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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우리가 귀족입니까"

아시아나항공 한 조종사의 항변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 6일 하루 총파업을 했다가 '귀족노조'라고 지칭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 뒤 이 노조의 한 조합원이 한 친목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비행경력 10년차 부기장인 이 조합원이 고백적 어투로 써내려간 이 글은 '귀족노조'란 미명에 가려진 항공기 조종사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주목된다.

***한 항공 조종사의 고백**

6일 하루 총파업을 마치고 속상해서 술 한 잔 하고 글을 쓴다는 이 노동자는 아시아나 항공 입사 10년차,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귀족노동자란 세간의 비난을 의식한 듯 "인천에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고, 차는 6년 된 기아차 1천3백CC를 갖고 있다. 올해 중간 퇴직금을 받아 아파트 융자 빚을 갚았다"며 재산 내역부터 공개했다.

그는 "일반 4년제 대학 졸업 후 조종사로 입사한 뒤 거의 2년 동안은 교육만 받았다"며 "1년 동안의 초임은 45만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국내에 조종사 전문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에 외국에서 1년 동안 조종사 교육을 받지만, 사측이 교육비를 조종사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노조를 만들고 나서 월급이 많이 올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조종사의 고달픔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미주를 다녀 왔다. 밤새 날아가서 도착하면 그 곳은 한 낮"이라며 "호텔에서 커튼을 치고 자려고 해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박5일 한 숨도 못 자고 온 적도 있다"며 "기계마냥 누우면 잠이 오면 좋겠다. 많은 조종사가 말 못할 많은 병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귀족노조' 딱지가 붙는 데에 일조한 '골프'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공군에서 나온 조종사가 대개 골프를 친다"며 "군에서는 항상 조종사들을 모으고 통제하기 위해 골프를 가르친다고 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기착지의 숙소에는 회사측에서 오래 전에 사다 놓은 낡은 골프채가 있다"며 "복지 차원에서 이왕 사줄거면 관리도 해달라고 요구안에 명시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조종사는 객실 승무원 교체권 요구사항이 비행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장-부기장-선임객실장 순의 지휘계통이 있다"며 "기장이 객실선임보다 나이가 어려 기장의 지휘권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긴급상황에서 지휘계통이 흔들리면 승객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1백35가지 요구안 중 불과 몇 개를 갖고 쉽게 판단하지 말아 달라"며 "노조 지도부 20여명은 목숨 내놓고 싸우는 중"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다른 이들이 파업을 할 때에도 (문제를 지적하려면) 쯤은 더 생각해 달라"며 "그냥 무심코 한 말들이 가슴을 도려낸다"고 고통을 털어놨다.

***네티즌, 갑론을박**

이 글 아래에는 수백 개의 답글이 달렸다. 조종사의 고백에 공감하는 부류와 비난하는 것들이 혼재돼 있다.

예컨대 아이디 '정'을 쓴 네티즌은 "저도 10년째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지만, 정말 잘 때만큼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고 싶다. 누우면 바로 잠이 오는..."이라며 공감을 표했고, 아이디 'digo'를 쓴 네티즌은 "사람이 땅 밟고 일하기도 힘든데 시차 적응 해 나가며 하늘 위에서 신경 곤두세워가며 일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돈을 조금 많이 받는다고 파업하면 안된다는 논리라면 차라리 고액연봉자는 파업하면 안된다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는 모두 노동자이며 노동자는 모두 파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아이디 'XANAX'를 사용한 네티즌은 "별로 공감이 안간다. 먹고 살만한데 더 잘먹고 싶다는 것 아니냐. 파업 명분이 이기적이다"고 비난했고, 아이디 '나쁜남자'를 쓴 네티즌도 "어렵지 않은 사람 누가 있냐.의사들도 파업한다. 귀족노조, 귀족파업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지난 7일 이 조종사가 글을 띄운 게시판에서는 주말 현재 계속 답글이 달리며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에서 섣불리 끝내버린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에 대한 평가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이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가 띄운 글의 전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아시아나 부기장입니다. 오늘 시한부 파업을 마치고 속상해서 술 한잔 하고 들어 왔습니다. 아시아나에 들어 온 지 벌써 10년이 되는군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귀족이 아닙니다. 서른 중반을 넘기고 마흔을 바라 보고 있습니다. 현재 인천에 32평의 아파트(1년전 평당 460만원을 주고 샀습니다.처음으로 가져보는 제 집입니다)에 살고 있으며, 차는 6년된 기아차1300cc을 갖고 있습니다. 올해 10년 되는 해 중간 퇴직금을 받아 아파트 융자 빚을 갚았습니다.

일반 4년제 대학 졸업 후 아시아나에 시험을 쳐서 조종사로 입사했습니다. 거의 2년 동안은 교육만 받았습니다. 입사후 1년 동안 초임은 45만원이었습니다. 저 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무연고자들은 주로 지하방이나 옥탑방에서 몇 년을 생활했습니다. 제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외국에서 1년동안 교육(우리나라에서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습니다) 받은 교육비를 월급에서 제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교육 받은 교육비를 본인들이 내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힘들게 우리 노조 만들었습니다. 노조 만들고 난 다음부터 월급 많이 올랐습니다. 불과 몇 년전의 일입니다. 세상에 힘 안 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요번에 저는 미주를 다녀 왔습니다. 밤새 날아가서 도착하면 그곳은 한 낮입니다. 호텔(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수준의 호텔이 아닙니다)에서 커튼을 치고 자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그곳 다음날 밤에 다시 우리나라로 출발합니다. 밤을 새고 도착합니다.

여러분 혹시 멜라토닌을 아시는지요? 억지로 자려고 해도 그게 사람 마음대로 안됩니다. 4박5일 한숨도 못 자고 온 적도 있습니다. 기계 마냥 누우면 잠이 오면 저도 좋겠습니다. 세상에 공짜로 월급 주는 곳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속으로 말 못할 많은 병을 갖고 있습니다.

골프요?저는 골프 칠 줄 모릅니다. 우선 유래를 따지면, 공군에서 나오신 분들은 대개 골프를 칩니다. 공군에서는 군 골프장을 갖고 있지요. 군에서 항상 조종사들을 모으고 통제하기 위해 골프를 가르칩니다. 그들은 귀족이라 골프를 치는 게 아니고 군에서 공짜로 치는 거지요. 아시다시피 외국에서는 골프가 그리 큰 돈이 드는게 아닙니다. 회사에서 오래 전 사다 놓은 골프채가 있습니다. 하나 이미 낡고 오래되어 그걸 갖고 골프 치는 이는 없습니다. 대개 사비로 개인이나 여럿이 사다놓습니다. 복지 차원에서 이왕 사줄거면 관리도 해주고 제대로 해주라고, 아예 명시화(명시화하지 않으면 안 해주니까)한 것이 화근이 되었네요.

객실 승무원 교체권...

저희는 지휘계통이 있습니다. 기장-부기장-선임객실장(요즘은 매니저라고 하지요) 순입니다. 이게 왜 필요한가 하면, 긴급사항이나 비정상시, 예를 들면 기장 유고시 부기장이 지휘권을 가지고 통제를 하게 됩니다. 불시착시 만일 오른 쪽에 불이 났기에 기장이 '왼쪽으로 하기하시오'하는데 객실 승무원이 '오른쪽으로 하기하시오'(그런 일은 없겠지만) 한다면 큰 일이겠지요.

때에 따라서는 기장이 객실선임보다 나이가 어릴 수 있습니다. 기장이 하는 말을 안 듣고 반말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예도 있습니다만, 그만 하겠습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기에.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종류의 교체권(?)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은 철회를 했습니다만, 노조 운영의 미숙으로 봐 주십시요. 정식 노조가 된 첫 단협입니다. 그래서인지 사측이나 저희도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회사 내의 많은 이들이 저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봅니다. 우선 월급이 많기에, 회사에서 그렇게 조장을 하기에. 언론도 곱지 않습니다. 연봉 1억 받는 놈들이라서(저 아직 1억 못 받아 봤습니다).

이번 파업. 나름대로 힘들고 어려운 싸움입니다. 135가지의 노조안 중 불과 몇개를 갖고 쉽게 판단하지 말아 주십시요. 저 요번에 제 밥줄 걸고 하는 싸움입니다. 10년동안 배운 게 이것뿐이라 짤리면 뭘 할지 막막합니다. 50 넘기신 분들. 자녀들 대학에 다니는 그분들도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복에 겨워 놀고 있는 거 아닙니다. 집행부 20여명 목숨내놓고 싸우는 중입니다.

남의 일이라 쉽게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요. 제 집사람 언론 보도를 보고 속상해서 한참을 혼자 울었답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써놓은 글을 술 한잔하고 밤새 읽었습니다. 그냥 무심코 하신 말씀들이 제 가슴을 도려내는군요.

몇 년 전 프랑스 공공 청소원들이 파업을 했답니다. 공공기관, 공원들이 엉망이 되었겠지요. 시민들이 참 불편 했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집안의 쓰레기를 일부러 공원에다 버렸답니다. 청소원들을 도와 빨리 협상을 시키려고요.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부디 다른 곳에서 다른 이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한번쯤은 더 생각해 주십시요. 누구나 나름대로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입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그만 접겠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것 배우고 얻고 갑니다. 즐거운 사진 생활이 되시기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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