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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줌마·할머니 '악' 소리 낼 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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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줌마·할머니 '악' 소리 낼 힘도 없어요"

[3·8 여성의날] 구조 조정·임금 삭감 1순위…여성 노동자의 비애

오는 8일은 3·8 세계여성의날이다. 매해 이날을 기념해왔던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해 여성·사회단체들은 올해에도 서울 청계광장에서 제25회 한국여성대회를 연다.

올해 한국여성대회의 주제는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주최 측은 '여성이 만들어요, 빈곤과 폭력없는 행복한 세상!'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경제 위기 속에서 정치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사회적 약자의 고통과 불안은 심각하고, 여성들의 처지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의 침체는 고용의 불안정과 연결된다. 특히 한국에서 경제 위기는 이미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와 직결된다. 세계여성의날에 경제와 노동, 그리고 빈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한편, 세계여성의날은 여성 노동자들이 만든 날이기도 하다. 이날은 1908년 미국의 섬유여성노동자들이 여성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나선 것을 기념해 제정됐다.

101회 세계여성의날을 맞는 한국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한국여성대회를 후원하는 <프레시안>은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짚어보았다. <편집자>

#1. "그 쥐꼬리만 한 돈을 깎겠다고?"

서울 지하철 용답역에서 만난 올해 환갑을 맞은 김홍선(60) 씨는 20년 가까이 지하철에서 청소를 해왔다. 그렇다보니 허리협착증, 디스크, 관절염 등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다. 그는 말하는 동안에도 어깨와 허리를 연신 주물렀다. 일을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푼이라도 벌어 입에 풀칠이라고 해야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남편은 8년째 중고로 산 소형차로 택배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예전엔 하루에 5만 원씩 꼬박꼬박 가져다 줬는데, 요즘은 경제가 위기라서 그런지 잘하면 3만 원, 아니면 1만 원을 준다"며 "이마저도 요즘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60살부터 받는 국민연금도 예전에 급한 일이 있어 목돈으로 사용해 지급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 김 씨는 "65살이 정년이라서 그때까지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 몸을 이끌고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마에 있는 주름만큼 손에도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 새벽 지하철 철로를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들. ⓒ프레시안

얼마 전 뉴스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60세 이상 노인들의 최저임금을 깎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김 씨는 더욱 일할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는 "새벽부터 나와 꼬박 일해 손에 떨어지는 돈이 100만 원인데 여기서 더 깎겠다니"라며 역정을 냈다. 평생을 돈 때문에 조이고 사는 김 씨였다.

청소 일을 하기 20년 전에는 집에서 액세서리를 조립하는 부업을 했다. 남편이 자동차 정비업소를 운영했지만 벌이가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 같아선 나가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돌봐야 할 자식들이 있기에 그럴 수 없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그에겐 두 딸이 있다.

하지만 남편의 정비소가 망하고 마음을 달리했다. 늘어난 빚에 눌려 죽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심정이지. 하지만 막상 일자리를 찾으니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평생을 집안 살림만 해왔던 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결국 몸으로 하는 청소 일을 했지. 청소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거든."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가슴을 쳤다. 형편없는 월급에 중노동은 그로선 견디기 힘들었다. 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 씨가 받은 월급은 39만 원이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서 월급은 딱 그만큼에 맞춰 올랐다. 그는 "그나마 매년 올라가는 월급만 보면서 지금까지 버텨 왔다"며 "그런데 쥐꼬리만 한 월급을 깎겠다니 정말 답답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게다가 내년 5월이면 김씨가 속한 용역 업체와 지하철간 계약이 만료된다. 그는 당장 구조조정이 떠올랐다. "요즘 같아선 여기서 나가면 어디 갈 곳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지하철은 직영으로 운영하던 검수 등 여러 작업을 하청 업체로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 하청의 청소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했기 때문에 현재 역내에서 청소를 맡는 구역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이러다간 내년 5월에는 청소 용역이 대규모로 해고되지 않을까 싶다"고 불안해했다. 그는 그래서 차라리 내년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년이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젠 되레 거꾸로 되어버렸다.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곳도 없고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김 씨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간다.

#2 "회사 심보, 참 고약하지 않아요?"

서울의 한 대형 할인매장에서 일하는 이기숙(가명·43) 씨. 그가 여기서 일한지도 2년째다. 하지만 요즘처럼 일하기 어려운 적은 없었다. 경제가 위기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회사에서는 매출이 늘지 않는다고 직원들을 '무지막지'하게 몰아세우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같은 매장에서 근무하던 부장이 과로사로 죽는 일까지 발생했을 정도예요. 회사가 다른 곳에 팔려나간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고…. 대주주가 경제 위기 때문에 휘청거린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에서는 위기 타파를 위한 '자구책'을 얼마 전부터 내놓았다. 인건비 절약을 위해 고용시간을 주 40시간에서 주 32시간으로 줄인 것. 그는 이를 두고 "벼룩의 간을 내먹으려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한 달 일해서 100만 원 좀 넘게 받는데, 이것마저도 일하는 시간을 줄여 삭감하겠다는 회사의 심보가 고약하지 않나요? 32시간을 일하면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70만 원 밖에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맺었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계약을 맺지 않을 경우 나가줄 것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앞으로 이 월급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푸념했다.

▲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캐셔 여성 노동자. ⓒ프레시안

더 막막한 건 근무 시간이 줄어 든 이후,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근무 시간은 단축시켜 놓고 인원 충원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을 줄여 임금을 삭감시켜 놓고 사람을 뽑지 않으니 그 넓은 매장에서 일하는 점원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라며 "곱빼기로 늘어난 일 때문에 바쁜 시간에는 허리 한 번 구부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회사에 하소연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그만두라는 사직 권고뿐이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는지라 다리의 관절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퇴근할 때쯤 되면 허리는 아프다 못해 부러질 듯하다. 계산대에서 물건을 찍다보면 화장실 갈 틈도 없어 방광염은 항상 몸에 달고 산다. 하지만 다른 일을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씨는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을 훌쩍 넘었다"며 "나이가 들다보니 다른 일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도 크다"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 씨도 처음부터 대형마트에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 오기 전에는 남편과 이혼한 위자료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했다. 하지만 운영이 순탄치 않았다. 결국 투자했던 위자료만 몽땅 날리고 말았다. 당시를 "우울증까지 걸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이씨는 소회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굶어 죽일 순 없겠다는 생각에 일할 수 있는 곳을 여기 저기 찾다가 이곳을 택하게 됐다. 배운 것도, 기술도 없는 이 씨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해고는 늘고, 일자리는 줄고

경제 위기라는 한파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언제 정리해고 될지, 임금이 삭감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늘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 김씨와 이씨가 겪고 있는 상황은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경제 위기가 고용 위기로 이어지고, 다시 여성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통계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제 위기가 시작된 2008년 노동부 고용동향 주요특징 자료에 따르면 취약계층 위주로,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 취업자가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청년층 남성의 고용률은 증가세(2만5000명)가 지속됬으나 여성은 감소세로 반전돼 남성에 비해 경기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성 취업자수는 2007년도에 3만6000명이었으나 2008년도에는 4만8000명이 감소했다.

특히 여자 상용직은 2·4분기부터 급감했다. 2.4분기에는 5만3000명이 감소했고 3·4분기엔 7만 명 감소. 4·4분기는 5만8000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이러한 결과와 관련해 "남성의 경우 일용직, 임시직 위주로 감소한 반면 여자는 상용직 위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쉽게 해고됐다. .

빈순아 전국여성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같은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남성은 중심 업무에 배치하고 여성은 보조 업무에 많이 배치한다"며 "이러한 남성 중심적 노동 배정이 여성의 해고를 더욱 쉽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정문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여성 중에서도 비정규직의 고용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여성 비정규직 일자리인 가사서비스업 일용직이 지난해 3, 4분기부터 감소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3·4분기에 2만3000명, 4·4분기에 2만1000명이 감소했다.

자영업자, 특히 숙박, 음식업에 종사하던 여성들도 4만5000명이나 줄어들었다. 정문자 대표는 "실물 경제의 위기는 노동시장의 악화로 이어져 결국 취약계층인 여성에게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취업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수가 지난해 1월 23만5000명에 비해 10만3000명 감소했다. 줄어든 숫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1.5%(8만4000명)이었다.

정부 정책 속에 여성 노동자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취약 계층인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대선 당시 내세운 여성노동 관련 공약마저도 정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는 당시 '여성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사회서비스직 좋은 일자리 50만개 창출'을 내걸었다. 그러나 정부의 2009년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계획은 12만5000여 개에 불과하다. 평균적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3분의 2가 여성 일자리라는 통계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여성 일자리는 8만3000개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정부는 최저임금 삭감과 파견직 업종 확장, 비정규직 고용 연장에 적극적이다. 정부는 "경제 위기에 취약 계층이 해고되지 않도록 임금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며 배경을 설명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 이명박 정권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법과 제도는 없는 실정이다. ⓒ프레시안
게다가 경기 부양책으로 내놓는 정책들은 하나같이 남성 중심 일자리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뉴타운, 4대강 살리기, 녹색 뉴딜 등을 추진하며 이로 인해 98만 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여성계에서는 "이들 모두 건설, 토목 사업"이라며 "여성 노동자들에게 효과적인 일자리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의 사회적 일자리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여성부에서는 고용 계획을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 계획이 아닌 여성의 직업 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지원 대상 규모는 매우 적은 상황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이후 조직이 축소되고 2007년 1조1994억 원이었던 예산이 1년 만에 539억 원으로 95.5%가 줄어든 말 그대로 '식물 여성부'가 된 것도 한 원인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현재 여성부는 집행부처가 아닌 '정책협력부처'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전문가들 "강자 중심의 경제 아닌 조화로운 삶 모색해야"

그렇다면 경제 위기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까?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유럽연합에서 전개되고 있는 최근 고용 정책은 이전보다 진일보한 정책 도구의 사용을 통해 국가가 성 평등의 원칙을 주류 사회 정책 안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것은 여성에 큰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구 유럽의 경우 실업자 뿐 아니라 비경제활동인구(전업주부, 학생 등)를 수혜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이는 취업을 포기한 실업자와 장기 휴직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며 "한국에도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주희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영국에서도 여성의 고용 촉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업주부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 비전통적인 남성 지배직무에 여성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자격증 및 훈련제도, 일과 생활의 양립을 돕는 가족 친화적 작업장의 확산을 위해 기업에 제공하는 지원책 등 의미 있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 고용평등이 증진됨으로서 발생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새로운 수요창출을 통해 현재의 경제위기 극복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 정부의 이같은 노력은 너무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빈순아 정책국장도 "지금 정부와 기업은 경제 위기를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건 사회 안전망 구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 위기를 계기로 사회복지 시스템을 확충함으로서 일자리 창출, 일자리 자체를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나가야 한다"며 "이는 복지국가로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8일은 101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이유로 강자 중심의 경제 성장을 외치는 정부와 기업이 버티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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