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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똑바로 가르쳐주는 것…군대는 '살인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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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똑바로 가르쳐주는 것…군대는 '살인 집단'"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보로 키타노스키

5월 15일은 1981년 이후 이어져 온 세계병역 거부자의 날이다. 국제평화단체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War Resisters' Interntional)'은 매년 초점 국가를 선정해서 해당 국가의 병역 거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2009년 세계 병역 거부자의 초점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대체 복무제 도입이 무기한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10일부터 16일까지 해외의 병역 거부자와 평화운동가들은 한국에 모여서 국제회의와 비폭력 트레이닝을 통해 세계 병역 거부 운동과 한국의 실태를 논의할 에정이다.

병역 거부자이자 현재 대학원에서 평화연구를 하고 있는 임재성 씨가 한국을 찾은 해외 병역 거부자와 평화운동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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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던 발칸 지역에 위치한 나라이다.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구 유고)은 1991년부터 1995년에 걸친 끔찍한 전쟁의 결과 현재 7개의 독립적인 국가들로 분할돼 있다. 인종 청소까지 자행되었던 전쟁의 경험 속에서도 마케도니아는 2001년도에 병역 거부권이 인정되었고, 2006년도에는 징병제가 폐지되기까지 했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을까? 병역 거부자이자 마케도니아에서 반전운동을 하고 있는 보로 키타노스키(Boro Kitanoski)에게 이 이유를 물었다.

▲ 마케도니아에서 반전운동을 하고 있는 보로 키타노스키(Boro Kitanoski). ⓒ임재성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병역 거부자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임재성 : 한국인들에게 발칸반도에 있는 마케도니아는 발칸전쟁과 이후 분리 독립의 역사 속에서 매우 강력한 군사주의와 민족주의가 지배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렇기에 마케도니아가 병역 거부 운동이 공론화된 지 10년만에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고, 징병제까지 폐지하게 된 것은 매우 놀랍게 보인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었는가?

보로 :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마케도니아의 민족주의와 군사주의는 매우 강력하며, 이러한 환경은 병역 거부 운동을 비롯한 반전평화운동에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병역 거부권이 인정되는데 결정적인 요인 역시 존재했다.

첫 번째는 유럽통합 프로세스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EU에 가입하고자 한다. 가입 과정에서 해당 국가는 스스로가 법률적, 사회적으로 얼마큼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 중 핵심적인 요소가 병역 거부자의 인권이다. 강제 조항으로서 병역 거부권이 명시되어있지는 않지만, 병역 거부권이라는 것이 보편적이고 오래된 인권 사안이기에 그것이 국가의 인권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다.

임재성 : 그리스 역시 EU 가입을 위해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측면이 크다고 들었다. 맞는가?

보로 : 맞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특히 신생국의 경우에는 유럽 통합 과정이 병역 거부권을 비롯한 많은 인권 사항의 개선에 큰 동력이다. 그리스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이를 이상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어떤 대체복무제인가라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처음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서 현역 복무 기간의 2배에 달하는 기간을 설정해서 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EU는 이를 면밀하게 살피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그리스의 대체복무제는 현역 복무의 1.5배 기간으로 조정되었다.

마케도니아 병역 거부권 인정의 또 다른 요인으로는 최근에 겪었던 전쟁의 고통이 있다. 수많은 이들이 오랜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평화로운 시기에서도 군사 훈련 등은 계속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뚜렷하게 인식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쟁 시기에는 군인을 모으고, 훈련시키는 것이 죽음과 연결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군대는 본질적으로 살인 집단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이후 병역 거부자들이 스스로의 신념과 반전을 이야기할 때 보다 넓은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시켜주었다고 본다.

▲ "수많은 이들이 오랜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프레시안

전쟁의 고통을 통해 살인집단으로서 군대의 본질을 인식

임재성 : 전쟁의 경험이라는 것은 두 가지 반대 방향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하나는 전쟁을 참상을 통해서 무기와 군대라는 것이 결국 살인을 위한 도구이며, 이를 거부하고 줄여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이는 제1,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세계적인 반전운동의 확대와 수많은 평화조약, 군축협정 등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반대 방향의 흐름은 스스로를 피해자화 시키며 '전쟁을 막기 위한 힘'이라는 논리로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평화운동의 역할은 이 두 가지 힘의 긴장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발칸 전쟁 이후에 발칸 지역에는 평화운동이 활발하게 형성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90년대 중후반까지 평화운동의 흐름이 미약했다. 이러한 차이가 현재 마케도니아와 한국의 차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통합의 과정과 전쟁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병역 거부권 인정의 주된 요인이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사회운동으로서 병역 거부 운동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보로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케도니아는 신생 독립국으로서 강력한 민족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는 병역 거부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힘든 조건이었다. 그 속에서 운동은 민족과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2001년에 마케도니아에서는 경찰과 군대가 알바니아계 게릴라들과 전투를 벌이는 내전이 발발했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알바니아 평화운동그룹, 알바니아 병역 거부자들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적'이라고 표상되는 이들 사이에서도 우리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나갔다. 그 속에서 병역 거부자는 평화를 위한 중요한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이 연대가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은 상당했다. 안보를 이유로 병역 거부자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적'이라 불리는 다른 나라의 병역 거부자들의 존재는 스스로의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군사력의 확대가 아닌 연대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었다.

대체복무제는 징병제를 공고하게 만드는가

임재성 : 2006년도에 징병제가 폐지되었다고 들었다. 징병제가 폐지되었던 이유에는 NATO 기준에 맞추는 소수정예 군대로의 개편작업이라는 측면도 존재하겠지만, 병역 거부가 사회운동으로서 가하는 압력도 존재했다고 본다. 마케도니아의 병역 거부 운동은 징병제 폐지에 큰 역할을 했는가?

보로 : 상당한 역할을 했다. 실제 마케도니아에서 병역 거부 운동은 처음부터 대체복무제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병역 거부권의 인정과 함께 징병제 폐지를 요구했다. 그랬기에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을 때 우리는 "대체복무제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복무제는 이런 방식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라고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체복무제를 병역 거부운동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대체복무제 도입은 징병제 폐지를 보다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라고 접근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신념을 이유로 대체복무제를 선택했고, 이렇게 사람들이 군사훈련에서 벋어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복무제가 확대되는 것이 징병제을 오히려 공고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독일의 사례가 그러한데, 독일의 경우 상당한 비율의 병역 거부자들이 대체복무로서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저렴한 임금으로 복무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징병제를 폐지할 경우 이러한 노동을 유급노동으로 대체해야 하기 때문에 징병제의 폐지에 큰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체복무제가 가진 이런 점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마케도니아에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을 당시, 우리의 주된 활동중 하나는 대체복무제가 이루어지는 기관에 방문해서 대체복무자가 이 곳에서 복무하는 것을 이유로 기존에 고용된 이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을 때 우리는 "대체복무제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복무제는 이런 방식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라고 하지 않았다. ⓒ임재성

임재성 : 한국의 경우 대체복무제와 징병제의 관계는 복잡하다. 한국은 실제 병역 거부자들에게는 대체복무를 불허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감옥에 보내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활발한 대체복무제 시행국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병역 거부자들의 신념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든 대체복무제를 국가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10만 명도 넘는 이들이 전투경찰, 경비교도대, 공익근무, 병역특례 등등의 이름으로 유급노동으로 이루어져야할 수많은 자리에서 복무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소위 말하는 '국방의 의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한 해 1000명도 안되는 병역 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중대한 도전이라며 들고 일어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한국은 지난 9년 동안 병역 거부운동을 해오면서 대체복무제 도입에 주된 초점을 맞춰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도 개선도 얻지 못한 상황이지만, 실제 내부적으로는 이 운동을 평화운동의 맥락에서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마케도니아의 경우에는 병역 거부 운동이 초기부터 평화운동의 맥락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그 과정은 어떠했는가?

평화운동으로서 병역 거부운동

보로 : 병역 거부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주된 활동이었으며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전운동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개인이 전쟁에 저항하는 방법 중 매우 근본적인 방법으로서 병역 거부를 사고했다. 만약 국가가 우리에게 군인이 되라고, 그래서 살인 기술을 훈련받으라고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그것에 바로 병역 거부권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우리는 징병제 폐지, 군축 등의 이슈에 대해서 같은 흐름 속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우리의 상황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본다. 감옥에 500명에 가까운 이들이 수감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랐다. 병역 거부자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이 얼마나 강력할지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이 든 것은 병역 거부라는 사안이 독립적인 의제가 아니라 다른 인권운동, 평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놓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이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회운동 단체들과의 지원과 연대 속에서 이 운동은 반전평화운동의 발전을 위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재성 : 정권이 바뀐 이후 대체복무제 도입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갈 길이 먼 한국 병역 거부 운동이지만, 당신의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의 병역 거부운동이 이후 평화운동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좋은 인터뷰 감사드린다.

(통역=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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