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동절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던 이석행 위원장은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감옥에서 사퇴해야 했다.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이라는 최악의 상처만 남았다.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체결한 한국노총도 방어전에 급급하다. 노동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려는 정부 때문이다. 법만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공기업은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압박에 오갈 데가 없고,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현 정부와 함께 찾아 온 경제 위기는 노동운동의 설 자리를 점점 더 좁게 한다. 정규직 중심의 조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등 조합원 명찰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이 "최악의 정치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다"고 평가한 이유다.
그 고립 속에 또 다시 찾아온 올해 노동절을 맞아 <프레시안>은 한국노총 기관지와 공동으로 좌담을 진행했다. 최영기 석좌연구위원의 사회로 양대 노총의 전직 위원장인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윤진호 인하대 교수가 4시간에 걸쳐 노동운동의 갈 길을 놓고 얘기했다.
▲ 최영기 석좌연구위원의 사회로 양대 노총의 전직 위원장인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윤진호 인하대 교수가 4시간에 걸쳐 노동운동의 갈 길을 놓고 얘기했다.ⓒ프레시안 |
이들은 오늘 노동운동이 처한 위기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은 "90%의 미조직 노동자"에 있음에서 다시 한 목소리가 됐다.
특히 양대 노총 위원장이 비리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지적을 내놓는 것은 흥미롭다. 박인상 전 위원장은 "사건이 터지면 결과가 개인의 책임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이수호 전 위원장은 "개인의 문제가 지나치게 조직의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별 담합구조가 비리의 한 원인"이라는 윤진호 교수의 지적에 박 전 위원장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맞서기도 했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그들만의 잔치'로 치부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윤진호 교수는 "조직율 10%가 문제가 아니라 그 10%가 정규직, 대기업이라는 것"이라며 "단체 교섭 구조의 변화 없이 도덕적 잣대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들이대봤자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수호 전 위원장도 "임금 인상이 곧 민주화가 되던 시절이 끝나면서 노동운동이 새로운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던" 오류를 반성했다. 박인상 전 위원장은 비정규직 보호 등을 위한 제도 개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계적으로 하되, 노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고쳐가면 된다"고 제안했다.
지난 21일 한국국제노동협력원에서 진행된 좌담을 이틀에 걸쳐 전문 게재한다.
"비리 사건 터지면? 개인만 남거나 과도하게 조직적 책임만 묻거나"
▲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석좌연구위원. ⓒ프레시안 |
박인상 : 노동운동 과정 속에서 불미스러운 문제들이 왕왕 터졌다. 1~2년도 아니고 몇 년 사이에, 어느 때는 주기적으로 터져 나왔다.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을까? 우선 국민들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조합 간부에게 도덕성을 중요하게 요구한다. 특히 서민대중, 노동자를 위해서 일하는 만큼 도덕성은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판을 많이 받고 질타가 강한 것을 노조 간부들이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로 사건이 터지고 나면 결과가 개인적인 책임으로 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라는 틀 안에서 발생한 문제인데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개인문제로 귀결 된다. 조직에서 일어나고 조직 간부에 의해 행해졌다면 조직적으로 문제를 찾아내고 처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거의 개인에게 귀결되어 진다.
또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개선책을 만들지만 그 순간에만 논의됐다가 해결점은 찾지 못하고 묻혀 버린다. 그 순간에만 문제 삼지 않고 조직적으로 처리해야만 제2, 제3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원인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수호 : 동의한다. 어느 집단이나, 개인적이든 조직적이든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그 조직이 경직되거나 관료화 됐을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 사회가 노동조합에게 바라는 도덕적 견결성은 물론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노동조합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더 부각돼 보이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어떻게 처리하고 수습하고 관리하느냐다. 소위 위기 관리능력, 시스템의 문제다. 민주노총을 보면, 그런 위기관리가 함께 힘을 모아서 체계적으로 되지 않고 조직 내의 이견 또는 정파적 입장에 따라 왜곡되는 경향도 있다.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도 한다.
박인상 위원장은 한국노총의 경험을 통해 조직적인 문제임에도 결국 마무리는 개인비리도 돌려지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개인의 일이 과도하게 조직적 책임을 묻는 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위원장 시절 터진 간부의 비리 문제는 지도부 총사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에 일어난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도 결국 조직의 방침에 따라 투쟁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있는 위원장까지 책임을 물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을 벌인다는 도덕적 부담감과 책임은 있지만, 이런 과도한 방법은 문제가 있다.
어떤 사건이든지 그 성격과 본질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성찰해야 한다', '반성하자', '혁신위원회를 꾸리자'라는 말도 늘 그 때 뿐이다. 그런 우회적인 방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윤진호 "민주노총의 '포위된 성' 심리, 성폭력 사태 키웠다"
최영기 : 두 분이 말대로 노조이기 때문에 도덕적 잣대가 높은 것 같다. 얘기 나온 것처럼 우연히 한번 터진 일이 아니고 몇 번 반복됐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일련의 사건을 어떻게 보며 중장기적인 해법을 마련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윤진호 인하대 교수. ⓒ프레시안 |
도덕성 문제는 부패와 성폭력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따져보면 후자가 더 심각한 것 같다. 그러나 보다 깊이 생각해보면 부패 문제야 말로 노동조합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구조적 문제다.
이번에 민주노총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태는 개인 윤리문제와 조직적인 은폐 문제가 뒤섞여 있다. 개인 윤리 문제는 그동안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표면화 되지는 않았었다. 이번 일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된 것은 사건 자체의 심각성도 있지만 언론이 상당히 많이 개입한 측면도 있다. 언론이 개인윤리 문제를 조직 윤리로 다뤘기 때문이다. 물론 윤리적으로 앞서나가야 할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에서 간부 개인이 일으킨 사건은 큰 문제다. 노동운동의 대의만 충족되면 나머지는 눈을 감아주는 그런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것은 한 사건이 조직 전체의 문제로 번지는 과정이다. 우선 외부적으로는 보수언론이나 사용자 측이 개인과 조직의 윤리 문제를 성급하게 연결시키려는 바람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포위된 성(城)'의 심리가 작용했다. 자기편이 아무도 없고 정부도 여당도 사용자도 압박을 하고 있고 언론도 호의적이지 못하다보니 포위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민주노총 뿐 아니라 어떤 조직이든 주위여건으로부터 자기가 포위됐다고 느낄 때,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우리 조직을 보호해야겠다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문제를 드러내기보다 조직보호를 위해서 쉬쉬하는 것이다. 자꾸 한 조직을 포위시키는 쪽도 문제지만, 포위된 쪽도 문제 해결보다는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
부패 문제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 노조가 갖고 온 어두운 측면인 기업별 담합구조를 봐야한다. 사용자가 노조에게 일정한 이권을 주는 대가로 노조가 사용자와 협력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물질로 유혹하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노총에서도 나타났지만 민주노총도 대기업 노조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문제는 개인 비리로 치부할 수도 있고 구조적인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기업별 담합구조가 지속되면 이런 사건들은 불가피하게 계속될 것이다. 이 담합구조를 깨려면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감시구조를 두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기업별로 노사가 결합된 구조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 산별노조로 간다든지 큰 범위로 가면 다를 수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도덕성 문제는 노동조합뿐 아니라 여러 조직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국회도 그렇고. 그런데 왜 국민들은 유족 노조만 비판할까? 노조는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당위도 있겠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노동조합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런 짓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노조의 할 일이란 한편으로는 노조원이나 노동자 전체를 대변해 고용과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개혁의 주도세력으로 보다 넓게 활동하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반발심이 있다고 본다.
박인상 : 잘못하면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어서 한마디 하겠다. 기업별 노조에서 노사 간에 마치 담합이 형성되기 쉽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기업별 노사도 잘하는 곳은 잘한다. 다만, 일부 기업의 노사가 해야 할 일은 안하고 다른 짓을 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생기고 비판 받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적인 측면으로만 남기지 말고 이 부분을 조직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조직의 룰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에서 과연 어느 곳이 투명하고, 투명하지 않은가도 세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해 갈 때 적어도 조직이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내부적으로 최대한 자기들의 도덕성을 유지하면서 갈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국민들이나 조합원들로부터 신뢰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하루아침에 신뢰가 쌓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박인상 "노조의 자체 규율 위한 장치? 좋은 제도 이미 다 있다. 실천력이 문제"
최영기 : "기업별 노조기 때문에 노사담합 가능성이 높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몇몇 사건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역지부라던가 업종연맹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윤리기준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영국의 노동운동이 기가 꺾이기 시작한 것이 회계의 투명성 문제 때문이었다. 노조 스스로 해결 못하니까 정부가 개입하게 되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우리의 경우 정부의 개입이 들어가기 전에 노동조합 조직 내에서 자체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을까.
▲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프레시안 |
한국노총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들어 특히 성폭력이나 성평등 문제가 사회적으로도 중요해졌다. 이에 대해 가장 먼저 제도적 장치와 기구를 마련하고 상당히 엄격한 처벌 규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 노동조합이다. 특히 여성위원회를 통해 교육도 의무화 돼 있다.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들이 형식화 되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의 지적 가운데 포위된 심리에서의 자기방어기제가 발동됐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민주노총은 그렇게 포위됐을 때 비록 외롭지만 사실 더 겸손하게 자기 할 일을 잘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더 많이 주력했다. 사용자나 정부에게 '부정부패 세력'이라거나 '너희는 도둑놈'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게 말하던 곳에서 이런 문제가 터지니 '옳다, 잘 걸렸다'가 된 것이다. 더 겸손하게, 고용 안정 등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이를 뜯어고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의례적으로 되고 있다는 것도 상당히 문제다.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처음 시작할 때는 단단하게 시작하지만 잘 안 된다. 사회변화에 따른 우리 노동자들, 특히 노동조합 간부들의 의식이 동시에 바뀌어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박인상 : 사실 좋은 제도는 다 만들어져 있다. 두 노총 모두 제도는 있는데,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만들어 놓고도 실천하지 않으니 제도가 사장되고 만다.
한국노총의 전 집행부도 회계규정도 뜯어고치고, 외부감사도 도입했다. 지금 한국노총의 회계 투명성은 누가 들여다봐도 깨끗하다. 문제는 실천이다. 최근의 비리사건들이 터지자, 이번 집행부는 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 교수, 사회 저명인사들이 다 위원회에 들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주기적으로 위원회가 회의를 통해 지적을 할 때 한국노총이 그것을 받아서 실천해야 한다.
물론 법이 많을수록 좋은 것도 아니고 법이 없어도 진행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나 제도가 만들어지면 실천이 되고 잘 운영돼야 제도가 살아난다. 아무리 제도를 만들어 놔도 실천을 하지 않으면 제도를 만들 필요가 없다.
윤진호 : 두 위원장의 얘기처럼 내부적으로 만들어 놔도 잘 실천이 안 되면 외부적인 감시, 통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자칫하면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 실제 80년대 영국의 대처 수상이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잘 사용한 것이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문제였다. 노동조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주성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내부 구조를 갖추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정 안될 때 정부의 영향력을 받지 않으면서도 공신력 있는 학계나 시민사회단체 등 제3자에게 부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도 여러 조직의 위원이나 사외이사로 가봤지만 외부 사람은 역시 한계가 있다. 내부적인 것을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없고 일상적으로 논의하기도 어렵다. 일이 터졌을 때 겨우 거기에 대한 처리 정도지 미리 예방 하기는 어렵다.
역시 중요한 것은 내부의 자기통제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 민주성이다. 내부를 잘 알고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조합원 대중이고 노동자 대중이다. 일반 조합원이 보다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이 현재로서 노동조합 내에 하나도 없다. 일반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까지는 시도되지 않았다.
이수호 : 민주성을 얘기가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모든 회의는 공개돼야 한다. 누구도 참관할 수 있고 의장의 허락을 받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회의 결과와 속기록도 공개돼 일반 조합원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에서도 회계는 자체 감시시스템이 상당히 잘돼 있다. 분기별로 공개하는 원칙도 마련했다. 한번 맞으면 망하는걸 아니까. 하지만 문제는 조합원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져 잘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호응을 해주면 좋겠는데, 공개해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 딜레마다.
최영기 "노조에 대한 기대치 낮아진 것, 나머지 90%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
▲"특히 최근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여러 가지 교섭활동에 대해서 '그들만의 잔치다', '강자들이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이기주의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과 비판들도 많다. 이것은 우리나라 노조가 10%의 조직률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90%의 미조직 노동자라던가 영세자영업자, 서민들의 대변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프레시안 |
20년 전에 국민들에게 받았던 지지나 일반 노동자들로부터 기대를 모았던 그 수준에 비하면 지금은 굉장히 기대치가 낮아져 있다. 아직도 노동운동에 대한 기대가 많고 신뢰가 높다고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경향을 보면 약화되어 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여러 가지 교섭활동에 대해서 '그들만의 잔치다', '강자들이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이기주의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과 비판들도 많다. 이것은 우리나라 노조가 10%의 조직률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90%의 미조직 노동자라던가 영세자영업자, 서민들의 대변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 문제는 노조 지도자 한 두사람의 결단이나 어떤 한 조직의 각성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한국노동운동의 치명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해법에 대한 논란들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떤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그 방향은 무엇인지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방안 차원에서 말씀을 해주시기 바란다.
박인상 : '그들만의 잔치', '노동시장의 강자집단 이기주의', '90% 미조직 노동자와 자영업자 함께 가는 방법'. 이 세 가지면 노동조합의 문제점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첫째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만 주장하고 나면 약자보호는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최소한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서로 자기들의 기득권만 유지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비정규직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조직도 비정규직을 조직화 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곳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 ⓒ프레시안 |
내가 국회에 있을 때 정규직노조 간부와 비정규직 조직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예전 내 경험을 얘기해줬다. 60년대에도 본공이 있고, 임시공이 있었다. 임시공이 노조에 들어와서 하루아침에 본공과 같은 대우를 받게 하려면 일처리가 어렵다. 하지만 임금 차이부터 줄여나가면서 조직화 해나갔다. 그때 조선공사노조가 68년부터 그런 작업을 했다. 69년에는 파업까지 했었다.
이 사례를 얘기해주면서 내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조건이 틀려 힘들다는 것이었다. 단체교섭을 할 때 요구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아예 정규직만 데리고 하는 것이 편하게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어려움을 풀지 못한다면 노동조합의 기능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자를 대변하지 못하고 노동자 중에서도 강자만 위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냐'고 물었더니 '맞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렵다고는 하지만 토론을 계속 해 보면 방법이 나올 것이다. 지역별로 토론을 해도 좋고, 기업별로 토론을 해도 좋다. 교섭의 조건이 다르다면 사전에 당사자들에게 그런 현실을 알려주면 되는 것 아닌가. 어려우니까 간과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 하나 풀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안 풀릴 이유가 없다. 자기 조직 내부에서도 연대가 안 되면서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연대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국적인 연대도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에서 시작된다.
윤진호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조에 '도덕' 얘기해봤자 머리로만 이해할 뿐"
윤진호 : 일반적으로 '조직률 10%'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조직률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 않는다. 조직률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보다 위기는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노동조합은 단순히 자기 조직원을 대변하는 조직일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고 더 나아가 전체 사회 개혁을 이끄는 세력이다. 그것을 못할 때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대표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조직률 10%도 중요하지만 그 10%가 주로 정규직, 대기업이라는 것이 문제다. '자기들만의 노동운동'이란 얘기는 뼈아픈 지적이다.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상당한 사실이다. 이 구조를 깨야한다.
우선 단체교섭 구조가 중요하다. 분산적이고 각자가 알아서 하는 조직에서는 아무래도 자기 조직을 대변할 수밖에 없고, 조직밖에 있는 중소기업이라든지,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소홀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거기다 대고 자꾸 도덕적으로 너희 조합원만 대변할 게 아니고 옆의 비정규직을 얘기해봤자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다. 실제 조합원들의 요구는 그게 아닌데 계속 그렇게 갔다가는 선거에서 떨어지지 않겠나. 어쩌면 상당히 무리한 요구를 노동조합에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도덕성 차원밖에 안 된다. 그래서 우선은 단체교섭 구조 자체가 지금보다 집중화 돼야 한다. 보다 큰 틀에서 싸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고용형태다. 누구보다 노조에 가입하고 싶고 보호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다. 반면에 이들은 노조를 가장 만들기 힘든 사람이기도 하다. 고용이 불안하다보니 계약이 중단이 되거나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낮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다. 대기업은 삼성 빼놓고 다 조직화 돼 있다.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고용형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 "단체교섭 구조가 중요하다. 분산적이고 각자가 알아서 하는 조직에서는 아무래도 자기 조직을 대변할 수밖에 없고, 조직밖에 있는 중소기업이라든지,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소홀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프레시안 |
외국도 마찬가지지만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 조직은 투입되는 자원의 양에 비해 성과는 별로 나지 않는다. 우선은 조직화에 앞서서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현재의 노조가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이 처한 문제, 이슈들을 노조가 앞장서서 제기하고 이들을 지원해주고, 그렇게 하면서 정부의 지원도 끌어내야 한다. 지금 정부는 비정규직 지원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인데 이런 것들을 빨리 현실화해서 비정규직의 고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 사정이 어렵다 하더라도 외국 노조에서 하는 것처럼 노동조합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조직화 노력에 투입해야 한다. 외국의 서비스노조는 전체 예산의 30%이상을 조직화에 투입한다. 처음엔 자기들 조합비를 조합원이 아닌 이들에게 쓰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굉장히 반발했다. 하지만 꾸준히 밀고 나가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됐다. 우리나라 노조는 조직화에 쓰는 예산이 10%도 안 된다. 정부나 사용자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하기 전에 노조가 현재 갖고 있는 자원만이라도 조직화에 사용한다면 지금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단지, 그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많고 미조직 노동자가 많으면 결국 조직된 노동자도 도저히 견딜 수 없고, 같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수호 : 노동운동의 위기는 경제의 위기, 사회 위기 등과 같은 궤를 이루고 있다. 최근 선거 때문에 울산에 다녀왔다. 귀족 노조라고 비판받는 현대자동차노조 조합원들을 만났더니 굉장히 억울하다고 얘기한다. 요즘 특히 잔업도 없고 특근도 없고 하니까 한 달에 150만 원 내지 180만 원 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경제위기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지만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다. 쌍용이나 위니아만도, 이런데도 구조조정으로 절반 이상씩 잘려 나가고 있지 않나. 우리도 언제 저렇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비정규직 등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결국, 현재의 시장중심, 효율과 경쟁을 통해서 모든 것들을 끌고 가려하는 이런 주주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그리고 국가가 복지를 확대는 등의 강력한 대안이 없고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밑에 있는 사람끼리 갈라먹고, 불쌍한 노동자들이 있으니까 네가 많이 받지 않느냐, 나눠줘라 이렇게 얘기하는 건 한계가 있다. 대안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 특히 산별연맹이나 총연맹은 사회개혁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국가 정책을 놓고 싸우면서 사회 전체의 틀을 어떻게 하면 바꿔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또 다른 여러 가지 한계도 있다. 또 사용자나 보수 진영이 '니들 가진 것부터 먼저 내 놓아라'는 공격을 받으면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영기 "비정규직 보호한다면서 민주노총은 왜 사회적 대화 소흘했나?"
최영기 :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문제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 문제로 표출되는 것이다. 실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하청근로자 비정규직간의 임금·근로격차는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익성 격차, 마케쉐어 격차의 반영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들을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교섭과 대투쟁만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대기업 정규직 노조, 그래도 노동운동 정책을 대변하고 있는 조직이 그 힘을 갖고 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농해서 정부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전체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 조치라든가, 사회보장의 강화, 안전망의 확충, 이런 것을 정부나 재계에게 요구하고 관철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소위 대중투쟁을 통해서 쟁취해 내는 방식보다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 이런 것을 통해서 관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이 대중투쟁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선명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정부나 재계와 타협을 통해서 관철하는 것이 더 실속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기업 정규직 노조 운동, 특히 민주노총이 소홀했던 것 아닌가.
박인상 :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제도적인 개혁이 제일 빠르다. 하지만 마냥 제도 개혁만을 목표로 되지도 않는 것을 가지고 계속 싸우는 건 부작용이 크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부분마저 간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단계적인 방법으로 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은 하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름대로 고쳐가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면 기득권 논란이 나올 수도 있다. '너희만 가져가냐'는 비판이다.
사실 정규직노조의 기득권을 얘기하지만, 논란은 있다. 현대차가 임금이 높다고들 하지만, 매일노동뉴스에서 발행한 <현장을 가다>를 보면 대체 얼마나 잔업과 철야를 해야 그런 돈을 받는지를 알 수 있다. 거의 매일 같이 회사에 모든 것을 바쳐 받는 월급이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할 수 있나 싶다. 그것이 많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동지적 입장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설사 100% 해결해 주진 못하더라도 윤 교수 말대로 단계적으로 지원해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 맞다고 본다.
최영기 : 우리나라는 기업별체제이기 때문에 임금교섭에서 노동운동의 기본원리라고 하는 연대성 같은 것이 전혀 고려가 되고 있지 않다. 일본만 하더라도 거대 노조가 수익이 많이 나와도 임금을 동결 한다. 그 이유가 협력업체나 다른 업체의 임금 형평성을 위해서 자기네가 자제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대차 노조의 경우, 물론 다 계산을 해보면 결코 고임이 아닐 수도 있지만, 협력업체나 주변 근로자들과의 대비에 있어서는 임금 · 복지 격차가 상당히 큰데 이것을 노동조합이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나.
이수호 : 연대임금 정책은 필요하다. 우리도 정규직 임금을 올린만큼 연동해서 비정규직도 더 올라가는 곳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연대임금을 관철하기 위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도 필요하다. 노동자를 대변하고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제도적 장치에 덧붙여 일상적으로 정치의식도 높이고 함께 연대해가는 형태로 풀어가야 한다.
윤진호 : 부가가치 격차나 생산성 격차에 따라서 임금이 당연히 차이가 나야한다는 시장만능주의 대신, 임금이 어느 정도까지는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조세다. 조세는 국가가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의 여부를 떠나 고소득자가 많이 낸다. 세금을 가지고 교육, 의료, 복지 등의 분야에 대해 사회 임금으로 할 수 있다. 연대임금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세의 형평성 문제는 고임금, 저임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을 얘기하는 것이다. 기업유보금이 300조가 넘는다는데 그런 얘기는 전혀 안 된다. 아무리 밑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을 나눠봤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해야 될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성의 확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현금 임금은 차이가 나도 사회임금을 통해 보충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수호 "'교섭 필요없다'는 의견, 민주노총 안에서도 대세 아니다"
최영기 : 우리나라는 정부 예산의 배정에서 사회보험이라든가 공공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에 인색하다. 지난 20년간 그래도 노동운동이 어느 때보다도 힘을 많이 발휘한 시기였는데 제도개선과 정부의 사회투자 강화에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노동운동이 반성할 점이 있지 않을까.
약간 공격적으로 질문을 하면 87년 이후에 대중투쟁이 힘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결실은 결국 사업장내에서 자기 조합원들의 임금과 기업복지를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복지 제도라든가 공공서비스의 확대라든가 이런 것에는 별로 개입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혹시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아닌가.
▲ "빨리 사회적 문제나 제도적 문제, 혹은 국가 경영이나 또 기업의 경영, 이런데 관심을 갖으면서 함께 참여하고 전체를 고쳐나가면서 틀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여전히 임금투쟁에 매몰되면서 노동운동이 점점 신뢰를 잃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런 역할이 거의 끝나면서 노동운동이 진짜 어려워졌다. 빨리 사회적 문제나 제도적 문제, 혹은 국가 경영이나 또 기업의 경영, 이런데 관심을 갖으면서 함께 참여하고 전체를 고쳐나가면서 틀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여전히 임금투쟁에 매몰되면서 노동운동이 점점 신뢰를 잃고 사회 정책이나 변화에 대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그냥 투쟁중심으로 갔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최영기 : 어느 시점에선가 사회적 타협노선으로 전환을 선언하고 제도적 참여를 확대하는 길로 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이수호 : 늦긴 했지만 위원장 시절, 그때라도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를 해보려고 했다. 민주노총의 운동이 우리 사회 속으로 들어가 사회와 함께 하는 시스템을 한번 구축해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위원장이 되긴 했는데 내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면서 제대로 못했다.
최영기 : 민주노총 내에서 노선정리가 안되면서 소위 노동운동의 위기가 심화된 것 아닐까.
박인상 : 그 당시에 한국노총도 사회적 대화 참여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고 민주노총 위원장도 공약으로 사회적 대화를 내걸고 당선이 됐다. 밖에서 볼 때 양대 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가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내부적인 사안이긴 하지만 안타까웠다. 어차피 투쟁을 하더라도 교섭을 안 할 수는 없다. 결국 마지막 타협은 교섭에서 마무리 된다. 투쟁을 하더라도 사회적 대화에 나서서 문제를 지적하고 좁혀 들어가야,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다.
꼭 '저기는 안 된다, 가 봐야 들러리 아니냐'라고들 하는데, 어찌 보면 피해의식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시스템에 한번쯤은 참여해 자기 주장도 하고 문제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어차피 그 곳에서 정책이나 모든 것이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한다면 다른 어디에서도 얘기가 안 되는 것 아니겠나.
이수호 : 사회적 대화를 노사정위원회라는 기구로 한정하니까 자꾸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민주노총도 정부 위원회나 기구 등에 참여를 하고 있다.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에 통합 지도부가 구성되면서 '사회연대노총'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5.1절도 노동자들만 하는 행사가 아니라 전체 국민들이 함께하는 노동절을 만들어 보자라면서 준비하고 있다.
변화하고 있다. 다만 IMF 이후에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노사정위원회에서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 상당히 문제가 된 법을 구체적으로 만드는데 손 들어준 뒤, 조직 내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래서 내가 위원장이 되고 난 뒤, 노사정위원회라는 것을 따로 만들었다. 그것이 상당히 진척이 잘됐었다. 그 틀에서 현재의 노사정위원회 개편하려고 했지만 중단 됐다. 민주노총도 그런 의지는 갖고 있다.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꾸 투쟁이냐 교섭이냐를 이분법으로 바라보면서 민주노총은 과도한 투쟁만 한다고 얘기한다. 제대로 투쟁을 못하고 총파업을 남발하는 것이 문제지 단결권, 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소위 노동기본권 행사가 잘못은 아니다. 기본권 자체가 유기적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때에 따라서는 강한 파업을 할 수도 있다. 또 파업을 통해서 얻으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교섭 자체를 투쟁적으로 할 수도 있다. 조화롭게 해 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자꾸 치우치게 되는 것이 문제다.
물론 민주노총 내부의 다른 정파 입장는 '지금 교섭할 필요가 있느냐, 어차피 안 되는 것 열심히 싸워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자'는 말도 하지만, 그것이 대세는 아니다. 윤 교수가 '노동조합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한 데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질타'를 얘기했듯이 나는 투쟁과 교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너무 과하고 덜하고가 아니라 헌법적 권리인데도 제대로 못하면서 오해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 양대 노총의 전직 위원장. ⓒ프레시안 |
교섭을 하다 보니 90개 조항 이상이 합의에 도출됐고 사회적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를 1년 정도 앞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리해고는 어차피 2년 뒤 시행될 거라면 합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사용자가 이 조항을 100% 활용하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거기에 합의하면서 나 같은 위원장이 안 나오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했다.
윤진호 "노조 협조만 바라고 양보는 안 하려는 정부도 대화 자세 아니다"
윤진호 : 두 가지를 분리해서 얘기하고 싶다.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는 두 분과 의견을 같이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대화와 협의는 정부나 사용자 등 상대가 있는 문제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노동운동 스스로의 선택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 대화 상대의 태도, 특히 정부의 태도였다.
대화가 성공하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부가 뭔가 결단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살펴보면 구체적인 것은 주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협조해서 정부의 정책을 도와주기를 바라지, 자신이 양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노동조합 내부에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껏 참여를 해서 줄 것은 다 줬는데 뭘 얻은 게 있느냐는 비판이다. 노동조합 내에서 대화파의 입지가 좁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조보다 정부의 태도를 먼저 평가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현 정부도 한편으로 대화를 얘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노동부 장관까지 노동조합을 비판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노동조합 내에서 온건하게 타협을 하고 싶어 하는 세력이 있다고 해도 그런 정부와는 타협을 할 수 없다. 과거 10년간 민주개혁 정부라고 불리는 정부도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는 경직적이었다. 그래서 더 타협의 여지를 상당히 좁혀 놓았다. 그것이 노동운동을 굉장히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두 번째로 내부적인 구조 문제가 있었다. 이수호 위원장이 솔직하게 말한 것처럼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는 하루 이틀에 생긴 조직이 아니다. 과거 전노협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그 안에는 정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더 큰 변혁을 바라는 정파도 민주노총의 한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지금 와서 보면 그런 정파들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소위 국민파라고 부르는 정파가 민주노총에서 계속 집권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는 그것이 민주노총이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사회적 대화의 가능성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좁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대화가 잘 안됐던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환경적 요소다. 우리의 사회적 대화는 전부가 위기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경제 문제로 고용조정,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였다. 말하자면 사회적 대화의 내용이 플러스는 별로 없고 마이너스를 어떻게 나눌 것이냐는 문제가 되었다. 당연히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위기에서 타협을 하려고 한들 서로 주고받을 것이 없으니까 잘 안 된다. 좀 더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이었다면 훨씬 더 대화가 잘됐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노동운동에만 사회적 대화가 안 된 책임을 돌리는 것은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노동운동도 책임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타협을 어렵게 만드는 그런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보다 지금은 정부 여당이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 훨씬 소극적 내지는 부정적인 것 같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노동부 장관이 경제위기 극복을 하고 개혁을 하려고 하는데, 제일 큰 걸림돌이 마치 노동조합인 것처럼 얘기하고 굉장히 이기적인 조직이라고 비난을 하는 것을 봤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서 재미있는 지적을 했다. 현재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원인이 금융자본의 횡포, 신자유주의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미국에서 노동조합이 약화된 것이 경제위기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라는 지적이었다. 노동조합이 조금 더 강했더라면 경영이 엉망진창으로 방만하게 된 것을 가만히 놔뒀을까? 그는 노동조합이 너무 약해서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고 그 결과로 이렇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단순히 조합원들의 이해만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다. 학문적으로 '보이스 기능'이라고 하는데 사회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정부나 사용자들은 브레이크 거는 것으로 자꾸 해석하고 있다. 자동차라는 것이 가속 페달도 있고 브레이크도 있어야 한다. 정부여당이나 사용자가 이 점을 인식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일본의 예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일본의 노동조합이 많이 약해지고, 그 결과로 비정규 노동자가 늘어났다. 작년 여름 파견 노동자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도로에서 칼을 휘둘러서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그 노동자는 살인을 한 이유를 세상이 싫고, 사회가 싫기 때문에 무조건 죽인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곧 법안이 국회를 통과될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조합이 약해지는 것이 노동조합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사회의 불행이다. 결국 이것은 이혼, 자살, 범죄 등 사회의 문제를 갖고 오는 것이다. 이런 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도 마찬가지다. 우선 대화와 타협을 하려면 절대적으로 노동조합에 대해서 대등하게 인정해 주고, 실질적인 사업을 줘야 한다. 북구 유럽의 노사관계가 좋은 것은 서로 대화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인 사업을 주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이 됐든 직업훈련이 됐든 노동조합이 스스로 물질적 기반을 갖고 유지해 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사업을 주고, 이것을 중심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지 만날 모여서 법을 어떻게 고치자 이러면 싸움밖에 안 된다. 서로 같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있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을 주고 이걸 갖고 얘기해 보자 하면 훨씬 더 대화와 타협이 쉬울 것이다.
박인상 "한국노총, 투쟁보단 교섭…민주노총과 길 달라도 연대하면 큰 힘 된다"
최영기 : 정부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모든 것이 정부의 태도에 의해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서방세계에서 노동조합의 기능을 보다 강화해야 하겠다는 정책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은 일반 국민들도 노조의 정책 기조에 대해서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지난 10년간 노동조합이 인심을 많이 잃었다. 국민들의 지지가 많이 약화됐고, 최악의 정치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다. 이것은 자업자득이고 노동운동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자성해야 할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년 간 우리 노동운동의 목표와 방향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
한국노총은 어떻게 보면 지난 20년간 대중 투쟁을 통한 쟁취보다는 제도적 참여와 정책로비, 이런 것들을 해 왔다. 민주노총은 대중투쟁에 치중하고 한국노총은 정책 참여를 통해 타협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 둘이 잘 조화를 이룬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 "신뢰를 쌓고 연대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멀지않은 장래에 가면 대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그렇게 해서 처음에 3만 명 모였다가 5000명으로 줄었지만, 최종적으로 12만 명이 여의도 고수부지에 모였다. 당시 날치기를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동투쟁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권영길 위원장이 명동성당에 있을 때 내가 찾아가고 거기서 합의점을 도출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여의도에서 공동집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했다. 결국 청와대에서 법률을 국회로 다시 돌려보냈고, 우리 요구에 만족스럽지 않은 법률이었지만 다시 개정이 됐다. 그런 과정을 보면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두 조직이 같이는 못 가는 한이 있더라도 연대를 할 수 있다면 동력은 굉장히 많이 나올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노총의 정치 참여 특성 중 하나는 정책연합이다. 지난 97년도 소위 사회적인 정권교체라는 과정 속에서 야당과 정책연합이 성립이 됐다. 정책연합은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참석해 <KBS>, <동아일보>에서 2번의 공개 토론회를 열었고, 조합원들의 여론을 서너 번 조사 한 뒤에 정책연합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녹색사민당이라는 독자적인 당을 결성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런 결과들을 거친 뒤, 지난 대선에서 이용득 위원장은 차라리 전체 조합원의 선택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렸고 총투표를 통해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하게 됐다.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했던, 민주노동당을 밀던 노동조합운동을 한다는 것은 같다. 다만, 언제까지 열차 레일처럼 가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이수호 위원장도 얘기했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같이 하고 있는 일이 많이 있다. 최저임금 심의위원회를 비롯해 정부기구 회의에 많이 같이 한다. 적어도 신뢰 폭을 쌓을 수 있는 여건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잘라 버리고 '당신의 길과 내 길이 다르니까' 서로 대화도 안하고 얘기도 안한다.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연대의 의미도 사라졌다. 신뢰를 쌓고 연대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멀지않은 장래에 가면 대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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