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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파산이 현대기아차에겐 기회? No!"

[위기의 자동차, 위기의 노동자③] 현대·기아차 혼류 생산의 미래

경제 위기로 인해 제조업,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실질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도 큰 의미가 없다. 현재 먼저 '해고통보서'를 받아들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이지만, 경제 위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아무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규직도 안전하지 않다.

대체 지금, 전국 곳곳의 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 정책위원이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릴레이 기고로 고발한다. 이미 '해고'가 벌어지고 있는 쌍용차와 GM대우, 현대차의 '사례'를 통해 2009년 대한민국 노동자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파헤친다.

"현대차 공장에서 기아차를, 기아차 공장에서 현대차를 생산하는 탄력적 생산체계가 답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현대·기아차 차종 간 혼류생산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 일단 기아차가 혼류생산으로, 현대차는 전환배치 합의로 물꼬를 텄다." (<헤럴드경제> 1월 14일자)


현대기아차 그룹 윤여철 부회장의 말이다. 윤여철 부회장이 밝힌 것처럼, '혼류생산'이라는 노사합의는 기아자동차에서 물꼬를 텄다. 지난해 연말의 이 합의로 기아차 소하리공장 카니발 라인에서 프라이드를 함께 생산하고, 화성공장 모하비 라인에서 포르테를 함께 생산하게 됐다.

지난해 연말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한국 실물경제에 막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상용차와 SUV 차량의 판매가 급감하고 승용·소형차 판매만 유지되고 있었다. 승용차를 다른 라인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혼류생산 노사 합의의 표면적 목표였다.

기아차의 합의는 현대차로 이어졌다. 연초부터 현대차는 울산 3공장에서 생산되던 HD(아반떼) 물량을 울산 2공장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하자고 밀어붙이기 시작하더니, 끝내 지난 3월 31일 노사 합의를 끌어냈다. 3공장 대의원회의 상당한 반발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언론은 이 합의에 '물량 나누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혼류생산에 동의한 노조에도 간만에 칭찬이 쏟아졌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노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찬사였다. 이게 대체 어쩐 일일까?

휴업·감산을 통한 임금삭감과 불안감 조성…"심리전은 시작됐다"

▲'혼류생산'이라는 노사합의는 기아자동차에서 물꼬를 텄다. 지난해 연말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한국 실물경제에 막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기아차의 합의는 현대차로 이어졌다. ⓒ프레시안
노조가 이 합의에 도장을 찍게 된 데는 시급제를 기본으로 하는 자동차 생산직의 특성이 작용하고 있다. 임금의 절반 이상이 잔업과 특근수당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물량이 줄면 곧바로 임금도 줄어들게 된다.

지난해 실물 경제의 위기가 시작되면서 소형차만 팔리자, 완성차 업계는 너도나도 소형차 생산에만 '올인'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중대형차나 SUV를 생산하는 라인은 '일 거리'가 없고 프라이드와 같은 소형차 생산 라인은 잔업에 특근까지 공장이 밤늦도록 돌아갔다.

동시에 현대기아차 그룹은 노동자 임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실 기아차는 단체협약에 물량이 없을 때도 잔업시간까지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올해 초 기아차 측은 일방적으로 이를 뒤집었다. "잔업을 실제 하지 않으면 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나온 것이다.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었지만,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투쟁은 며칠 가지 못했다.

현대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SUV 판매 급감으로 울산 2공장의 물량이 줄어들자 사 측은 휴업을 밀어붙였다. 지난해 성탄절부터 1월 11일까지 공장 문을 닫았던 현대차는 지난 2월에는 2주 동안 야간조 휴업을 감행했다. 주간에만 8시간을 근무하는 일명 "8+0" 시스템이다.

이는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실제 물량이 조금 줄기도 했겠지만, 노동자로 하여금 생산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현장에 불안감과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더구나 서로 다른 생산라인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옆 사람과 내 월급봉투가 차이가 난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면 그와 나는 더 이상 같은 '동료'가 아니게 된다.

물론 이런 경쟁과 갈등, 분할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월급제다. 생산물량에 따라 임금이 널뛰는 시급제를 폐지하는 것. 그러나 회사는 이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조도 경제 위기라는 대외적 여건을 핑계 삼아 월급제 대신 혼류생산을 합의해줬다.

"서로를 위한 물량 나누기? 물량을 놓고 일어난 노노갈등은 날로 격화된다"

▲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사 측과 '물량 나누기' 합의를 하기에 앞서 위와 같은 대자보를 공장 안에 붙였다. ⓒ프레시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사 측과 '물량 나누기' 합의를 하기에 앞서 위와 같은 대자보를 공장 안에 붙였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내공장 물량확보, 장기적으로는 경기변동에 대처"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이제 고작 초입부를 지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차종의 생산물량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까?

한 발 더 나아가, 소형차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현대·기아차 뿐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완성차 회사들이 똑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조만간 소형차 또한 공급과잉으로 위기에 직면하게 될텐데, 그 각축전 속에서 현대·기아차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을까?

앞으로는 차종별로 생산물량의 변동이 잦아지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때마다 노동자는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평가받는 '하이브리드카' 양산에 들어가게 되면 회사는 '이제 가솔린 차량 라인에서 하이브리드카를 생산하자'고 나올 것이다.

혼류생산에 대한 현장의 반발에는 그런 불안감이 존재한다. 실제로 3월 19일 현대차지부의 위 대자보가 발표되자마자 3공장 대의원회는 '결정의 비민주성' 등을 비판하며 "물량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같은 달 25일 열린 현대차지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어느 2공장 대의원은 "지부 뜻을 따르자.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동안 2공장에서 가져간 차종 다 가져와라"고까지 했다. '물량나누기' 선언이 현대차지부의 설명처럼 물량다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노갈등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의원대회에서 윤해모 지부장은 "(3공장에) 생산량이 39만 대 이하가 되면 2공장 생산을 중단하면 된다. 확약해 주겠다"고 했다. '2공장에 줬던 물량을 언제든 다시 뺏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반발하는 3공장 조합원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번 합의가 2공장 조합원의 고용안정과 생활임금을 절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GM의 파산이 현대기아차에겐 기회? 단순한 셈법을 통한 헛된 망상일 뿐"

더욱이 세계적인 위기가 깊어질수록 현대·기아차의 추가 감산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GM 등 다른 나라의 자동차 업계의 위기가 현대차나 기아차 등 한국 자동차 회사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3월 6일 포드의 부품사인 비스티온(Visteon) 주가가 2센트로 폭락해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상장이 폐지되기에 이른 것도 이런 전망에 근거가 됐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경쟁사가 망하면 이득을 본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셈법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 자동차 업계의 주요 판매는 내수가 아니라 수출에 있다. 현대기아차의 전체 판매량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수출 길이 막히면 현대기아차의 생산물량은 언제든 곤두박질친다는 얘기다. GM과 비스티온의 파산은 경쟁사의 몰락이기도 하지만, 수십만에 달하는 미국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에 놓인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몇 배의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한 마디로, 구매력을 잃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수로 현대기아차가 판매망을 넓힐 수 있을까? 또 자동차산업의 경우 전후방 효과, 즉 완성차 회사를 정점으로 하청구조가 수직적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문이 무너지면 업계 전체가 붕괴하게 된다. GM과 비스티온의 파산은 이들 기업과 그물망처럼 엮인 납품·하청계열의 동반 붕괴로 이어져,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을 빈곤선 이하로 떨어뜨리게 만들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의 '업'이 본래 헛된 꿈과 희망을 제조해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벌어먹고 사는 것이라지만, 그들의 '희망'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는 또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재편 전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2009년 세계 자동차산업의 총생산능력 9400만 대 가운데 36%인 3400만 대가 공급과잉인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금속노조 토론회에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김병권 팀장이 과잉생산 규모를 1700만 대로 추정한 것에 비추어보면, 다섯 달 사이에 무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추정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자동차산업이 공급과잉이라는 것은 지난해 11월부터 체감된 것이었는데, 그때부터 완성차 회사들이 안 팔릴 것을 알고도 1700만 대를 더 만들었다는 얘긴가? 그렇지 않다. 실제 세계 완성차 회사들은 생산을 줄여 왔다. 그런데 왜 대체 다섯 달 아시에 과잉생산 규모가 2배나 늘어난 것일까?

그 비밀은 "공황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 상태에 빠지게 됐다"는 데 있다. 즉, 생산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살 수 있는 사람이 더 빠르게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기아차에게 GM과 비스티온의 파산이 기회가 된다고?

'꿈의 공장'을 향한 그들의 질주…"노동조합은 한 발 한 발 무너지고 있다"

현대차지부는 "장기적으로 '다차종 생산체제' 설비 구축이 필요하다고"까지 언급했는데, 이는 사용자의 오랜 소망인 '꿈의 공장'이다.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무려 5~7종의 차를 뽑아내고 물량 변동에 따라 생산차종을 이 라인에서 저 라인으로 옮길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다차종 혼류생산'이다.

그런데 이 꿈이 현실이 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숙제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현장의 통제권이 노동조합에게 있는 한 이뤄지기 어려운 꿈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혼류생산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 노동 강도가 세지기 때문이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이는 명백하다. 카니발 생산라인에서 프라이드를 1:2 투입비율로 혼류생산 한다면, 한 노동자는 카니발 1대를 조립한 후 프라이드 2대를 조립해야 한다. 그런데 차량 크기부터 다르고 내장과 외장에 달아야 하는 부품도 엄청나게 다르다. 자연히 자세와 작업방식도 달라진다. 여기에 북미수출차량, 유럽수출차량 등으로 사양이 더 다양해지고 운전석 위치까지 바뀌게 된다고 상상해보면 해당 노동자는 끔찍한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현대기아차는 노조로부터 혼류생산 합의를 얻어냈다. 그 다음은? 생산유연성 극대화, 즉 전환배치 자유를 얻고자 할 것이다. 지금은 차종을 옮기지만, 나중엔 사람을 옮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미 쌍용차와 GM대우는 전환배치 합의까지 얻어냈다.

회사는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다. 혼류생산에도 불구하고 생산물량이 적은 라인에 휴업을 실시하는 '공포감 조성' 작전이다. 혼류생산 합의에는 기존 프라이드 라인에 1년 생산물량 14만5000대를 보장한다는 노사 합의가 덧붙여 있다. 이로 인해 카니발 라인이 충분한 프라이드 물량을 얻기 어렵게 되니 기아차는 카니발 라인에 한해 4월 한 달 동안 매주 월요일과 금유일 휴업하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임금을 볼모로 한 '라인별 물량 경쟁'을 회사가 앞장서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노동자에게 두 가지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전환배치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월급봉투가 얇아지는 휴업을 선택할 것인가? 물량에 관계없이 생활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월급제가 이뤄지지 않는 한, 답하지 참으로 고약한 이 질문 앞에 노동조합은 한발 한발 무너지고 있다.

"파업으로 라인이 서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가 그들의 마지막 꿈이다"

게다가 이것은 궁극적으로 노동조합의 파업권마저 무력화할 것이다. 윤여철 부회장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자.

"현대차 공장에서 기아차를, 기아차 공장에서 현대차를 생산하는 탄력적 생산체계가 답이다."

만일 이러한 기업 울타리를 넘어 현대·기아차 사이에서도 혼류생산이 이뤄지게 되면 현대차가 파업에 들어가면 기아차가 대체 생산을, 기아차가 파업에 들어가면 현대차가 대체 생산을 하게 된다. 이미 현대기아차가 진출해 있는 해외 공장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건설 중인 완성차 공장에서 현대차 외에 기아차를 혼류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러시아 언론은 현대차 아반떼와 기아차 씨드(cee'd) 생산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

현대차는 작년 말 가동에 들어간 체코 공장에서 기아차 미니밴인 'YN'을 생산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체코 공장은 애초 연산 30만대 규모로 i30 차량을 생산하기로 했지만 동유럽 경기 악화로 국외 물량 조정 차원에서 YN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

이를 위해 기아차 노조와 YN 현지 생산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아차도 올 하반기 완공을 앞둔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포르테와 동시에 현대차 i30, 아반떼를 함께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매일경제신문> 3월 17일자 "현대차 러시아 공장서 기아차도 생산"


또 다른 기사의 행간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미 정부 차원에서도 충분히 교감하며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완성차업계 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에서 현대차의 혼류생산 합의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고,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생산라인 가동 중지 사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후속 대책이 나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4월 7일자


전환배치·혼류생산을 통해 그들이 노리는 것은 경제 위기 극복이라기 보단, "생산라인 가동 중지 사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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