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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 열었다…지역별 수능 성적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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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판도라 상자' 열었다…지역별 수능 성적 최초 공개

평가원 "사회 요구 고려"…고교 평준화 해체 논란 불가피

2005~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지역별·연도별 성적이 공개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김성열)은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결과에 대한 전문가 세미나'를 열고, 이 자리에서 해당 연도에 수능에 응시한 일반계 고등학교 재학생의 언어·수리·외국어영역 성적을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1993년 시행 이후 고교 평준화 체제 유지를 위해 '비공개' 원칙이 이어온 수능 성적이 처음 공개된 것.

평가원은 공개 취지를 놓고 "수능 성적 자료와 관련된 정보 공개를 원하는 사회적 요구를 고려했다"며 "성적 자료의 분석을 통해 교육 정책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달 19일 교육과학기술부는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요청에 따라 열람 등 제한적으로 성적을 공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 2005~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지역별·연도별 성적이 공개됐다. 1993년 시행 이후 고교 평준화 체제 유지를 위해 '비공개' 원칙이 이어온 수능 성적이 처음 공개된 것이다. ⓒ뉴시스

"광주 수능 등급 높아…사립이 공립보다 점수 높다"

평가원 분석에 따르면 16개 시·도 가운데 광주 지역이 5개 학년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대 평가로 나뉜 9등급 중 상위 1~4등급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천, 충남, 전북 지역은 전반적으로 1~4등급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가원은 232개 시·군·구에서 5년 간 언어·수리·외국어영역별 상위 20위 안에 드는 지역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20개 시·군·구 지역 가운데 서울 및 광역시의 구 지역과 시 지역이 85.5%를 차지했으며 군 지역은 14.5%여서 도농간 격차를 나타냈다.

평가원은 "5년 연속으로 상위 20개 시·군구에 포함된 지역은 부산 연제구·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경기 과천시였으며, 전남 장성군과 경남 거창군의 경우는 군 지역임에도 5개 학년도에 걸쳐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위 시·군·구에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또 2005학년도와 2009학년도 성적을 비교했을 때, 서울, 충남, 전남, 제주 지역에서는 1~4등급이 증가했으며, 부산, 울산 지역은 감소했다. 7~9등급의 경우 제주, 충남 지역은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서 모두 감소한 반면 인천 지역은 모두 증가했다.

평가원은 "학교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사립학교가 국·공립학교보다 5년 모두 수능 표준점수 평균이 조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또 외국어 영역에서는 여학교가, 수리 영역에서는 남학교가 표준점수 평균과 1~4등급 비율이 대체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학업 성취도 평가와 수능성적과의 상관관계도 발표됐다. 평가원은 "시·도, 시·군·구, 학교 단위로 분석한 결과 상관관계가 전반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성적이 높을수록 수능성적에서도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교 평준화 무력화 논란 불가피…"대법원 판결 나오지도 않았는데"

평가원은 이번 공개를 두고 "아직까지 공개 범위에 대한 학문적, 교육적, 사회적 공론화가 결집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 범위를 최소한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평가원은 "향후 수능 성적과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 등과 같은 배경 변인을 이용해 수능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을 규명하고 교장 리더십, 교사의 열정 등 학교 효과를 심층 분석해 학업 성취를 향상시키는 주요 요인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가원이 이처럼 '토'를 단 것과 달리 이번 자료가 불러올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4·15 공교육포기정책 연석회의는 세미나가 진행된 서울 가회동 교육과정평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능 성적을 공개할 수 없다며 대법원까지 상고한 교과부가 아직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성적을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수능 시험 자체는 입시를 위한 수단이며, 학생 개인의 입시 수단으로만 적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평가 도구"라며 "이를 학교 간 지역 간 서열화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학생과 학부모를 경쟁과 적자생존의 정글로 몰아넣고, 학교를 서열화하고 평준화를 해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디가 잘 하냐' 얘기되겠지만"…부작용·추가 공개 필요 '모두 인정'?

세미나 참가자들 역시 이번 수능 성적 공개의 의의를 '몹시 크다'고 평가하면서도 몰고 올 부작용에 대해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능 점수 공개 목적은 '어디가 잘 하느냐'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성취도가 얼마나 향상됐느냐', '왜 잘하게 됐느냐' 등의 질문을 탐구하는 데 있다"며 "평가보다 진단에 초점을 맞춘 자료 공개와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도 '학교 평가'가 아닌 '학원 평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도 "수능 자료 자체만으로는 활용도가 제한적이며 잘못된 인식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며 "지역별 수능 성적은 그 지역 내 학교 교육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는 수능 성적 1~4등급 상위 20개 지역내의 전문직종 종사자와 승용차 2대 이상 보유 가구 비율과 전국 지역 평균을 비교하며 이들 사이의 상관 관계를 분석하기도 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김성열)은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결과에 대한 전문가 세미나'를 열고, 이 자리에서 해당 연도에 수능에 응시한 일반계 고등학교 재학생의 언어·수리·외국어영역 성적을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프레시안

그러나 이 같은 토론이 이뤄졌음에도 교육과정평가원은 '향후 교육 당국 차원에서 공개 범위를 더 확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시사했다. 발제를 맡은 김성열 평가원 원장은 전수 공개가 필요하다는 참가자들의 지적에 "조만간 개최되는 토론회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참석하니 논의 주제로 함께 토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이번 자료를 통해 학교별 성적을 사실상 얼마든지 유추할 수도 있다. 실제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한국교육개발원 김양분 조사연구팀장은 토론문에서 경남 거창의 KC고등학교, 전남 장성의 J고 등 사실상 학교별 성적 결과를 발표했다. 김양분 팀장은 같은 발제에서 "시·군·구 단위에 따라 하나의 학교가 포함되거나 학생수가 너무 적어 개별 학교가 노출되거나 비교가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공개 범위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성열 원장은 마무리 발언으로 "한번 연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만이 남아 있었다"며 "오늘 우리가 연 판도라의 상자가 우리 교육의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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