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중요시해 왔다. 그런데 무려 55조원, GDP 5.5%의 적자 재정이라니! 게다가 연평균 20조원(5년 총액 96조원)의 부자감세를 단행해 국가재정에 타격을 가했던 이명박정부가 대규모 적자 국채를 발행하겠다니! 논란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민주당은 '빚내서 하는 슈퍼추경은 한심한 일'이라며 정부를 비판한다. 민주노동당도 '국가파산으로 갈 수 있는 위험한 추경예산 편성'을 반대한다며 시멘트예산, 국방예산을 복지예산으로 돌리라고 한다.
빈약한 재정, 부끄러운 복지, 낮은 총직접세
▲ 10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한나라당을 방문해 추경 처리에 대해 당부했다. 30조원 규모의 '수퍼추경'에 대해 야당들은 국가재정을 언급하며 반대하고 있다. ⓒ연합 |
2008년 한국의 국가재정 규모는 GDP의 30.9%이다. OECD 평균은 40.9%이다. OECD 회원국에 비해 10%포인트가 낮다. 한해 GDP를 1000조원으로 보면 100조원이 부족하다.
이 부족한 100조원은 어디에 쓰여야했을 돈일까? 오랫동안 보수세력이 집권하고 복지운동도 미약했던 한국에서 사회복지는 항상 빈약한 국가재정의 희생자였다. 2005년 한국의 공공 사회복지지출은 GDP의 6.9%이다. OECD 평균은 20.5%로 한국보다 13.6%포인트나 높다. 100조원이 훨씬 넘은 금액이다. 국가재정 부족분 100조원은 사회복지로 갔어야 하는 돈이다.
국가재정이 취약한 이유는 총직접세가 작기 때문이다. 보통 조세체계를 비교할 때 조세부담률(직접세+간접세), 국민부담률(조세 + 사회보장기여금)을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직접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총직접세 비중이다. 사회보장기여금은 쓰이는 용도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점이 다를 뿐, 직접세와 마찬가지로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국가재정 수입 중 중 하나다.
필자가 계산해 본 결과, 2006년 우리나라 총직접세의 GDP 비중은 17.1%이다. OECD 평균 24.4%와 비교하면 7.3%가 부족하다. 금액으로 따지만 73조원이다. 부족한 국가재정 100조원의 3/4이 낮은 총직접세 수입에 기인한다(나머지 부족분은 세외수입, 국가채무 등에 의함).
절박한 복지확대
이제 슈퍼추경 이야기로 돌아오자. 빈약한 국가재정, 이명박정부의 감세, 적자 국채 발행 등 재정을 둘러싼 쟁점들이 많다. 과연 슈퍼추경을 반대해야 하나? 이를 위한 재원은 어디서 마련해야 하나? 추경논란에서 우리가 보아야할 핵심은 무엇일까?
첫째, 슈퍼추경이 필요한가? 복지를 대폭 늘리기 위해선 예산확충이 불가피하다. 10일 대학생들은 등록금 반값 지원을 위한 추경예산 5조원을 요구했다. 보육, 요양, 장애보조 등 공공서비스를 확충해 일자리 85만개를 만드는 데 연 15조원이 필요하다. 절대빈곤층에 기초생활급여를 제대로 지급하기 위해선 연 20조원이 또 소요된다. 모두 다 절박한 요구이며 내수경제의 밑거름으로 순환될 재정들이다.
복지 확대를 위해서 지난번 확정된 예산의 지출 변화도 필요하다. 이번 추경예산이 수정예산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재검토돼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4년간 4대강 살리기와 연계사업에 18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녹색뉴딜이라고 부르지만 오히려 환경훼손이 우려되고 대운한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업이다. 대형 국가사업의 적절성을 진단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마저 면제될 예정이어서 사후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가능한 복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복지+조세' 연계한 사회복지세, 복지채권 도입
둘째,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는가? 지난해 통과된 감세 시행을 중지하고, 사회복지세를 새로 신설해야 한다. 슈퍼추경 국회에서 감세 효력을 중지시키면 올해 13조원의 재정 축소를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효를 2012년 이후 정한다'는 내용으로 세법개정안을 추경국회에 제출해 '감세 보류' 공방을 벌여야 한다.
이것으로 세입이 느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총적자액이 55조원이라면 여전히 약 40조원이 부족하다. 우리사회에 꼭 도입해야 하는 세금이 무엇이랴고 물으면 나는 '사회복지세'라고 말한다. 이 세금은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직접세와 고가품에 부가되는 개별소비세(구 특별소비세)에 10~30%의 누진세율을 부가하는 목적세다.
우리나라처럼 조세 불신이 크고 복지체험이 취약해 증세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있는 곳에선 '복지와 조세'를 연계한 세목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세는 중산층 이상이 누진적으로 부담하되 지출 용도는 복지로 정해지기에 다수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고, 입법운동으로 발전할 여지도 지닌 세금이다. 매년 15조원 안팎의 세수가 기대된다.
나머지 재정 충당을 위해선 '복지채권'을 발행하자.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국가도 필요하면 적절한 수준에서 부채를 가질 수 있다. 최근 국가채무 규모를 둘러싸고 'GDP 33% vs. 76%' 공방이 있지만 실제 수치는 양자 사이에 있다고 판단된다. 아직은 OECD 평균 국가부채율 75%에 비해 낮아 추가발행 여력이 있다. 단, 모두 서민복지에 쓰이기 위해선 '복지채권' 방식이어야 한다.
추가 국채발행이 채권시장을 압박해 금리 인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올해 국민연금기금은 국내채권 투자 비중을 작년 77.3%에서 69.0%로 낮추었다. 작년에 주식투자로 20조원 가량 손실을 입고 이를 채권 수익으로 겨우 보완했음에도 여전히 채권투자를 줄이고 주식투자를 늘리려 한다. 그 결과 올해 보험료수입 등으로 늘어나는 30.7조원 중 2.6조원만이 국내채권에 투자된다. 만약에 올해 국민연금기금이 작년과 동일하게 채권 비중을 유지한다면 국내채권시장에서 24조원의 순매수 여력을 가진다. 국민연금기금은 안정적 자산운용을 얻고 정부는 국채시장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 측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만한 일이다.
'복지세·복지채권·복지회계' 3복을 제안한다
셋째, 이번 슈퍼추경 논란에서 무엇을 키워가야 하나? 복지국가의 꿈이다. 이번 슈퍼추경 논란은 누가 서민복지의 대변자인가? 누가 책임있게 재원을 마련하는가?를 둘러싸고 진행될 것이다. 나는 이번 논란을 통해 한국에서 복지 의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생기기를 바란다.
추경 지출은 '서민생활, 일자리'를 포함하는 복지예산 원포인트여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세를 도입하고 부족한 재원은 복지채권으로 마련하자. 기업구조조정이나 불필요한 SOC투자에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에서 사회복지 기틀이 마련될 때까지 사회복지세와 복지채권으로 조성되는 재원은 한시적으로 '복지국가특별회계'로 독립 운용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가능할까? 시급한 것은 돈에 앞서 복지체험이다. 서민에게 복지를 경험하게 하자. 그래야 세금도, 사회보험료도 늘릴 수 있고, 이를 위한 복지동맹운동도 가능해진다. 슈퍼추경 논란에서 복지국가를 꿈꾸며 복지세·복지채권·복지회계, 3복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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