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대표는 11일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우리는 1박2일간의 서울광장 농성과 6.10 범국민대회를 통해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바람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느꼈다"면서 "국민의 아픔과 고통이 있는 현장에서 늘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장'에서 함께 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대외 활동에 더욱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노영민 대변인도 "어렵고 고통을 받는 국민들에게는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다"며 "국회 안은 이강래 원내대표에게 맡기고 정세균 대표는 아픔이 있는 현장에 더욱 많이 찾아다니실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저 사람 누구냐"→"정세균이다"
이같은 '바깥 정치' 확대 배경에는 6.10 서울광장 농성이 있다. 범국민대회 하루 앞선 9일 '광장 사수'를 외치며 천막을 치고 장대비 속에 농성을 벌이고, 무대 설치 차량을 끌어내려는 경찰 견인차를 육탄 저지하는 모습에 시민들의 반응도 사뭇 달라졌다고 판단했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MB악법 저지 결의대회' 등 대중 연설 당시 "저 사람은 누구냐?" 정도의 반응이 주를 이뤘으나 이번에는 인지도나 호응도 면에서 비교가 알 될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정 대표가 연설하는 사이 많은 시민들이 "정세균이다!"를 외칠 정도였다.
강기갑 대표는 십만 군중 앞에서 "국회 생활 5년 만에 민주당이 이렇게 마음에 든 적이 없었다"고 추켜세웠고, 노회찬 대표도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 중에도 서울광장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신 민주당 의원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 6.10 범국민대회 시국연설을 향해 연단을 향하는 정세균 대표. ⓒ연합뉴스 |
게다가 '서울광장 농성'은 여러 가지 불리한 변수가 많았음에도 발 빠른 정치적 판단과 두둑한 배짱을 부렸으며 운도 따라줬다.
민주당이 9일 오전 광장 농성을 결정했지만, 민주당이 오후에 천막을 치기 전 정부에서 사용허가를 내줄 경우 민주당 입장에서는 머쓱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끝까지 불허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밤에는 장대비가 내려 '그림'이 만들어졌고, 수만 명이 참가한군중집회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정 대표는 "평화집회 보장한다"고 호기를 부렸다. 그리고 실제로 큰 불상사 없이 집회가 마무리됐다.
당 핵심 관계자는 "정 대표의 스타일이 티 내는 거 싫어하고 '항상 우직하게 가다 보면 알아줄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것인데, 이제 조금씩 정 대표의 진정성을 알아봐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주당은 항상 민주진영의 '큰 형님' 론을 펼쳤는데, 이번에야 말로 장외 집회를 주도하면서 그 위상을 확인할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또한 4.29 재보선에서 당의 균열이 노출됐으나 지난 연말 국회 본회의장 점거 농성 때처럼 이번 서울광장 노숙 농성으로 의원들의 단결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은 보너스다.
연장선상에서 장외 활동도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강기정, 김상희, 김영록, 백원우, 이춘석, 조정식, 최문순, 최영희, 최재성, 홍영표 의원 등 비교적 젊은 초재선 의원들이 용산 참사 현장을 릴레이 방문하기로 했다. 정 대표는 이미 방문한 바 있는데, 민주당이 용산 참사 문제도 적극적으로 떠안고 가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여기에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라. 국민속으로"를 강조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함에 따라 민주당의 활동 폭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외 활동도 원내 전략"
그렇다고 장외 투쟁에만 올인할 수는 없다. 6월 국회 개회 문제를 비롯해 원내 문제는 이강래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전략을 세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국회를 연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추경과 같은 시급한 사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급할 것은 없다"며 "장외에서 국민 여론을 민주당에 우호적으로 만드는 것도 원내 투쟁에 도움이 되면 이것도 원내 전략 중 하나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흡한 점도 많다. 6.10 범국민대회는 이미 마련된 판이었고 민주당은 이 판을 주도해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러냈을 뿐, 아직 창조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의제(어젠다)를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뜨거운 6월 정국이 지나면 달아 오른 지지도는 금세 식어버릴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MB악법 저지' 등 '안 된다' 구호는 지구력의 한계를 노출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당 안팎에서는 "대안 마련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현재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어깨에 힘 빼고 대중들과의 스킨십을 늘려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숙자 의원' 별명을 들으며 대한문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던 최문순 의원은 "이제야 정당다운 정당을 보는 것 같다"고 기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입법전쟁을 통해 국회 안에서 야당이 되는 걸 배웠다면 이제 국회 밖에서도 야당이 되는 걸음마를 시작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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