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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쌍용차의 오늘은 GM대우의 내일이다"

[위기의 자동차, 위기의 노동자②] GM대우 고용특별위 합의서, 의미는?

경제 위기로 인해 제조업,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실질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도 큰 의미가 없다. 현재 먼저 '해고통보서'를 받아들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이지만, 경제 위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아무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규직도 안전하지 않다.

대체 지금, 전국 곳곳의 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 정책위원이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릴레이 기고로 고발한다. 이미 '해고'가 벌어지고 있는 쌍용차와 GM대우, 현대차의 '사례'를 통해 2009년 대한민국 노동자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파헤친다.

1. 노사는 생산물량 감소에 따른 공장운영계획 변경(JPH 조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 한다.

(가) 각 공장은 변경 물량에 따라 라인운영 속도를 적절하게 변경 한다.
(나) 인력 전환배치와 관련하여서는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공정 특성 및 변경 인원 등을 고려하여, 해당부서에서 성실하게 협의하고 원만하게 처리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 한다.
(다) 일부 공정은 현 운영방식을 유지함을 원칙으로 하며, 세부사항은 부서에서 논의 한다.

2. 노사는 현 JPH 조정과 관련하여, 직원들의 고용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3. 노사는 제조 경쟁력 향상이 종업원들의 고용 및 근로조건 유지, 개선에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제조경쟁력 개선, 정착해 나아가기 위하여 상호 협조 한다.


지난 3월 20일 GM대우차 노사 간 채결한 '고용안정 특별위원회' 합의서 전문이다. 여기서 JPH(job per hour)란 시간당 생산대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 수치는 자동차 생산라인, 즉 컨베이어벨트의 속도를 의미한다. 쉬운 말로 '노동 강도'다.

생산물량 감소에 따른 조정이라면 당연히 JPH 저하(down)를 의미할 것이다. 라인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항의 라인속도(JPH) 조정과 함께 (나)항의 '전환배치' 합의가 함께 필요했던 것은 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생산차종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라인속도만 줄이면 되는 것이지 인력을 전환배치할 이유가 없다. 노동자들은 그저 본래 일하던 공정에서 낮아진 라인속도에 맞추어서 작업하면 되는데 말이다.

바로 이 두 조항 속에 다른 얘기가 숨어 있다. 라인속도를 줄이면서 공정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일자리 수를 줄이려는 것이다. 즉, 라인속도가 낮아졌으니 기존에 2명이 하던 작업을 1명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정 수와 함께 일자리 수가 줄어들게 된다. 결국 라인속도는 줄지만 작업공정 수를 늘려 노동 강도는 줄어들지 않게 된다.

"절대로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장사치'의 근성이 다시 확인되는 지점이다.

정규직 전환배치와 비정규직 집단해고는 항상 함께 등장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자리 수가 줄어들면 기존 노동자의 고용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분명하지 않겠는가?

물론 우선 치워지는 자리는 비정규직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들어가기 위해 '전환배치'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 어디선가 본 듯하지 않은가?

낯익은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쌍용차에서 벌어진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쌍용차는 지난해 10~11월 정규직의 전환배치에 대해 노사합의를 했고 곧이어 비정규직 300여 명에게 '희망퇴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규모가 엄청나다. 금속노조 GM대우비정규직지회(지회장 이대우)에 따르면 부평공장에서만 무려 90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이 해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부평공장 1차 사내하청 노동자 숫자가 1370여 명이니, 900명이면 전체 비정규직의 무려 3분의 2에 해당된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이 잘려나간 자리에 900명의 정규직이 전환배치될 예정인 것이다.

GM대우비정규직지회가 밝힌 '부서협의 진행상황'에 따르면, 부평2공장의 조립2부는 조당 잉여 인원 81명, 총 162명을 전환배치하기로 했고, 도장2부는 조당 27명, 총 54명 잉여인원 발생으로 조별 3명 삭감을 합의했다. 뿐만 아니다. 생관2부는 비정규직이 일하는 박스보급 공정을 정규직으로 대체하기로 했고, 부평 1공장 조립1부의 경우에도 사측이 총 219명의 정규직 인력 전환배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 4월 21일 전 2주일 동안은 부평공장 전체가 '셧다운(전면휴업)'에 들어간다. 어쩌면 비정규직에게 셧다운 전날인 4월 7일은 부평공장에서 일하는 '마지막' 출근일이 될 수도 있다. ⓒ연합뉴스

언급된 곳만 합쳐 봐도 벌써 450명 이상의 전환배치가 이미 이뤄지거나 추진되고 있다는 얘기다. 차체1부와 2부, 도장1부, 생관1부 등은 아직 협의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이 정도다. 나머지 부서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날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직 900명 정리해고"설은 헛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의 진행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 3월 20일 합의서가 나온 직후부터 부서별 협의가 시작됐고 채 2주일도 지나지 않아 거의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 라인속도를 변경하고 전환배치를 완료해 생산을 시작하는 시점은 4월 21일이다. 불과 한 달 동안 합의부터 실제 인력배치의 변화까지 다 이뤄진 셈이다.

4월 21일 전 2주일 동안은 부평공장 전체가 '셧다운(전면휴업)'에 들어간다. 어쩌면 비정규직에게 셧다운 전날인 4월 7일은 부평공장에서 일하는 '마지막' 출근일이 될 수도 있다. 이미 6일부터 하청업체들은 "21일부터 출근하지 마라. 이번달은 70% 휴업급여가 나가지만 5월부터는 알 수 없다"며 사실상의 해고 통보를 하고 있다.

'일석사조' 노리는 기업의 '한 쌍의 구조조정' 전략

쌍용차와 GM대우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비정규직이 일정 규모 이상 존재하는 완성차 공장의 경우, 정규직 전환배치와 비정규직 집단해고가 구조조정의 한 쌍으로 이뤄지고 있다.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에게 생산의 감소의 책임을 먼저 지우려 하는, 참으로 비열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다.

외환위기 때는 없던, 새로운 구조조정의 형태를 만들어 낸 기업의 1차 목표는 말 그대로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사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공격이 생산현장 전반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대체 이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또 한 번 갈라놓을 수 있다. 정규직에게는 "역시 비정규직이 우리 고용의 방패막이"라는 인식을 두텁게 할 수 있다. 더불어 정규직의 전환배치를 노조에게 얻어내면서 현장통제가 손쉬워 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규직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공세가 가능해 진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간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먼저 합의를 요청한 것은 회사라 할지라도, 여기에 도장을 찍어준 노조도 "비정규직을 배신했다"는 비판에서 면죄부를 얻긴 힘들다.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더 슬픈 일은 실제로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꿰차고 자기 고용을 보장 받은 정규직의 의식이 극도로 보수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 번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아야만 안전하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충분히 또 한 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연대는 설 자리가 없다.

결국 이런 구조조정을 용인하게 될 경우 완성차 정규직노조의 계급적 기반은 급속도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노사협조주의가 득세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수 천 명을 정리해고하는 것보다 더 사용자가 열망하는 목표일지 모른다.

"전환배치로 현장의 통제권도 사용자에게 간다"

만일 비정규직 집단해고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규직 전환배치 합의는 괜찮을까?

아니다. 전환배치의 자유를 회사가 갖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노동자를 나사못처럼 이쪽 라인에 박았다가 다시 빼서 저쪽 라인에 박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눈엣가시 같은 노조 간부를 생산라인으로부터 먼 곳으로 돌려버리거나, 혹은 매우 어려운 공정을 맡기는 것도 손쉬워 진다. 현장의 통제권을 사용자가 갖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 GM대우에서 진행될 전환배치는 별도의 OJT(On the Job Training : 직무훈련)조차 없을 것이라고 한다. 즉, 전환배치된 노동자가 완전히 새로운 작업공정에 익숙해질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생산물량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GM대우는 높은 편성효율로 노동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숙련되지 않은 공정에서 회사의 '생산성 향상' 압박에 시달릴 전환배치된 사람들의 노동 강도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쌍용차는 최근 강하게 임금·복지를 양보하라고 노조를 밀어붙이고 있다. 부품사에서도 "임금삭감을 받아들일 것인가, 정리해고를 당할 것인가"를 협박하며 양보교섭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노사관계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회사는 하나를 양보하면 둘, 셋을 더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의 깊이가 더 깊어질수록 사용자는 매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GM대우는 전형적인 옛날이야기 속 '호랑이'와 같다. 미국 발 금융 위기와 함께 '빅3'의 위기가 깊어지던 지난해 12월, 회사는 성과급 100% 지급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고 노조는 이를 수용했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특별단체협약을 통해 일부 복지혜택을 놓고 교섭이 이어졌고, 결국 3월 4일, "△퇴직금 중간정산, △체육대회 및 야유회, △하기 휴양소, △장기 근속자 선물지급, △미사용 고정연차, △군산 사원아파트 건립 등을 2010년 7월까지 중단한다"는 합의안이 나왔다. 그 사이 계속되는 감산과 휴업으로 노동자의 임금은 무려 40% 가까이 줄어들었는데도!

복지 양보가 이뤄진지 보름이 지난 3월 20일에는 처음에 얘기한 '고용안정 특별위원회' 노사합의가 이뤄졌다. 정규직 전환배치와 비정규직 집단해고를 인정한 이 합의가 나온 지 열흘만인 3월 31일, 회사는 노조에 보낸 올해 임금교섭 요구안에서 "△생산직 10% 임금삭감, △자녀학자금, 귀성비, 하기휴가비 등 단체협약 개악, △양평동, 동서울 정비사업소 매각" 등을 요구했다.

노동자는 매번 "이번 양보가 마지막"이라며 한발 한발 물러서고 있지만 그 끝이 어디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노동자의 생존 자체마저 내달라 할지도 모른다.

"오늘 쌍용차는 GM대우의 내일, 지금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

▲ 오늘의 쌍용차는 GM대우의 내일다. 또 지금 쫓겨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 ⓒ프레시안
그런 점에서 오늘의 쌍용차는 GM대우의 내일다. 또 지금 쫓겨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

상하이차의 법정관리 신청 직전인 지난해 10~11월 쌍용차에서 벌어진 일이, 4개월 후 지금 똑같이 GM대우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쌍용차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에 대한 집단 해고도 GM대우에서 조만간 일어날 일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GM과 크라이슬러의 '파산을 통한 회생' 또는 '일부 파산과 일부 매각'이라는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GM의 파산보호신청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GM대우에서도 정규직 희망퇴직과 추가 임금삭감 요구가 들어올 것 또한 거의 확실하다. 판매망의 90%를 GM에 의존하고 있는 GM대우의 운명은 전체 GM의 운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즉, 한발 한발 양보하는 것의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전환배치 합의에서 "일부 공정"은 예외로 빠졌는데 이는 애로공정·기피공정을 말한다. 작업방식이 매우 어렵고 힘들어 정규직 노동자가 가기 싫어하는 곳은 예전처럼 그대로 비정규직으로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얇은 월급봉투에 고용도 불안한 비정규직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가장 어렵고 힘든 공정을 담당하는 길 밖에 없다니 그 자체도 불합리한 일이지만,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 언젠가는 그 자리 역시 비정규직을 밀어내고 정규직을 앉힐 것이다.

그리고 나면 더 이상 방패막이가 될 비정규직은 공장 안에 없다. 과연 이 끔찍한 악순환의 서막이 오른 지금, 노동조합은 어디에 있는가?

눈을 감는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학살'이 없던 것이 되거나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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