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자율형 사립고…눈물은 예고돼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자율형 사립고…눈물은 예고돼 있다

[분석]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학교일까

지난 24일 자율형 사립고 설립에 필요한 법령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 자율형 사립고로 선정된 학교들은 2010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다.

자율형 사립고는 이명박 정부가 초기부터 '학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내걸고 설립을 약속해온 학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30개를 시작으로 2011년까지 100개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6개 학교가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로 지정돼 있다. 교과부는 자율형 사립고를 두고 "기존 자립형 사립고 시범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학생선택권 확대, 학생·학부모 만족도 증가 등 성과는 확대시키고, 높은 전입금 부담, 사교육비 유발 등 문제점은 최소화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를 통해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사립학교 본연의 자율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집권 1년 만에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자율형 사립고는 어떤 효과를 낳을까? 교과부가 강조하는 자사고의 '성과'와 '문제점'을 조금만 살펴보면 자율형 사립고의 미래를 금세 알 수 있다.

자율형 사립고 통해 교육 다양화하고 사교육비 절감한다?

"자사고에 가고 싶습니다. 지금 중3인데 선행을 이제 시작하네요…. 1학기 것도 조금 남았는데 올림피아드 준비 가능할까요?"

포털사이트에서 '자사고'를 검색해보면 무수히 많은 사이트와 관련 커뮤니티, 관련 게시물이 검색된다. 목차의 첫 번째는 단연 '특목고·자사고 입시 정보'를 내세운 각종 입시 사이트다. 이들 학교 입학을 원하는 초·중학교 학생과 학부모를 겨냥한 상품들이다.

실제로 교과부의 자율고 설립 확정이 발표된 다음날인 25일, 굿모닝신한증권은 "사교육업체인 메가스터디가 중등 내신 시장 확대로 수혜가 기대된다"며 "자사고가 대거 설립되면 고교 서열화가 심해지고 중등 내신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자사고의 높은 경쟁률이 학부모의 만족도를 보여준다며 확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현재 자사고는 특목고와 비슷한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2009년 자사고인 강원 횡성 민족사관고의 경우 3.64:1, 전주 상산고는 8.2:1의 경쟁률을 보여 대원외고 2.5:1, 외대부속외고 7.6:1 등 특목고와 앞뒤를 다퉜다.

그렇다면 왜 학생과 학부모들은 자사고를 '열망'할까. 역시 자사고 가운데 하나인 부산 해운대고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학교 소개는 그 답을 명쾌히 제시한다. 해운대고 교장 인사말에는 "우리 학교에서 특히 2003년부터 시작한 자립형 사립고 학생은 일류대학·학과에 높은 합격률을 올리고 있다"며 "2008학년도의 경우 서울대 13명, 의학계열 62명, 연세대 31명, 고려대 51명, 한국과학기술대 5명, 포항공대 2명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눈부신 입시성적을 내고 있다"고 적혀 있다.

결국 학생·학부모 만족도 증가는 얼마나 많이 '일류대'를 보낼 수 있는 학교인지 여부와 정비례한다. 교과부는 자율형 사립고의 교육 과정을 '국민공통교육과정의 50%만 이수하면 된다'고 명시했다. 교과부는 이를 통해 사학의 자율적 운영으로 교육이 다양화 될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실제 교육은 '더 많은 입시 교육'으로 치중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특목고·자사고 정보 중에는 각 학교의 건학 이념이나 '특색있는 교육 과정'에 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진학을 원하는 학생을 위해 제시된 선택 기준은 기껏해야 '문과'와 '이과' 성향 정도다.

일부 자사고에서는 미국 대학 1학년 과목인 AP 과정을 운영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최근 국내 일부 대학들이 이 점수를 가산점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과 연결지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율형 사립고가 많아진다고 해도 진학 결과에 따른 서열화, 이에 따른 사교육은 필연적이다.

▲ 자율형 사립고가 많아진다고 해도 진학 결과에 따른 서열화, 이에 따른 사교육은 필연적이다. 지난해 2009학년도 고입선발고사에 응시한 수험생들. ⓒ뉴시스
재정 자립도 높은 건전 사학? 현실에서는 '…'

교과부는 그래서 조건을 내걸었다. 자율형 사립고를 신청하려면 교육과학기술부령에서 정하는 재단 전입금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시·광역시 지역은 학생 납입금(입학금과 등록금)의 5%이상, 도지역은 납입금의 3% 이상을 전입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이 되면 재정 결함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재정 상태가 건전한 사학들을 위한 제도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에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희망한다고 밝힌 학교의 현황을 살펴보면 이 같은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자율형 사립고 희망학교 67개교의 59.7%인 40개교에서 등록금 대비 재단 전입금 비율이 5% 미만이었다. 자율형 사립고 선정을 위한 최소 기준인 5%를 충족시키는 학교는 전체 희망학교의 40.3%인 27개밖에 되지 않았다. 자율형사립고 희망학교와 일반인문고, 전체 고교의 재정자립도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전북, 충남 등 다른 지역 사립 고교의 사정은 더 열악해 "자율형 사립고는 서울 지역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교육계에서는 이처럼 열악한 사학의 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맞춰 자율형 사립고를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중 설립을 신청한 영훈학원, 대원학원은 각각 법으로 지정돼 있는 재단전입금 중 1.61%, 8.19%밖에 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논란 끝에 국제중 운영을 인가받았다. 같은 상황이 자율형 사립고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셈이다.

정부의 보조금을 기대할 수 없는 자율형 사립고는 결국 등록금으로 재정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교과부는 자율형 사립고의 등록금에 제한을 두지 않아 한없이 높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귀족 학교'라는 비판을 부정하고 있는 민족사관고의 1인당 연간 학비는 지난해 조사에서 1994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해운대고와 울산 청운고는 각각 905만 원, 856만 원 등이었다.

국제중 보면 자율형 사립고의 미래가 보인다

교과부는 자율형 사립고를 설립하면서도 이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를 막기 위한 방법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가 '추첨 선발'이다. 교과부는 필기고사 금지를 조건으로 비평준화 지역 학교는 자율 선발하되 평준화 지역 학교는 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국제중과도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사교육비 증가라는 비난을 막기 위해 도입한 추첨 선발이 정작 사교육을 줄이는 데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도입 전부터 제기됐다. 차별화된 교육을 표방한 일부 학교에 몰리는 경쟁률을 추첨으로 낮출 수 없다는 것. 또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보수 언론에서는 '추첨 선발' 탓에 학생들의 학력 격차가 너무 벌어져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여론 공세를 펴고 있다.

또 교과부는 자율형 사립고가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 차상위계층, 국가보훈대상자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를 정원의 20%이상 선발하도록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국제중으로 선정된 서울 영훈중은 이미 내년부터 정원의 20%까지 의무 선발하도록 되어 있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없애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국제중 승인을 받기 위해 약속했던 전형 방침을 채 1년도 안되어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마저 없앤다면 국제중이 '귀족학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지난해 국제중으로 선정된 대원중과 영훈중 신입생 학부모 10명 중 6명 이상이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교과부가 내건 자율형 사립고 설립 요건은 지난해 논란이 됐던 국제중 설립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대로라면 자율형 사립고 역시 일단 설립부터 한 뒤 부작용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국제중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교육계의 관측이다.

▲ 이대로라면 자율형 사립고 역시 일단 설립부터 한 뒤 부작용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국제중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교육계의 관측이다. 지난 9일 자율형 사립고 공청회에서 참교육 학부모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설립 중단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뉴시스
재단 전입금 0% 학교도 "자율형 사립고 희망"

한편, 자율형 사립고의 미래를 예측케 하는 또 다른 사건들이 있다. 염광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염광중은 지난해 12월 일제고사에서 선택권을 안내했다는 이유를 비롯해 학교 인사위원회의 민주적 운영 등을 주장했던 황철훈 교사에 대해 최근 중징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역시 지난해 10월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학생들에게 설명했다는 이유로 일주학원이 운영하는 서울 세화여중 김영승 교사가 학교로부터 파면을 통보받았다.

또 상록학원이 운영하는 서울 양천고는 지난 9일 재단의 비리에 대한 해결을 촉구해왔던 김형태 교사에게 파면을 통보했다. 자율형 사립고를 희망한다고 밝힌 양천고는 2006년과 2007년 법정 재단 전입금을 1원도 내지 않았다.

이처럼 사학의 부정과 비리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자율형 사립고 선정 기준에서 재단의 건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자율형 사립고 설립에 따른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눈물이 예고돼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