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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성적 공개와 조·중·동의 '뻔뻔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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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수능 성적 공개와 조·중·동의 '뻔뻔한 왜곡'

[분석] 전문가 분석 '외면'하는 언론…얼마나 더 눈물 흘려야 하나

지난 15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5~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시·도별로 공개했다. 각 영역에서 상위 20위권 안에 드는 시·군·구도 공개했다. 이어 1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국회의원에게 수능 성적 원자료를 이달 말부터 열람 형태로 공개하겠다고 밝혔으며, 연구자에게도 연구 목적에 한해 원자료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던 수능 성적이 공개된 것은 1993년 시행 이후 처음이다. 한번 공개된 수능 성적은 앞으로도 계속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수능 성적 공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번 공개가 가진 의미는 무엇이고, 또 교육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조·중·동 "성적 공개 잘한 일…더 많이 공개해야"

우선 수능 성적 공개 이후 이틀간 보수 언론의 추이를 보면 성적을 공개한 정부의 속내와 앞으로의 행보를 짐작해볼 수 있다.

공개 다음날인 지난 16일 언론은 대부분 영역에서 상위 20위권 안에 포함된 전남 장성과 경남 거창에 있는 장성고, 거창고, 대성고 등의 '비결'을 앞다퉈 다뤘다. 이들 지역에는 학교 수가 적었기 때문에 자연히 개별 학교가 주목을 받은 것이다. "'기숙형 자율고'의 힘 입증한 농촌 학교 장성·거창고"(<중앙일보>) 같은 기사가 속속 쏟아졌다.

또 1~4등급 비율이 가장 높은 광주 지역의 우수 요인을 분석하기에도 바빴다. <동아일보>는 기사 말미에 "광주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33.1%에 이르지만 '학력 신장'이라는 목표 앞에서 '이념'이 설 자리는 없었다"며 특이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17일에는 보다 구체적인 주문을 담은 기사가 이어졌다. 보수 언론들은 보다 자세한 학교별·세부 등급별 정보까지 공개하라고 일제히 압박했다. 16일자 사설에서 "수능성적 공개, 궁극적으론 '학교별(別) 공개'로 가야"라고 주문했던 <조선일보>는 이어 17일 "학부모들은 '이해가 잘 안 가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1~4등급을 뭉뚱그려 공개할 것이면 왜 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장성과 거창 등의 사례를 토대로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힘을 싣는 기사도 잇따랐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지정된 전국 82개 기숙형 공립고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번 수능 성적 공개로 전남 장성고, 경북 영양여고 등의 '기숙사 효과'가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수능 성적 공개를 통해 지역과 학교간 학력차가 확인됐다며 평준화에 대한 가혹한 비판도 제기됐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허울뿐인 평준화 제도를 그냥 끌고 간다는 것은 교육의 퇴보와 다름없다"며 "자료를 분석해 보면 신입생 선발을 포함해 학교 운영이 자율적인 학교들의 수능 성적이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학교 다양화와 자율화가 평준화를 대체할 올바른 방향이란 의미가 아니고 뭐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답맞추기 경쟁 풍토 더 심해질 것…다양화 대신 획일화"

이처럼 언론만 보면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 실시 등이 학생들의 수능 성적을 높이고 학력을 신장시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칭찬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가 더욱 강도 높게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정부와 보수 언론이 내는 한목소리가 '왜곡된 프레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수능은 상대평가"라며 "한 지역에서 1등급이 늘어나면 어느 다른 지역에서 줄어드는 현상은 당연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범 평론가는 "결국 수능 성적 공개는 단답형 답맞추기식 교육 풍토를 가속화하고, 교육을 다양화가 아니라 획일화로 몰아가겠다는 말"이라며 "논술처럼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교육 지표는 더욱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가겠다'는 정부가 이런 정책을 펴는 것은 다양화에 완전히 역행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공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방법에 대한 합의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하다 보니까 우려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선 교수는 "사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부분적으로라도 수능 자료를 공개해야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그러나 이번 공개는 학문적 목적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이 너무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즉 평준화를 비판하는 집단에서는 이번 수능 성적 결과를 자율과 경쟁 교육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내세울 것"이라며 "그러나 엄격히 따져보면 수능 성적의 차이는 고등학교 교육에 의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성 교수는 "그 차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누적되면서 벌어지는 것이며 학교 교육보다 외부 변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며 "지역별·학교별 성적이 고착화되는 현실을 고교 평준화 탓으로 돌리는 분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고 이번 성적 공개로 주목을 받은 거창고, 장성고 등은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학생 비율이 높은 기숙형 학교다. 성기선 교수는 "결국 수능 성적 공개는 성적 고착화, 서열화, 학교 불신, 지역 갈등 등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교육이 더 성적 중심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공개된 지난해 12월 한 고3 수험생이 수능 성적표를 손에 쥔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교원단체 "결코 공교육 발전에 기여하지 못할 것"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교원단체도 마찬가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우리 교육의 문제는 경쟁을 하지 않아 경쟁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성적만을 위한 경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경쟁을 통한 학습 압박과 정글의 생존논리는 학생들에게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으며, 오히려 자율적 학습능력과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점수만을 위한 경쟁은 진정한 경쟁력이 아니다"라며 "교과부의 이유도 모르는 석차 공개는 결코 공교육 발전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엄민용 대변인은 "연구자들에게 공개하겠다고 한 자료는 전교조 역시 연구 인력을 통해 자체적으로 분석하겠다"며 "정부와 한나라당 등이 수능 성적을 엉터리로 분석해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공개의 구체적 범위, 공개의 주기·시기 및 방법 등을 미리 정하여 공표하도록 한 절차를 무시하고, 교육적 효과 및 사회적 파장, 정보공개에 따른 구체적 대책 마련도 없이 발표한 데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고 밝혔다.

한국교총은 "대법원의 판결도 있기 전에 조급증에 사로잡혀 충분한 여론수렴과정이나 법적·절차적 정당성도 없이 발표하여 수능성적이 좋은 지역으로 학생, 학부모의 '교육엑소더스'를 부추기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며 "교육활동의 개선보다는 수능성적별로 지역을 서열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보수 언론에 전혀 언급되지 않거나 짤막하게 소개됐을 뿐이다. 성적이 공개된 지난 15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세미나에서는 언론의 '줄세우기' 보도에 대한 우려와 함께 가정 환경 같은 요인이 성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제기됐지만 이 역시 기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교원과 전문가의 우려는 제껴놓은 채 '교육 개혁'의 페달을 밟는 정부,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보수 언론. 그 역질주에 얼마나 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눈물을 흘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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