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한국노총이 덜컥 도장을 찍어 준 노·사·민·정 대타협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대타협의 핵심은 '노동자는 임금을 양보하고 기업은 고용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이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용 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
이런 현실을 놓고 민주노총은 27일 "한국노총은 '노동자 임금'이라는 현찰을 주고 기업의 '고용 유지'라는 부도 수표를 받아왔다"고 맹비난했다. 민주노총은 '노·사·민·정 대타협'을 "대국민 사기"라고 규정하고, 야3당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별도의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해 "진정한 경제 위기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재계의 대졸초임 삭감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학생단체와의 간담회 등 노학 연대를 통해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선언했다.
임금은 줄이고 고용도 줄이고…"노·사·민·정 대타협의 '사기성' 증명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정부와 기업이 경제 위기를 빌미로 '종합선물세트'를 챙기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가 어려우니" 기존 노동자 임금도 줄이고, 신입 사원의 초임도 줄여 전체적인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면서 동시에 구조 조정은 그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
민주노총 산하연맹이 집계한 '구조 조정 및 고용 위협 실태 자료'를 보면 이런 주장이 사실임이 드러난다. 평균 13.5%의 인력 감축 계획을 진행 중인 공기업의 경우, 최대 28.9%(한국관광공사)에서 최소 10.1%(대한지적공사)의 감원을 추진 혹은 진행 중이다.
제조업의 경우 이미 정리 해고가 시작됐거나 통보 받은 곳은 금속노조 산하 242개 사업장 가운데 13.5%이며, 휴업이나 임금 체불, 복지 축소, 전환 배치 등 고용이 위태로운 사업장이 전체의 80.2%(192개)에 달한다.
사무금융연맹 가맹 조직도 마찬가지다. 1000명(대한생명)에서부터 400여 명(신한카드)의 감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12월 결산법인은 주주총회 전인 2~3월 사이, 3월 결산 법인은 역시 주총 전인 5~6월 사이에 대대적 구조 조정을 계획 중"이라며 "시기만 보더라도 경영자가 자기 성과를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한 목적의 구조조정임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용건 위원장은 "정부와 기업은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임금을 내놓으면 고용을 유지해준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고용이 유지되는 사업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맹비난했다.
'30대 기업 신입사원 임금 삭감'이 노리는 것은?
특히 30대 기업의 대졸 초임 삭감 계획을 놓고 민주노총은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단지, 경제 위기 속 일시적인 '극약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체 노동자 임금을 줄여 기업의 이익을 더 극대화하겠다는 '못된 발상'이라는 것. 현재 대부분의 기업의 임금 체계가 신입 사원 초임을 기초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정용건 위원장은 "정부는 위와 아래에서 모두 노동자 임금 삭감을 압박하고 있다"며 "임원 임금을 20% 줄이면 자연스럽게 부장 임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신입 임금이 28% 줄어들면 향후 몇 년간 기존 노동자 임금도 동결 혹은 삭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내부의 임금 체계만 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초임이 줄어들면 중소기업의 초임도 자연히 삭감된다. 정 위원장은 "결국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하향평준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30대 기업의 대졸 초임 삭감 계획을 놓고도 민주노총은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단지, 경제 위기 속 일시적인 '극약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체 노동자 임금을 줄여 기업의 이익을 더 극대화하겠다는 '못된 발상'이라는 것. ⓒ<노동과 세계> 이기태 기자 |
몇 년 후,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이런 임금 체계가 원상태로 복귀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또 하나의 우려 지점이다.
우문숙 대변인은 "기획재정부가 114개 공기업에 내린 공문을 보면 '초임을 삭감한 신입사원은 간부직에 이르기 전까지는 변경된 임금 체계를 계속 적용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결국 경제 회복 이후에도 삭감된 몫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 "대안적 사회적 대타협 추진할 것"
민주노총은 전반적인 노동자의 소득 감소는 "개인의 생계를 위협할 뿐 아니라 내수를 축소시켜 경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단체는 "진정한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성규 비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노총이 추진한 기만적 '노·사·민·정 대타협'에 맞서 진정한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의 공식적 대화 요청을 정부가 무시하고 있는 가운데, 야3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함께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성하겠다는 것.
임성규 위원장은 "많은 단체가 긍정적 답변을 보내왔다"며 "3월 초에 첫 회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지도부의 총사퇴 이후 비대위를 맡아 다시 한 번 이명박 정부를 향해 대화를 제안한 바 있는 임성규 위원장은 "정부가 먼저 진정성을 갖고 대화를 제의해 온다면 거절할 이유도 없지만 대화하자고 매달릴 이유도 없다"며 "더 이상 공식적인 대화 제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오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MB 악법 저지, 경제 파탄 책임 전가 이명박 정권 심판 전국노동자대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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