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던 정부가 촛불 때문에 할 수 없이 접은 영리법인 병원. 역시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똑같은 주장으로 이번에는 그냥 밀고나가겠단다. 그리고 그 똑같은 주장을 계속 듣고 있다보니 열을 안 받을 수 없었다. 혼자 열 받기에는 의료 민영화 주창자의 주옥같은 주장들이 많아 국민들께 이날 토론회를 간략 보고 드리고자 이 글을 쓴다.
이미 다 영리병원이다?
이날 영리병원 찬성측 주장 5인(반대측은 2인) 중 한명이었던, 오래전부터 영리병원 추진의 모델을 만들어 온 전국병의원네트워크 박인출 회장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내 병원들 이미 다 영리병원이다. 의사들 동업해서 개원하지 않나? 이거 주식회사다. 하지만 '영리' 라는 말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 우리는 영리병원화라는 말보다는 '투자개방형병원' 하자는 거다. 나도 의사지만 지금 의사들의 독점권 문제 있다. 의사들 독점권을 반대하는 건데 왜 시민단체가 같이 반대하냐?"
아니, 지금도 병원들이 영리법인이라고? 그렇다면 실제 직업은 예치과 병원 네트워크 원장이신 박인출 회장님께서는 왜 자꾸 영리병원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걸까? 그냥 현행 법대로 놔두면 될 것을 영리병원 허용을 위해 의료법을 바꾸려는 정부 시도는 몰까? 이런 '사기'는 이제 그만 쳤으면 한다.
현재 우리나라 모든 의료기관은 비영리기관이다. 병원에서 번 돈은 다시 환자 치료에만 쓰도록 법적으로 규제돼 있다는 말이다. 삼성이나 현대 등의 대형 병원들이 병원에서 번 돈을 다른 곳에 빼돌리고 싶어도 불가능하고, 주식회사로 만들어 영리 행위를 목적으로 매진해 돈을 벌고 그 돈을 주주들에게 이윤배당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다 영리병원이다'라는 이야기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작년 촛불 운동 와중에 제주도 영리병원화와 관련한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 때 이기효 교수가 했던 '오래된 사기'다. 그때 이미 국민들이 다 알아버려서 다시는 안 칠 줄 알았던 사기를 이번엔 예치과의 박인출 회장님께서 새롭게 써먹고 있다.
박 회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필자가 얻은 깨달음이 있었으니, '아 맞다. 박인출 회장이 있는 예치과네트워크는 이미 주식회사였구나. 그리고 예치과가 돈을 더 벌려면 그래도 영리병원을 법으로 허용해 줘야 하는구나!' 박인출을 넣고 검색하면 회장님 사진과 함께 뜨는 건 '의사 & 기업가' 라는 직함이 뜨는 이유다. 근데 예치과 네트워크가 더 돈을 벌면 그 돈은 누가 더 내는 거지?
영리병원 반대는 음모론적 사고라고?
박인출 회장님 말을 이어 '오래된 사기'의 주인공 이기효 인제대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거 이념 논쟁하지 말자. 우리의 공동 목표는 건강을 위한 뜻을 같이 하는 동지다. 피켓들고 있는 사람들은 부자냐 서민이냐 이분법적 사고하지 말아라. 고정관념 버리고 오픈해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다. 영리병원화는 자본의 의료 시장 진입 규제를 완화하자는 거다. 의료 민영화는 말 자체가 성립 안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있어서 이거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 이건 총칼로 집권해도 무너뜨리기가 어렵다.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도입하자는 게 왜 건강보험 붕괴냐. 음모론에 입각해서 보니까 그런 거다"
이기효 교수는 시민단체들이 음모론적으로 사고하고 이분법적으로 사고해서 영리병원을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념적 논쟁은 하지 말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영리병원은 '과연 누굴 위해 하는가', 라는 문제를 짚지 않고서는 그의 말처럼 "왜 자본의 의료시장 진입 규제를 완화" 해줘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병원이 돈 벌자는데 왜 부자냐 서민이냐는 이분법적 이념이 나오느냐고? 답을 주겠다. 병원이 벌 그 돈 때문에 의료비는 폭등하고 그 돈은 바로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이게 아니면 인료 인력을 감소시켜 인건비를 줄이거나다. 이런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이미 입증된 바다. 또 '자본의 의료 시장 진입 규제'를 무너뜨리자는 것은 바로 파산 신고한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이렇게 해서 의료제도를 망친 나라가 미국이고.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부자들을 위한' 이념적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신을 '실용' 정부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다 '좌빨'의 이념적 주장으로 몰아붙여대는 코미디가 여기서도 반복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공청회를 보는 재미라면 재미였다고 해야 하나?
이기효 교수는 '총칼로 집권해도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건강보험'이라고 하면서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는게 왜 건강보험 붕괴냐고 물었다. 도대체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이 뭔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건강보험과 경쟁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정부가 말하는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이다. 즉 이기효 교수는 건강보험 안 무너뜨리는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건강보험 붕괴시키자고 직접 주장하면서 '음모론'을 주장한단 말인가.
사실 이기효 교수의 네모난 삼각형 논리를 따라잡기란 어지간한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민간의료보험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영리병원에만 한정해서 이야기 보면, 영리병원 허용만 해도 당연히 당연지정제는 무너진다. 영리병원은 돈벌라고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병원인데 국가가 의료비를 결정하는 현재 건강보험당연지정제도는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규제가 된다.
헌법소원 한번이면 끝난다. 아니 헌법소원 할 필요도 없다. 영리병원은 투자자들의 압박에 의해 돈을 더 벌어야만 한다. 병원에서 이윤을 남기는 방법은 환자 진료비를 더 많이 받거나 인건비를 대폭 줄이는 것 밖에 없다. 결국 과잉진료와 부당청구는 많아지고 병원 인력, 병원 노동자들의 해고나 비정규직을 통해 인건비 감축을 해 나가는 것이 돈버는 길이다. 지금도 의료비는 해마다 물가상승률의 3배씩 올라간다. 이게 로켓처럼 상승하면 건강보험 재정이 견딜 수가 없다. 정부가 알아서 건강보험 혜택을 대폭 줄여서 속빈강정이 되던지 아니면 당연지정제를 폐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념적으로 이야기하지 말자는 이기효 교수께 한 말씀 더 드리겠다. 일단 필자는 이 교수와 동지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윤증현 장관의 병원 영리법인 허용 발표가 나자마자 조·중·동은 영리병원 찬가를 부르고 나섰다. <중앙일보> 박의준 경제 에디터가 윤증현 장관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 '선 굵은 리더' 라고 칭찬한 것은 무엇이며, <동아일보>가 '영리병원을 허하라" 라는 시론을 통해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의료와 교육은 영리를 추구해선 안된다는 논리로 정치적 반대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념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왜 공청회장에는 삼성생명과 삼성병원을 대변하는 <중앙일보> 기자 한 사람만 토론자로 앉아있었던가?
영리병원 허용 정책은 이념 문제다. 자본을 위한 것인지, 국민을 위한 것인지 또 부자들을 위한 것인지 서민들을 위한 것인지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영리병원 찬가를 부르는 조·중·동 뒤에 누가 있느냐는 문제다.
경쟁을 하면 의료비가 내려간다?
박인출회장이나 이기효교수만큼의 비중으로 다룰 생각은 없어 발제를 요약해 올리진 않겠지만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연구원의 주장도 근거가 없어 한마디 해야겠다.
권용진 연구원은 "영리병원은 경쟁이 되니 의료비가 더 비싸지지는 않는다. 경쟁을 하면 의료비는 싸지는 법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에 대한 플로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로 정리 발언을 하셨다. "한 병원이 MRI가 6만 원이고 다른 병원이 MRI가 4만 원이면 환자들이 어느 병원을 찾아가겠는가? 경쟁을 하면 의료비가 싸진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박형근 교수와 (영리병원 반대측) 보건정책 교과서를 놓고 공부하고 싶다"
아무리 의사 파업 때 서울대와 대한의사협회가 급조해 만들었던 의료정책연구소의 연구위원이시지만, 그래도 의사 파업 때 선두에 섰던 '의권 쟁취 투쟁'의 주요 멤버셨고, 이후 의협의 홍보이사셨던 권용진 연구위원께서 이런 주장을 하시는 걸까?
보건경제학 책도, 아니다. 그 책 1장도, 안 읽으셨단 말인가? 보건경제학의 1장에서 설명하는 것은 보건의료분야의 경제가 다른 경제 분야와 다른 점은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y of information)"이다. 즉 의사와 환자가 대등한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장면처럼 맛없으면 안 가면 되는게 아니라 의사가 검사하라면 하고 수술받으라면 받아야 되는 분야라는 것이다.
병원에 가서 MRI를 찍으라면 환자가 안 찍을 방법이 있나? 또 다른 병원 알아보고 싼 병원에 가서 찍어오나? 지역에 병원이 하나밖에 없는데 어딜가란 말인가? 아니 이제는 병원도 질병당 가격 알아보고 병원을 찾아가란 말인가? 의료 분야는 보건경제학 책에 나와 있듯이 공급자 주도 시장이다. 공급자가 가격을 올리고 수량을 정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가 의료를 끝까지 공공적 성격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식코>로 잘 알려진 미국꼴이 나기에 말이다. 도대체 영리병원 해도 경쟁 때문에 의료비가 안 오른다는 거짓말은 어떤 논문이나 어떤 연구에 근거해서 나왔단 말인가? 권용진 연구위원께서는 이 근거를 제시해주시거나 다른 기회에 보건경제학 교과서 공부를 함께 해봤으면 한다.
이 토론회는 정말로 볼 것이 많았다. 행사장 안팎을 오가다 들은 통화의 한 내용. 정부 관계자인지 토론회 주최측인지 어딘가로 하는 상황 보고 였던 듯 한데 "기자 회견은 조용히 끝났어요. 자기들끼리 구호 외치더니 조용히 끝나더라고요. 다행히 토론회 장은 아직 별일 없어요"
▲ 지난 13일 오후 영리법인 병원 허용을 놓고 토론회가 있었다. 시민·사회단체는 토론회에 앞서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기자 회견을 진행했다. ⓒ프레시안 |
다행스러웠나?
요즘 장기하가 뜬단다. 나도 장기하 노래에 반했다. 나만 그랬을라나, 그들의 노래가 왜 그렇게 촛불 때를 떠오르게 했을까? 그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 라는 노랫말을 들으면, 달이 떠오르면 걷기 시작해 가끔 해도 보곤 했던 그 봄과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났고, "거친 가시밭길을 지나 꼬박 석 달을 왔지만 아무것도 없잖어"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 라는 노랫말은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이 '뻥'이자 '립서비스'였다는 말로 들렸다.
최근 '장기하와 얼굴들'이 공식 1집을 내놨다. 메인 타이틀 노래인 '별 일 없이 산다' 가 또 내 맘 같다. 의료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 정권을 보면 내가 하고픈 말이다. 정말 "별일 없이 좀 살고 싶다". 그리고 이 노래의 첫 구절 세마디를 의료 민영화를 재추진하는 '이명박과 얼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 "니가 들으면 심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다리 쭉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이건이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이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알았냐?"
혹 필자의 글 때문에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이 불온음반으로 금지 되는 일은 없겠지. 아마 어설픈 일 벌이면 '이명박과 얼굴들'은 달 차오른 밤에 온 국민의 석달 열흘을 가시밭길 걷기 행진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공개 토론회는 참아줬지만, 그리고 "구호만 하는 기자 회견으로 조용히 끝나줬지만" 말 안 듣고 계속 밀어 부쳤다간 그냥 조용히 안 끝날 거다. 얼마전 기형도 시인 20주기가 지났다. 기형도 시인마저 '쥐불놀이' 라는 시에서 말한다. "아저씨는 불이 무섭지 않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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