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유연성 문제를 개혁하지 못한다면 국가간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사실일까 ?
노동의 유연성과 성장률 간에는 특별한 관련이 없다
필자는 몇 해 전부터 세계은행(World Bank)이 매년 발표하는 '기업환경보고서'(Doing Business 2004~2008)를 주의깊게 검토해 왔다. 그러나 세계은행 보고서 어디에서도 이 대통령과 같은 보수파 인사들의 주장이 맞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자료는 세계은행이 고소득국가로 분류한 42개국과 국제통화기금( IMF)이 선진국으로 분류한 33개국 중에서, 양쪽에 공통으로 소속된 30개 나라를 추려 이들 국가들의 성장률 순위와 노동유연성 순위를 비교해 놓은 것이다.
[표] 30개 선진국의 1인당 GDP성장률(1993~2008)과 노동유연성
(주) : 노동의 유연성 순위는 181개국 중에서의 순위임. (출처) : IMF,세계은행 자료를 가공. |
지난 15년간 우리나라와 슬로베니아,대만,핀란드,그리스,룩셈부르크 등은 노동유연성 순위는 낮았지만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미국,덴마크,스위스,일본 등은 노동유연성 순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은 매우 낮았다.
2000년대 한국,대만,핀란드 등 노동유연성 낮지만 성장률은 높다
2000년대에 양자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2000년은 전세계적으로 IT 거품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고 2001년은 그 거품이 붕괴된 시기였다. 따라서 2000년을 비교 시점으로 잡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2001년을 기점으로 삼아 그 이후 8년 간의 각국의 성장률과 노동유연성 순위를 비교해 보았다.
[표] 31개 선진국의 1인당 성장률(2001~2008)과 노동유연성
(출처) : IMF,세계은행 자료를 가공 |
위 표를 보면 2001년 이후에도 역시 선진국들의 성장률 순위와 노동유연성 순위간에 특별한 관련성을 찾기는 어렵다. 2001년 이후에도 우리나라와 슬로베니아,대만,핀란드,그리스,룩셈부르크 등은 노동유연성 순위는 낮지만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선발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 선진국들의 성장률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반론은 힘을 얻기 어렵다. 선발 선진국인 핀란드와 룩셈부르크도 노동의 유연성이 낮으면서 성장률이 높은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퇴직금 제도 때문에 한국 노동유연성 순위 낮아 보이는 것
그리고 또 우리가 세계은행의 기업환경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노동의 유연성 지수가 보수세력들의 주장과 달리 그렇게 낮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은행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유연성 순위는 30개 선진국 중에서 22위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나라에 퇴직금 제도라는 독특한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 비교하면 우리나라 노동유연성 순위는 30개 선진국 중에서 중간 정도에 해당된다.
[표] 한국의 노동유연성 순위(2008)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사회안전망이 매우 부실한 나라에서 지나치게 노동의 유연성을 높일 경우 그것은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성장의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고용불안의 위험성 지적
이와 관련하여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8월 <장기적 소비부진의 원인분석>이라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ㅇ 미래소득에 대한 불안감이 소비회복을 가로막는 핵심요인임
ㅇ 특히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미래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는 주요 요인
-소비자들은 생애기간 중 안정적으로 소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약해질 때 현재소비를 억제
ㅇ (물론) 고용불안감 해소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포기하고 단순히 고용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 다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고용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어 소비부진이 지속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
물론 재벌 연구소라는 특성상 삼성경제연구소가 노동의 유연성에 대한 그들의 강한 집착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과도한 고용불안사태가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주게 될지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필자가 강단의 학자들보다 현장의 연구자들을 보다 더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대통령도 우물안 개구리처럼 관념적 몽상과 독선에 빠져 헤매지 말고 '구체적 실증자료에 기초한 구체적 진실의 세계'라는 넓고 넓은 바다로 나오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후세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참담한 수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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