보를 입수한 후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상당 부분 있었다"며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손상시켰다고 거론되는 몇몇 사례들은 검찰에서 브리핑하거나 확인해준 내용이 아니다"라고 책임이 없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색출하겠다"던 '나쁜 빨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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