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도산까지 거론하면서 한반도 대운하를 염두에 둔 듯한 '자연 개조'를 강조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최근 나온 <운하?>(김상도 지음, 푸른나무 펴냄)의 몇몇 대목이 떠올랐다. 이 책은 1991년 이라크 전쟁 종군 취재에 나섰다 이라크 군에 포로로 잡혀 억류되기도 했던 베테랑 기자가 오랫동안 운하로 상징되는 이명박식(式) '자연 개조'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완고하다 싶을 만큼 '사실(fact)'만을 좇는 지은이가 처음부터 운하 사업의 문제점을 들추려고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행적을 중심으로 운하 사업의 실상을 파헤치고 나서 그가 얻은 결론은 수많은 전문가, 환경단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관련 기사 : "인류가 저지른 가장 무식한 사업을 왜?")
소귀에 경 읽기
▲ 2006년 독일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방문해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명박 당선인. ⓒ연합뉴스 |
이 책의 정리를 요약하면, 우선 이 운하는 계획된 물동량을 채우지 못해 경제성이 전혀 없다. 심지어 도나우 강 구간은 이용률이 10%에 머문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 기업의 3분의 2가 "앞으로도 이용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운하를 기피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운하가 한없이 "느리기" 때문이다.
운하 찬성 측은 유럽연합의 '마르코 폴로', '나이아데스' 계획 등을 놓고 '유럽도 운하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운하와 관련된 이 계획의 실상은 이렇다. '도로, 철도가 포화 상태에 있으니 텅텅 빈 유럽 곳곳의 운하를 활용해보자.' "운하의 낮은 이용률을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운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유럽에서도 기존의 운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운하 건설을 하자는 주장은 환영을 받지 못한다. '도나우-오데르-엘베' 운하를 둘러싼 논란은 그 단적인 예다. 이 운하는 "기존의 운하 네트워크를 강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이점이 있지만" 비용, 환경 문제 등으로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이게 바로 21세기의 실상이다.
'스크루 박' 원조는 '스크루 이'
"(강에는) 한 번만 가둬 내면 되는 게 아니라 다시 (쓰레기가) 쌓이니까요. 거기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이제 말하는 운하에 배가 다니는 겁니다. 프로펠러가 돌면 산소가 공급이 돼 가지고 아주 물이 맑게 유지됩니다. 프로펠러가 돌아서 그 지하까지, 그 독일 사람들이 나한테 가르쳐 준 겁니다."
'스크루 박'이라는 별명이 붙은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의 발언이 아니다. 사실 원조는 '스크루 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2월 23일 한나라당의 한 간담회에서 운하가 수질 오염 정화 효과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생 수준의 지식만 있으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다.
운하 곳곳에 마련된 갑문 사이에 갇힌 물이 썩는 동안 스크루를 백날 돌려봤자 수질 오염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표면을 아무리 휘저어도 물의 위아래가 섞이지 않는 한, 즉 수직 순환이 발생하지 않는 한 수질 오염 개선 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운하는 초등학교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상상 속의 운하'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독일 사람이 가르쳐줬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사실이 더욱 인상적이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이런 수준에서 추진되었다는 사실은 국민을 경악케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런 오류를 정정해줘야 할 측근이 '운하 전도사'를 자처한 '비리 목사'였다는 사실이다.
'비리 목사' 말만 들은 대통령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비롯한 운하 찬성 측은 "경부운하가 경부축 물동량의 '14%'를 처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 14%인가? 그 이유를 '비리 목사'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홀리고자 쓴 <왜 한반도 대운하인가?>(말과창조사 펴냄)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아주 보수적으로 최소 14%를 예측했다. 이는 독일의 예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독일의 수치를 그대로 인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따른다. 왜냐하면 독일의 운하와 한국의 경부운하 간 경제적 비중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의 비율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는 것이 옳다."
추부길 전 비서관의 말대로 운하 물동량 14%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독일의 경우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유럽연합 가운데 운하 수송 분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네덜란드(31%)이고, 다음이 벨기에(14.3%), 독일(12.4%) 순이다. 한반도 대운하의 14%는 바로 이 독일의 12.4%를 따온 것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이런 주장을 놓고 지은이는 이렇게 따진다. "독일은 총연장 6950킬로미터(㎞)의 운하를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운하 건설을 검토 중인 상태다. (도로·철도) 등 운송 인프라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에 독일의 '14%'를 단순 적용한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이 수치 역시 이 대통령은 여전히 믿고 있을 것이다.
도산도 강조한 '아름다운 나라'
▲ <운하?>(김상도 지음, 푸른나무 펴냄). ⓒ프레시안 |
만약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도 <운하?> 같은 책을 권할 만한 측근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 대통령도 국무회의 때 죽은 도산을 들먹이면서 '자연 개조'를 외치는 대신 "제 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하겠나" 하면서 호통을 쳤을 것이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부운하 검토 보고를 받으면서 한 말이다.
마지막으로 첨언 한 마디.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1920년 도산이 재(在)상하이 동포 신년 축하회 연설에서 언급한 "문명한 품격을 실현하며 세계만방의 친선과 동정이 있는 나라"를 강조했다.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실용주의를 무엇보다 강조했던 도산은 과연 21세기에도 '자연 개조'를 주장했을까?
이 대통령이 역시 같은 자리에서 인용한 백범은 도산이 언급한 이 '품격 있는 나라'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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