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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동안 모두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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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동안 모두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정답

[화제의 책]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

때때로 묻는 이도, 듣는 이도 답을 전혀 모르는 질문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강원도에서 잇따르고 있는 젊은이들의 자살에 대해 언론은 이렇게 보도한다. "도대체 왜일까?"

반면, 누구나 그 답을 알면서 아무도 답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2007년 2월, 한국에서 만4년 동안 비정규 교수(시간강사)를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한경선 씨. 비정규 교수의 자살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 며칠 전, 서울대 불문과 한 시간강사가 대학 화장실에서 자살했고, 2006년에는 한 서울대 강사가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많은 이들은 묻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여서 학위를 따기 위해 십 년을 넘게 공들이고도 목숨을 끊는 것일까"라고. 우리는 정말 그 이유를 몰라서 이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걸까. 최근 출간된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김동애 외 31인 지음, 이후 펴냄)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쉽고도 충실히 답하기 위해 나온 책이다.

누구나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김동애 외 31인 지음, 이후 펴냄) ⓒ프레시안
"박사를 해봤자 월 강사료 80만 원. 때꺼리도 안 되는 교원도 아닌 일용잡급직이니 OO대학엔 대학원이 텅텅 비었어요."


이 책은 지난해 10월부터 <프레시안>에 실렸던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 연재를 추려 묶은 것이다. 비정규 교수는 물론 대학생, 학부모, 변호사 등 다양한 이들이 증언하는 비정규 교수들의 절망적인 현실, 그리고 예고된 어두운 미래는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든다.

대학에 다녔던 이들이면 한번쯤 들어봤을 비정규 교수의 비애. 누가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 어떤 짓을 했고, 교수가 된 뒤 어떻게 바뀌었다더라 하는 류의 이야기, 그 뒷면에는 비정규 교수에 대한 상식 이하의 처우가 있다. 전국 각지로 뛰어다니며 강의를 하고도 차비와 밥값에도 못 미치는 연봉(공식 통계는 999만 원·실제 추정액 500여 만원)을 받고 연구실 하나 없는 '교수 아닌 교수'가 한국에는 7만 명 가량 있다.

시작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7년, 지식인을 길들이고 저항 지식인을 제도권 밖에 두려던 박정희 정권은 대학 교원 범주에서 시간강사를 제외했다. 개정된 교육법 75조는 강사의 정의를 끝내 전임강사로 바꿨고, 전임자가 아닌 강사의 교원 지위를 빼앗았다. 결국 대학 강의의 절반을 맡으면서도 아무런 신분 보장도 받지 못하는 수 만명의 계약직 강사가 생겨났다.

책 곳곳에 나오는 문구처럼 누구나 '이대로 둬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 교수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지식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들의 교원 지위를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은 사실 굳이 이렇게 많은 필자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언제든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 비정규 교수 본인들은 발언 자체가 생계와 직결돼 있었다. 전임 교수들은 이제 자신의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정규 교수의 처우 개선은 자신들의 밥그릇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교수와 대학 당국에 학점과 졸업을 맡겨 놓은 학생의 처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비정규 교수를 채용하는 대학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리 만무했다.

배움의 추락, 해법은 간단하다

결국 변화를 외치는 비정규 교수들은 학교 밖으로 나섰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 소속된 비정규 교수들은 2007년 9월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오는 28일 농성 600일을 맞는 현 시점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입법 발의를 했던 국회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된 오늘도 이들은 언제 천막이 철거될 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현실에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점점 더 공허해진다. 대학이 그 답으로 내놓는 핑계가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 바로 '돈'이다. 적립금이 수천 억원이 넘어가고, 그 돈으로 펀드를 굴리는 대학이 '돈이 없다'며 발뺌하고, 정부가 이를 옹호하는 가운데 더 이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최근 대학들은 보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겠다며 계약 해지를 무기로 점점 더 많은 교원을 내몰고 있다. 그래야만 교수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과 연구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도 한다. 대학 자율화를 하겠다는 교과부는 지난해 교수와 강사의 사기 진작을 위해 기존에 전임강사 제도를 폐지하겠다면서도 '시간강사(비정규 교수)'는 여전히 교원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밝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대학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는 정반대에 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시간강사와,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몸부림을 악용하며 청탁과 뇌물이 오가는 부조리한 교원 임용을 일삼는 교수와 대학의 만행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학문이 이뤄질 수 있을까.

대학 진학률 85%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이뤄지는 배움의 실상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하는 사회. 이제 악순환을 끊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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