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21.2%의 조직 축소를 3월 내로 강행하겠다고 통보한 가운데 인권위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인권위는 23일 오전 긴급 전원위원회를 열고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은 일방적인 인권위 조직 축소 방침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직제령 개정 절차를 유보하라"고 요구했다.
인권위는 "인권위 조직 개편의 시기, 철차, 범위는 인권위의 자율적 판단에 기초해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결정되어야 한다"며 "합리적인 사태 해결을 위해 인권위원장과 국무총리, 행안부장관의 긴급 면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전원위원회가 끝난 뒤 가진 기자 브리핑에서 "그동안 인권위는 입법, 행정, 사법 등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임에도 범정부적 국가 시책에 동참할 뜻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우리는 감사원의 조직 체계 재정비 권고를 대승적으로 수용했고, 외부전문기관에 의뢰해 인권위 조직과 인력 실태를 점검했으며 행안부가 요구한 개편안도 독립성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행할 의지가 있음을 밝혀왔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그럼에도 행안부는 자체 조직 진단 결과를 갖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떤 분석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책임있는 정부기관의 태도라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행안부, 조직 축소 근거 아직도 제시 안 해"
김칠준 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 10일자로 자체 조직 개편안을 제출했지만 행안부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며 "이에 더해 구체적인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으면서 행안부가 자체적으로 만든 안만 일방적으로 보내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는 인력 축소가 언급되지 않았으며 인권위는 자체 조직 진단을 통해 증원 필요성이 있지만, 경제 위기를 감안해 현재 인원에서 조직을 개편한다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김칠준 사무총장은 '촛불 집회 이후 조직 개편의 압력이 심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편의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 인권위의 독립성이 침해되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최경숙 상임위원은 "조직 개편은 일찍부터 진행되어온 사안"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성이 기구의 정체성 중 하나인데 현 정부가 그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이번 조직 축소안이 오는 26일 차관회의와 31일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까지 최대한 설득 작업을 통해 막아보겠다는 입장이다. 김칠준 총장은 "강행 처리가 됐을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는 없다"며 "조직 개편을 무한정 미루려는 것이 아니라 행안부와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논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형평성·일관성 잃은 감축안…국가 이미지 훼손"
한편, 지난 20일 행안부가 공문을 통해 인권위에 통보한 조직 개편안에는 지난 1월 밝혔던 30% 정원 감축안보다 다소 축소된 21.2% 감축안이 나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부산, 대구, 광주에 있는 3개 지역사무소에 대해 '1년 후 조직 진단을 거친 존폐 여부 판단'이라는 단서를 달아 조건부로 존치하겠다는 것.
이에 대해 인권위는 "최종안 역시 업무량 증가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타 부서 조직 감축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형평성과 일관성을 잃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행안부의 최종안은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며 기능을 약화하려는 시도"라며 "조직과 인력의 감축은 영역별 인권 업무의 심각한 기능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국가 이미지 훼손이 우려된다"며 "이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브랜드위원회의 과제라고 역설하는 등 새 정부가 내걸고 있는 선진화 정책과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