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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빙하기…실업급여만 확대한다고 될까"

[새사연 기획연재①] 전국민 고용보험화를 위하여

한국경제가 고용빙하기로 돌입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고용안전망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의 고용안전망은 1995년 시작된 고용보험이 유일하다. 고용보험이 보장하는 실업급여는 3개월에서 8개월에 불과하고 혜택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전체 취업자 가운데 3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가운데 고용안전망 제도의 확대와 정착에 사용될 재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업급여 예산을 늘렸다고는 하나 이 예산은 그동안 노사가 적립해 온 보험금을 쓰는 것일 뿐 정부의 일반회계 예산 지원은 없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이 연재하는 이 기획에서는 전 국민을 고용안전망에 포괄해 내고 있는 영국과 스웨덴 그리고 호주의 고용안정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 국민을 포괄한다는 것의 의미를 쉽게 찾으려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을 떠올리면 된다. 이들 국가는 노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국민들에 대해 고용 유지나 취업 지원, 실업 및 기타 수당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영국은 국가 차원의 고용안전망을 가장 먼저 구축한 국가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회복지 예산이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복지국가다. 마지막으로 호주를 살펴보려는 이유는 이 국가가 실업자들에게는 무제한의 실업부조를 실시하는 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실업부조 제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사례로 보인다.

1. 들어가며

선진국의 사회안전망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정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직전의 대공황과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경제, 사회적 위기를 거치면서 '실업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을 배경으로 한다. 결국 고용의 문제는 전 사회가 연대해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역사적 교훈이 바탕이 된 셈이다.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고용안전망은 1995년 시작된 고용보험이 유일하며 그 역사도 채 15년이 되지 않는다. 일부 연구자들은 외환위기 당시 고용보험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이는 내부자의 시각일 뿐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도 못했던 대다수 실업자들은 실업 수당이나 취업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고용보험은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 고용불안이 더욱 심해진 2000년대 들어서도 고용안전망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여전히 한국의 고용안전망은 전체 취업자의 30퍼센트를 포괄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광범위한 비경제활동인구들을 위한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하지도 못했다. 적극적 고용정책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도 사실상 전무했다.

이 글은 앞으로 연재될 다른 나라의 고용안전망을 확인하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고자 한다. 고용안전망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고용안전망이 곧 고용보험이라는 통상의 인식이 있으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고용보험 이외에도 다양한 제도들을 포함한다.

2. 고용안전망이란 무엇인가

고용안전망은 사회안전망 가운데 고용과 관련된 부분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사회안전망은 1,2차 안전망과 기타(또는 3차) 안전망으로 구분된다. (아래 표 참조) 이런 구분은 위험의 성격과 수혜자의 대비 능력에 따른 순차적인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노동 소득이 있고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미래 위험을 대비하는 1차 안전망인 사회보험에서부터 노동능력과 소득, 자산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3차 안전망인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2중, 3중의 장치가 사회안전망을 구성한다.



▲ 주: 1) 자산, 소득 조사에 근거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 사회안전망으로 기능
2) 굵은 글씨는 고용안전망과 관련되는 제도들
자료: 정형선(1998), "OECD 국가들의 사회안전망"를 참고하여 재구성


고용안전망의 세 가지 차원

사회안전망 가운데 고용의 유지, 창출 그리고 신규 진입 또는 복귀 등을 위한 안전망을 고용안전망이라 정의할 수 있다. 위 표에서 언급한 실업보험(1차), 실업부조와 공공근로 사업(2차)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고용안전망이 충분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고용 서비스와 정책 활동이 중요하다. 초기의 고용안전망이 단순히 실업수당을 지급하던 것에서 진화하여 실업을 사전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 장치를 강화해 온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이러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강조된 이유는 고용 불안이 일상화되고 청년실업과 장기실업이 사회 문제화되었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는 고용유지와 신규고용 촉진을 위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 청년과 장기실업자를 위한 구직활동 프로그램, 여성과 단시간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 등을 들 수 있다.


3. 고용안전망과 복지체제와의 관계

복지체제의 유형

앞서 언급한 대로 고용안전망은 사회안전망의 일부분이므로 고용안전망이 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지금 현재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는 해당 사회의 복지체제와 연관 지어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에스핑 안데르센(Esping -Andersen)이라는 학자는 복지체제의 세 가지 유형을 자유주의, 조합주의(또는 보수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로 구분했다. 이러한 유형 구분은 국가와 시장, 그리고 가족의 역할과 상호관계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각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① 자유주의 복지체제
영미식 국가들에서 발견되는 복지체제다. 사회복지제도가 사회의 정상적인 기제들(가족이나 시장)에 부수적이며 최소한에 그친다. 복지급여의 수준이 낮고 공공부조와 같이 소득·자산조사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는 시장기제의 정상적인 작동을 중시하여 시민생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되며, 복지비 지출을 극도로 제한한다.

② 조합주의/보수주의 복지체제
독일 등 대륙유럽형 국가의 유형을 말한다. 피고용인을 중심으로 복지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조합주의라 부르기도 하지만, 전통과 사회적 유대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역사를 갖고 있어 보수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직역에 따른 계층차별의 정도가 높으며, 그 특징은 사회복지의 급여가 시장에서의 역할 정도에 따라, 즉 보험비 납부 액수에 따라 차등화되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 유형에서는 복지비 지출이 많지만 그 재정적 기반은 가입자의 보험료가 주축이다.

③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
스웨덴, 덴마크 등의 노르딕 국가가 취하는 체제를 말한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특징이며 폭넓은 사회복지 제도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복지체제의 기본 방향은 가족의 비용을 우선적으로 사회화함으로써 모든 시민들에게 소득보장의 권리와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다.



▲ 자료: 김혜원 외(2007). p.18에서 일부 발췌


한국의 고용안전망 수준

한국의 고용안전망은 위의 복지체제 유형과 비교하기에는 발전의 수준이 대단히 일천하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 비해 국가의 역할이 대단히 미미하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모델과 유사하지만, 이들 국가와는 달리 실업부조의 성격을 갖는 제도를 전혀 도입하고 있지 않다. 또한 이른바 4대 보험이 국가 사회보험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는 점에서는 조합주의 모델과 유사하지만 보험가입율이 매우 낮은 수준에 있어 국가 전체를 포괄하지도 못하고 있다.

한국의 고용안전망은 전형적인 '잔여적(residual) 모델'에 속한다. '잔여적'이라는 것은 사회적 수요는 시장이나 가족에 전적으로 맡기고 국가는 여기서 포괄하지 못하는 잔여집단에 대해서만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뜻이다. 즉, 국가는 시장이나 가족,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극히 일부 집단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 그치게 된다. 영미식 자유주의 모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에서 사회안전망이 사회 전체의 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지 못하며, 그 수혜집단을 바라보는 인식 역시 경쟁에 뒤처져 '낙오된 집단'에 머물고 있는 것의 출발은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 제도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4. 나가며

21세기에 들어서도 한국의 고용안전망은 여전히 지난 세기에서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 대해 박용수(2007)는 첫째, 이른바 성장주의의 강한 잔재로서 '선 성장 후 분배' 원칙에 입각한 경제정책의 유산과 둘째,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추진되어 온 영미식 신자유주의 구조개편을 들고 있다. 기존의 성장주의가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식 구조개편이 고용안전망의 재분배 요소를 약화시킨 것이다.

2008년부터 조짐을 보이더니 2009년 들어 세계경제가 더욱 가파르게 침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고용보험기금의 적자가 커지면서 또 다시 고용안전망의 발전이 지체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 국면에서야말로 고용안전망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더욱 강화·확대되어야만 한다. 이는 앞으로 증가할 노동빈곤층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지만 경기 하강에 역행하는 고용안전망의 특징을 이용해 우리 경제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대책이기도 하다.

한국의 고용안전망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단순히 실업급여수당이나 심사하고 나눠주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미 한국보다 수십년 일찍 고용안전망을 구축하기 시작해 현재 전 국민을 포괄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른 나라들로부터 배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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