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얼마 전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교육제도를 본받아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추켜세우는 발언을 해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사실, 상당히 오래전부터 많은 미국 지식인들이 미국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우려해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나 일본의 교육제도에 주목하였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거나 자퇴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골치 거리다. 학교를 다녔는데도 자기나라 글을 잘 쓰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덧셈과 곱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국제 수학경시대회니 과학경시대회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늘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그러니 미국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도 하다. 우리나라의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는 하지만, 글을 쓰지 못하거나 덧셈 곱셈을 못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가르쳐서 탈이라고 한다.
이런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골치 아픈 교육문제는 공교육이라기보다는 사교육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문제 하면 으레 나오는 얘기는 사교육 문제다. 최근의 공식 통계자료로는 사교육비의 규모가 21조 원이라고 하지만, 2007년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실제로 사교육에 쓴 돈의 규모는 정부의 교육예산보다 많은 약 33조 원이라는 조사결과도 있고 국방예산에 버금가는 약 22조 원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대략 21조 원 내지 33조 원이라는 얘긴데, 어떻든 어마어마한 규모임에는 틀림없다.
사교육 극성이 자녀를 가진 학부모에게 엄청난 정신적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애를 못 낳겠다고 말할 지경이다. 특히 학부모들을 약 오르게 하는 것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 딱한 사정이다. 학원에 안 보내고 과외를 안 시키면 왠지 내 아이들만 뒤쳐지는 것 같은 찜찜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있는 돈 긁어모으고 없는 돈 쥐어짜서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려고 애를 쓴다.
▲ 29조 원에 가까운 추경이 발표됐는데, 학교교육시설 환경개선에 4대강 정비사업을 위해 추가된 금액보다 적은 금액이 배정돼 있다. 현 정부는 교육보다 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려나. ⓒ프레시안 |
정부가 공교육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29조원에 가까운 추경예산이 발표되었는데, 일자리 창출효과를 두고 여야간에 큰 견해 차이를 보였다. 추경예산 내역을 보면, 학교교육시설 환경개선에 1조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 금액은 4대강 정비를 위해서 추가된 금액보다 적다. 이 정부는 앞으로도 교육보다는 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려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교육의 비대화가 공교육 부실 탓만은 아니다. 다른 더 심각한 요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의 주된 목적은 자녀들의 입시경쟁력을 남보다 높임으로써 소수의 명문 학교에 입학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오래 동안 사교육의 문제를 일선 현장에서 직시해온 어떤 교수는, "사교육은 입시관문을 통과하는 요령만 가르칠 뿐 지식이나 교양의 함양과는 거리가 멀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사교육열은 "신분상승의 열망"이라고 말하는 교수도 있다. 정말 사교육이 그런 것이라면 그 자체로서도 문제지만 사회 전체로서 막대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왜 그런가? 우선, 사교육이 입시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해보자. 효과가 없는데 돈을 썼으니 그 돈은 완전히 헛돈이 된다. 반대로, 사교육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자녀를 가진 가정은 저마다 경쟁적으로 사교육에 돈을 쓸 것이다. 이 결과 모든 자녀들의 입시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소수의 명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문학교의 입학정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는 명문학교도 아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입시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보면 사교육에 투입된 그 어마어마한 돈은 완전히 낭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교육의 문제는 경쟁상대가 그만두지 않으면 자신도 멈출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와 아주 비슷하다.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하려고 치열한 군비확장 경쟁을 벌였다. 이와 같이 군사대국들이 서로 군비확장 경쟁을 벌이면 모두가 똑같이 강해지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군사력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를 압도할 수 없다. 서로 군비경쟁을 하다보면 그 어느 나라도 애당초 원하는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돈만 날리게 된다. 즉 군비확장에 쓴 돈은 헛돈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모든 나라들이 군비경쟁을 중지하기로 합의하고 일제히 군비감축을 철저하게 이행하였다고 하자. 모든 나라들 사이의 군사력 균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단지 군비경쟁에 쓰였을 돈만 고스란히 남는다. 이 돈을 다른 건설적인 용도에 사용한다면 모든 나라들이 전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 경제위기로 저소득층 부모의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도 운영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번 추경에 공부방들을 위한 지원금은 한푼도 포함도 있지 않다. ⓒ프레시안 |
이와 같이 자녀의 입시경쟁력을 높이려는 부모의 욕심이 사교육 비대화의 근본원인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교육을 대폭 강화한다고 해서 사교육이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정부는 2010년부터 3불(고교 등급화 불가, 본고사제 불가, 기여입학제 불가) 정책을 완화하고 "선택과 경쟁"에 입각한 교육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런 정책은 입시경쟁 열기를 높여서 도리어 사교육을 더 키울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교육 강화와 더불어 사교육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이다. 다시 말해서 사교육 그 자체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교육 그 자체가 엄청난 사회적 낭비임을 우리 국민 각자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마치 군축협상을 하듯이 사교육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자녀의 입시경쟁력을 높이려는 학부모의 마음속에는 자녀를 돈 잘 벌고 출세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돈벌이나 출세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행복을 위한 수단이다. 우리 각자가 정말로 바라는 최고의 가치는 결국 각자의 행복이다.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사회에서는 고소득이나 출세가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는 점차 떨어진다. 그 대신 다른 것들, 예컨대 화목한 가정, 좋은 인간관계, 보람 있는 일 등이 이 우리의 행복에 점점 더 중요해진다. 지난 반세기 선진국의 경험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문턱에 와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부터는 돈벌이와 출세가 행복의 주된 원천이 되지 않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자녀들을 정말 행복한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면, 이들에게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치며, 이들의 잠재력을 길러주고 좋은 인간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자녀들의 입시경쟁력을 높여주어 봐야 자녀들의 행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잘 놀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행복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사교육이 사회적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진정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곧 사교육을 없애는 근원적인 대책이다.
우리의 가정교육과 공교육의 내용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돈 잘 벌고 출세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으로 자녀를 키우고 싶어서 모두들 안달이다. 우리의 고등교육은 생산성이 높은 인재를 양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공학이나 경영학 분야는 날로 번창하고 인문·사회 분야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오죽하면 인문·사회학 살리기 운동이 벌어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하나는 생산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기술이다. 생산기술이란 돈을 벌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기술이고 생활기술이란 즐겁고 보람된 삶을 꾸려나가는 기술이다. 공학이나 경영학은 생산기술을 가르치는 분야이고 인문·사회교육 내지는 문화교육은 생활기술을 함양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에서는 생산기술보다는 생활기술이 국민의 행복에 더 많이 기여한다. 결국 우리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공교육도 서서히 인문·사회교육 및 문화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탈바꿈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생활기술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선택과 경쟁을 강조하는 이명박정부의 공교육 강화방안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방안이다. 인문·사회교육 및 문화교육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하기 쉬운 각종 폭력과 범죄, 마약, 우울증, 자살 등 반사회적 활동이나 사회적 비리를 억제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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