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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 대신 '○○님' 어때요?"

[한국에서 살아보니] '호칭 혁명'을 꿈꾸며

지역 모임에 갔더니 회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름에다 선생님을 보태서 누구누구 선생님 하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선생님이 되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젊은 회원에게도 누구누구 선생님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다고 하니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이의는 없지만 이름에 꼬박꼬박 선생님까지 덧붙여 부르다보면 번거롭기는 하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진짜 선생님들이 들으면 조금 억울할 것 같다.

요즈음 교회에서는 누구나 서로를 집사님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 모임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종의 호칭 평준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편의상 호칭이 꼭 사실은 아니니 아무래도 거품이 들어간 느낌이다.

우리는 관습상 상대방을 이름만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름으로 부를 때는 친구사이거나 잘 아는 어른이 아이들을 부를 때다. 또 상대방을 직접 가리키는 이인칭이 없다. '당신'이나 '너'가 있기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두루 쓸 수는 없다. 사정이 이러니 호칭이 여간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부를 때는 나는 아주머니 혹은 아줌마가 된다. 조금 있으면 할머니라고 불리울 수도 있겠다.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을 부를 때는 여자라면 아가씨, 아주머니, 할머니, 남자라면 젊은이 혹은 총각, 아저씨, 할아버지 중 하나를 골라서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 호칭 상으로 갑자기 친척이 된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길에서 모르고 아줌마, 아저씨 하고 부를 때는 그렇지 않은데 명함을 보고나서 교수님, 박사님, 장관님 하고 직함을 부르게 되면 태도가 공손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직함이 없는 사람은 이름을 알게 되면 누구누구씨로 부르게 된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한테는 이름을 알더라도 김 할머니, 이 할아버지라 하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장에서 예를 들어 과장이라면 나의 상사들은 나를 김과장으로 부를 것이다. 반면 내 아래 직원들은 나를 과장님으로 부를 것이다. 나와 같이 과장이었던 젊은 최과장이 실장으로 승진을 하면 나는 그를 최실장님으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

평준화 되지 않는 호칭으로 상대방을 부를 때는 호칭 속에 상대방과 부르는 사람과의 상하 관계가 드러난다. 또 상대방 개인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성별과 연령대, 그리고 위계질서 속에 얽혀있는 그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가 드러난다.

한국인들이 쓰는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 직함인데, 여기에는 그 사람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계급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직함만으로도 교육정도, 소득수준을 대강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호칭에서부터 벌써 사회적인 차별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호칭은 관습인 동시에 사회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하면 관습도 변하기 마련이다. 한 신문보도에 의하면 기업에서는 '호칭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권위주의적 호칭을 포기하고 수평적 대화를 지향하는 호칭으로 바꿔가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독특한 호칭문화가 오늘날 수평적이고 개인의 능력 발휘를 중시하는 현대 기업문화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수산물 전문점 '총각네 야채가게'에는 직급 개념이 없다. 대신 직원 140명 모두 각자 한글 별칭을 갖고 있다. 주 고객인 주부들이 직원을 친근감 있게 대할 수 있게 한 회사 차원의 배려다. 소비자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는 '과장' '대리' 등으로 불려야 할사람들이 '변강쇠' '이장' 등으로 불리므로 '나는 회사의 부속품'이라는 느낌이 없다. 이 회사 이영석 대표는 "내 호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빵'이었다"며 "그러나 그것마저 사장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 같아 '진짜총각'으로 바꿨다"고 했다."
"CJ그룹 구성원 1만명은 모두 '님'이다. 19살 사원도 '아무개 님'이고 55살 이사도 아무개 님'이다. 그래서 언성을 높일 일이 없다."
"주식회사 태평양도 '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소규모로 시도를 해오던 이 회사는 2001년 12월 히딩크 감독의 대표선수간 호칭 파괴 지시 발언에 자극받아 모든 계열사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창립(1995년) 때부터 이름 뒤에 '씨'를 호칭으로 붙였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02년 8월부터 '님'제도로 바꿨다."
( 이상 <매일경제> 2006. 2.20자 보도 )


별칭으로 부르든 누구누구님으로 부르든 신선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존칭을 붙인다면 직급이나 직업에 존칭을 붙일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존칭을 붙여야 마땅한 일이다.

덴마크의 직장에서 사장과 일반 사원이 거의 대등한 관계로 농담도 하고 발언도 하는 것은 아무런 존칭을 붙이지 않고 성도 아닌 이름만으로 부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처럼 사장님, 전무님 하고 님자를 붙여서 직급에 존경을 표시하면서는 이런 관계를 이루기 어렵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변해가는 것이 많다.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바뀌어간다고 믿고 싶다. 기업에서 일기 시작한 호칭 변화가 우리 일상에도 미치기를 기대한다.

○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4> 청계산이여, 안녕
<5> "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6> "기억 속 푸른 하늘, 다시 볼 날은 언제쯤?"
<7> "침 뱉을 일 많아도, 길에서는 참읍시다"
<8> "아빠, 빨리 들어오세요"
<9>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식당
<10> 어른도 교복 입는 나라?
<11> "여자라서 못한다고요?"
<12> "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13> 윗사람, 아랫사람
<14> 축 합격 ○○○?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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