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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금년 하반기 경제 좋아진다? 위험한 주장"

정운찬 "한국경제, 불균형 바로잡아야 위기 극복 가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경제학과 교수, 금융경제연구원장)이 우회적으로 현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을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시장의 어려움을 초래한 금융인이나 그들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못한 관료들이 여전히 요직에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정 전 총장은 지난 달 27일 인제대학교 서울 백병원 인당홀에서 열린 '2009년 인제강학회'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 대응책으로 △정부의 신뢰와 리더십 구축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뉴딜 △효과적 구조조정 등 세 가지를 주문했다. 그는 이들 세 가지 요건을 실행할 때 필요한 요소를 조목조목 거론하며 현 정부 대응책에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맹목적인 시장만능주의를 버리고 사회통합을 위해 경제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제대 인간환경미래연구원이 주최한 회의에는 강연자로 나선 정 전 총장을 비롯해 백낙환 이사장과 이경호 총장, 이태수 인간환경미래연구원장,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홍완표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 백수경 인제대학원대학교 학장 등이 참석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정부 경제팀이 시장 신뢰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금융부문에 많은 실수한 사람들 아직 요직에 있어

정 전 총장은 현재 한국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내부 문제 해결에서 찾아야한다고 했다. 극복 방안으로 그는 세 가지를 거론했다.

정 전 총장은 먼저 정부 경제팀이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위기 때 경제정책 책임자의 판단은 흔히 '아트(art)'라고 한다. 위기 시에는 인간의 심리가 극도로 민감해져 경제변수들의 민감도도 높아지기 때문"이라며 "경제팀이 일관된 위기 극복 청사진을 제시해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지난 5~10년 간 금융부문에서 많은 실수를 한 사람들이 요직에 있다. 이해할 수가 없다"며 "미국이나 영국처럼 금융감독은 예상이 불가능한 상황에 급습하는 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 동안 (한국에는) 전혀 없었다. 또 (정부가) 정신을 못 차리고 금융위기 전의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라가려고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YS정부 때도 '뉴딜' 하다가 후유증으로 외환위기 초래

정 전 총장은 두 번째로 제안한 위기 극복방안인 뉴딜정책에 대해서도 현 정부의 '녹색뉴딜'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먼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중심으로 이른바 녹색뉴딜 정책을 착수한다고 하는데 뉴딜의 본질은 그리 간단치 않다"며 "1930년대 미국의 뉴딜은 광범위한 금융규제와 노동자의 권익보호, 사회안전망 확충 등 국가개입 확대로 경제약자를 배려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단순히 SOC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나라의 녹색뉴딜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으로 보기에 미흡한 점이 많다. 경제적·비경제적 비용과 효과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추진한다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미래 세대에 부담으로 남을 우려가 크다"며 "기초 연구개발·사회안전망·교육이나 보육 등 '사람과 아이디어에 대한 투자'는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 전 총장은 또 "1993년 김영삼 정부 당시 경제팀이 뉴딜 한다고 100일간 투자계획을 앞세워 과잉투자를 했고 이 후유증이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뉴딜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정부가)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지금도 당시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답답해했다.

사실상 현 정부의 녹색뉴딜이 표방하는 치수공사·도로건설 등 대규모 SOC 투자는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친 셈이다.

구조조정 역시 시급한 경제위기 대응책이라고 정 전 총장은 주문했다. 특히 건설업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정 전 총장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건설업 비중이 가장 큰 나라다. 이 돈 저 돈 끌어다 무리하게 건설업을 지탱하는 것보다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제가 보기에 지금이 건설 거품이 꺼지는 시기인데 (정부가) 여기에 다시 거품을 넣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그는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금융기관도 부실해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최종대부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며 "특히 부실의 원인을 제공한 경영진이나 관료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정부가 위기를 빌미로 관치를 하는 방식도 더 큰 후유증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금융위기 없었어도 한국 경제 어려웠을 것

정 전 총장은 한편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가 아니었다고 해도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위기극복 요인의 대상으로 꼽았던 대내적 문제가 언젠가는 터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소리다.

그는 "'이번 경제위기가 아니었다면 앞으로 한국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것이 가능했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렵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며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됐고 이에 따라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빚이 늘어났다. 가계 부실 문제는 일자리 문제와도 연결된다. 대내적 위기요인인 경제 양극화와 그에 따른 중산층 붕괴, 내수 위축은 언젠가 심각한 위기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정 전 총장은 "1999년만 해도 우리나라 개인들의 순저축률이 15%를 넘었는데 2007년에는 2.3%까지 떨어졌다. 지금 한국 가계는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자비용을 내고 있고 소득에 비해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기부양책이나 감세도 효과가 없게 됐다. 그 동안 가계가 소득에 비해 더 많은 소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금년 하반기에 경제 좋아진다고?

▲정 전 총장은 내수가 무너진 상황에서 수출길도 막혀 한국경제 회복이 쉽지 않다고 했다. ⓒ프레시안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 역시 대내적 경제균형 붕괴 요인으로 정 전 총장은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 200여개 나라 중에서 한국보다 인구도 많고 일인당 국민소득도 높은 나라는 여섯 나라밖에 없다. 이 정도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가 이처럼 내수기반이 부실하고 대외충격에 취약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외환위기 이후 수출대기업 위주의 경제운용에 몰입했으나 경제의 글로벌화로 국내 산업연관 구조가 단절되는 바람에 중소기업과 자영업 부문은 크게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정 전 총장은 따라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한국이 곧바로 극복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대내적 경제불균형 문제를 바로 잡지 않는 한 근본적 처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는 "일부 사람들이 '경제가 금년 하반기에는 좋아진다'고 말하는데 근거없는 말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며 "한국경제는 지금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지금부터라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에 우리가 이름을 익히 아는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경제위기에 대응을 잘못한다면 자칫 사회문제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 상황이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저는 태생이 경제학자다. 시장에 대한 믿음이 있다. 많은 경제체제 중에서도 자본주의 체제가 단점이 그나마 덜하다"며 분명히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외국계, '가장 못 믿을 게 한국 보고서'라 한다

그는 다만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안 된다. 시장은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규제를 통해 시장이 투명해져야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다"며 경제감시당국이 재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외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정 전 총장은 강조했다. 그는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하는 이유는 경제 규모에 비해 외환시장이 적다는 문제 때문이며 우리가 좀 덜 정직하다는 요인도 있다"며 "미국에 나가 있을 때 외환시장에 참여하는 한 외국인에게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때 왜 한국부터 빼냐'고 물었더니 '각 나라의 경제보고서 중 가장 못 믿는 게 한국보고서'라고 답했다. 정부와 국민이 더 정직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중 통화스왑, 한일통화스왑 등에 따른 역내 통화블록체제 구축 논의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 한국 경제를 보다 확실하게 중국이나 일본 경제에 의존하는 체제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미국, '슈퍼자본주의' 극복해야 경제위기 극복"

정 전 총장은 미국의 경제위기 대응책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무엇보다 미국이 과거 30년 동안 지속한 신자유주의, 이른바 '슈퍼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끊임없이 욕구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특성이 극에 달하면서 로버트 라이히 전 노동부 장관이 말하는 이른바 슈퍼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정부 역할이 없어진 것"이라며 "지난 30여 년간 미국 남성 노동자의 임금은 실질적으로 하락했고 특히 30대 젊은이들의 실질임금은 12%나 감소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빚이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소득 부족분을 부동산 투기로 메우려하면서 금융위기를 낳았다. 월스트리트가 자신들의 욕망이 스스로를 집어삼키는 것을 막지 못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정 전 총장은 따라서 "미국이 생산보다 더 소비하는 행태를 고치고 소득 분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치유하기 힘든 병에 걸려 있다. 이를 극복해야만 미국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만이 아니라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세계 많은 나라의 고통을 수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미국이 슈퍼자본주의를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정 전 총장은 전망했다. 지금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오바마 정부 역시 과거 규제완화에 적극 나섰던 인물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는 "클린턴 정부 시절 대대적 금융규제 완화에 나섰던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현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전 뉴욕연방은행 총재(현 재무부 장관) 등이 다시 오바마 정권의 주역이 됐다"며 "저 사람들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상당히 어렵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슈퍼자본주의의 폐해가 매우 깊다. 슈퍼자본주의의 진행으로 미국 정치가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정치가 되다보니 모든 정치인이 월마트와 같은 기업들의 로비자금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따라서 필요한 규제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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