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이 '릴레이단식'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등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관계법을 막기 위해서다. 단식에 들어가며 이들은 "법률가는 법률의 정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일주일에 두 번, '사회적 정의와 양심'을 위해 단식에 참여한 법률가들의 글을 싣는다. |
사실 나는 삭발이나 단식 같은 농성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민중들이 그런 투쟁을 선택하게 되는지는 알고 있기에 결국 적극 지지할 수 밖에 없어진다.
2009년 6월 9일, 오늘은 단식과 국회 앞 1인 시위를 내가 하는 날이다.
용산 우리 집에서 출발해 광화문 사무실로 가는 길에는 가진 자들의 재개발과 땅 투기 열풍이 남긴 용산 참사 현장을 지난다. 오늘도 여전히 경찰차들이 그 일대를 애워 싸고 있다. 무너질 듯 스산한 건물에서는 원망과 슬픔의 곡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조금 지나면 매일 10여 명의 사람들이 방송차를 틀어놓고 집회를 한다. 한진중공업 본사 앞이다. 이곳도 재계발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세입자들이 매일 집회를 하고 있다. 서울역을 지나, 대한문과 시청 앞을 지나 사무실로 갔다. 대한문 앞은 얼마 전 경찰이 패대기친 분향소 물품들을 옆에 그대로 쌓아놓고 있고, 여전히 조문행렬과 촛불과 성토의 장이 계속되고 있다. 몇일만에 경찰차 성벽이 치워진 시청 광장은 내일 있을 6.10항쟁 행사 때문에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엿보인다.
사무실에서 급한 일을 마치고는 바로 국회로 갔다.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명이나 목에는 칼을, 발목에는 쇠고랑을 차고는 비정규직 법의 문제점을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고, 또 병설유치원의 확대를 주장하는 분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나도 부랴부랴 1인 시위를 시작한다. 국회 앞을 지키는 경찰이 와서 어디 소속이냐 묻는다. 난 피켓을 가리켰다. 경찰이 또 온다. 어디 소속이냐 한다. 어느 단체 소속인지 궁금한 것 같았다. 뭐 가르쳐 줘도 상관없지만 심술 나서 안 가르쳐 준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 오가는 사람이 많다. 눈빛들이 나뉜다. 무심한 사람, 국회 소속이면 늘 보는 풍경일 테니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 젤 많다. 짜증난다는 표정들의 사람들. 당신의 사돈에 팔촌까지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도 없는지. 당신 아들딸에 손자 어느 누구도 비정규직 안 될 것 같은지 한마디 쏘아주고 싶다. 호의적인 눈빛으로 피켓을 읽고 가는 사람도 제법 된다. 그들에게도 한마디 해줬었어야 하는데 못했다.
"이건 비정규직 실직대란 때문에 기간을 연장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비정규직 악법을 완전히 새로 갈아치우자는 이야기니깐 오해하심 안 되요~"
어느 인터넷 신문사 기자라면서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해간다. 왜 단식을 하는지. 주장하는 바가 뭔지 등등. 기자에게 이야기한다. "사실 밥 하루 굶는 것 아무것도 아니예요." 기자가 적극 동의한다.
"우리가 단식을 하게 된 건 우리모임 대표인 이병훈 노무사님이 단식을 하던 것을 확대시켜 하는 것이예요. 비정규직법은 정규직 노동자와의 차별시정과 2년 이상 고용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예요. 사용자들이 2년 이상 고용하지 않고 해고시켜 지금 실업대란 운운되고, 이에 장단 맞춰 한나라당은 2년 기간을 연장하거나 법적용 유예를 운운하고 있는 것은 잘 아실테고요.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시정을 요구하면 결국 계약해지가 되버려요. 차별보다는 고용이 먼저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차별시정이란 그림의 떡일 뿐이죠. 한 끼 밥을 굶는 것은 조금 배고프긴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런 노력으로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이 알려지고 올바른 개정을 촉구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뭐 이런 내용으로 인터뷰를 한다.
그때 지나가시는 할아버지가 노무현이랑 무슨 관계냐고 소릴 지른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에서 "노무"까지 보고 소리를 지르시는 거다. 할아버지가 소릴 지르는 이유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한참을 욕을 하고 지나가신다. 안쓰러운 생각이 훨씬 많이 들었다.
1시간가량의 1인 시위를 마치고 사무실로 갔다가 저녁이 되어서 퇴근한다. 배가 고프다. 무엇보다도 커피가 먹고 싶다. 머리속에 낼 뭘 먹을지 생각하는데,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시청광장은 긴박하다. 무장한 전경 부대가 계속 배치되고 있고,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밤새 자리싸움이 진행될 것 같다.
하루가 슬프다. 배가 고프니 더 슬프다. 온갖 슬픔들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길에 가득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내 아이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면 우린 단식과 1인 시위를 넘는 더 큰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더 큰 무언가를 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들지만 같이 하자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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