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 지금은 '먹칠 중'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 지금은 '먹칠 중'

[시론] 국가브랜드위 첫째 과제는 '인권위 축소 철회'

행정안전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시한, 3월 말이 딱 2주 남았다. 이달곤 행안부 장관은 지난 3일 "인권위 축소 방침은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며 3월 말까지 끝내겠다"고 못박았다. 인권위 축소에 반대하는 인권·시민단체도 투쟁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어 곧 일대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 정부의 고집스러운 인권위 축소 방침은 "앞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4만 달러가 되더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국민이나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두렵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17일 자 발언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국가브랜드위원회 1차 보고 대회에서 이 대통령은 "정부가 목표로 하는 선진 일류국가는 단순히 1인당 소득이 얼마냐 하는 것보다 모든 분야에서 선진 일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며 "잘 사는 나라도 중요하지만 존경받고 사랑받는 나라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나아가서 이 대통령은 "한국이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면서 어두운 면도 좀 있긴 하지만 이것을 걷어내기 시작하면 이른 시간 내에 좋은 국가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다"며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브랜드위의 과제"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이 배려해야 할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자 국가의 품격에 대한 공통의 척도인 인권이다. "이제는 걷어내야 할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도 다름 아닌 인권 침해국의 이미지다. 그렇다면 국가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첫 번째 방책은 국제 사회에 막대한 광고비용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가 한목소리로 '속 좁은 정권의 보복성 조치'라고 비웃는 인권위 축소 방침을 철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 광주장애인총연합회와 광주경실련 등 광주지역 50여개 장애인.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독립성 보장 및 지역사무소 폐쇄 저지를 위한 광주대책위원회'는 지난 5일 발대식을 가졌다. ⓒ뉴시스

11인 11색 인권위원이 하나의 결정을 내리는 '비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제 사회는 유엔 인권 최고대표부터 22개의 아시아 주요인권단체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의 인권위 축소 방침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한목소리로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다소 이례적으로 강력한 국제 사회의 조기경고와 주시(注視)는 국제 인권 공동체가 대한민국에 거는 높은 기대와 함께 현 정부의 역주행 조짐에 강한 우려를 표출하는 이중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물론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인권위의 규모도 축소할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따져 봐도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사토론 프로그램 등 공론의 장에서도 인권위 축소 방침 찬성론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가의 대사를 공명정대한 토론이 아니라 속 보이는 뒷담화로 처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인권위는 힘없는 국가 기관이다. 어느 조사연구에서 힘없는 국가 기관 순위에서 기상청 하나만 제치고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렇듯 세상이 다 인정하는 힘없는 인권위를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국내외의 반발을 무릅쓰고 끝까지 손보려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혹자는 인권위가 경찰의 촛불 집회 진압을 과잉진압으로 판단한 것이 결정적으로 정권에 밉보인 계기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럴 듯한 얘기다. 그런데 과잉진압 인정에 반대한 국가인권위원은 11인 중 딱 1인이었다. 이분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위원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 몫 인권위원 2인도 과잉진압 결정 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인권위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표결 결과는 몹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우 다양한 이력과 소신을 자랑하는 인권위원들이 거의 모든 사건 처리에서 어떠한 소수의견도 없이 100% 전원일치 결정을 내리는 현상은 매우 놀랍다. 바깥에서 보기에 정치적 파장이 큰 민감하고 중요한 사건들도 전원위원회 석상에서 몇 차례의 심도 있는 토론과 심의를 거치고 나면 만장일치 결정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촛불 사건은 한두 위원의 반대 의견이 붙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무엇이 11인 11색의 인권위원들을 이렇게 하나로 묶는가? 크게 세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진실의 힘이다. 인권위의 가장 큰 업무는 온갖 인권 침해 의혹의 진상을 조사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가 속절없이 일방적으로 당한 인권침해의 속내는 인권위의 조사로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의 힘은 그 어떤 수사보다도 호소력이 크다.

둘째,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발전시켜 온 구체적인 인권 보장 법리의 힘이다. 인간성의 깊은 진실과 경험에 뿌리박은 인권 법리들은 양심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부인하지 못할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 오히려 접하는 즉시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계몽되는 경우가 많다. 추상적인 인권이 구체적 법제도와 시스템의 옷을 입고 피부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셋째, 인권위를 지켜보는 국민의 힘이다. 인권위의 주인인 국민은 인권위법을 통해 모든 인권위원에게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오직 인권의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할 것을 명령한다. 또한 국회 법사위는 국민대표의 자격으로 두 달마다 한 번씩 인권위의 모든 활동과 결정에 대해 강도 높은 설명의 책임을 묻는다.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인권·시민단체들도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인권위의 업무수행을 상시 감시한다.

힘없는 국민 비빌 언덕 깎아내려는 정부

한마디로, 다른 어떤 (준)사법기관보다도 내부구성이 다양하고 말 많은 인권위가 언제나 전원일치의견이나 압도적 다수의견을 도출할 수 있는 근본적 이유는 인권의 보호와 증진이라는 인권위의 고유업무 및 수행방식이 보수와 진보 등 단순한 이념적 편 가르기를 넘어 매우 설득력 있는 공통의 판단기준을 제공하는 덕분이다.

국가인권기구는 사회경제적 약자와 정치문화적 소수자의 인권보장을 위해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발을 갖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라고 국제 사회가 만들어낸 현대적 민주법치국가의 대표적인 인권 전문기관이다. 경제 발전과 질서 유지에 치중하는 대부분의 국가기관과 달리 국가인권기구는 약자와 소수자의 관점에서 국가와 대기업 등 공사부문의 실력자를 통제할 임무를 부여받은 약자를 위한 국가기관이다.

그렇기에 인권위 규모축소는 당연히 인권 축소로 직결된다. 공사부문의 크고 작은 실력자가 공공복리와 질서유지의 명분 아래 저지를 수 있는 갖가지 인권 침해를 감시하고 단속하는 데 필요한 인권위의 눈과 귀는 물론 침해구제와 인권증진을 위해 피해자와 정책 당국 등 이해관계자를 두루 만나 경청하는 데 필요한 인권위의 손과 발을 자르는 셈이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인력축소는 또한 권력 감시 기능과 정책 조언 기능, 그리고 교육 홍보 기능을 축소함으로써 국가운영에서 약자와 소수자의 입지를 세워주고 그 목소리를 반영할 주요통로를 차단하는 반민주적인 결과를 빚는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인권상황의 악화가 염려되는 중증장애인, 시설생활인, 수형자,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국제이주여성 등 힘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기댈 언덕을 깎아내리는 결과를 낳는다. 왜 이래야 하나?

행안부의 축소 논리, 정말 현실 몰라서 그러나?

행안부의 설명인즉, 잉여인력을 줄임으로써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게 하려는 것이란다. "법무부에 인권국이 생겼으므로 인권위의 정책인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행안부의 주장은 정말 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법무부 인권국의 존재의의는 수사와 행형, 그리고 출입국관리의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프레임 안에서 인권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다. 설령 법무부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우에도 대통령의 관점과 정권의 우선순위를 반영하여 인권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법무부 조직의 일부일 뿐이다.

반면 인권위는 법무부는 물론 대통령과 총리로부터도 100% 독립한 무소속 독립기관이다. 구태여 설명하자면 법무부 인권정책국의 역할은 인권관련 정부법령안을 만드는 내부과정에서 정부법률가의 자격으로 조언을 하는 데 있다. 반면 인권위의 역할은 정부입법과정을 거친 인권관련 정부법령(안)에 대해 독립적 지위를 가진 외부 인권전문가의 자격으로 조언하는 데 있다.

같은 정책사항을 조언해도 내부자의 조언과 외부자의 조언은 몹시 다른 경우가 많다. 조직의 논리와 문화란 것이 워낙 끈질기기 때문이다. 법무부 인권정책국은 뭐라고 해도 법무행정의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법과 질서' 논리와 문화를 따라가게 돼 있다.

반면 인권위는 국가운영에 인권의 논리와 문화에 입각한 인권정책을 반영함으로써 법무부 중심의 비대칭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실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내부자의 관점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제삼자의 훈수가 더 정확한 법이다. 인권위의 정책기능 축소는 법질서의 인권 종속이 아니라 인권의 법질서 종속을 가속할 위험천만한 불장난이다.

행안부는 인권위의 교육인력도 과다하다는 입장이다. 인권위는 지난 2006년 조직 개편을 통해서 국가인권기구의 3대 기능의 하나인 인권교육을 국 단위 조직으로 확대 편제한 바 있다. 인권위의 교육기능은 각급 학교와 공사 부문에서 사용할 인권교육 교재개발과 공사부분에서 요구하는 인권교육 교사양성을 주 업무로 꼽을 수 있는데 그 규모와 하중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군과 경찰 등 권력적 법집행기관, 각종 복지시설, 각급 학교, 기업부문, 언론부문, 장애인 등 다양한 인권 취약 계층 등 인권교육의 기본 수요층만 떠올려도 인권교육 핵심업무의 방대한 규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20명도 안 되는 인권교육 인력을 줄이라는 주문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인권교육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요컨대, 인권위의 정책 조언 및 인권교육 기능은 국가인권기구의 핵심 기능이다. 행안부의 방침대로 인권정책 및 교육업무가 현저히 축소되고 진정처리에 치중하는 국가인권위는 파리원칙에 부합하는 국가인권기구로 보기도 어렵다. 국가인권기구의 헌법에 해당하는 파리원칙에 따르면 진정처리기능은 필수적인 기능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부가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한 술 더 떠서 지역사무소 폐지를 공언한다. 1일 생활권 국가에서 지역사무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부산, 광주, 대구에 설치된 인권위 지역사무소는 작지만 인권의 지역거점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크고 작은 인권토론 모임이 작은 회의실에서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다. 지역주민과 학생들의 인권 사랑방이자 교육장으로도 활용도가 높다. 무엇보다도 지역주민의 인권위 접근성을 대폭 높여줬다.

지역사무소는 문을 닫을 게 아니라 최소한 대여섯 명씩 더 충원해서 담당지역의 모든 생활복지시설에 대한 방문조사권을 정기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인권위의 법적 업무와 권한 중 다수인보호시설, 즉 생활복지시설에 대한 방문조사권은 거의 행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선진국은 구금시설, 교정시설, 정신보건시설, 장애인시설, 노인 아동시설 등에 대해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방문조사를 실시하는 독립기관이 존재한다. 그 인력만 해도 다 합치면 상당한 규모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고작 대여섯 명의 인권위 직원만으로 매년 1000개도 넘는 복지시설 중 고작 10여 개 시설에 대해서만 방문조사를 한다. 간신히 시늉만 하는 수준인 셈이다. 시설감독책임을 갖는 복지부와 지차체에도 자금배정 및 회계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직원이 한두 명 있을 뿐이고 인권전문 조사인력은 없다. 그러니 경향 각지에서 복지시설의 전근대적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 것 아닌가. 행안부도 위와 같은 사정을 모두 파악한다면 차마 인권위 축소 방침을 강행하지는 못하리라.

선진국과 비교하면 축소 명분은 더 초라해진다

사실 인권위의 현재 인력은 선진국의 기준으로 볼 때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선진국이 달리 선진국이겠는가. 선진국은 예외 없이 과학기술과 산업발전으로 이룩한 국부를 인권과 복지에 투자함으로써 존경받는 나라, 브랜드 가치가 높은 나라가 됐다. 그 결과 선진국에는 인권, 노동, 복지, 교육이라는 필수적인 국가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 한마디로 모든 선진국은 경제선진국이지만 동시에 인권선진국, 복지선진국, 교육선진국이다. 얼핏 볼 때 과다해 보일 정도의 인권과 복지 배려 없이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선진국의 국가인권기구는 우리 인권위만큼 강력하거나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인권위 간판을 단 외국기관 하나와 인권위를 비교하면 과히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주장이 실체적 의미에서 들어맞는 나라가 있다면 그건 선진국이 아닐 것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한국에서 인권위가 홀로 수행하는 다양한 인권업무를 선진국에서는 10여 개의 독립 전문기관들이 특화해서 수행한다. 경찰, 교정, 출입국, 정신병원, 군대 등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조사하는 매우 독립적인 전문위원회 혹은 옴부즈맨이 존재하고 정보공개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이 빠짐없이 활동한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이처럼 중층적인 겹겹의 인권보호 장치를 이미 1970~80년대부터 차곡차곡 갖춰왔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의 국가인권기구는 이런 제도적 배경 아래서 비교적 뒤늦게 출범했기 때문에 업무담당이 우리 인권위만큼 넓지 않다. 따라서 선진국의 인권기구와 비교할 때에는 당해국의 국가인권기구 외에도 다양한 독립적 인권전문기구들의 존재를 고려해야 한다. 법정 국가인권기구가 아예 없는 미국만 해도 연방차원의 시민권위원회(Commission on Civil Rights)와 고용평등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는 물론 주마다 경찰, 교정시설, 장애인 등에 대해 주행정부와 독립한 전문인권기구가 완비돼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국이 어떻게 선진국 행세를 하랴.

둘째, 대다수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연방 국가라서 전문인권기구가 연방 차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 단위마다 복제돼 있다. 예컨대, 캐나다와 호주는 주마다 주인권위원회가 따로 설치돼 있다. 이들 주인권위의 인력만 계산에 넣어도 연방인권위의 인력만 계산할 때에 비해 인력규모가 최소한 대여섯 배 이상 늘어난다. 그 결과 호주나 캐나다 같은 선진국은 우리나라 보다 인구가 절반 안팎에 지나지 않지만 전체 인권공무원 수는 인권위 직원 수보다 최소한 열 배 가까이 더 많다.

우리나라의 인권보장과 민주주의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인권위의 존재의미가 많이 퇴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 인권위 같은 '후진적' 국가기관은 더는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장은 한번 도달한 인권수준은 좀처럼 후퇴하기 어렵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에 반하고 무책임하다. 또한 인권이란 것이 영원한 경계가 필요하고 사회변화에 따라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간단없이 인권보장법제를 보완하는 점도 간과한다.

대부분의 현실 민주주의체제에서 국가와 대기업 등 공사부문의 실력자들은 조금만 상황이 악화해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어렵게 획득한 약자의 권익부터 솎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선진국의 국가브랜드가치가 유지되는 큰 이유는 천민민주주의의 충동적 반응을 막아내는 실질적 인권보장 장치가 그나마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권위의 규모축소 논거들은 어느 하나 설득력 있는 것이 없다.

어렵게 이룬 인권위의 독립성, 행안부는 의미 모르나

인권위는 현재 5본부 22개 팀이 운영된다. 본부 명칭은 각각 인권정책, 인권 침해구제, 차별시정, 인권교육, 행정지원 본부. 각 본부에는 인권의 내용과 대상에 따라 서너 개씩 팀이 있다. 예컨대 차별시정본부에는 성차별팀, 장애차별팀, 신분차별팀 등 5개 팀이 있다. 본부와 팀의 명칭은 당해 본부와 팀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최대한 친절하게 알려준다. 한 팀의 인원은 적으면 5명, 많으면 10여 명. 행안부의 지적대로 각 팀의 인원수는 적은 편이다.

행안부는 업무영역에 따라 특화된 소형 팀들을 대형 팀으로 과감하게 통합할 것을 주문한다. 이에 따라 예컨대 성차별 팀과 장애차별 팀을 한 팀으로 묶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팀장은 하나 줄겠지만 전문화도 안 되고 팀원 간 소통도 어려울 것이다. 행안부는 그래도 팀장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팀장도 과장과 같이 결재만 하며 빈둥거린다는 잘못된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위가 이른바 본부-팀 편제로 전환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소규모 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국과 체제와 구분되는 소형 전문팀제의 특징은 팀원의 평가를 팀의 성과에 연계시킴으로써 팀원의 협동성을 높이고 팀장도 결재 외에 업무를 담당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인권위의 특화형 전문팀들을 대형 팀으로 무조건 통합하라는 행안부의 요구는 관료적 획일주의의 또 다른 횡포가 아닐 수 없다.

행안부는 인권위 직제를 조정할 무제한적 법적 권한을 갖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행안부가 인권위의 직제와 인력을 마음대로 조정하면 인권위의 독립성은 완전히 빈 껍데기가 된다. 대통령과 정권의 입맛에 거슬리는 입법정책 권고나 징계조치 권고를 낼 때마다 인력 및 예산 축소의 압력이 거세지면 그 어떤 인권위가 정권과 독립하여 결정할 수 있겠는가.

주지하다시피 사법부나 입법부 등 헌법적 독립기관의 직제는 행안부 소관이 아니다. 헌법기관과 똑같이 무소속 독립기관으로 인정받은 인권위의 직제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규정한 이유는 인권위가 헌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이지 행정부 소속기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행안부의 인권위 직제 변경권한은 특별히 합당한 사유가 없는 이상 일방적으로 행사될 수 없는 아주 제한적인 권한으로 해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인권위의 독립성이라는 상위 법원칙이 죽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인권위의 독립성 수준과 보장방법은 입법과정에서도 가장 큰 논란거리였다. 당시에는 인권위의 주요 감시대상인 법무부로부터 독립성을 쟁취하는 데 초점이 놓였다. 겨울철 명동성당 노천단식 농성도 불사한 인권단체들의 눈물겨운 투쟁의 산물로 법무부가 인권위에 대해 어떤 권한도 갖지 못하는 현행법이 마련됐다. 그러나 헌법기관이 아닌 인권위는 어쩔 수 없이 조직의 구성과 내용, 즉 직제 규정을 대통령령이라는 형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초기 설립과정부터 인권위는 당시 총무처를 상대로 직제안을 놓고 아주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 대통령과 여당이 인권위에 우호적이었지만 관련부처인 법무부와 복지부 등은 인권위가 기초한 직제령 및 시행령 초안에 대해 노골적인 반대의견을 내며 최대한 눈엣가시 인권위의 인력축소와 권한축소를 도모했다. 당시에도 총무처는 인권위가 낸 350명의 정원요청을 정확하게 반 토막 냈었다.

인권위법상 인권위의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는 행정부처는 인력과 예산을 배정하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이지 법무부나 복지부 등 인권관련 업무부처들이 아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위시한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은 결국 행정부와 기재부가 인권위의 인력과 예산을 일방적이고 멋대로 감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달렸다. 한마디로 인권위의 독립성의 실체는 행정부로부터 운영상의 독립성 확보에 있다.

국가 브랜드 추락을 내버려둘텐가

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주인의식을 가진 주인이 많다. 인권의 주체인 일반국민은 물론이고 설립투쟁을 주도한 인권단체도 주인의식이 강하다. 어떤 의미에서 인권위는 국민들, 특히 힘없는 국민이 민주화 투쟁의 산물로 '소유'하게 된 유일한 국가기관이다. 일반국민과 인권단체가 인권위 지킴이를 자임하고 나선 요즘의 상황도 주인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에 대한 최근의 국내외 지지행렬을 보면서 전직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약간 우쭐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국민이 인권위를 민주화 투쟁의 귀중한 결실이자 그 공고화 수단으로 인정해 주시기 때문이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기 마련이라는 공자님 말씀대로 인권위는 그간의 많은 미흡함에도 국내외에서 좋은 이웃을 많이 얻은 것 같다. 이번에 드러난 국내외의 관심과 기대는 앞으로 인권위의 긴장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큰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이제 결론을 맺자. 행안부, 아니 청와대가 인권위 축소강행으로 얻을 게 뭔가? 국내외에서 빗발칠 비판과 저항밖에 없잖은가. 간신히 구축한 아시아의 주도적 인권국가라는 국가브랜드에 먹칠하는 것 외에 없지 않은가. 특별히 국제 인권공동체는 한국정부를 B급 '깡패' 정부로 공식 판정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강행 여부를 예의주시 중이다. 국내외에서 인권을 배려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사랑받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새로운 국정목표를 제시한 이명박 대통령과 국가브랜드위원회가 명분 없는 인권위 축소 강행으로 국가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는 일을 내버려둘 리 없을 것으로 믿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