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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었다" 사학들 환호…교사들 줄줄이 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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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었다" 사학들 환호…교사들 줄줄이 해직

사학재단 파면 릴레이…'바른말' 교사들 "공포 분위기"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2개월,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그 중 대표적인 분야는 교육이다. 일제고사의 대대적인 시행이 교사의 해직으로 이어지고, 학생들의 체험 학습이 '대정부 투쟁'이 되어 버린 가운데 '유신 교육'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그런데 사학재단들이 이 같은 분위기를 '이용'하면서 해직 교사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세화여중 김영승 교사가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학생에게 설명했다는 이유 등으로 파면된 데 이어, 지난 3월 학교의 비리 해결을 요구해왔던 서울 양천고 김형태 교사가 파면됐다.

또 지난 4일에는 서울 염광중 황철훈 교사가 지난해 12월 일제고사 선택권을 안내하고 '불법 집회'를 벌였다는 이유로 역시 학교로부터 파면을 통보받았다. 파면을 통보 받으면 향후 5년간 임용이 제한되고 퇴직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물론 다시 교사를 하려면 임용고사를 다시 봐야 한다. 사실상 교사로서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다. 이로써 서울 지역에서 일제고사와 관련해 해직된 교사는 총 9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해당 교사들은 근본적인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지적한다. 사학재단들이 눈밖에 난 교사를 내쫓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공립교사를 해직할 때 내세운 일제고사 반대, 복종·성실의 의무 위반 등을 '징계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 4일에는 서울 염광중 황철훈 교사가 지난해 12월 일제고사 선택권을 안내하고 '불법 집회'를 벌였다는 이유로 역시 학교로부터 파면을 통보받았다. ⓒ프레시안

"되돌아간다. 시대가 바뀌었다"

지난 6일 염광중 앞에서 만난 황철훈 교사는 이날 마지막으로 출근해 짐을 챙겼다. 22년을 염광재단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그는 개학날이었던 지난달 2일 직위해제를 통보 받았다. 황 교사는 "동료 교사들에게 야만과 공포의 시대에 살고 있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다 같이 어려운 시기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전했다.

염광중, 염광고, 염광여자메디텍고 등 세 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염광학원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교사들의 요구에 따라 민주적 인사위원회를 운영해왔다. 교사들은 "그전까지 교장이 교원 인사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매년 연말 인사가 다가오면 교사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교장의 결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교장이 부장교사에 대한 인사 배치를 하기 때문에 교사들의 눈치 보기와 줄서기가 필연적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황철훈 교사 등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은 교사가 직접 선출하는 인사위원으로 구성된 '민주적 인사위'와 교감, 부장교사 등 보직에 대한 직선제를 요구했고, 세 학교 교장들이 친필 서명으로 이에 동의하면서 2003년부터 민주적 인사위가 실시됐다.

그러다 2007년 학교 측은 일방적으로 결정을 철회했다. 대통령선거를 몇 달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재단이 운영하는 세 학교 교사를 전원 소집한 이사장은 "인사위는 되돌아간다"며 "시대가 바뀌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학교 측은 "사립학교법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며 모든 교원인사에 관한 결정권을 교장이 행사하고 인사위원도 교장이 임명하는 내용의 새로운 정관을 내밀었다. 전교조 분회 교사들은 2007년 10월부터 현재까지 항의시위를 벌이며 민주적 인사위를 다시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제고사 반대' 핑계 삼아 '시끄러운' 교사 내쫓기

▲ 일제고사 선택권을 안내하고, 학내 민주적 인사위 구성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였다는 이유로 파면당안 황철훈 교사. ⓒ프레시안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황철훈 교사는 청소년 단체에서 만든 일제고사 반대 포스터를 자신의 학급에 걸고, 시험 참여 여부를 묻는 안내문과 학교 측 '경고'문을 함께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결국 5명의 학생이 체험 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일제고사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 2월 황 교사는 '학력평가 거부 유도'와 '피켓시위' 등이 적힌 조사서를 받았다. 이어 지난 3월 재단은 황 교사에게 직위 해제를 통보했으며, 3월 일제고사가 끝난 뒤인 지난 4일 파면을 통보했다.

황철훈 교사는 "재단에서는 일제고사를 문제로 삼았지만 민주적 인사회 투쟁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며 "교장이 서명까지 한 문건이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뒤집어버렸으니 재단에서는 이를 핑계로 삼기는 궁색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염광중 교장 등이 작성한 조사서에는 일제고사에 대한 질문 외에 "그렇게 주장했던 민주적인 인사위가 왜 다른 학교에서는 도입을 안 하고 있는가? 그때 어쩔 수 없이 타협해 받아들인 인사위안 때문에 재단이나 기관장들이 (주변의 다른) 사학에서 따돌림을 받았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은 것을 아십니까? 이 시위와 교내 피켓시위로 학교의 명예가 훼손되는 등 문제가 많아 중단하라는 세 학교의 교장이 보낸 경고장을 9번이나 받으셨죠?" 등 인사위의 필요성과는 상관없는 질문이 적혀 있다.

황 교사는 "재단, 교장이 임명하는 보직교사 구조 아래서는 인사뿐 아니라 모든 것이 썩을 수밖에 없다"며 민주적 인사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인사위를 요구하면서 실제로 학교 비리도 많이 발견했고, 인사위와 상관없이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며 "그런데도 재단에서는 인사위를 요구하면서 왜 학교 비리를 얘기하냐며 따진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파면된 세화여중 김영승 교사도 황 교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직접적인 이유는 일제고사였지만, 급식, 학운위, 인사위 등 학내에서 문제 제기를 하며 벌여왔던 활동 내역이 징계 사유에 포함됐다. (☞ 관련 기사: 또 다른 해직 위기 교사 "진실을 가르쳤을 뿐인데…")

비리 적발되고도 중재 요구 '모른 척'

상록학원이 운영하는 서울 신정동 양천고는 갖가지 비리로 소문이 난 학교이기도 하다. 지난해 교육청 감사 결과 양천고는 동창회가 구성되지 않았는데도 동창회비를 징수하고, 특별자습실 사용료라며 학생 1인당 월 3만 원씩 걷어 직원 인건비 등으로 사용한 문제점 이 드러났다. 또 이사장과 친분 관계에 있는 급식업체와 수년 간 계약을 맺고, 학생 체육복을 학교에서 매년 독점적으로 판매하고,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했던 점도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교육청은 부당하게 걷히거나 쓰인 재정에 관해 추징 및 반환 조치를 요구했다. 또 학교장, 교감 등에게 '경고' 수준의 경징계 처분을 했지만 재단의 이사장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학교 내에서 전교조 분회장을 맡아 왔던 김형태 교사는 "당시 중재를 맡은 교육청은 시정 조치와 함께 재단 측에 민주적 인사위와 학운위를 만들라고 했지만, 이사장은 '여기는 내 학교'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심지어 이사장의 집까지 찾아갔는데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1990년부터 이 학교에 재직해온 그는 "학교 명예를 생각해서 20년 가까이 내부에 타결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난해 10월 전교조 서울지부는 양천고 정 모 이사장에 대해 횡령과 사립학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달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

김형태 교사는 "검찰은 피의자와 일부 참고인의 진술에만 의존했고, 나조차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며 "검찰의 불성실한 수사 결과는 결국 무혐의로 나왔고, 결과가 확정될 때를 맞춰 재단은 적법한 절차를 밟지도 않고 나에 대한 징계를 일사천리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주인을 고발하느냐'고 하더라"

▲ 지난 3월 학교의 비리 해결을 요구해왔던 서울 양천고 김형태 교사는 재단으로부터 파면을 통보받았다. ⓒ프레시안
김형태 교사 징계 사유에는 김 교사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국가공무원법 중 비밀엄수의 의무, 직무 태만, 성실의 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나와 있다. 김 교사는 "교장은 항의하러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주인을 고발하느냐'고 하더라"며 허탈해했다.

또 징계 사유 중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재단은 김 교사가 자신의 시집을 학생들에게 강매했다고 적었지만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나눠준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시집은 10여 년전 김 교사가 자신의 학급에서 백혈병에 걸린 학생을 돕기 위해 출판한 것으로, 인세 전액이 학생을 돕는 데 쓰였던 책이었다.

지난 3월 전교조는 서울남부지검에 항고장을 접수했고, 지난 7일 추가 증거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에 대한 증거 및 독서실비에 관한 사실확인서, 불법적인 학사 운영 사례가 포함돼 있다.

한편, 학교 측은 파면 통보 이후 날마다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 교사에 대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이다. 김 교사는 최근 파면 사태로 인해 몇몇 방송에서 이를 보도하는 것을 두고 학교에서 다른 교사들까지 학교장 허가없이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요구하고, 거부하자 경고장을 발부하겠다며 괴롭히는 등 전혀 개선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장이나 이사장에 항의하면 잘린다는 인식 퍼지고 있다"

이처럼 사학재단이 줄줄이 교사들을 해고하면서 현장은 경직되고 있다. 황철훈 교사는 "주된 정서가 '공포'"라며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학교장, 이사장에 항의를 하면 잘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황 교사와 함께 염광학원에 민주적 인사위를 요구해왔던 염광고 박범성 교사는 "황 교사가 파면된 다음날 예정에도 없던 간부 회의가 갑자기 소집됐다"며 "학교장들이 일제히 교사들에게 겁을 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내가 2번 타자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일반 교사들도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피하는 등 파면 이후 모든 교사가 학교 명령과 지시에 의해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벌써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서울지부 김용섭 사립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사학법이 개악되면서 사학재단들이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용섭 위원장은 "정부가 내세운 '학교 자율화' 구호를 사립학교에서는 '학교장의 자율화'로 간주하고 있다"며 "자율화를 강조하는 정책이 일선 현장에서는 학교장 독재 권한 확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염광학원의 경우도 사학법 개정 과정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며 "실제로 서울시내 80~90% 사립학교가 민주적인 인사위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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