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집회 재판 개입 논란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법원 내부 판사들 간 견해차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17일까지 열린 판사회의 결과 등을 종합해볼 때 일선 법원의 소장 판사들은 과반수가 신 대법관이 대법관직을 더이상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고 있는 반면 법원행정처 판사와 고위 법관들은 상당수가 그렇다고 해서 신 대법관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 대법관의 행위는 재판 개입'이라는 데는 소장 판사와 고위 법관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일치하지만 사태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해결 방법에서는 큰 괴리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신 대법관의 직무 수행 적절성이나 거취 문제를 두고 신구 세대 간, 또 일선 판사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판사간 힘겨루기 양상처럼 비치는 이런 온도차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차제에 '재판 독립' 실리 노리는 소장파
이번 사태를 주도하는 소장 판사들은 대부분 판사 생활 10년 안팎의 경력을 갖춘 판사들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측면에서 도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판사로 임관했다. 이들은 판사 재직 기간이 20년 이상인 고위법관들의 보수적 성향보다 법원 내에서는 대체로 제 목소리를 내는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혈기 왕성한 소장 판사들에게는 헌법에 보장된 것처럼 재판이 법원장이나 정권 등 누구의 간섭도 아닌 오직 법관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재판 간섭'은 1960~70년대 치욕스러웠던 사법부로의 회귀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법원 진상조사단과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신 대법관의 행위가 '재판 간섭으로 비칠 수 있거나 오해될 수 있는 행위'라고 판단한 이상 당사자인 신 대법관의 '용단'은 소장파 입장에선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를 흐지부지 넘길 경우 또 다른 형태의 재판 간섭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를 선례 삼아 '재판 독립'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소장판사들의 법원행정처에 대한 불만과 시기가 쌓여오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법부 내에서 요직으로 통하는 법원행정처 자리를 거쳐 간 판사들만 우대하는 사법부 분위기에 대한 반감과 법원행정처 위주의 일방적인 사법 개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 위신' 명분 우선시하는 고위 법관
소장파의 움직임과 달리 법원행정처와 고위 법관들은 "아직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애써 태연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감춰진 속내는 따로 있다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우선 신 대법관이 사퇴하면 '재판 개입'으로 인해 대법관이 사퇴하는 사법사상 첫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사법부로는 두고두고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 대법관이 사퇴하면 그 파장은 자연스럽게 이용훈 대법원장에게까지 미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사법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연결돼 있다는 해석이다. 대법관 제청권을 가진 대법원장이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대법관으로 제청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 제청될 당시 법원 내부에서 이미 '재판 간섭' 의혹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대법원 수뇌부가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었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신 대법관의 사퇴는 앞으로 있게 될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형해화(形骸化)하고 자칫 사법부 독립의 기반마저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법원행정처와 고위 법관들 사이에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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