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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평가? 지금 학교는 '군사 작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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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평가? 지금 학교는 '군사 작전' 중"

일선 교육청 '세부 지침' 하달…홍보 문자메시지 예시도

오는 31일 전국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일제고사(교과학습 진단평가)를 앞두고 일선 학교에서는 때 아닌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상품권을 내걸거나 수행평가에 반영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학년초 각 학생의 학력을 평가해 맞춤 지도를 하겠다는 '진단 평가' 본래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양상이 학교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부추기는 것은 교육 당국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10월 일제고사에서 성적 조작이 확인되는 등 부작용이 드러나자 이번 진단평가를 일제고사 형태가 아닌 표집형으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 시·도교육청이 교과부 발표 이후 자체적으로 진단평가를 전집 평가로 변경해 실시하기로 하면서 일제고사 참여를 강제하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갖가지 지침을 일선 학교에 내리고 있다.

"개별학생 파악과 지원 위해"…내용은 '관리·감독' 위한 시나리오까지

지난 23일자로 작성되어 각 학교로 전달된 서울시교육청 업무담당 장학사 회의자료에는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서 실시되는 일제고사의 세부적인 시행 지침이 명기돼 있다. 이 문건에는 이번 일제고사의 목적으로 "교과학습 진단평가 도구를 보급해 개별학생의 교과별 부진한 부분을 파악하고, 보충 지도하게 함으로써 학교의 학습부진학생을 최소화하는데 지원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정작 내용은 '개별학생 지도'를 위한 시험이라는 설명과는 딴판이다.

이 문건에는 일제고사 시행 책임자와 평가 관리자, 평가 감독 교사에 대한 역할이 세부적으로 나와 있으며 대부분 "관리 철저", "보안 철저"를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시험을 다 보았다고 해서 먼저 답안지를 내고 교실을 나가는 일이 없도록 지도한다", "시험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지 않도록 하며, 인쇄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 조용히 손만 들게 하여 평가 감독 교사가 해결한다" 등 감독 교사의 역할까지 세부적으로 공지했다.

OMR 카드를 써보지 않은 초등학생들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도 나와 있다. 문건에는 "5교시(영어) 답안지에는 자신의 이름을 왼쪽부터 빈칸 없이 표기한다, 이름 표기하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니 5교시 시작 전에 이름을 표기한 후 영어 시험을 시작한다" 등이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고사가 '차질없이' 시행되도록 하기 위한 학교의 역할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다. 여기에는 "교과 학습 진단평가 시행 목적 및 필요성, 결과활용 방안 등 전반에 관하여 교직원, 학생, 학부모에 연수를 2회 이상할 것", "26일부터 시험본부를 구성·운영", "가정통신문, SMS문자발송, 학부모 설명회 등으로 일제고사 안내" 등이 나와 있다.

문건에는 "문제 유출, 관리 소홀, 성적 부풀리기 등 평가 관련 물의를 야기한 교원에 대하여 무관용 원칙 적용함을 반드시 안내"라고 적혀 있으며, 일제고사 학급별 응시 현황표 양식이 첨부되어 학생 개개인의 교시별 미응시 현황 여부를 보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백지 답안지 숫자와 불성실 답안지 숫자까지 '보고 사항'

서울시남부교육청 명의로 작성된 중학교 일제고사 시행 계획의 경우는 보다 더 구체적이다. 여기에는 '학부모에 보내는 문자메시지'로 "3·31(화)은 우리학교 진단평가 보는 날, 진단평가는 학생들의 정확한 학력수준 진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3·31(화)은 우리학교 진단평가 보는 날, 진단평가는 교육전문가가 출제하여 학생들의 정확한 학력수준 진단에 도움이 됩니다" 등의 예시가 적혀 있다.

또 함께 첨부된 가정통신문 예시문에는 "평가일에 개인별, 학급별 체험 학습은 허가하지 않는다, 체험 학습에 참여하여 등교하지 않을 경우 학업성적관리지침에 의거하여 무단결석 처리된다, 학생들의 학년초 출발점 학력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평가에 성실하게 임해야 도움이 될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

문건에 첨부된 서울시교육청 명의의 리플렛을 학급당 3부씩, 교실 앞·뒤 게시 및 담임교사 훈화용으로 활용할 것도 지정하고 있다. 또 교사, 학부모,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수와 교육 방법 및 횟수, 그리고 홍보 방법과 횟수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 서울시교육청이 작성해 각 학교에 배표한 일제고사 홍보 리플렛. ⓒ프레시안

뿐만 아니라 평가 당일의 시간별 행동 지침과 시험진행 시나리오와 함께 일제고사 당일 오전 9시 30분까지 시간을 엄수해 담당 장학사에게 상황을 유선보고할 것이 명기돼 있다. 첨부된 상황 보고 문서에는 "체험 학습을 신청했으나 허가하지 않음에도 결석하면 무단결석으로 처리하고 이상 유무란에 별도 표시"라고 지정하며 백지 답안지 숫자와 불성실 답안지 숫자도 각 학년별, 과목별로 명기하도록 지정하고 있다.

이 같은 공문은 각 지역교육청에서 일선 학교로 지난 23일 이후 일제히 전달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상당수 학교에서는 공문에 예시된 것과 같은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배포했으며, 학부모 보조감독을 모집하려 학부모들을 소집한 사실도 확인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김석근 사무처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10월 일제고사에서도 이번처럼 세부적인 것까지 지시하진 않았다"며 "지난해 일제고사가 온갖 파행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 당국은 관리·감독 강화라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석근 사무처장은 "시험의 파행 운영과 부작용은 일제고사 자체의 문제점 때문인데, 이를 관리·감독 강화로 해결하려다보니 선생님들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과 잡무에, 학부모는 원하지도 않는 강제 동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자율화를 내세웠던 교육 당국이 이처럼 군사 작전 치르듯 명령하는 지침을 내리는 것은 스스로 교육 정책의 모순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제고사를 앞두고 30일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 전교조 지부에서는 일제고사의 선택권을 안내한 교사의 명단을 '불복종 선언'이라는 형태로 발표할 예정이다. 또 평등교육 학부모회 등 학부모단체들도 전국적으로 일제고사 대신 체험 학습에 참가하는 학생·학부모 현황을 공개하고 31일 체험 학습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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