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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일 한국, 90년대 맨체스터를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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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일 한국, 90년대 맨체스터를 되살리다

[김작가의 음담악담] 오아시스, '크레이지 피플'과 두 번째 조우한 날

오아시스가 지난 해 일곱번째 앨범 [Dig Out Your Soul]을 발표하고 월드 투어를 시작했을 때 그들이 한국을 다시 찾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확신을 했을 뿐이다. 2006년 2월 첫 내한공연을 마친 후 "크레이지 피플"을 외치며 한국 관객들의 열정과 호응에 잔뜩 고무됐던 그들이었다. 그 맛을 한 번 봤는데, 다음 투어에 어찌 한국을 빼놓을 수 있으랴.

과연, 그들은 한국을 다시 찾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원화가치까지 폭락한 사정을 감안, 스스로 개런티를 낮췄다는 후문까지 전해질 정도로 오아시스에게 한국은 꼭 다시 오고 싶은 장소였나 보다. 공연 전날인 3월 31일 밤 입국, 다음 날인 4월 2일 아침에 출국한 짧은 여정이었지만 역시 잊지 못할 스케줄이었을 거다. 그들에게는 물론이고,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가득 메운 9천여의 관객에게도. 또한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없었던 다른 수많은 팬들에게도. 그리고 두 번째로 오아시스 공연을 본 것임에도 3년전과 똑같은, 그러나 또 다른 감동을 느꼈던 나에게도.

▲ ⓒ옐로우나인

뮤지션의 뮤지션

직업이 평론가인지라 웬만한 공연은 다 챙겨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무뎌진다. 설렘도 줄어든다. 그 날은 달랐다. 어디에 차를 대놓고 어떤 길로 체조경기장까지 향했는지 까맣게 잊어먹을 정도로 마음이 부풀어있었다. 오아시스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30대를 살아가고 있고 90년대 대중문화의 홍수를 맞고 자란 이들에게 오아시스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영국 음악의 동시대를 체험하게 했고, 고고하고 걸러진 언어가 아닌 유머와 독설로 록 음악도 충분히 가십이 될 수 있다는 재미를 일깨워줬으며, 무엇보다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듣고 싶은 노래,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를 수없이 만들어낸 그들이다. 게다가 2005년의 [Don't Believe The Truth]로 부활의 조짐을 보이더니 [Dig Out Your Soul]로 다시 하나의 권위를 세운 오아시스다.

▲ ⓒ옐로우나인
만약 오아시스의 지난 앨범이 없었다면 가뜩이나 별볼일없었던 2008년의 영국 록계는 더욱 시시해졌을 게 틀림없다. 노장의 건재를 과시한 정도를 넘어, 사자의 부활을 선언한 걸작이 바로 [Dig Out Your Soul]이다. 9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아니라 중견의 밴드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스스로 답을 찾은 앨범이다. 그러니 이 앨범이 오아시스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 차트 1위 곡을 내지 못했다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The Shock Of The Lightening' 'I'm Outta Time'같은, 차트 성적과 상관없이 훌륭한 노래들이 가득하니까.

흥미로운 건 이 앨범을 유독 뮤지션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록이 모두 담겨있다. 곡작업하는 데 혹시 방해가 될까봐 오히려 듣지 않게 된다"는 차승우(문샤이너스)의 말이나, "그 전에는 오아시스에게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앨범은 너무 좋다. 사운드도 신비하고 노래들이 와닿는다"라는 임주연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들 모두 이 영국 출신의, 갓 일본 공연을 끝내고 바다를 건너온 록의 지존을 지켜봤다. 보도된 바 대로 가수 김장훈 뿐만 아니라, 크라잉 넛과 문샤이너스, 마이 앤트 메리 등 여느 때 보다 많은 뮤지션들을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It's just Rock N' Roll! ('ROCK & ROLL STAR' 가사 중)

공연 예정 시간이었던 8시 30분에서 15분 정도 넘겼을까, 불이 꺼졌다. 객석에서의 거대한 함성이 오아시스의 공연 시작을 알리는 로고 송 'Fucking in the Bushes'와 뒤섞여 요동쳤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은 객석에서 보통 여성들의 소프라노가 더 높지만 이 날은 소프라노와 남성들의 테너가 한데 섞여 웅장함을 더했다. 그리고 노엘 갤러거(기타, 보컬), 리엄 갤러거(보컬), 겜 아처(기타), 앤디 벨(베이스)이 등장했다. 드럼과 키보드, 두 명의 세션과 함께.

첫 곡 'ROCK & ROLL STAR'. 거두절미였다. 데뷔 앨범이자 오아시스 영광의 나날을 시작한 [Definitely Maybe]의 첫 곡인 이 노래는 보통 공연의 하이라이트에 쐐기를 박는 곡이다. 이런 곡을 맨 처음에 포진시켰다. 4번 타자를 1회 첫 타자로 출격시킨 격이었다. 그 4번 타자는 첫 투구를 가뿐히 담장으로 넘겼다. 분위기는 달아오를 틈도 없이, 시작과 동시에 정점에 놓였다. 객석에서의 미친 듯한 싱얼롱, 미친 듯한 점핑, 오늘까지만 살고 그만 살겠다는 듯한 환호가 내내 이어졌다. 'The Shock Of The Lightning' 'Meaning Of Soul'같은 최근 곡들을 연주할 때도, 'Cigarettes And Alcohol'같은 초기 곡들을 연주할 때도 한결 같았다.

리엄은 제 자리에서 허리를 숙인 채 특유의 신비롭고도 무표정한, 애수와 자아도취가 섞인 목소리로 노래했다. 노엘을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별 다른 액션없이 제 자리에서 연주했다. 3년 전과는 달리 'Meaning Of Soul' 'Masterplan' 'Don't Look Back In Anger' 등 노엘이 보컬을 맡은 곡들을 많이 연주한 게 차이였을까. 그 외에는 모든 게 다름없었다. 여전히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돌린다던가, 화려한 액션을 펼치다던가 하는 일반적인 록 밴드의 공연에서 기대하는 퍼포먼스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건 애시당초 오아시스의 공연과 거리가 멀다. 오직 노래에 노래만이 있을 뿐이다. 옛과 지금을 아우르는 수많은 명곡의 향연.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리고 마이크앞에서 성대를 울리는 것만으로도 수천, 수만의 관중을 울리고 웃기고 흥분시키는 노래와 노래들이 있을 뿐이다.

축구에서 중요한 건 화려한 골 세러모니가 아니라 골 그 자체라는 걸 아는 밴드. 그게 오아시스다. 그런 태도로 군웅할거였던 90년대 영국 록계 최후의 승자로 군림했다. 약 15년간 전세계를 누벼왔다. 첫 번째나 두 번째나 한국에서 만난 그들은 그토록 변함이 없었다.

노동자의 아들들, 멋지게 늙었더라

1991년 결성된 오아시스를 20년 가까이 지켜온 두 형제, 리엄과 노엘에게서는 꼭 그만큼의 세월이 느껴졌다. 3년 전에 비해 세월이 한꺼풀 덧씌워져 있었다. '메이드 인 브리튼'을 과시하는 듯했던, 시크하면서도 아름다웠던 리엄에게서는 어쩔 수 없는 중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팬들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예전의 노래들 중 어떤 곡들을 완벽히 소화하기에 그의 성대는 힘에 부쳐 보였다. 예전의 그 날카로웠던 엣지(edge)감이 세월따라 흘러간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3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었다는 소회와 함께 나에게도 그런 세월이 육체의 곳곳에 묻어있으리라는 동년배로서의 씁슬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가 빛날 수 있었던 건 바로 밴드이기 때문이다. 리엄의 뒤를 받쳐주는 세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 ⓒ옐로우나인
특히 그의 형, 노엘 갤러거의 세월은 씁쓸하지 않았다. 한 때 (그리고 지금도 약간) 입만 열었다 하면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1면을 장식하던 슈퍼 독설가, 그리고 밴드에 있어 절대 독재자로 군림했던 전제군주는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겼다. 말 그대로 지난 세월에 의혹을 가지지 않는다는, 불혹의 아우라가 노엘에게 있었다. 얼굴의 주름도 그의 빛나는 기타 실력과 송라이팅 능력을 잠재우지 못했다.

마흔이 넘은 남자는 얼굴로 말한다 했던가. 제 아무리 독설을 퍼붓고 후배 밴드들을 조롱해도 그것이 단순한 악의에 지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런 얼굴은, 그런 음악은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후배 밴드들(예를 들어 하드 파이)이 오히려 이제 '왜 우리는 욕해주지 않는거냐'며 그에게 독설을 간청하는 것이리라.

모든 공연이 끝나고 노엘은 다른 멤버들보다 늦게 퇴장했다. 객석을 응시하며 이 밤을 기억하려는 듯 했다. 여유, 마음으로부터의 기쁨, 그리고 성취감으로 가득찬 그 때의 얼굴은 말하는 듯 했다. 갈수록 다른 멤버들이 곡작업에 참여하는 비중을 높이며 독재를 완화하고 있지만, 결국 오아시스의 오늘을 만들어내고 지켜온 건 노엘 자신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듯 했다. 변방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뮤지션 그 누가 의기양양하지 않겠느냐만, 오아시스가 유독 특별해보였던 건 바로 그 순간 때문이었다. 맨체스터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로큰롤 소년이, 그저 '피'의 힘으로 존경받는 왕세자와는 다른 권위를 스스로 일궈낸 중년이 된 것이다.

'크레이지 피플', 공연의 진짜 주인

"이번에 오아시스 공연 갈거에요?"라고 묻는 나에게 선배 기자는 답했다. "가야지. 관객들보러."

그렇다. 이날 공연의 감동 중 반절 이상은 객석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는 9천여의 관객들. 테너와 바리톤과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장엄한 아리아. 의도와 합의 따위 전혀 하지 않아도 오아시스의 지휘 아래 울려 퍼지는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가 4월 1일의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 있었다. 록 공연장 특유의 자유분방함, 또는 카오스를 하나로 묶는 일체감, 또는 코스모스였다. 물론, 노래를 모르는 이 조차 따라 부를 수밖에 없는 오아시스의 그 찬란한 송가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당해내기 힘든 한국 관객의 열성은 근 몇년간 열렸던 각종 내한공연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3년 전 오아시스의 첫 내한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머리에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너희들 저번과 똑같구나"라며 감탄하던 리엄 갤러거는 탬버린을 객석에 던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마지막 곡 'I Am The Warlus'때는 객석으로 내려가 퇴장하는 진기한 풍경을 연출했다(내가 아는 한, 리엄이 객석으로 내려가는 일은 시비거는 관객을 몸소 응징할 때 밖에 없다). 앵콜 타임 때 홀로 등장한 노엘 갤러거는 "한국 팬들만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라더니 어쿠스틱 기타를 튕기며 'Live Forever'를 연주했다. 당연히 객석의 싱얼롱이 울려 퍼졌다. 심지어 어쿠스틱 기타로는 연주할 수 없는 기타 솔로까지 관객들이 합창으로 재현했다.

오아시스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한 노래는 'Don't Look Back In Anger'다. 노엘이 보컬을 맡는 이 곡은 후렴구를 관객들이 대신 부르는 게 관례다. 역시 3년전과 마찬가지로 객석에서는 싱얼롱, 아니 '떼창'이 체조 경기장을 가득 매웠다. 데시빌을 측정했다면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가진 총 7회의 공연을 합친 그것에 뒤지지 않을, 기쁨과 결사의 떼창이었다. 과연, 선배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오아시스를, 한국 관객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관객의 수를 몇 제곱한 그 성원의 탓에, 오아시스는 새벽까지 대기실에서 뒤풀이를 가졌다. 그 시간까지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포옹을 해준 건 물론이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노엘은 취해 있었다. 리엄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우리의 90년대를 생각나게 하는 공연이었다"는 짤막한 후기를 남겼다.

2일 출국하면서도 그 기쁨이 이어졌나 보다. 전날 한국과의 경기를 마치고 출국하는 북한 축구대표팀 때문에 공항에 도열해있는 경찰들을 보며 "우리 때문에 나와있는 거 아니냐"며 손을 흔들어주고 웃었다고 하니. 물론,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털복숭이 영국인이 누군지 알리 없는 경찰들은 어안이 벙벙했을테지만.

▲ ⓒ옐로우나인

세트리스트

ROCK & ROLL STAR
LYLA
SHOCK OF THE LIGHTNING
CIGARETTES AND ALCOHOL
MEANING OF SOUL
TO BE WHERE THERE'S LIFE
WAITING FOR THE RAPTURE
MASTERPLAN
SONGBIRD
SLIDE AWAY
MORNING GLORY
AIN'T GOT NOTHING
IMPORTANCE OF BEING IDLE
I'M OUTTA TIME
WONDERWALL
SUPERSONIC

(앙코르)
LIVE FOREVER
DON'T LOOK BACK IN ANGER
FALLIN' DOWN
CHAMPAGNE SUPERNOVA
I AM THE WAL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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