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심판 전원이 뉴욕양키즈 유니폼을 입는다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심판 전원이 뉴욕양키즈 유니폼을 입는다면…"

[홍기빈 칼럼] <1> 금산분리 완화와 금융 공공성 파괴

금융 기관에 대한 비금융 기업의 소유권을 제한함으로써 금융업과 산업을 분리하는 금산분리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지켜져 온 원칙이었고 세계적으로도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그야말로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와 여당은 이를 완화하여 비금융 분야의 재벌 기업들도 금융 기관을 포함하는 지주회사 형태를 취할 수 있고 나아가 은행의 소유와 경영에도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금산분리 완화" 관련 법안들이 바로 이러한 상태를 꾀하고 있다.

반대의 소리가 높다. 국민의 예금으로 이루어진 은행의 자산을 "재벌의 사금고화"하는 짓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재벌 기업의 경영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부실이 주요 금융 기관의 부실과 연결되어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요지부동이다. 문제점들이 있다면 그때 그때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 조치를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여러 규제 조치를 덕지덕지 붙여가면서까지 굳이 동서고금에 예를 찾기 힘든 금산분리 완화를 굳이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금융도 산업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금융은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라는 현 지배 세력의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금융이 소위 "공공성"을 갖고 있는 제도라는 말은 많지만 사실 그 공공성의 실체가 무엇인가. 금융은 지난 20년간 지구화된 세계 금융 자본주의에서 황금알을 낳는 최고의 부가가치 창출 사업이 되지 않았는가. (이들은 작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로 빚어진 상전벽해의 변화는 물론 묵살한다.)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어떤가. 벌써 우리나라의 은행은 외국 자본의 "사금고"가 되지 않았는가. 누구의 금고로 들어가건 돈을 맡긴 이들로서는 그저 돈만 크게 불려 돌려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외국 자본에 비해 금융업으로의 진출이 부자유스럽게 된 국내 재벌 기업들은 "역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금융의 공공성이 다 무엇인가. 금융 기관들은 그저 높은 수익성을 올려 투자자들에게 보답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될 때에 오히려 시장 경제의 효율적 자원 배분을 이룬다는 금융 본연의 "공공성"도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금융이 이렇게 황금알을 낳는 "수익성 높은 산업"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최적의 방법은 이를 돈 버는 일을 전문으로 삼는 사기업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공공 부문 개혁의 방법으로서 사기업으로의 사유화,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큰 규모로 여러 종류의 비금융업에 진출해 있는 기업 집단이 금융 기관을 가진다면 자산 규모의 대형화 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요, 또 여러 사업과의 "시너지" 또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금융은 기본적으로 수익과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며, 따라서 그러한 것으로서 금융기관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불필요한 제한과 울타리를 둘 이유가 없다. 금융의 "공공성"이라는 것도 시장의 효율적인 조정에 있는 것이며, 바로 이렇게 가장 높은 수익이 달성되도록 금융 기관들이 작동할 때에 비로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자본주의의 심판관: 금융 기관

▲ "앞으로 금융기관이 아니라 금융산업이 돼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 밝힌 금융에 대한 인식이다. 금융이 공공성이 아니라 수익창출에 우선해야 한다는 이같은 인식에 기반해 이명박 정권은 거센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산분리 완화를 강행하려 한다. ⓒ뉴시스
과연 그럴까. 금융의 "공공성"이란 그렇게 그저 최고의 수익을 달성하도록 한다는 하나의 목표만으로 금융 체제를 고치면 모두 달성되는 것일까. 사단법인 금융경제연구소에서 최근에 발간한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강경훈 교수의 정책 페이퍼 [금산분리 완화 주장에 대한 검토]는 이러한 논리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강경훈 교수는 시장 경제에 있어서 은행 등 금융 중개 회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정보 생산 기능"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결코 "수익성을 쫓는 산업"의 논리로 환원할 수 없는 금융의 공공성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금산분리의 완화가 이루어져 비금융 기업들이 마음껏 금융 기관들을 소유하고 경영하게 될 경우, "정보 생산자"로서의 그러한 금융 기관들의 신뢰는 근본적으로 무너지게 되며 결국 금융의 공공성도 근본적인 침해를 받게 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강경훈 교수의 논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잠시 시장 경제의 경제 체제로서의 특징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 산업 경제는 비교적 정태적인 안정성을 오래 유지하는 전통 농경 사회와 비교해 볼 때 기술 혁신과 시장의 재구조화 등 끊임없는 변화의 역동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 경제 구조의 변동이 생겨날 때마다 그에 조응하여 자원의 배분이 새로이 마련되도록 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철저한 중앙 계획에 근거한 공산주의 경제라면 중앙의 경제 당국은 그 변화의 성격을 파악하여 비중을 줄여야 할 산업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어느 만큼 빼내어 더 많은 수요로 더 많이 확장해야 할 산업으로 어떻게 어느 만큼 이동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고 또 그에 따라 그러한 경제의 재구조화를 명령으로서 집행하는 일까지 맡게 된다.

이에 대해 시장 경제는 자원의 재배분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전혀 다른 방법을 쓰게 되어 있고, 경제학자들이 귀가 아프게 반복하는 시장 경제의 우월성이란 바로 이 다른 방법의 효율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시장 경제는 비록 중앙 집권의 경제 당국이 없지만, 시장에서 나름대로 가장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투자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수요가 줄고 기술적으로 내리막이 되어 크게 축소되거나 없어져야 하는 생산 분야가 어디인가를 재빨리 파악하고, 또 그 반대로 사회적 수요가 늘고 새로운 기술 혁신과 연결되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을 재빨리 파악하게 된다. 이기적이고도 명민한 이들이 재빨리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자원을 이동하기 때문에 중앙 당국 없이도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자원의 재배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논리의 빈틈이 있다. 과연 모든 투자자들이 그렇게 산업 전체의 현황에 대해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떤 시장과 산업이 지고 어떤 것이 뜨는지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여기에서 금융 기관이 그러한 정보를 생산하는 주요한 심판의 기능을 맡게 된다. 전체 산업의 현황 분석은 물론 무수히 많은 기업들과 산업 부문에서의 시장 전망과 건전성 평가 등을 이 개개의 투자자들 모두가 스스로 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야말로 장부 한번 훑어보고 공장만 한번 둘러보아도 그 기업이 앞으로 어떨지를 감을 잡을 수 있는 숙달된 이들을 고용하여 신중한 투자 정보를 생산하는 기관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시장 경제에서 금융 기관이 맡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 그 모든 기업과 산업을 조사하는 대신 믿을 만한 금융 기관에 우리의 자금을 위탁한다. 그러면 금융 기관들은 이 복잡한 시장 경제에서 어디에서 어디로 투자와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이 벌어져야 하는지의 정보를 생산하여 그 방향으로 자금이 이동하도록 매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시장 경제에서 이 "정보 생산자"로서의 금융 기관이 맡는 역할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경제 당국이 맡는 것에 비견되는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또 그 금융 기관이 스스로의 수익을 추구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 정보 생산자로서의 역할은 시장 경제의 효율적 자원 배분 메커니즘에 핵심적인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금융 기관은 시장 경제라는 게임이 벌어지는 곳에서 어디가 이기고 어디가 지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심판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산 분리가 완화되어 비금융 기업들이 금융 기관을 보유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이 "심판관"들은 경기장의 선수들과 한통속이 된다. 아무도 그의 판정을 믿을 수 없게 된다. 결국 게임의 질서는 무너지고 패를 갈라 억측과 삿대질만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시장은 전락하게 될 것이다.

선수와 한통속이 된 심판들 혹은 "독약을 탄 우물"

은행과 증권사 (혹은 투자 은행) 등은 각각 정보를 생산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양자 모두 어떤 기업, 어떤 산업 부문에 대한 시장의 판단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은행은 대출을 신청한 기업에 대해 여러 가지 루트로 그 기업 내부의 사정을 파악하려 애쓰게 마련이고 그리하여 거래 관계를 맺어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인 대차 거래를 맺을 경우엔 다른 투자자들은 알기 힘든 내부 정보까지 샅샅이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 유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는 그 자체가 그 기업의 향후 전망이 좋다는 정보가 되어 결국 기업 주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증권사(혹은 투자 은행)는 은행보다 한결 더욱 고차원의 정보를 생산하게 된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증권사들은 지금까지 중개업에 치중해왔으나, 본래 자본 시장에서 더욱 중요한 업무는 IPO나 인수 합병에 따르는 기업 가치 평가이다. 이 가치 평가 작업은 일반 시장에서 쉽사리 생성되기 힘든 고차의 정보 생산이자 실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부흥에 사활을 쥐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비금융 재벌 기업이 은행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예전 일본의 6대 기업 집단의 계열 은행의 대부 행태가 그러했듯, 그 기업의 계열사들이 그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는 훨씬 더 용이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 거액의 대출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 기업이 유망하고 현금 흐름이 좋다는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게 된다. 또 그 은행은 그 재벌 기업과 적대적 관계나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에 대해 대출 관계를 맺으면서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고 심지어는 경영 방침에 간섭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 기업들은 이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며, 이에 자금 흐름의 효율성과 정보 생산의 메커니즘이 한 번 더 왜곡을 겪게 된다. 증권사의 경우는 더 큰 문제가 나오게 된다. 증권사는 은행보다 더 직접적으로 특정 기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생산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다. 따라서 어느 재벌 소유의 증권사는 계열 기업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정보를, 경쟁 기업들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정보를 생산하는 유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대책이 없으란 법이 없다. 금융 제도에는 예로부터 "내부자 거래"를 막기 위한 여러 장치와 제도가 고안된 바 있으니, 이를 잘 살려서 정부와 여당이 말하는 대로 적절한 규제 장치를 마련한다면 이런 식의 파행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심판관"으로서의 금융 기관의 독립성도 살리면서 또 "수익성 높은 산업"으로서의 이익도 다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독 탄 우물(poisoned well)"이다. 사람들끼리 논쟁을 벌일 때에 흔히 범하기 쉬운 논리적 오류의 하나가 있다. "저 자는 거짓말쟁이이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믿을 게 못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항변의 기회조차 빼앗기게 된다.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입증을 하든 논박을 하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조리 믿기 힘든 말이 되어 버렸으니까. 즉, 그는 "독 탄 우물"이 되어버렸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우물에서 길어낸 우물물처럼 독이 들었을 혐의가 높아 아무도 마시려 들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제 아무리 철저해보이는 규제 장치를 마련한다고 해도, 특정 기업의 계열사가 되어 버린 금융 기관이 내어놓는 정보가 과연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는 언론 매체의 경우로 미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항간에는 굴지의 대기업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일간지들이 있다. 물론 이 일간지들은 소유 관계라든가 언론 환경의 각종 법제 등을 내세워서 자신들이 그 재벌 기업들과 절대적으로 독립적임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문제의 재벌 기업들과 관련된 사건들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그 일간지들이 그 사건을 다루는 (혹은 다루지 않는) 방식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갖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신뢰(confidence)란 법적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의 문제이다. 이것을 창출하는 법적 제도가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사람들이 저절로 그것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창출하는 데에 진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비금융 재벌 기업들의 금융 기관 소유는 이와 정반대로 "정보 생산자"로서의 금융 기관들을 "독 탄 우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뉴욕 양키즈와 토론토 제이스가 맞붙는 결전의 야구 시합장에 심판들이 모조리 뉴욕 양키즈의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고 하자. 그리고 그 심판들이 모두 입을 모아 "옷이 마땅치 않아 입었을 뿐 심판으로서의 우리의 판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보라. 관객석의 그 누가 그 말을 곧이듣겠는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심판관이라고 할 금융 기관에 어째서 특정 재벌 기업의 유니폼을 입히려 드는가.

이는 시장 경제의 혼란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금산 분리 완화법이 복무하겠다고 설정한 목표, 즉 금융 기관의 발전과 선진화의 문제에 또한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은행과 증권사 모두 자신이 소속된 기업 집단 계열사들로부터 자발적인 정보 공개의 특혜를 입기 쉽다. 따라서 독자적인 정보 생산 능력의 경쟁력을 갖출 유인이 적어질 것이다. 반면 그 소속 기업 집단과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질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원리는 이미 지금도 어째서 한국의 자본 시장에 증권사가 인수 합병이나 기업 공개 등 본격적인 투자 은행업의 주체로서 발전하지 못하고 주로 중개업(brokerage)에 아직도 묶여 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종종 운위된다. 우리나라 유수의 재벌 기업들 중 증권사 등 하나씩을 갖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그렇다면 이 증권사들 중 진정 불편부당하게 여러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생산할 것으로 믿어지는 곳이 어디인가?

다시 문제는 금융의 공공성

폴 볼커 전 FRB의장을 의장으로 하여 가이트너, 크루그먼 등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계 인사들로 조직된 G-30이라는 의견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최근의 금융 위기에 즈음하여 가깝게는 오바마 정부에, 간접적으로는 G-20 등의 집단을 염두에 둔 18개의 정책 제안을 제시하였다. 그 첫 번째 사항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보증을 서는 예금 수취 기관들은 규제를 받지 않는 비금융 조직들이 소유 및 통제해서는 아니 되며, 그러한 은행 기관들과 이들을 부분적으로 소유한 비 은행 소유자들 사이에서의 거래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을 강제해야 한다."

특히 최근 시험대에 오른 지구적 또 개방된 일국적 금융 체제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권고안이 바로 이 금산 분리의 원칙을 더욱 더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이 집단의 비중으로 볼 때 이러한 원칙은 G-20을 거치면서 지구적 차원에서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그야말로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 무슨 사상 이론과 실천적 준비가 있길래 이러한 세계의 흐름에 홀연히 맞서 거꾸로 가겠다는 것인가. 거기에서 발생하는 희생과 비용을 누구보고 치르라고 하는 것인가.

개개의 금융 기관들은 물론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 기업이다. 하지만 시장 경제 체제 전체와 관련된 제도로서의 "금융" 그 자체는 "산업"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 공산주의 경제 체제에서라면 중앙 경제 당국이 맡았을, 자원 (재)배분의 정보를 생산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시장 경제에서 수행하는 것이 바로 금융이다. 비록 개별의 금융 기관들은 수익성을 좇는 기업으로서 행동한다고 해도, 전체로서의 금융 제도는 그 개별 기관들의 행동에서 일종의 결합 생산물로서 "정보"가 산출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금융 제도가 이렇게 짜여져 있을 때에 비로소 시장 경제의 사활을 쥔 금융 제도의 "공공성"이 살아난다.

금산 분리가 이루어져야 하며 또 실제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금산 분리가 제도화되어 있는 근거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금융 기관이 재벌의 금고가 된다든가 재벌 기업의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체로 파급된다든가 하는 문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금융은 비록 영리 기업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산업의 재배분을 심판하는 심판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심판관들은 이런 저런 선수들 경기자들의 이익과 철저히 분리되어 독자적인 리그 혹은 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 금산 분리 완화 조치는 이제 그 구별을 모호하게 만들어서 "양키즈 팀 소속 야구 심판", "레이커즈 팀 소속 농구 심판", "포항제철 팀 소속 축구 심판" 등을 양산할 수 있다. 심판관이 사라진 경기장이란 억지와 삿대질이 난무하는 난장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금산 분리 완화가 가져올 한국 시장 경제의 비전이란 말인가?

강경훈 교수의 글은 비록 짧고 소략하지만, 시장 경제에서의 "정보 생산자"라는 금융 제도의 본질적인 공공성의 측면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금산 분리 완화 논의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강경훈 교수의 글은 금융경제연구소의 웹 싸이트(www.fei.or.kr)에서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