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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춘제 앞두고 이 곳으로 향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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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춘제 앞두고 이 곳으로 향한 까닭은?

[기고]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한국은?

첫 걸음은 늘 방향을 말한다. 정권의 첫 행보는 언제나 우연이 아니다. 특히 시진핑 체제에서 "연초 첫 국내 시찰"은 그해 중국 정치·경제 운영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다. 그런 점에서 2026년 음력 설을 앞둔 2월 9일 시진핑 주석이 선택한 장소가 베이징 이좡(亦庄)의 국가정보기술혁신단지(国家信创园)라는 사실은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학기술 시찰이 아니라, 중국식 발전모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1.

국가신창원은 흔히 "첨단기술 단지"로 소개되지만, 그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체제 설계 공간이다. 이곳의 핵심 키워드는 반도체나 AI 그 자체가 아니라, 중국이 반복해서 강조해온 "信息技术应用创新", 즉 정보기술 응용의 자주적 생태계다.

CPU,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라는 정보기술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외부 의존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 다시 말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를 다루는 공간이다. 시진핑이 이곳을 새해 첫 행선지로 택했다는 것은, 중국이 여전히 성장률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기술 주권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대한 반응이자, 동시에 그 경쟁을 장기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다.

2.

이번 시찰에서 주목할 대목은 시진핑이 반복해서 사용한 표현이다. "기술 혁신"보다 더 많이 등장한 것은 "집중 역량", "체계적 배치", "전략 목표"라는 단어들이다.

이는 중국 지도부가 과학기술을 시장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여전히 국가 운영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중국의 기술정책은 실리콘밸리식 혁신과는 전혀 다른 궤도 위에 있다.

'산업이 문제를 제기하고, 과학이 답을 한다(产业出题、科技答题)'는 표현은 겉보기에는 실용적이지만, 그 배후에는 분명한 국가 주도 논리가 있다. 기술은 자유롭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설정한 문제의 틀 안에서 동원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강점이자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단기간에 특정 분야를 추격·대체하는 데에는 강력하지만, 장기적으로 얼마나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혁신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3.

이번 시찰은 단독 사건이 아니다. 지난 1년여 동안 시진핑은 상하이–광둥–베이징으로 이어지는 세 곳의 국제 과학혁신 중심을 모두 직접 찾았다. 이는 명백히 정치적 동선이다.

중국은 이제 과학기술을 개별 도시의 경쟁력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묶는 전략적 축으로 재편하고 있다. 베이징(기초 연구와 제도 설계), 상하이(산업·금융 결합), 광둥(제조·응용)을 하나의 기술국가 구조로 엮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패권 시대에 대응하는 국가 공간 재편 전략이다.

4.

이 대목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은 지금 무엇을 '첫 걸음'으로 삼고 있는가?

중국은 '15차 5개년 계획'의 출발점에서, 주저 없이 과학기술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반면 한국의 과학기술 담론은 여전히 산업 정책의 부속물이거나, 정치적 구호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과학기술은 종종 시장 친화적 의제로 오해되거나, 분배 담론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중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기술 주권과 산업 주권은 더 이상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생존의 문제다.

중국이 말하는 '자립'에 그대로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무엇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무엇을 외부에 맡길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구분은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는 그 질문 자체가 부족하다.

5.

시진핑의 국가신창원 시찰은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중국이 여전히 불안 속에서 선택을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술 봉쇄, 성장 둔화, 국제 질서의 재편 속에서 중국은 다시 한번 국가의 모든 역량을 과학기술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모으고 있다.

"첫 걸음은 늘 방향을 말한다."

중국은 분명한 방향을 선택했다.

이제 질문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어떤 방향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고 있는가?

그리고 그 걸음은 과연 미래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중국의 '과학기술 국가 전략'을 비판하거나 평가할 자격 역시 우리에게는 없을 것이다.

▲ 9일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 이좡(亦庄)의 국가정보기술혁신단지(国家信创园)를 시찰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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