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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X치과 네트워크' 주주 K씨의 하루"

[기고] 치과의사가 본 영리병원 허용, 그 이후…

2010년 어느 날…

'X치과 네트워크'의 주주 K씨는 방금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톱으로 뜬 헌법재판소 판결 내용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곧바로 가지고 있던 주식의 전량 매도를 준비했다.

"국민건강보험 의료기관 당연 지정제 헌재 위헌 판결"이라는 굵은 제목 하에 기사는 헌법재판소가 영리법인 병원 S네트워크에서 제기한 국민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위헌 소송에서 이 제도를 위헌이라고 결정 내렸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 제도가 의료기관의 영리법인이 전면 허용된 지금의 상황에서 △영리법인 병원의 영리 추구를 과도하게 제한하며 △의료 상품의 가격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도록 제한하고 △민간 보험회사와의 자율적인 계약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

'X치과 네트워크'의 주가는 헌재의 판결로 짧은 시간 내에 5%가 넘는 강한 상승세를 보였지만, 그 이상의 추가 상승은 힘에 겨워 보이고 조금씩 조정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 S생명을 비롯한 보험회사의 주가는 이미 상한가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며 K씨는 혀를 차고 있었다. "역시 보험주를 노렸어야 했는데…."

사실, 헌재의 판결은 시장에서 충분히 예견된 판결이었다. 영리법인 병원이 이미 허용돼 병원으로 장사는 마음껏 하라고 허용해 놓고, 장사는 하되 가격은 정해진 값만 받으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시장원리의 기본이 품질과 가격의 경쟁인데, 가격을 정해놓고 경쟁하라고 하면 서로 원가 낮추기에만 주력할 텐데,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규제였다.

물론 정부는 영리병원을 처음 허용하던 당시 영리병원과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처럼 홍보했다. 그러나 K씨 같은 영리병원 주주에게는 영리병원의 영리 추구에 가장 큰 걸림돌인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계속 받아들이리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K씨가 이번에 X치과 네트워크 주식을 사전에 매입한 것은 이번 헌재의 판결을 예측한 측면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지난주 있었던 X치과 네트워크 주주총회에서 대규모 구조 조정 인력 감축안이 승인을 받고, 차세대 충치 예방 사업 연구 프로젝트가 부결될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구조 조정안은 주총에서 높은 지지를 얻을 것이 확실하였고, 네트워크 신사업 프로젝트팀에서 내놓은 차세대 충치 예방 사업 연구 프로젝트를 주주들이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주주들은 중장기 연구 사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K씨 역시 마찬가지지만 주식을 팔면 그만인데, 언제 성과가 나올지 기약이 없는 연구 사업 따위에 돈을 쓰는 건 오히려 단기적인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상장 초기에 거액을 챙긴 X치과 네트워크의 대표가 경영권을 넘기고 손을 떼면서 몇 년 동안 지속 하락하여 4분의 1 토막난 주가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는 생각도 있던 K씨는 주총을 앞두고 주식을 매수하였고, 예견된 주총의 결과와 이번 헌재의 판결로 10%에 가까운 수익을 내고는 X치과 네트워크의 주식을 전량매도 처리하였다. K씨는 이번 매매에서 보험주를 노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 전 국민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영리법인 병원은 이런 미국의 길을 좇는 최악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프레시안
K씨는 오른쪽 아래 사랑니가 욱신거려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서둘러 진통제를 찾아 먹었다. 엊그제 동네에서 유명한 영리병원 네트워크 Z치과에 처음으로 간 K씨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 평생 치아 건강은 타고 났다고 자신만만했던 K씨였는데 며칠 전부터 사랑니 쪽이 욱신욱신하더니 퉁퉁 붓기까지 하자 결국 동네에서 제일 큰 Z치과를 찾은 것이었다. 사실, 치아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영리병원이 생긴 이후 진료비가 폭등하면서 병원 갈 엄두를 잘 못 내게 된 것도 있었다.

K씨가 가장 먼저 놀란 건 병원의 접수대에서부터 일반 환자 접수대와 S생명 가입자 전용 접수대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1층 로비 한 곳에 S생명 가판대가 설치되어 현장에서 바로 S생명에 가입할 수 있다며 영업 사원들이 홍보하고 있었다. 또한 1층에서 일반 환자들이 북적대면서 대기하는 것과 달리 S생명 가입자들은 아예 2층에서 호텔 로비 같은 접수대를 통해 바로 2, 3, 4층의 호화로운 전용 진료실과 대기실을 이용하고, 일반 환자들은 모두 5층에서만 진료를 받고 있었다.

일반 환자들은 S생명보험카드가 없으면 아예 2~4층의 출입을 할 수 없도록 2층 입구에서부터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K씨도 올해 연초에 S생명 가입을 고민했지만 매달 30만 원이 넘는 기본 보험료도 부담이 큰데, 당뇨병 초기라는 이유로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할증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에 가입을 포기했던 기억이 다시 아프게 떠올랐다.

한 시간이 넘게 욱신욱신 아픈 사랑니를 참아가며 기다린 끝에 올라간 5층 진료실에서는 의사의 1분 남짓한 진찰 후에 상담실장과의 상담이 이어졌다. 사랑니가 누워서 나 있고, 잇몸에 덮여 있어 수술로 이를 뽑아야 하는데 사랑니 발치 수술비용이 70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이 뽑는데 70만 원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따져 물었더니, Z치과는 올해부터 건강보험공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S생명과 단독 계약을 체결하여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와 만약 지금이라도 S생명에 가입하면 거의 무료로 이를 뽑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건강보험을 적용받으면 3만 원 정도면 뽑을 수 있지만 자기들은 건강보험 환자는 보지 않으니 건강보험을 적용받고 싶으면 주위의 다른 치과를 찾아보라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나올 때 보니 1층 로비 한 곳에 붙여 놓은 "저희 병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 왔다.

K씨는 문득 1년전 헌재의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위헌 판결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영리병원이 시대의 당연한 흐름이고 의료에도 시장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영리병원과 민간보험이 건강보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단지 의료제도를 부자용과 서민용으로 양분해 버리고 의료비만 폭등시킨 것이었다.

K씨는 다시 욱신거리는 사랑니 쪽을 부여잡고 진통제를 하나 더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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