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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거짓말 잘해야 권력 잡는다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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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거짓말 잘해야 권력 잡는다 말해라

[박동천 칼럼] 거짓말 공화국

일제고사 성적조작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에서는 용산 참사관련 여론조작을 시도했고, 청와대에서는 강호순을 이용해서 민심을 호도하려고 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문건"을 묻는데 "메일"로 답했다가, 사전 인지 여부를 추궁 당하자 바보 흉내를 내고 넘어갔고, 원세훈 국정원장과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청문회에서 불리한 얘기가 나오면 주로 잡아떼기로 버티면서 시간을 벌다가 임명장을 받았다.

어지간하면 거짓말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한국사회의 공인들 사이에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데에는 여론의 지나친 도덕결벽증이 크게 작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기도 못 지킬 기준을 남에게만 강요하는 풍토에 사회전반적인 표리부동의 원인이 대단히 많이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에, 대개 남들이 거짓말이라고 의심하는 경우에도 그동안 나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거짓말이라고까지는 부르지 말자고 굳이 찬 물을 끼얹는 편이었다.

그러나 저런 것들은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 없이 자체로 거짓말이 아닌가? "문건"을 묻는데 "메일" 또는 "편지"를 언급했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를 사전에 알았음을 보여준다. 왜 "메일"을 운운했느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빙빙 돌거나 바보 흉내를 시작한다. 바로 이런 태도가 또한 거짓말이라는 심증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내 글재주가 모자라서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한 번 보라. 느낌이 올 것이다.

자기 논문을 저널에서 임의로 실은 것을 몰랐다는 소리도 훨씬 가차 없는 검증을 받았어야 했다. 확률이 낮은 증언일수록 검증의 심도가 깊어져야 검증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논문 이중게재니 자기표절이니 하는 항간의 입방아에 대해 다소 무분별한 선동과 지식인들에 대한 질시가 섞여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중게재임을 인정하면서 "몰랐다"고 잡아떼서 통한다는 것은 차라리 이중게재를 문제 삼지 않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큰 재앙이라고 본다. 논문 이중게재는 일단은 전문직 학자들의 양식에 관한 문제로 사회 전체의 정직을 파괴하기까지 어느 정도 매개를 거쳐야 하지만, 공개된 국회청문회에서 거짓말과 잡아떼기가 통하는 풍조는 사회전체의 도덕적 표준을 바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미네르바를 잡아들인 검찰을 두고 대통령의 "747공약"은 왜 허위사실유포가 아니냐고 묻자, 법무장관은 "일기예보"를 빗대고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미네르바가 올린 글과 그날 오후에 발생한 20억 달러의 시장개입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검찰이, 청와대의 강공드라이브와 경찰특공대의 과잉진압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문에 금니에 신분증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이 필요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검찰 곁에는, 삼성 떡값 엑스파일에 나오는 명단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본 노회찬 전 의원의 의심이 합당하지 않다고 보는 재판부가 있다.

논리나 인과관계나 법률을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냥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이라고, "불복의 카르텔"을 혼낼 따름이라고 말하면 그래도 말길을 조금은 덜 비트는 것이 아닐까?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야 할 사법기능이 고질적으로 마비되어 있다는 증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주로 시간 끌기와 직무유기를 통한 은폐의 형태인데, 거짓의 소극적 형태인 은폐가 적극적 형태인 거짓말로 이어지는 것은 거의 자동이다.

최근에 영전한 신영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자리에 있을 때 촛불시위 관련사건 배당의 문제를 알고 있었으면서, 국회에서는 "컴퓨터로 배당됐다"고 사실과 다른 증언을 했다. 알면서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하면 위증죄에 걸린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촛불시위 관련사건 배당과 관련된 실상이 서울중앙지법 내부의 비밀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는 설령 나중에 드러나더라도 조직의 권위에 기대 버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의 고교등급제 여부를 조사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윤리위원회에서는 권영길 의원이 제시한 의혹에 대해서는 별 해명이 없이 그냥 혐의가 없다는 판정만을 발표했다. 하지만 고려대가 어떻게 소명했는지, 의혹이 제기된 항목들에 대해 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인지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종합적 판단이라는 조직의 권위를 가지고 세부 항목이라는 개별적 진실들을 덮어도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단편소설을 표절했다는 주이란의 제소에 대해 저작권위원회는 조정이 결렬되었다고만 했다. 조경란이 출석하지도 않고 답변하지도 않은 데에 관해 저작권위원회가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겉으로는 무작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경란의 은폐를 정당화하고 주이란에게 떠들어봐야 소용없다는 메시지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보낸 은밀한 선택을 반영한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차라리 진상규명이니, 조사니, 조정이니, 재판이니 하는 용어들이 사용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시정잡배들은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런 잡배들이 주류를 구성하지만 않는다면 사회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정이나 심판의 임무를 위임받은 공공기관이 한 쪽 당사자의 뭉개기를 그냥 수수방관하고, 수사하라고 위임받은 권력을 얼씨구나 은폐를 위해서 동원하면서, 진상을 원하는 시민들에게는 시간과 싸우라고 몰아붙이기를 업으로 삼는다면 어디선가 대단히 불쾌한 썩은 내가 풍긴다.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윤리"위원회가 합당한 의혹에 대해 얼버무리기로 넘어가는 재주를 특기로 여긴다면, 청문회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순서로 대법관 자리가 채워진다면, 국무총리가 잘하는 영어로 바보 흉내를 내야만 오래 버틸 수 있다면, 사회의 총체적인 질서가 무너질 날을 걱정하기 시작해야 한다.
▲ 국무총리가 잘하는 영어로 바보 흉내를 내야만 오래 버틸 수 있다면, 사회의 총체적인 질서가 무너질 날을 걱정하기 시작해야 한다. ⓒ뉴시스

거짓말은 절대로 한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한번 통하면 우후죽순 수많은 거짓말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날 것이다. 더구나 거짓말은 갈수록 뻔뻔하고 대담해져서 바보 흉내로 시작했다가도 머지않아 적반하장으로 돌변하기 쉽다. 사실, 또는 사실에 관한 합당한 의혹,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은 바를 공표한 사람을 도리어 "허위사실유포"나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길들이 이미 지난 몇 달 사이에 준비되면서 점점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니까 "허위사실유포"가 죄가 아니라 "기밀누설"이 죄라는 비아냥이 만연하는 것이다.

조직이 개인보다 우선시되면 가장 나쁜 놈이 꼭대기에 올라간다고 하이예크는 말했다. 지금 이 정권이 신봉한다는 자유주의의 챔피언 하이예크 말이다. 자기 혼자라면 어느 누구도 하려들 리 없고 할 수도 없는 악행들이 조직의 생존이나 위신을 명분으로 내걸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충성의 이름으로, 애국심과 위기극복을 명분으로 범죄를 저지르고도, 조직의 안정을 핑계 삼아 은폐까지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예크의 경제적 자유주의가 싫어서 그의 모든 말을 거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얼치기 진보가 있다면 민주노총의 일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민주노총 너까지"라는 식의 이중기준은 조직의 속성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불쾌한 사실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은폐애호의 소산이다. "이명박 정부와 싸워야 하는데" 조직이 그 일로 상처를 받으면 목표에 지장이 온다는 판단은 단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주의일 뿐이다. 이는 모든 조직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목적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 개인이 당한 일보다 조직의 목적이 더 고상하고 중요하다는 뒤틀린 프레임에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신영철 대법관도 서울중앙지법을 비롯한 사법부의 위신을 염려하지 않았다면 은폐도 위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청와대라는 조직의 체면을 염려하지 않았다면 바보 흉내를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미네르바를 체포해서 기소한 검찰도, 용산에서 여섯 목숨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도 국가나 정부의 위신 말고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음을 알았다면 다른 길을 고려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한 교육청 관계자도, 엉터리 사진으로 여론을 호도하려 한 국토부의 담당자도, 제야의 종 중계방송을 조작해서 내보낸 KBS의 피디도, 그밖에 수많은 조작과 은폐와 왜곡의 주인공들도 자기가 조직의 일원이기에 앞서 살아서 숨쉬며 생각하는 사람임을 먼저 생각한다면 무엇이 잘못인지 모를 리 없다. 심지어 저질통속 신문에 왜곡 기사를 싣는 기자들, 나아가 조갑제를 따르는 부라퀴들조차도 조직보다 사람이 먼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이나마 떠오르는 순간에는, 누군가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억지를 부리다가도 뒤를 돌아본 적이 모르긴 몰라도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본심을 숨기고 조직에게 복종하라고 배웠을 뿐이다.

가족을 위해서, 학교를 위해서, 지역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충성하고 희생하는 삶이 소중하다고만 배우고, 가족에서부터 국제사회까지 모든 조직은 공동선뿐 아니라 범죄도 조직적으로 자행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경고를 배우지 못했을 때, 우리는 이미 거짓을 용인하라는 교육을 받은 셈이다. 협동의 효율성이 범죄의 경우라고 제외되지 않고, 더구나 조직적 범죄는 은폐를 먹으면서 질긴 명줄을 이어나간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지도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봉건 국가와 조직 폭력단의 차이가 어디에 있냐는 서양근대의 발칙한 질문을 오천년 민족사의 위신을 염려해서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부모의 언행에서 괴리를 지적했다가 혼쭐이 나면서 세상을 배우고, 친척과 이웃들에게 그래야 착한 아이라는 확인을 받고, 학교에 가서는 고급언어로 포장하는 방법을 배워서 친구들과 실습하며, 군대에서는 요령이라는 이름의 은폐와 조작기술을 체계적으로 훈련받아 머리 속에 대못으로 박아두고, 취직해서 생업에 종사하면서는 그런 습성을 배워둔 보람을 음미하면서 산다. 어디까지만 정직해야 되고 어디서부터는 정직하면 안 되는지 일생을 통해 터득한 구분법을 스스로 부모가 돼서는 후손에게 전수함으로써 부성애와 모성애를 헌신적으로 실천한다.

그렇다면 다른 거짓말은 다 그냥 두더라도,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거짓말만은 중단해 보는 것이 어떨까. 거짓말을 대물림하는 습성을 대대손손 소중히 간직할 요량이라면, 잡아떼기와 무지르기와 뭉개기와 시간 끌기와 얼버무림과 바보 흉내는 거짓이 아니라고 둘러대는 사회화를 그만 둘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서부터 거짓말을 못하면 낙오한다고 가르치기로 하자. 거짓말은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치 권력이 하는 말은 항상 옳다는 식으로 행동해서 아이들에게 괜한 의문점들을 남기지 말고, 차라리 거짓말을 잘해야 권력을 쥘 수 있다고 처음부터 말해주자.

공영방송에서는 학년별 거짓말 경시대회를 열어 중계하고, 문화부는 거짓말 종목을 올림픽에 넣자고 로비하고 (그러려면 우선 대법원이 IOC에 이건희 위원의 자격에 하자가 없다고 탄원서를 내야겠다), 교육부는 역대 최고의 거짓말쟁이들로 위인전을 편집하라고 출판사들에게 공공연히 압력을 넣고, 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들로 하여금 거짓말의 세련된 기법을 외우는 능력과 실천하는 역량으로 각각 입학생 선발과 졸업생 사정의 기준을 삼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그리고 로스쿨을 시작하는 김에 거짓말하고 안 걸리는 방법을 첫 번째 교과목으로 넣자.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쳐도 잡히지만 않으면 경제를 살릴 것이 아닌가?

다른 모든 위선은 두고 그것 하나만 멈춰보자. 명실상부한 거짓말 공화국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 한민족의 창의력을 과시해보자. 이미 실질은 갖춰진 셈이니 간판만 달면 된다. 우수리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철이 든 후에 새삼스럽게 권력과 제도의 거짓말에 분개해서 촛불을 들고 나서는 순진한 종자들은 싹도 트기 전에 도태될 테니 적어도 정치공방 때문에 시끄러울 일은 없겠다.

거짓말이 미덕이 되면 서로 거짓말을 잘 하려는 개인적 경쟁만 남을 테니, 누가 거짓말을 했니 마니를 가지고 국론이 분열될 일은 없겠다. 우리 모두가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만은 이웃끼리 닮아져서 널리널리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고 한민족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정립되겠다. 나아가 거짓말을 수용하는 긍정의 바이러스가 금수강산 방방곡곡으로 퍼지다 보면, 콘크리트에 페인트 칠만 잘하면 녹색이 된다고 믿는 소망의 기적까지도 일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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