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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둔해지면 우리는 '뉴타운의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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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둔해지면 우리는 '뉴타운의 유령'이다"

[울부짖는 용산 ②] 나는 더 슬퍼하겠다

오는 29일,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6명이 숨졌던 용산 참사가 100일을 맞는다.

당시 사고 소식은 한국 사회를 경악케 했다. 철거 과정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대형 참사였다. 경찰의 진압 과정부터 재개발 정책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놓고 비판이 이어졌다.

검찰은 농성을 벌인 철거민만 기소하고 경찰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정부는 용산 참사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철거민 유가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사회 역시 참사를 잊었다. 지금도 매일 사고 현장에서는 촛불 집회가 열리지만 발길은 뜸해졌다. 그 와중에 현장 주위에서 철거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굴러갈 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프레시안>과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용산 참사 100일을 맞아 용산 참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글을 공동으로 연재한다.

▲ 지난 1월, 추모대회에 참석한 용산 참사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

용산을 떠올리면 뭔가 거친 욕지거리 다음에 눈물이 나온다. 아마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들, 대단한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용산 참사, 하고 떠올릴 때 가슴을 뒤흔드는 정상적인 감정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근방에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은 위풍당당하게 솟아오르고 다섯 명의 돈 없는 아버지들이 돈 없는 죄로 스러져 간 무덤이 된 곳은 기어코 돈 많이 받는 멋지고 그럴싸한 건물들이 들어설 것임을 우리는 안다.

고작해야 하급 깡패들이나 구속되고 사태의 책임자들은 여전히 죽어간 아버지들을, 그 가족들을, 분노하는 우리들을 버러지처럼 취급하며 잘 먹고 잘 살 것이며 어느새 100일이 되었지만 죽은 이는 있는데 죽인 이는 없다. 나는 지금 내가 몹시 감정적인 것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겠다. 그 일은 나를 끝도 없이 감정적으로 만든다. 용산 참사, 라고 떠올릴 때 유전처럼 솟아오르는 것은 오로지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끝없는 슬픔이다, 그 슬픔은 돈 없는 죄로 아버지들을 잃은 슬픔, 그러므로 차마 사람 살 사회가 아닌 곳에 살아가고 있는 슬픔, "여기 사람이 있다!" 라는 외침이 무시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슬픔, 아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근근이 버텨내고 있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버텨내지 못하고 끝내 다섯 명의 아버지들이 스러졌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기에 더 슬프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의 생리이므로.

가까운 친척도 없고, 내내 명절을 고적하게 지내 온 나는 어차피 더 고적할 것도 없었으므로 개인 블로그를 통해 책이며 옷 따위 잡다하고 구차한 살림 일습을 내놓아 누리꾼들이 기꺼이 사 주셔서 어찌어찌 마련한 얼마간의 부조금이 든 봉투를 가지고 참사 현장 앞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이런 절차에 영 익숙하지 않아 영전에서 잠시 기도를 올리고 고인들, 돈 없는 게 죄였던 가엾은 아버지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상림, 이성수, 윤용현, 양회성, 한대성…. 옥수 제12구역 철거민이었고 나가라는 때가 닥쳐서 찍 소리 못하고 얌전히 나갔으며 또 갈 데가 없어서 지금은 종암4구역 철거민이며 역시 쪽방을 계약할 때 나가라는 때 나가겠다는 문구 위해 또 사인했던 나는 그렇게 용산 제4구역 철거민들의, 아버지들의, 얼굴을 보았다.

날씨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물은 죽도록 뜨거웠다. 슬픔만 차올랐다. 검은 상복을 입고 빈소를 지키던 유가족들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추운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감사를 말할 때인가. 이 앞에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상심이 큰 것을 누가 모를 리 없다. 동지, 끝까지 투쟁에 함께합시다? 지금 이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투쟁인 것을. 결국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다가 더듬대면서 말했다. 한 번만, 안아드려도 되겠어요? 와락 울면서 한 분이 껴안았다. 꽉 껴안는 그 팔을 마주 안고 할 수 있는 일도 말도 없었다, 마주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다른 유가족 분과도 눈물을 섞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슬픔은 이렇게 자꾸 차오르고 누가 말했던가,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오히려 슬픔은 그렇게 증폭되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슬픔이 아니라 무시될 슬픔이라서 그런 거였다.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닌 슬픔이라서 그런 거였다. 이 사건에서, 지금까지 100일이 흘렀던 시간처럼 1000일이 흐를 이 사건에서 시간은 절대로 우리 편이 아니라 이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의 편이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도 그렇게 해서 슬픔이 지나가기를, 그리하여 슬퍼하는 자들의 슬픔이 무력해지고 희미해지고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다. 이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무뎌지고 잊혀질 슬픔이 아니다, 결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광포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삼키고 먹어치울 슬픔이다. 이 슬픔이 희미하게 잊혀질수록 당장 자기 일로 닥쳐 울어야 할 사람들도 하나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 "이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무뎌지고 잊혀질 슬픔이 아니다, 결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광포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삼키고 먹어치울 슬픔이다." ⓒ프레시안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 신자로 유명하다. 고 이상림 님은 가장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교회의 집사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형제 되었다고 말하는 성경을 믿는 장로로써, 대통령은 그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시편은 그가 믿는 하나님을 과부와 고아를 감찰하시는 재판관이라고 말하지만, 과부와 고아를 자신이 그토록 양성하고야 만 것에 대해서 그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용산 참사 100일을 맞아 부디 당신의, 나의 눈물이 식지 않길 바라며 사도 바울의 로마서 12:15를 떠올린다. "너희가 즐거워하는 자와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자와 더불어 함께 울라."

저기 사람이 있다. 저기 여전히 슬퍼하는 자들이 있다. 함께 슬퍼하지 않으면 그 슬픔이 남일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한 인간된 도리로 함께 슬퍼하자. 더 슬퍼하자. 더 슬퍼하자. 더 감정적이 되자. 스러져간 올드타운의 아버지들을 잃은 슬픔, 여기 둔해지면 우리는 모두 뉴타운의 유령이 된다. 이성적인 것은 놈들의 몫으로 놔두고 나는 더 울고 더 소리치고 더 슬퍼하겠다. 이렇게, 10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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