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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과 금호는 누구에게 아름다운 기업입니까?"

박종태 씨 사망 일주일…"가신 뒤에야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습니다"

때이른 더위가 어쩌면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조금만 더 일찍 이렇게 열기가 달아올랐다면, 그는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나무 바로 아래,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마당에 뒤늦게 8000여 명이 모였다.

그가 생전에 "여기저기에 함께 해 달라 참 열심히도 부탁했다"던 그 연대의 힘이 그의 죽음으로 비로소 이뤄진 것일까?

5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운송료 건당 30원을 올려 달랬다고 78명의 밥줄을 끊어버린 대한통운에 대한 분노가 타올랐다. 왜 진작, 그와 그가 사랑했던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억울하고 분한 싸움에 힘을 보태지 못했을까. 후회의 눈물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내렸다.

9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지난 3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 박종태(38) 씨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추모가 아니라 승리를 그의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당신이 가신 뒤에야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습니다"

▲"박종태를 살려내라." ⓒ프레시안
"종태야, 네가 그토록 원하던 연대 동지들이 끝도 없이 몰려와 있는 것이 보이니? 이제 우리 천막도 안 뜯기고 현수막도 안 뺏길 거야."


고 박종태 씨와 함께 1지회에서 활동했던 조합원 노만근 씨가 무대 위에 올라 소리쳤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운송료 30원 인상 약속을 어긴 회사에 '열 받아' 고작 하루 분류 작업을 거부하는 '항의'를 했을 뿐이었는데, 순식간에 78명이 문자 메시지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대한통운은 내내 '모르쇠'였다. "본사의 입장"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니 대체 왜?" 상식적으로 떠오르는 의문을 그와 해고된 택배 기사 역시 품었을 것이다. 광주에서 일하는 택배 기사들이 이곳 대전까지 온 것은 그래서였다. 대전에서 그들은 더더욱 절망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그들을 경찰마저 '탄압'했다. 천막을 치면 천막이 뜯겼고, 현수막과 피켓은 만들어 놓으면 자꾸 뺏겼다.

그럴 때마다 박종태 씨는 '조금만 더 사람이 많았으면, 조금만 더 힘이 모아졌으면' 했는지 모른다.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던 그의 유서 속 호소는 그가 느낀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절박함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검이 발견된 지 딱 일주일 만에 마침내 "대한통운은 해고자를 복직시켜라"는 8000여 명의 함성이 대전지사 울타리를 넘어갔다.

▲ 그의 주검이 발견된 지 딱 일주일 만에 마침내 "대한통운은 해고자를 복직시켜라"는 8000여 명의 함성이 대전지사 울타리를 넘어갔다.ⓒ프레시안

박 씨가 이끌던 1지회 조합원인 대한통운 택배기사 김해룡(39) 씨는 "지회장이 그렇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많이 하더니 죽고 나서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며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은 아직 어둠과 얼음 속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택배 물건을 배달하고 걷어 오고 주말도 없이 일했던 기사들을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몬 대한통운에 대한 분노는 고스란히 미안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 씨의 아내 하수진 씨가 무대 위에 올라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자 8000여 명이 같이 울기 시작했다.

▲ 박 씨의 아내 하수진 씨가 무대 위에 올라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자 8000여 명이 같이 울기 시작했다(왼쪽). 박 씨가 스스로 목을 멘 대한통운 대전지사가 보이는 야산의 나무에는 "우리는 일하고 싶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오른쪽). ⓒ프레시안
"여보, 늦었지만 당신 참 좋은 사람이야"

다음은 이날 박 씨의 아내 하수진 씨가 읽어 내려간 편지 전문이다.

여보, 오랜만에 불러보네.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당신이 이 세상이 없다는 것이. 병원에 걸린 사진 속에서 당신이 튀어나올 것 같고, 다른 화물연대 조합원들처럼 바쁜 듯이 걸어 들어올 것 같고.

큰 아이 말처럼 당신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아. 아이들에겐 '사람이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된다. 다만 언제 죽을지 모를 뿐인데, 아빠가 조금 빨리 가신 것 같다'고 말했으면서도 아이들과 같이 아직 받아들여지지가 않네.

체포영장이 떨어진 날,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서 보냈는데 속옷이 마음에 걸려 싸구려 아닌 좀 좋은 걸로 주려고 사다놓은 속옷이 아직 서랍장 속에 그대로 있는데.

▲ 박 씨의 아내 하수진 씨.ⓒ프레시안

여보, 생각나? 작년 12월 마지막 날 눈이 너무도 예쁘게 와서 정말 모처럼만에 팔짱도 끼고 손도 잡고 걸으면서 "나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지?" 했던 말. 그땐 웃기만 했는데 말해줄 걸 그랬어. 그래, 당신 괜찮은 사람이야. 당신이 사랑했던 동지들도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걸.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지금 보게 되면서 늦었지만 알게 되네.

여보, 아직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걱정하지 마. 나 아직 잘 견디고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세상을 이루기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어.

당신이 정말 마음 놓고 웃으며 편안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간직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당신이 가는 마지막 길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당신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살아갈게.

▲소속과 일터의 차이도 상관 없었다. 금뱃지를 단 국회 의원도, 높으신 '위원장님'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프레시안
소속과 일터의 차이도 상관 없었다. 금뱃지를 단 국회 의원도, 높으신 '위원장님'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 눈물은 하 씨가 "슬퍼하는 대신 일어나 싸워달라"고 호소하자 다시 분노가 되었다.

"한 가정의 가장을 궁지로 몰아 죽인 놈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밥줄을 끊겠다는 협박을 하고, 질서를 지키라고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인간입니까? 사람을 죽여 놓고 협상은커녕 사죄도 하지 않는 대한통운과 금호는 누구를 위한 아름다운 기업입니까?

고인은 아직 어둠과 얼음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사랑했던 택배조합원들을 비롯한 화물연대 조합원 여러분! 죄인처럼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죄인은 여러분이 아니라 뻔뻔하게 헛소리하는 저 담 뒤에 숨어있는 자들입니다. 더 이상 슬퍼하는 대신 일어나 싸워주십시오.

고인의 유언대로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이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다치지는 마십시오. 남아 있는 저희 가족이 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대책위와 유족들은 대한통운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 박 씨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추모는 승리 뒤로 미루겠습니다"

▲ 참석자들은 한 씨의 당부대로 "추모는 승리 뒤로 미루겠다"고 다짐했다.ⓒ프레시안
참석자들은 한 씨의 당부대로 "추모는 승리 뒤로 미루겠다"고 다짐했다. 노만근 조합원은 "승리하지 못하면 추모하지 않겠다"며 "지금은 추모할 때가 아니라 싸울 때"라고 말했다. 진보신당 심상정 부대표도 "여기 모인 분들의 뜻을 따라 나도 고인의 영전에 명복을 비는 일은 승리 뒤로 미루겠다"고 말했다.

대한통운은 그러나 사죄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찰도 굴하지 않고 강경대응 일변도다. 지난 6일 화물연대가 대전지사 앞에서 연 결의대회에서 연행된 2명의 조합원은 끝내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그러나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승리를 자신했다. 임 위원장은 "다들 만만치 않다고 자꾸 그러는데 우리가 각오하고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는 만만한 상황"이라며 "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며 또 다른 노동자가 수레바퀴에 깔리기 전에 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여기서도 안 되면 서울로 간다"…화물연대도 '총파업' 예고

▲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 이후 오는 16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광주정신 계승 노동자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프레시안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 이후 오는 16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광주정신 계승 노동자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임 위원장은 "그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으면 이 투쟁을 서울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광주에서 시작된 78명 택배기사의 해고 문제가 대전으로, 다시 서울로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서울 한 복판에서 이명박 정권과 금호아시아나 그룹을 상대로 투쟁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화물연대도 오는 16일 대전지사 앞에서 조합원 총회를 열고 총파업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김달식 화물연대본부장은 "그간 평화 투쟁을 지켜왔지만, 소중한 동지를 잃은 지금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반드시 피값을 받아내야 한다"며 "할 수 있는 모든 전술을 통해 대한민국을 멈춰버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대한통운 박살내자", "종태를 살려내라", "화물연대 인정" 등 수백 개의 만장을 앞세우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중앙변원까지 5km가량 행진을 벌였다.

"눈을 감으면 어떻게 승리하는지 보지 못할 것이 아쉽고 억울하다"면서도 "동지들의 삶 속에 나도 남겨줬으면 고맙겠다"던 그의 마지막 부탁이 노동계를 움직이고 있다.

▲참가자들은 "대한통운 박살내자", "종태를 살려내라", "화물연대 인정" 등 수백 개의 만장을 앞세우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중앙변원까지 5km가량 행진을 벌였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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