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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 '인구론'은 아직도 유효한가

[이정전 칼럼]<11>'욕망의 무절제'가 가져온 비극

식욕과 성욕, 그리고 인류의 미래

인간사회는 동물사회와 얼마나 다른가? 어떤 사람들은 인간사회가 동물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을 굳게 신봉하면서 이 이성의 힘으로 자연의 제약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대체로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마르크스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인간사회나 동물사회나 기본적으로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성의 측면보다는 본능의 측면이 인간사회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요인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성은 본능적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먹으려는 본능과 성적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바 없다. 예를 들면, 동물들은 먹이를 지키기 위해서 치열한 영역 싸움을 벌이는데, 인간도 치열한 영역 싸움을 벌인다. 동물사회의 위계질서나 규칙은 먹는 문제와 생식문제에 관련된다. 동물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중요한 현상은 식욕본능과 성욕본능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자연의 법칙을 억지로 구부려서 이익을 취하려하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인간사회나 동물사회나 기본적으로 같다고 보는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강조한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면 오히려 큰 화가 닥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힘보다는 자연의 힘을 훨씬 더 강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상가는 아마도『인구론』으로 널리 알려진 맬서스일 것이다. 그는 인간과 동물에 공통적인 식욕본능과 성적 본능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인간사회를 설명하고 예측하였다. 인간의 성욕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반면, 인간의 식욕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식량)은 자연의 힘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제약된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며 이로부터 인류의 비극이 시작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맬서스는 인구폭발 문제에 대하여 아버지와 논쟁하다가 홧김에 『인구론』을 썼다고 하는데, 너무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탓이었는지 초판을 익명으로 발간하였다. 하지만, 출간되자마자 이 책은 큰 인기를 끌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책을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진화론으로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찰스 다윈도 감명을 받았다고 토로하였다. 본명을 밝힌 개정판이 계속 나오면서 맬서스는 일약 사회저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켐브리지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지망생이었다는데, 유명인사가 된 덕택인지 40세를 앞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처녀와 결혼하는 행운을 가졌으며, 그리하여 여러 자녀를 낳음으로써 그가 그토록 경계한 인구증가에 한 몫 하였다.

『인구론』의 핵심 주장은, 인구가 식량공급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류는 영원히 빈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무절제한 성욕 그리고 식량생산에 있어서 자연의 절대적 제약, 이 두 가지가 이런 비극적 운명을 낳는다. 사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당시 많이 떠돌아다니던 주장이어서 맬서스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맬서스가 살던 당시, 영국의 인구가 크게 늘어나서 식량이 부족해졌고 드디어 많은 양의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게다가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도시빈민들이 크게 늘어나 영국 사회의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이런 사회문제를 둘러싸고 지식인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일부 지식인들은 사회제도의 결함과 정부의 무능을 탓하였다.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은 당시 많은 지식인들은 인류사회의 무한한 발전을 굳게 믿고 있었다. 비록 일시적 식량부족의 문제가 있고 빈민의 문제가 있지만 얼마든지 잘 해결할 수 있으며 결국 모두가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경향이 있다. 맬서스의 아버지도 이들의 편에 섰다.

또 다른 무리의 지식인들은 빈민들의 무절제한 성욕이 빈곤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보았다. 가난한 집안에 애들만 주렁주렁 달린다는 옛말도 있지만, 당시 영국의 빈민들도 애를 많이 낳았던 모양이다. 이들이 무절제한 성 충동을 억제하지 않는 한 빈민구제를 위한 사회제도나 정부의 노력은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세기만 해도 그런 무절제한 성충동을 도덕적 결함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맬서스는 이와 같이 빈곤을 빈민의 도덕적 결함 탓으로 몰아가는 지식인들의 편을 들었고 그래서 아버지와 대판 말싸움을 했으며, 나중에는 이들의 앞장을 서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구론의 핵심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구는 생계수단의 제약을 받는다. 둘째, 생계수단이 허용할 때에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셋째, 인구 증가를 사전에 적절히 억제하지 않는 한, 인류의 빈곤은 피할 수 없다.

만일 무절제한 성욕 탓으로 식량공급이 허용하는 것보다도 인구가 더 많이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 맬서스에 의하면 각종 비극적 참사가 벌어지면서 결국 인구증가가 억제된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가 하면, 영양실조로 질병이 창궐하게 되고, 범죄가 성행하고, 사회갈등이 증폭되며, 심하면 전쟁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이 모두가 큰 고통이다. 달리 말하면, 무절제한 성욕으로 인한 인구증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식욕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하는 고통을 통해서 억제된다. 이런 비극적 인구 억제책은 원시사회에서도 잘 찾아볼 수 있다. 식량공급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을 경우 갓 태어난 여자 아이를 죽이는 관습이 여러 부족에 퍼져 있었다.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다가 전쟁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이런 점은 동물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체의 수가 너무 많아지면, 자기들끼리 잡아먹거나 심지어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

물론, 이런 비극적 억제책이 작동하기 전에 인구를 조절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혼인연령을 늦춘다든가 성욕을 자제하는 등의 온건한 억제책이 있다. 맬서스는 그가 살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빈민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이 여러 나라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어떻든, 법 때문이든 도덕심 때문이든 성욕을 적절히 자제해준다면 모든 사람들이 식욕본능을 더 많이 충족시키면서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온건한 억제책이 성공하기에는 인간의 성욕이 너무 강하다고 맬서스는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기에 일반대중은 영원히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일반대중의 생활수준이 최저생계 수준보다 높아지면, 무절제한 성욕 때문에 곧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인구증가가 식량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비극적 억제책이 작동한다. 결국, 대중의 생활수준이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인구는 감소한다는 것이다.

신맬서스 이론

맬서스의 『인구론』은 두 가지 기본 전제를 깔고 있다. 그 하나는 무절제한 인간의 성욕이고 다른 하나는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의 한계다. 이 중에서 앞의 전제는 그럴듯한데 뒤의 전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갸우뚱할 것이다. 음식물이 남아돌고, 살 빼기 위해서 식욕을 억제하느라 아우성인 오늘날 뒤의 전제는 더욱 더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맬서스가 살던 당시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비옥한 토지는 부족하였고 농업생산성은 높지 않았다. 맬서스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농업부문에서 수확체감의 법칙이 워낙 강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인위적 노력을 단연 압도한다고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식량생산에 있어서는 극복할 수 없는 자연의 절대적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맬서스의 예측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식량생산이나 인구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으며, 1인당 소득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서구 선진국 사회는 식량의 걱정 없이 성욕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맬서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삼은 고전경제학은 자본주의 미래에 대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얘기가 있다. 가장 빈번히 나오는 지적 사항은 맬서스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기술진보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의 기술진보는 눈부시도록 빠르게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고도로 발달했다는 오늘날의 경제학도 기술진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통일된 이론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진보를 제대로 감안하지 못했다고 고전경제학을 욕하는 것은 자기도 하지 못하면서 남을 탓하는 짓이다.

어떻든, 19세기 후반에 고전경제학을 밀어내고 자본주의에 대하여 대단히 낙관적인 근대경제학이 등장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빈곤의 문제를 비롯하여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인간의 이성으로 잘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낙관론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맬서스의 비관론은 죽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식량의 문제나 빈곤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이 떠올랐다. 그 중의 하나가 자원고갈 내지는 환경오염 문제다.

1970년대 초 에너지 위기가 세계를 강타하였을 무렵, 미국 MIT대학의 몇 몇 교수들은 식량생산, 산업생산, 지하자원 이용량, 인구증가율, 환경오염물질 배출량 등 5개 변수를 기본으로 삼아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복잡한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변수들에 대한 범지구적 자료들을 넣고 컴퓨터로 이 모형을 돌려보았다.

그 결과 이 지구 하나만으로는 인류가 앞으로 100년 이상을 버티기 힘들다는 진단을 얻어냈다. 인구증가를 당장 멈추지 않으면, 자연자원의 고갈 및 환경오염으로 인해서 머지않아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것이다. 기술진보는 대재앙을 시간적으로 약간 늦출 뿐 대세를 바꾸지 못한다. 이 비관적 진단이 『성장의 한계(The Limit to Growth)』라는 책으로 발표되자 당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암울한 진단에 신 맬서스이론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신 맬서스이론은 낙관론자들에 의한 비판의 포화를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얼마 못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는 자동조절 장치가 깔려있기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예를 들어서, 자연자원이 고갈되는 징후가 보이면 자연히 그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가격이 충분히 올라가면 한편으로는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을 절약하는 기술이나 대체 자원의 개발이 촉진되면서 사실상 자원의 공급이 늘어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나므로 자연자원의 고갈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초반 2차에 걸친 에너지 파동의 결과 에너지 효율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환경오염문제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시장의 원리를 최대한 활용한 제도를 잘 운용하면 환경오염행위도 줄어들게 되고 환경오염방지기술의 개발도 촉진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진국 사회의 경우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대자연의 위력에 대한 맬서스의 경고를 새삼스레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조짐들이 1990년대부터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하였다. 선진국 사회의 환경이 많이 깨끗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국지적 현상일 뿐이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심각한 위험의 징후가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우선 대기권의 온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소위 지구온난화가 범지구적 문제로 떠올랐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만 여 년 동안 대기의 온도는 섭씨 1도 밖에는 변하지 않았는데 1860년부터 1990년까지 불과 130년 동안에 대기온도가 0.3~0.6도 상승하였다는 보고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로부터 올라왔다.

보통사람들에게는 0.3-0.6도 정도의 대기온도 상승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환경학자나 자연과학자들은 대단히 놀라워했다. 대기온도가 올라가서 남·북극 지역의 빙하가 녹아내리면 해수면이 높아진다. 이제까지의 추세대로 계속 대기온도가 상승한다면, 2100년에는 해수면이 약 1m까지 높아지면서 수많은 도서 국가들이 바다 물에 잠겨 사라지게 되고 해안도시에 치명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세계 대부분의 주요 대도시가 해안도시다. 해수면 상승 이외에 각종 기상이변, 홍수, 사막화, 생태계 파괴 등으로 인한 피해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고 한다.

산업혁명 이전과는 달리 대기온도 상승의 대부분이 산업화나 도시화와 같은 인위적인 요인이라는 점이 과학자들을 더욱 더 걱정하게 만들었다. 전 지구적으로 볼 때, 산업화와 도시화는 앞으로도 계속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따라서 대기온도 역시 큰 폭으로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가 대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오늘날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발도 있다. 우선, 지구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대기온도 상승이 정말 이상현상인지가 확실치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대기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 피해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이 계속 발표되면서 이런 회의론에 점차 잦아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21세기 후반에 이르러 과거 세계대전이나 대공황과 같은 대재앙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는 「기후변화 경제학에 관한 스턴보고서」의 경고는 다시금 맬서스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 도처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동식물들이 자꾸 멸종하는 현상도 아주 불길한 징조다. 수백만 년 전 지구 대재앙으로 공룡이 멸망하던 시절 이래 생물종이 가장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코뿔소와 침팬지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타임(TIME)지가 두 차례나 호랑이의 멸종위기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열대우림의 급속한 파괴도 지구인의 큰 걱정거리다.

섹스 자유화의 후 폭풍

맬서스 『인구론』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가지 전제(무절제한 인간의 성욕 그리고 자연의 절대적 한계) 중에서 자연의 절대적 한계는 기술진보로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구의 일부분에서만 그렇다. 오늘날 대다수의 지구인이 살고 있는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빈국에서는 인구폭발로 인한 각종 맬서스 비극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이 인류의 미래에 큰 암영을 던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맬서스의 예언은 확실히 오늘날에도 지구의 방대한 지역에 여전히 적용되는 냉엄한 진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오늘날 부유한 선진국은 맬서스의 비관론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식량생산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인구증가율이 크게 둔화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는 도덕적 자제심 때문이 아니라 피임기술과 낙태의 덕분이다. 맬서스가 경고한 무절제한 성욕의 문제는 그 모습을 바꾸어 이제 선진국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성의 혁명(the sexual revolution) 혹은 섹스의 자유화 바람으로 인한 후폭풍이 그것이다. 성 혁명이라는 말은 섹스 자유화의 폭발적 증가를 나타내는 말로서 다음 두 가지 자유를 핵심내용으로 한다.

① 섹스와 결혼의 분리: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원하면 아무하고나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
② 섹스와 생식의 분리: 임신 걱정 없이 언제나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

이런 두 가지 자유가 어떻게 선진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느 미국인이 1960년에 잠들었다가 1990년대 중반에 깨어났다고 하자. 이 사람은 그 사이에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회지표와 비교해 보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미국의 역설』이라는 책을 쓴 마이어스(D. G. Myers)교수는 이 사람을 깜작 놀라게 할 미국 사회의 비관적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두 배: 이혼율이 두 배 늘었다.
✓세 배: 10대 자살률이 세 배 늘었다.
✓4 배: 공식 기록된 폭력범죄가 4배 늘었다.
✓5 배: 감옥소에 수용되어 있는 죄수의 수가 5배 늘었다.
✓6 배: 미혼모가 낳는 신생아의 비율이 6배 늘었다.
✓7 배: 동거부부가 7배 늘었다.
✓10 배: 우울증이 2차 대전 전에 비해서 10배 늘었다.


이 7가지 비관적 사회변화들은 비단 미국뿐 아니라 서구의 대부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회상을 요약한 것들이다. 다만, 나라마다 약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이런 비관적 사회변화의 징후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TV드라마를 보면, 결혼했으면서 이혼한 것처럼 사는 남녀 그리고 이혼했으면서 결혼한 것처럼 사는 남녀가 자주 얘깃거리로 등장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결혼과 이혼의 경계가 모호해졌음을 반영한다.

비관적 사회변화가 7가지로 나열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 7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심에 가정의 변화가 있다. 그 7가지 비관적 사회변화 중에서 세 가지(이혼, 동거, 미혼모)가 가정문제에 관계된 것이고, 나머지(자살률, 범죄, 우울증)는 모두 이 세 가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요컨대 지난 반세기 자본주의 선진국 사회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비관적 현상은 가족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가정파탄의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가정해체가 자본주의 선진국의 그 7가지 비관적 사회변화에 있어서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선진국은 섹스 자유화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혼전 성행위의 증가(더 많은 상대방과 더 많은 성행위)는 성병, 강간, 혼외출산, 동거, 이혼 등의 증가와 일대일의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이런 현상들은 지난 1960년대부터 서구 선진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소위 "섹스 혁명"의 후폭풍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심리학회 회원들은 최근의 공동연구에서 "핵가족의 붕괴가 정신건강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미국에서 존경받는 심리학자인 브론펜브레너 교수는 건국 이래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국내문제로 가정문제를 꼽으면서, "우리의 근본을 좀먹고 있다"고 걱정했다. 오바마 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도 공식석상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섹스 자유화의 가장 두드러진 후유증은 혼외출산과 미혼모의 급격한 증가일 것이다. 반세기 전만 해도 미국과 영국에서 혼외출산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2000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신생아 3명 중 한 명이 혼외 출산아이며, 스웨덴에서는 10명 중 7명이 혼외출산이다. 혼외출산 중에서도 특히 미혼모의 출산이 급증하였다. 10대 여성 출산의 거의 대부분은 혼외출산이라고 보아야 한다. 10대의 문란한 성행위로 인한 성병의 급속한 확산은 선진국의 큰 골칫거리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더 심각한 문제는, 10대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의 거의 대부분은 원하지 않는 아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원치 않는 출생처럼 아이에게 나쁜 것은 없다. 원하지 않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결국 불행해지며 각종 범죄에 연루된다는 것을 각종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혼모가 슬슬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10대의 미혼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 걱정을 더한다.

가정해체나 혼외출산이 초래하는 가장 가시적인 사회문제는 범죄의 급증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유의 행사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결과에 대해서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섹스의 자유화를 포함한 자유주의 풍조는 가정해체를 가속화시켰다. 선진국 사회에서 가정해체는 범죄증가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범죄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범죄의 급속한 증가가 두드러지다. 청소년범죄와 가정해체 사이에는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에 의해서 이미 밝혀졌다. 혼외출산과 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힌 연구도 많이 있다. 혼외출산의 대부분이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들인데, 통계적으로 보면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혼외출산이 아닌 아이들보다 월등하게 높다. 혼외출산과 범죄율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혼외출산이 감소하면 범죄율도 낮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국 사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각종 범죄를 줄이기 위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은 혼외출산을 줄이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나 서구 선진국에서나 화목한 가정은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해체는 각 개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보통 개인이 겪는 가장 큰 불행은 실업과 이혼이다. 이혼은 일생에 거쳐 당사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후유증을 남긴다고 한다. 자유화 바람이 불면서 동거가 늘어나고 있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동거부부의 행복지수는 결혼부부의 행복지수보다 낮다. 동거생활을 거쳐 정식 결혼한 부부의 이혼율은 처음부터 정식 결혼한 부부보다 훨씬 높다. 미혼모의 인생살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색스 자유화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아가는 중요한 요인이다.

오늘날 맬서스의 『인구론』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범지구적 환경문제나 후진국의 인구폭발 문제 그리고 선진국의 가정해체 문제를 생각해보면 맬서스의 예언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다행히도 범지구적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시작되었다. 가정해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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